

오나시스가 재클린과 재혼
볼품은 제로지만 근면성실한 오나시스
역시 노래만 근사한 칼라스
돈과 재혼한 재클린 결국 셋다
불행으로 결론되어짐
어떤 것이 생의 진정한 행복일까요?
억만장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무대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 하다가 칼라스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8년이 되기 전에 주부로서 너무 모자라고
권태가 나서 이혼하고 재클린에게 다시 장가 갔습니다.
케네디의 아내였던 재클린과 함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재클린과 결혼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오나시스는
"내가 실수를 했다." 하며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파혼할 길이 없을까?' 하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니 이혼도 못합니다.
재클린이 한 달에 24억원이나 되는돈을 펑펑 쓰니
오나시스는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갑니다.
그의 아들마저 비행기 사고로 죽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도 얼마 못살고 죽었습니다.
끝까지, 이혼에 합의 않던 재클린은, 오나시스의
엄청난 유산을 거의 차지 했지요.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
하며 오나시스는 가슴을 치고 후회하다 죽습니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칼라스와 살아도,
최고의 여자 재클린과 살아도 후회뿐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명성은 높았을지 몰라도
가정주부 로서는 크게 미흡했습니다.
우리는 오나시스의 체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세기적인 미녀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와 살면 행복할까요?
아름다운 외모와 사회적인 명성도 좋지만
그저, 가정살림 잘하고 따뜻이 가족 돌볼 줄 아는,
알뜰, 살뜰한 주부가 최고랍니다.
평생 '갑(甲)'으로 살아온 사람들일수록 퇴직하면
더 외롭게 지내는 것을 종종 봅니다.
항상 대우만 받고 남들이 만나자고 하는 약속만
골라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언제 한번 만나자.'는 말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점심 약속을 잡으세요. 아니면, 그 다음날 전화나 이 메일로
먼저 만나자고 하든지요.
안그러면 영영 사람 만날 기회를 놓치고
결국, 평생 외롭게 됩니다.
고생만 하다 살다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랍니다.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뇌기능중 70%는 놀고 있다.
-최고급 핸드폰 기능 중 70%는 쓸데가 없다.
-최고급 승용차의 속도 중 70%는 불필요하다.
-초호화 별장의 면적 70%는 비어있다.
-사회활동의 70%는 의미 없는 것이다.
-집안의 생활용품 중 70%는 놔 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
-한평생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70%는 다른 사람에게 쓴다.
-아무리 재벌이라 해도 죽은 뒤에는
70%의 재산은 남이 갖는다.
결론은, 삶은 간단 명료합니다.
살아있을 적에 인생을 즐기십시오.
개고생만 하지 말고 그리고 상대의 겉모습에
헛정신 팔지 마십시오.
그리고, 70%는 남이 가지니 자신을 위해 쓰십시오.
오늘부터 자신을 위해 70% 마구 쓰시고
행복 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럽디다.
능력 있다고 해서 하루 밥 열끼 먹는것도 아니고
많이 배웠다 해서 남들 쓰는말과 다른 말 쓰는것도 아니고, 그렇게 발버둥 치고 살아봐도
사람 사는일 다 그렇고 그럽디다.
천원 버는 사람이 만원 버는 사람 모르고 천원이 최고 인줄 알고 살면 그 사람이 잘 사는 것입니다.
돈이란 돌고 돌아서 돈입니다.
많이 벌자고 남 울리고 자기 속상하게 살아야 한다면
벌지 않는 것이 훨씬 나은 인생입니다.
남에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내 눈에 피 눈물 난다는말 그말 정말 입니다.
어차피 내맘대로 안되는 세상,그 세상 원망하며
세상과 싸워 봤자 자기만 상처 받고 사는 것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자기속 편하고 남 안울리고 살면 그사람이 잘 사는 겁니다.
어떻게 살면 잘 사는건지?
잘 살아 가는 사람들은 그걸 어디서 배웠는지
안가르쳐 줍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가 언제 인지 기억도 안나고,
정말로 기쁘고 유쾌해서 크게 웃어본지가 그런 때가 많았는지, 있었는지 궁금해 집니다.
내가 남보다, 나은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고 이제껏 내가 내살 깍아 먹고 살아 왔습니다. 왜 그렇게 바쁘고, 내 시간이 없었는지~
잘사는 사람 들여다 보니 별난데 없이 잘 살더이다.
많이 안 가져도 자기 할말 다하고 삽디다.
인생을 산다는것이 다 거기서 거깁디다.
그저, 허물이 보이거들랑 슬그머니 덮어주고
토닥 거리며 다독이며 둥글게 사는게 인생 입니다.
글 옮김
참고로
선박왕 오나시스를 사랑한 프리 마돈나, 마리아 칼라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1923년 미국으로 이주해 간 그리스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마리아 칼라스는 꽤 '우량아' 였었는데, 일찍 사망한 아들을 대신할 애가 태어나길 원했던 그녀의 부모는 우람한 딸의 탄생에 실망했고 별로 큰 애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Maria Callas(1923~1977)
Maria Callas: O Mio Babbino Caro (Gianni Schicci) Puccini
https://youtu.be/3v2jP7_OaMc
'근시여서 두껍한 안경을 쓰고, 비만이기까지 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자기보다 '날씬하고 예쁜 언니'에게 밀려 '미운 오리 새끼'스러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12세 때 한 라디오 방송국의 <아마추어 노래 경연 대회>에 출전하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서 마리아 칼라스는 그리스로 돌아왔고, 원래 배우가 꿈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자식들 음악 교육에 열성을 쏟아 부었다.
아테네의 국립 음악원에 들어간 마리아 칼라스는 프리 마돈나 엘비라 데 히달고(Elvira de Hidalgo)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1940년(18세 때) 주페의 오페레타 <보카치오>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한동안 그리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1945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 가 이름을 알리려 노력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당시 90kg에 육박하는 과체중이었던 그녀는 여러 작품을 놓치게 되거나 계약한 작품의 기획사가 망하는 바람에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1947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라 지오콘다(La Gioconda)>의 주연을 맡게 되면서 마리아 칼라스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라 지오콘다> 이후, <트리스탄과 이졸데> <투란도트> <노르마> 등등의 공연을 거친 그녀는 어느덧 '세기의 소프라노'로 이름 날리게 되었다.
마리아 칼라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
푸치니(Puccini)의 오페라 <쟌니 스키키(Gianni Schicci)> 中...
<라 지오콘다>로 이탈리아 무대에 처음 섰던 그 해(1947년) 오페라를 사랑하는 나이 많은 사업가 지오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를 만나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1949년 그와 결혼했다.
메네기니와의 결혼 후 '매니저가 된 남편'의 지원 하에 외국에서 더 큰 명성을 쌓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승승장구하였고, 1954년 경엔 연출가 루치노 비스콘티를 좋아하게 되면서 단기간 내에 체중을 30kg 정도 감량했다.
프리 마돈나로 이름을 날리던 마리아 칼라스는 1957년 한 모임에서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만나게 되는데, 1959년 자기 남편 & 여러 인사들과 오나시스의 요트 여행에 초대받은 그녀는 그 기간 동안 오나시스와 연인 사이가 되면서 조강지부(糟糠之夫)라 할 수 있는 남편을 버리게 된다..
명성의 정점에서, 후원자였던 남편을 버리고 오나시스(Onassis)와 바람이 난 뒤로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 인생'도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 후 마리아 칼라스는 무대를 버리고 선박왕 오나시스에게 헌신하면서 그와 함께 하는 삶에 몰두한다.
하지만 몇 년 뒤, 오나시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John F. Kennedy)의 미망인이었던 재클린을 만나게 된다.('마리아 칼라스-오나시스-재클린' 삼각 관계) 결국 오나시스를 재클린에게 빼앗긴 마리아 칼라스는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으나, 1965년 7월 <토스카>를 마지막으로 해서 잠정 은퇴에 들어갔다.
1968년 바람둥이(?) 선박왕 '오나시스'는 재클린 (Jacqueline)과 결혼했고, 사랑했던 오나시스를 잃고 남편과도 이혼하게 된 '마리아 칼라스'는 70년대 접어들어서 줄리어드(Julliard)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순회 공연을 여는 등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974년 일본 삿뽀로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결국 은퇴하게 되었다.
1975년 그녀가 많이 사랑했던 오나시스(Onassis)가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으로 큰 충격에 빠진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삶의 의욕을 잃고 파리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1977년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망했을 당시의 오나시스는 재클린(Jacqueline)과 이혼 소송 중이었다는데, 마리아 칼라스를 버리고 택한 재클린과도 뭔가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기의 디바'였지만, 예술가로서의 삶이나 세계적인 명성도 마다하고 마리아 칼라스는 '오나시스와의 사랑'을 갈구했다. 허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가 자신을 '세계적인 프리 마돈나'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도와준 남편 메네기니(Meneghini) 를 버리면서까지 오나시스를 택했건만, 그는 배신 때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는 등 '남녀 간의 사랑'은
참 변덕이 심한 것 같다.
결국.. 인생도 짧고, 사랑도 그렇게 짧지만, 세월이 흘러도 길이길이 남는 건 '예술'이 아닐까 싶다.
'프리 마돈나'로서의 마리아 칼라스는 그녀가 죽고 난 뒤에도 대중들로부터 끊임없이 사랑 받고 있으니 말이다. 쇼펜하우어가 남긴 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진리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