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데뷔 소설 출간을 앞둔 작가 요나스에게 아버지의 옛 친구 카디르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한다. 카디르는 요나스의 아버지 압바스가 가난한 고아에서 스웨덴 이주 후 세계적인 보도 사진 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삶을 함께 전기로 써 보자고 제안한다. 아버지와 8년간 연락을 끊은 채 살아온 요나스는 내키지 않으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더듬기 시작한다.
압바스는 첫눈에 반한 스웨덴 여성 페르닐라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 혈혈단신 스웨덴으로 이주한 인물이다. 생계를 위해 지하철 운전사로 일하면서도 사진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는 사진관을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하지만 스웨덴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장인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가게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차린 사진 스튜디오에는 손님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완전한 스웨덴인이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이민자 친구들과 교류를 끊은 채 스웨덴어만 쓰기 시작하고 이름마저 바꿔 버린다. ‘애완동물 사진작가 크리스테르 홀름스트룀’의 스튜디오는 점점 스웨덴 손님들로 붐비고 압바스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한편 어린 시절 예술사진을 찍는 아버지를 영웅처럼 자랑스러워했던 요나스는 압바스가 스웨덴어만 쓰기를 강요하고 이민자 친구들과 노는 것을 못마땅해하자 당혹스러워한다. 요나스는 불황의 영향으로 이민자에 대한 사회의 냉대와 차별, 폭력이 심화되는 가운데서도 스웨덴을 맹목적으로 동경하고 순응하는 압바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날 밤 습격으로 스튜디오가 불에 타자 압바스는 좌절에 빠져 홀연히 집을 떠나 버리고, 요나스는 가족을 배신한 아버지와 인종차별주의적인 스웨덴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이민자 친구들과 조직을 만들어 공공장소에 낙서 테러를 가하다가 경찰에 붙들린다.
“나는 오직 하나뿐인 호랑이다.
우리는 영원히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작가 요나스 하센 케미리
그의 정체성이 담긴 자전 소설이자 대표작
1978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튀니지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민 2세인 케미리는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자전 소설『몬테코어』(2006)로 급부상했다.
2017년 스웨덴 작가 최초로 《뉴요커》에 단편 소설을 게재했으며, 2021년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해 뉴욕 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며 집필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 주류 사회와 이민자 사회의 간극과 갈등,
주변인이 겪는 소외와 차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
『몬테코어』는 데뷔 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는 요나스에게 어느 날 이메일 한 통이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이메일을 보내온 이는 튀니지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한다는 아버지의 옛 친구 카디르이다. 카디르는 요나스의 아버지 압바스가 가난한 고아에서 스웨덴 이주 후 세계적인 보도 사진 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삶을 함께 전기로 써 보자고 제안한다. 아버지와 팔 년간 연락을 끊은 채 살아온 요나스는 내키지 않으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더듬기 시작한다. 1970년대 말 스웨덴으로 이주한 아버지 압바스와 바이킹의 나라에서 갈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요나스는 스웨덴 이민 1세대와 2세대를 대변하며 이주자들이 주변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삶의 질곡을 보여 준다. 압바스는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스웨덴식으로 ‘요나스’라 짓고, 아랍어를 버리고 스웨덴어만 쓰고,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주자들과 관계를 멀리하고, 자기 이름마저 ‘크리스테르 홀름스트룀 압바스 케미리’라는 “스웨덴적”인 이름으로 바꿔 가며 스웨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애쓴다. 그럼에도 유색인 이민자라는 이유로 스웨덴 여성과의 결혼에 어려움을 겪고, 스웨덴어를 못해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사진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부에 보조금을 신청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이민 2세대인 요나스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탓에 어린 시절 언어장애를 경험하고 가난으로 보통의 스웨덴 아이들처럼 교육받지 못하며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욕을 들으며 자란다. 게다가 아버지가 스웨덴 주류 문화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고민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스웨덴은 전체 인구의 약 17퍼센트가 이주자로 이루어져 있다. 오랫동안 다문화주의 정책을 실시해 온 스웨덴은 ‘주류 사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가 평등하게 인정되어야 함을 강조해 왔다. 또한 스웨덴어나 시민 교육을 이주자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이주자들의 권리를 신장하고 이민자를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사회 통합을 이루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스웨덴 내에서 이민자 사회와 주류 사회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이주자에게 제공하는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스톡홀름의 링케뷔나 말뫼의 로센고르덴 구역은 스웨덴 원주민들이 꺼리는 거주지이며, 이주자들이 사용하는 스웨덴어는 소설에서처럼 “링케뷔 스웨덴어”라 불리며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이 나라에서 신뢰를 얻기가 아주 어려워.” 두꺼운 종이 뭉치에 시선을 두며 네 아빠가 말했다. “마찬가지로 임대되지 않은 가게를 갑자기 잡으려고 할 때도 안 되지. 내 외국인 악센트가 들리면 말이야. 우리 뒤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다는 거야.” ―219쪽
아빠가 드로트닝가탄에 있는 게으름뱅이들의 사진을 찍고 올렌스 백화점의 시계를 비추는 햇살을 칭송하고 있는 동안, 너는 재활용 병들을 수집하고 자전거 보관대에서 참을성 있게 앉아서 기다린다. 단 한 번 술에 취한 아저씨들 몇 명이 소리친 적이 있다. “빌어먹을 튀르키예 새끼들!” 그때 아빠는 청각장애인 행세를 하며 삼각대를 꾸린 다음 센트랄 역을 향해 가는 방법을 너에게 보여 준다. ―194쪽
케미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스웨덴 주류 사회와 이민자 사회 사이에 있었던 긴장과 충돌을 폭로한다. 경제 불황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고 이민자 복지 정책으로 삶이 위협받을까 봐 우려하는 스웨덴 사람들,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치부하며 스웨덴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정치적 슬로건, 신민주당 등 이민 사회를 위협하는 극우 세력의 확대, 유색인에 대한 범죄를 일삼는 스킨헤드, 급기야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열한 명이나 총으로 살상한 테러리스트 ‘레이저 맨’의 등장.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스웨덴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와 백인 우월주의의 횡포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주며 ‘통합’을 중요시하는 나라 스웨덴의 현주소를 되묻는다.
■ 상반된 관점의 서술이 주는 반전의 묘미와 다채로운 문학적 변주
카디르와 요나스가 함께 써 내려간 압바스의 전기 『몬테코어』는 다양한 종류의 글과 여러 화자에 의해 다채롭게 변주된다. 카디르가 요나스에게 쓴 편지, 압바스의 삶을 담은 카디르의 글, 요나스가 이에 화답하듯 서술한 어린 시절의 기억, 압바스가 카디르에게 보냈던 편지 등이 국경을 뛰어넘어 각기 다른 목소리로 교차 서술된다. 또한 다른 이의 글에 카디르가 각주 형식으로 개입하는 부분은 압바스를 훌륭한 사람으로 미화하기 위해 부연하거나 반론을 펼치는 것으로 진지한 어조에 반해 아이러니가 넘쳐흘러 웃음을 유발한다. 3부 말미에 부록처럼 끼워 넣은 ‘케미리(와 카디르)의 문법 규칙’은 스웨덴과 스웨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스웨덴어를 공부했던 압바스와 요나스가 발견한 스웨덴어의 ‘규칙’ 열 가지들인데, 스웨덴어의 관용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거나 한 단어를 임의로 해체해 전혀 다른 의미로 풀이하는 등 유머가 넘치면서도 스웨덴 사회에 대한 은근한 풍자를 담았다.
보통 부모들은 스웨덴어나 스웨덴어가 아닌 말로 이야기하지만 아빠만은 자기 자신만의 언어로, ‘케미리어’로 야기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모든 언어가 결합한 언어, 모든 의미가 변화하고 이상한 단어들이 서로 합쳐지는 언어, 특별한 규칙을 지니며 매일매일 예외적인 언어. 아랍어 욕설, 스페인어로 된 의문사, 프랑스어로 하는 사랑의 맹세, 영어로 된 사진작가의 명언, 그리고 스웨덴어로 된 말장난들. g와 h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배 속으로 떨어지는 언어, -140쪽
카디르와 요나스의 글은 화자가 다르다는 점 외에도 서술 형식과 표현에 차이가 있고 내용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씌어 있어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카디르의 글은 카디르가 주체가 되어 일인칭 시점에 과거형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압바스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빠”이자 눈부신 성공을 거둔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묘사한다. 반면 요나스의 글은 “너는”, “네가”, “너희는”과 같은 이인칭 표현에 현재형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는 점이 독특하다. 요나스가 ‘나의 기억’이 아닌 ‘너의 기억’을 통해 말하는 아버지는 스웨덴으로 이주한 뒤 정착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편견과 몰이해 속에서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았고, 차별과 냉대를 받으면서도 제도 안에 진입하기 위해 더욱더 발버둥을 쳤던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관점에서 서술한 압바스의 삶과 요나스의 성장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압바스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 준다.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의 진술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과장인지, 각자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추고 싶어 하는지 따져 가며 압바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게 된다.
요나스의 글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혼란과 분노를 겪던 요나스가 친구들과 조직을 꾸려 인종차별주의자들과 극우 정당 등을 적으로 규정하는 부분부터,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하고 집을 나가며 작별 인사를 하는 부분까지는 화자가 “너”라는 이인칭에서 “나”라는 일인칭으로 바뀌어 서술된다는 것이다. 성장기의 혼란과 부자간의 단절이라는 진통 안에서 고통스럽게 ‘나’라는 자의식을 찾은 극적인 순간을 상징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길들여진 아버지와 길들지 않는 아들, 결코 어릿광대일 수 없는 호랑이
소설의 제목 ‘몬테코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유명한 동물 쇼 ‘지크프리트 앤드 로이’에 출연한 백호의 이름에서 빌려 왔다. 몬테코어는 무대 위에서 어릿광대처럼 사람들 앞에서 쇼를 펼치다 맹수의 본성을 드러내며 조련사 로이를 공격해 중태에 빠뜨렸던 호랑이이다. 이민자로서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스웨덴에 길들였던 아버지 압바스, 아버지를 따라 스웨덴 사람으로 자란 듯했으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언제나 경계에 설 수밖에 없었던 아이 요나스. 여러 문화와 언어, 전통과 사고방식의 충돌과 혼돈 안에서 자라난 요나스는 어느 순간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다른 세상을 꿈꾼다. 자신의 뿌리를 되찾고 정체성을 깨닫고 자아를 확립해 가는 요나스의 모습은 조련사의 채찍에 애완동물처럼 순응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길들 수 없었던 라스베이거스 쇼의 호랑이 ‘몬테코어’와 다름없다. ‘깜둥이’라는 말을 들어도 못 들은 척 피하라고 가르쳐 주는 아버지, “역겨운 이민자” 애들과 공상에 빠져 지내는 대신 스웨덴 애들과 테니스를 치고 피아노를 배우길 원하는 아버지, 아들이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위협을 당해도 착각한 거라고 타이르는 아버지, 극우 정당이 창당되어 이민자들을 침략자들로 규정하며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와중에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며 조용히 앉아만 있는 아버지, ‘레이저 맨’이 스웨덴인들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빨간 빛으로 조준해 사격하는 일이 벌어져도 스웨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아버지. 어린 시절의 영웅 같던 아버지가 빛을 잃어 가는 모습과 자신이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보고 느낀 대로 서술하는 요나스의 글과, 압바스의 삶을 시종 장밋빛으로 묘사하며 신화화하려는 카디르의 글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몬테코어』는 무거운 주제에도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거짓과 모순된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몬테코어』는 케미리의 가족사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스웨덴으로 이주해 간 이민자들이 정착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이다. 케미리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이주자 문학은 주류 사회의 시각에서 관찰할 수 없는 지역 이민자의 삶과 생각을 보여 줌으로써 주류 문화와 이민자 문화 사이의 소통을 시도한다. 최근 다문화 사회가 중요한 사회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