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이야기는 두 가지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현대 시점이고 하나는 과거 4.3 당시의 이야기이다. 현대 시점에서는 상식이라는 만년 백수가 나온다. 그는 미국인들의 파티로 인한 층간소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참지 못한 상식, 미국인들보다 더 오래 놀아야겠다며 대학동아리 선배, 친구를 소환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술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눠보지만 서로 다른 생각들로 삐걱거린다. 또 다른 흐름인 4.3 당시의 모습에는 순임과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어떤 장소에 모여 있다. 갑자기 총소리가 나고 마을 사람들 하나씩 쓰러진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순임은 동굴로 피신해서 살아가게 된다.
작가의 글
전혁준
4.3을 글로, 희곡으로 표현하고 싶은 열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선뜻 쓸 수 없었다. 4.3을 다룬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저들처럼 해 낼 자신이 없었다. 감히 내가? 해도 될까? 이런 생각에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4.3의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던 어느 날, 같이 연극하는 동생들과 술자리를 갖다가 4.3 얘기를 하게 됐다. 내 고민을 같이 나눠주는 그들의 모습에 힘을 얻었던 거 같다. 그 술자리에 나왔던 이야기들 그것이 하나의 흐름처럼 다가와 나에게 4.3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의지를 주었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나 보다. 그래 써 보자.라는 마음을 먹고도 한참이나 모니터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다시 내 앞을 막아섰다. 그것이 무엇일까? 직접적인 희생자도 간접적인 희생자도 아닌 나. 단지 4.3 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슬픔을 간직한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것 밖에 없는 나. 나는 어떻게?라는 쳇바퀴에 갇혀 버렸다.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나에게 4.3은 무엇일까? 나에게 4.3은 시께(제주어로 제사)만 먹어도 온갖 논쟁 속에 들렸던, 문학작품으로 들리던, 연극을 시작한 이후로는 예술작품으로 끊임없이 들었던 소리였다. 그렇다. 나에게 4.3은 소리다. 울음소리이자 아우성이자 분노에 찬 소리였다. 거기에 웃음소리는 없었다. 나는 웃음소리를 듣고 싶었다. 다 지나버렸으니 웃자는 그런 멍청한 소리가 아니다. 모든 아픔을 간직한, 그리고 초월하는 웃음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신 차려 보니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아직 스스로 작가라고 칭하는 것이 두렵고 창피하다. 예전에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지만 그래도 많이 뻔뻔해졌다는 것은 비밀이다. 이 작품이 4.3을 알리고 기억하는데 누가 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한다.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연출의 글
공동연출 전하얀
4.3 70주년 기념 문화예술대전에서 선보였던 4통3반 복층사건을 장기 공연으로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기로 결정하면서 한 명의 연출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 제안은 툭 들어왔다. 나는 내 깜냥을 스스로 의심 했지만 4.3을 다룬다는 결정적 이유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4.3을 기억하기 위한 일에 내가 작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건 내 오랜 소망이자 내 부채의식의 바탕이기도 했다. 막연하게 4.3을 기억하는 일이 다양한 예술 형식을 통해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렇게 개인적 소망과 예술과 제주를 사랑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바람이 맞물린 결정이었다. 이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언제나 이 작품을 보러 와줄 관객 분들을 생각하려고 한다. 그 분들이 위층에 사는 현대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도 좋겠고, 4.3을 잘 몰랐었다면 그런 역사가 이 땅에서 벌어졌다는 사실만을 알아가도 좋겠다. 마침내 지금 여기에서 즐겁게 웃으며 또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 한 구석에 4.3에 대한 생각 하나가 자리잡고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게 어떤 생각이든.
공동연출 전혁준
작품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접점을 찾기는 힘들다. 지역도 다르다. 과거는 4.3의 현장인데 현재는 제주가 아니다. 현재는 말 그대로 현대인들이 나온다. 4.3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신만의 고민을 태산처럼 짊어지고 사는 우리네 모습과 진실로 태산 같은 슬픔의 대비가 해학과 웃음이라는 역설로 표현되어지길 바랐다. 무대는 펜로즈의 계단을 모티브로 표현했다. 포스터를 보면 떠다니는 섬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사실 이 섬은 뒤집어진 한라산 위에 계단 하나가 얹어진 것이다. 그 계단이 펜로즈의 계단이다. 이 작품을 무대화하기 위해 이 계단이야말로 적절한 모티브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수직적인 또는 평행적인 무대로 표현되어지는 것 보다 그것들을 포함하며 무한한 반복의 상징이 더욱 작품의 메시지를 드러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제목처럼 복층을 표현하기에는 오이 소극장 천장이 너무 낮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펜로즈의 계단은 착시효과를 이용한 허상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계단이다. 하지만 눈으로만 쫓아가면 이 계단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해서 오르고 계속해서 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로? 결국 제자리걸음이라는 소리다. 우리들의 삶이 허상에 빠져 있지 않은가? 우리의 눈이 우리의 인식이 우리의 관념이 결국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3 차원인데 2차원의 시선에 사로잡혀 무한계단을 걷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과거를 밟고 살아가는 것인가? 아님 현재를 업고 사는 것인가? 아님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현재는 현재일 뿐인 것인가? 여러분에게 던지는 화두이며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문해 보는 화두이다. 4.3을 다룬 작품을 공연예술화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격스럽다. 절대 잊지 말자 이 한 마디만이라도 마음으로 전달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끝으로 예술공간 오이를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 로 하여,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단독 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 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 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발발 원인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1947년 3 .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제주사회에 긴장상황이 있었고, 그 이후 외지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집행과 경찰 서청에 의한 검거선풍, 테러, 고문치사사건 등이 있었다. 이런 긴장 상황을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5;11 단독선거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4 3 사건에 의한 사망, 실종 등 희생자 숫자를 명백히 산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신고 된 희생자 수는 14,028 명이다. 그러나 이 숫자를 4 3 사건 전체 희생자 수로 판단할 수는 없다. 아직도 신고하지 않았거나 미확인 희생자가 많기 때문이다. 여러 자료와 인구변동통계 등을 감안, 잠정적으로4 3 사건 인명피해를 25,000~30,000명으로 추정했다. (후략)
(제주 4 ;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에서 발췌)
대표의 글
공동대표 오상운
예술이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한다기보다는 무엇이 예술을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주의 정체성을 담은 제주 예술을 만들어 가는가? 이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명석함은 아직 제겐 부족합니다. 하지만 제주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소재로 한 무대예술을 제주 사람들과 자주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낸다면 제주 예술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봅니다. 12월 말까지 공연화 되는 예술 공간 오이의 4통 3반 복층 사건이 제주 예술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난 과거, 예술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삶과는 분리되어 있고 특권계층만을 위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예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생활예술 개념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예술과 문화가 함께 숨 쉬고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예술 공간 오이도 제주도민과 함께 공유하며 제주 예술을 만들어 가는데 도전하고자 합니다. 더욱 노력하는 예술 공간 오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놀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