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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명교류의 현장으로
유라시아 문명 교류의 현장인 실크로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일찍이 비단, 도자기, 향신료 등 교역의 통로로서 19C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1833~1905)이 명명했다고 알려진 실크로드는 동서양의 문물이 함께 전해지는 소통의 길이자 문화의 길이었다. 이 길의 중심에 해당하는 우즈베키스탄으로 13명의 일행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5월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우즈베키스탄은 고대에는 아무다리아강 건너에 있다는 의미로 트란스 옥시아나라고 불리면서 시대에 따라 박트리아, 소그디니아, 호레즘 등 다양한 나라가 있었던 지역이다. 특히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후에는 수도인 타슈켄트를 비롯하여 사마르칸트, 히바 등지에 동서문명의 접점임을 상징하는 알렉산드리아가 다수 존재했다고 추정되기도 하는데, 아랍세력이 8C 중엽 탈라스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이 지역을 장악한 이래, 그 후 몽골, 투르크 시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슬람화되어 왔다.
타슈켄트로 가는 기내에서 중국 북부 불모의 고비사막을 거쳐 눈덮인 천산을 넘어가고 있다. 수많은 산군들이 1만m 상공임에도 지척으로 느껴지지만, 아마도 옛날에는 이 길을 낙타로 넘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지금이야 우즈베키스탄은 2개의 국경을 육로로 통과해서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2중 내륙국가이지만, 15C 대항해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지리적 요충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었을 것이 틀림없다.
2. 아라비안나이트의 도시, 히바
여행 2일째, 타슈켄트 국내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여 만에 약 1,200km거리의 서쪽 오아시스 마을인 누쿠스 공항에 내렸다. 곧바로 연결된 버스로 갈아타고 옛 히바 칸국의 수도였던 히바로 향했다. 이내 차창밖에는 붉은 모래라는 뜻의 키질쿰사막이 눈에 들어온다. 약 30만km²의 크기로 인접해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카라쿰사막의 30만km²과 합치면 우리나라 면적의 6배, 세계 6~7위 규모의 어마어마한 사막지역이다.
여름에는 최고 60도까지 올라간다는 악조건에도 삭사울이라는 가시덤불같은 키낮은 관목들과 이름모를 풀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이들 덕분에 모래가 무너지는 것을 억제하고, 사막을 오가는 낙타의 먹이로 이용될 뿐 아니라 그 그늘에는 쥐나 토끼, 여우, 뱀 등의 동물들이 여전히 서식하고 있다 한다. 3시간 여를 달려 드디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히바에 도착했다.
히바는 아랄해로 흘러가는 아무다리아강 하류지역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서 밀과 쌀, 목화, 과일 등 작물이 풍부하며, 러시아와 페르시아를 잇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사막을 오가는 대상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사색과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러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도 이 지역에서 성행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알 호라즈미(780~850)같은 수학이나 천문학의 대가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호텔에서 짐을 풀자 마자, 16C~19C에 걸쳐 주로 조성된 히바의 내성인 이찬칼라로 들어갔다 입구에 고려청자를 연상하는 듯한 미완의 칼타 미노르 미나레트를 지나서 수백개의 호두나무 기둥이 도열한 이 지역 최고(最古)의 주마모스크, 그리고 이슬람신학교인 몇몇 마드라사와 칸의 궁전 등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건축들은 흙벽돌과 호두나무로 정교하게 지어져 있었고 일부 외부 벽면에는 각가지 색상의 도형과 서체, 그림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미로같은 쿠냐 아르크와 타쉬 하울리 궁전을 나와 이찬칼라내에 있는 레스토랑 옥상에서 맥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미나레트에 야간 조명이 켜지자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야화속에 있는 것같은 환상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머나먼 이국에서 꿈에 취한 듯 맥주에 취한 듯 몽환적인 밤이었다.
다음날 새벽,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이찬칼라를 산책했다. 사위는 고요하고 새들만이 가끔 지저귀는 가운데, 떠오르는 햇살에 비쳐진 성의 모습은 너무나 찬란했다. 러시아와 페르시아 지역을 연결하는 요충에 있는 이 성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당시 그들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진다.
3. 신성(神聖)과 과학(科學)의 도시 부하라
히바 인근의 우르겐치에서 부하라행 열차를 탔다. 우리나라 무궁화급이 연상되는 낡은 침대열차였는데, 내부공간이 협소하고 냉방시설도 없어 더욱 힘들었다. 차창밖에 끝없이 펼쳐지는 키질쿰 사막을 멍하니 보며 가끔씩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점원만 지나가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비록 잠은 오지 않고 바람마저 닫혀 숨막히는 열차안이었지만 사막 사이에 희미하게 나있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를 보면서 저렇게 모래바람을 뚫고 가는 것도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둠이 깔릴 무렵, 마침내 7시간 30분의 긴 여정끝에 부하라에 도착했다. 흔히들 부하라는 신성과 과학의 도시라고 한다. 이슬람 신학교가 많고,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를 편찬한 이맘 알 부하리(810~870)나 수피즘의 창시자 낙쉬 반디(1317~1389), 이슬람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븐 시나(980 ~ 1037) 등 대학자들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첫눈에 본 부하라에 대한 인상은 사막내의 도시라는 선입견과 달리 가로에 잘 정돈된 뽕나무와 플라타너스 사이로 군데군데 모스크 돔이나 이슬람 미나레트가 보이는 차분한 느낌이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기존 마드라사내 노천식당에 들어가니 이 나라 전통음악에 맞춰 무희들의 무용과 디너패션쇼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연주되는 음율이 그리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부랴부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면서 보니 얼굴모습이 제각기 다양하다. 투르크나 몽골, 페르시아, 러시아, 그리고 그리스계 등 가히 인종전시장같은 느낌이다. 이 중에 우리 고려인들의 후손들도 있을까? 1930년대 후반 구소련의 소수민족정책으로 극동 연해주에 있던 우리 선조들이 이곳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역사가 있어서다. 공연 마지막에는 100여 민족의 화합을 강조하는 듯, 관객중의 어린이와 노인, 젊은 여자들까지 중앙 무대에 나와 흥겨운 춤사위를 함께 선보이면서 끝났다.
다음날은 여행 4일째가 되는 날이다. 먼저 4C경 최초로 축조된 이래 6C, 9C 에 재건되었으나 지진 등으로 무너진 후, 12C에 최종 축성된 아르크성으로 갔다. 부하라의 왕궁 겸 정부청사였던 이 성은 13C초 징기스칸 군대의 진공에도 지도층의 융통성 덕분이랄까 크게 파괴되지 않았고, 특히 티무르제국이 해체된 후 들어왔던 우즈벡인들이 부하라를 수도로 칸국을 세운 덕분에 사마르칸트와는 달리 옛 모습과 유물들을 그런대로 잘 보존하고 있었다. 히바에서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다져진 벽돌과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문과 기둥이 흐트러지지 않고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어서 찾아간 칼란 미나레트는 높이 46m나 되는 부하라의 상징으로 천하의 징기스칸도 이를 쳐다보다가 모자를 떨구었다는 일화가 있는 탑이다.
그 앞에 중심선이 1자형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미르아랍 마드라사와 칼리얀 모스크가 마주하고 있어 출입이 가능한 모스크에 들어가 마당에 있는 뽕나무밑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하얀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오래된 나무로 실크로드 도시에 걸맞게 어디서나 눈에 띠곤 한다.
한편, 부하라는 과학의 도시답게 수대에 걸쳐 내려오는 장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소위 다마스커스 스틸가공을 비롯 인형극 소품, 타일 세공, 실크 카페트 등등....
특히 한 여름밤, 아라비안나이트의 배경답게 갖가지 인형으로 그들의 상상력을 키웠을 연극에 관심이 이끌려 나도 전통상점인 굼바스 바자르에서 아라비아풍의 인형을 집어들고 사마르칸트행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일정이 촉박하여 미처 가보지 못한 이스마일 샤마니 사원이나 욥의 샘물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4. 티무르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
한때 사마르칸트는 티무르제국(1370 ~1507)의 도시였다. 부하라에서 북동쪽으로 약 240km 떨어져 있는 사마르칸트는 6~9C에 페르시아계였던 소그드인에 의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후 아랍의 압바스제국과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의 위세에 위축되었다가 14C 후반 아미르 티무르(재위 1370 ~1405)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동으로는 천산산맥, 서로는 투르키예가 있던 소아시아반도, 남으로는 페르시아, 북으로는 남부 러시아까지 대제국을 세우게 된다. 그후 티무르는 병사하지만 비슷한 시기 중국 명나라 영락제와의 일전을 벌였으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결국 티무르제국은 16C에 접어들면서 킵차크 칸국에서 내려온 일단의 우즈벡족에 의해 130여 년만에 막을 내리고 부하라, 히바, 코칸트 칸국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여행 5일째 아침, 사마르칸트 교외에 있는 아프로시압 박물관에 들렀다. 먼저 7C 중엽으로 추정된다는 사신벽화도를 봤다. 이 곳 군주의 잔치에 초대된 사신들의 행렬을 그린 벽화이다. 매우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채색된 흔적들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고구려인지 신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우관을 쓴 우리나라 사신의 모습도 보인다. 당시 사마르칸트의 위상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어 전시된 조로아스터교의 장례 풍습을 보면서 그를 믿었던 소그드인들을 생각한다. 조로아스터교는 태양을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로서 물과 불, 공기와 땅으로 구성된 세상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인간이 죽으면 그 몸을 새나 개를 이용하여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소그드인은 한 때 실크로드에서의 교역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고 세력을 떨치지만, 중국 당나라에서는 안록산이 그들의 철칙이었던 정치중립의무를 위반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이곳 중앙아시아에서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를 강제하는 아랍세력에 의해 밀려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발휘됐던 탁월한 상업적 DNA는 오늘날까지 이 지역에 남아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지역 전통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이 지역의 식사는 대개 화덕에서 구어낸 논(Non)이라는 커다란 밀가루빵과 소, 양, 닭고기를 위주로 야채와 과일을 곁들여
풍성한 편이었다. 그동안 먹어본 볶음밥, 호박죽, 만두 고로케, 고기스프 등 이지역 전통요리도 향신료를 그다지 쓰지 않아 입맛에 잘 맞았다.
그런데 오늘은 사슬릭요리가 특별히 준비되어 있었다. 약 5~6m나 되는 기다란 고챙이에 꿰여진 잘 다져진 쇠고기구이와 양갈비가 우렁찬 이슬람 음악과 함께 받쳐져 나왔다. 웃음을 띠게 하는 처음보는 깜짝이벤트였던 셈이어서 모두들 즐거이 맞이 하였다.
오후에 티무르와 그의 자손들이 영면한 구르 에미르 영묘에 갔다. 이곳 건축기술은 흙벽돌 대신 구운 벽돌 사용, 모자이크 타일 부착, 정교한 돔구조 등으로 예전보다 한층 발전되었다고 한다.
이슬람 건축물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꽃과 식물을 추상화했다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진화가 흥미롭다. 자연을 표현하는 기하학적 도형은 점차 상징과 문자를 삽입하연서 복잡해지는 것 같다. 이슬람의 초생달, 클로버 십자가, 유다의 별, 조로아스터의 태양, 불교의 만다라 등등.... 오전에 방문한 티무르제국 왕족들의 묘지인 샤히진다의 문양과 겹치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아마 역사적으로 외침이 잦고 왕조가 너무 자주 바뀌면서 다른 종교나 사상들을 모두 포용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다음 사마르칸트의 얼굴이라는 네기스텐 광장으로 갔다. 15~17C 무렵에 건립되었다는 3개의 마드라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장면으로 기념품에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다.
옛날 시장터였던 광장에 쌓여진 오폐물을 모래로 정화시켰다 해서 모래광장으로 불리거나 간혹 죄수들의 처형장소가 되기도 해서 죽음의 광장으로도 불리었다고 하는 이 광장은 이미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고 있었다.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 건물 맞은편에 있는 쉐르도르 마드라사의 전면 이마에는 먹이를 쫒는 사자를 신의 눈과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인 태양이 함께 비추고 있었다.
5. 수도 타슈켄트
타슈케트는 옛소련 시절에 건설된 계획도시로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3,700만 국민들의 20%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도시는 1966년 진도 7.5의 대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는 재앙도 있었고, 1991년 러시아가 소련연방을 갑자기 탈퇴하는 바람에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지만, 풍부한 지하자원과 농산물을 바탕으로 꾸준히 발전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여행 마지막 날, 하스트이맘 광장의 박물관에서 이슬람 초창기였던 651년 3대 칼리프 우스만 시대 필사한 코란을 보았다. 진짜 원본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았으나 사슴가죽에 살구와 숯, 계란 노른자를 으개어 쓴 실물에 약간의 감회와 긴장이 몰려왔다. 이 코란은 그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옮겨졌다가 티무르제국 시절 다시 찾아왔으나, 19C 러시아 점령시 상트페테르부르그로 반출된 것을 1917년 러시아혁명이후 반환받았다고 하는데, 정확한 소장 경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이 분분하다.
이슬람교는 시간의 종교라고 한다. 항상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움직임을 쫓아서 매일 5번 기도시간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라마단, 하즈 등의 의무도 이행해야 한다. 이를 위한 수학이나 천문학 등 고대 그리스의 과학 지식이 중세 유럽의 종교적 암흑기 덕분으로 이슬람교의 태동과 함께 흘러들어온 것도 신의 섭리라 할수 있을까?
함께 전시된 다양한 코란 사본을 보면서 인솔가이드에게서 이슬람은 '~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종교가 아니라 '일정한 조건이 이루어지면 ~해도 된다' 의 종교란 설명을 듣는다. 이에 따라 일부다처제, 지하드 성전, 인살라 등 이해할 듯 말듯 하지만 어쩌면 이들을 수용한 움마 공동체라는 것도 한번 연구해 볼 유혹을 느낀다.
오후 국립역사박물관 가는 길에 정부청사 근처의 독립기념관을 통과했다. 소련연방에 속했던 2차세계대전 5.9 전승일을 기념하는 자그만한 동상이 나의 주목을 끈다.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의 기다림을 표현한 조각상밑에는 '당신은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있다' 는 가슴 찡한 코멘트가 쓰여있다. 천국이 어머니 발밑에 있다 하지 않는가? 아울러 조금전 정부청사앞에서 보았던 국조인 백학 모형을 떠올리며 전사한 병사의 영혼이 학이 되어 되돌아 온다는 다케스탄 공화국의 '백학'이라는 민요가 생각난다. 오래전 우리 드라마 '모래시계' 의 OST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곡이다.
공항으로 가기전, 젊음의 거리인 브로드웨이에서 히바와 부하라의 모스크가 그려진 그림 2점을 샀다. 나중에라도 이번 여행의 기억을 오래 보관하고 싶어서이다. 웬지 이슬람 사원의 모습에는 표현할 수 없는 마력이 끌린다. 모스크, 미나레트, 마드라사, 그리고 신만이 창조할 수 있고 경배의 대상이라는 이슬람교리에도 불구하고 점점 사람이나 동물을 끼워넣은 아라베스크 문양들....
6. 다시 가고 싶은 중앙아시아
사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현실의 모든 찌꺼기를 머나먼 이국땅에 비워버리고, 아라비안나이트의 야화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타슈켄트 공항에 내렸을 때, 꿈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자연을 보았고, 그들의 삶을 보았고,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눈덮인 설산과 황량한 사막, 그림같은 건축물, 완행열차와 고속열차, 실크 카펫트, 그리고 푸짐한 전통음식 등등....
그리고 또 한가지, 여행을 하면서 만난 많은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함께 셀카를 찍자고 청하거나, 수시로 먼저 말을 걸어오면서 조그만한 인정도 베푸려는 모습도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아른거린다.
우즈베키스탄이 속한 중앙아시아 역사를 돌이켜 보면, 고대 아리아인이 스키타이, 페르시아, 인도 유럽 등지로 확산된 후 이지역을 중심으로 그리스, 투르크, 몽골, 러시아 등과 뒤섞이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에 바탕한 공존 문화를 낳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문물의 교역은 사상과 종교의 소통으로 확산되어 긍정적 마인드를 재생산하고 공동체의 번영을 가져오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문명은 미래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걸핏하면 진영논리로 대립하는 우리에게 문명 진화의 방향을 가늠할 반면교사가 될 법하다.
6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실크로드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기억에 남을 유쾌하고 멋진 여행이었다. 그동안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이번 중앙아시아만큼 색다른 풍광을 문명의 교류속에서 자연스레 담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유쾌하고 멋진 기억을 함께한 동행자 여러분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그리고 다시 여행가세!!!
첫댓글 동서양의 문명이 교류하고 문화가 소통하는 길목이 참 아름답네요. 큼직한 사진과 친절한 설명까지 더해 주셔서 함께 여행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고맙습니다.
아~ 회장님, 건강하시죠? 오랫동안 뵙지 못했네요. 지난 팬데믹 기간에 인사도 못드리고 수도권으로 이사왔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