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쟁에서 항우를 이긴 유방은 한나라를 세운다. 한나라의 고조가 된 유방 앞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한고조는 북쪽 국경을 자주 침범하는 흉노족을 섬멸하기로 한다. 무려 30만 명의 대병력을 동원했으나 흉노에게 무참히 패배했다. 화친의 대가로 막대한 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공주를 흉노의 족장에게 시집보내야 했다. 자존심 상하는 화친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유목민들의 전투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은 소수였지만 기동타격전에 능숙한 강력한 힘을 가졌다. 병력 부족으로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고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중국을 괴롭힐 수는 있었다. 그런 유목민이 중국을 최초로 지배하게 된 것은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족에 의해서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장악했던 나라는 몽골 민족이 세운 원나라였다. 몽골 민족은 불과 70년 만에 마치 질풍과 같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대부분의 지역과 중앙아시아·동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초원에 살던 몽골민족이 왜 당시의 전 세계를 공격하러 나섰던 것일까? 여기에는 날씨의 비밀이 있다. 기후학자들은 빙하분석을 통해 서기 900년부터 1200년 사이에 온난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스칸디나비아 지역과 알래스카의 빙하가 후퇴하기 시작했고, 범세계적으로 따뜻한 기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기후 온난화는 추운 지역에 살던 북유럽 민족이 세계무대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바이킹으로 불리는 북유럽인들은 유럽 각국을 침공해 영토를 확장했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개척한 것도 그들이었다. 기후 온난화는 아시아에서 고위도 지방에 살던 몽골민족에게 부흥의 계기가 됐다. 알타이 산맥의 눈이 녹아 물이 풍성해졌다. 초지의 상태가 좋아지면서 수렵뿐만 아니라 농업과 유목 등이 용이해졌다. 몽골 사람들의 생활은 활기를 띠었고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따뜻한 날씨 덕에 몽골족은 북쪽으로 영토를 더욱 확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1200년부터 북반구의 따뜻한 기후가 갑자기 끝나고 한파가 몰려왔다. 소빙하기라 불리는 추위가 시작된 것이다. 소빙하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매머드가 나오는 얼음의 시대가 아니다. 소빙하기는 여러 가지 기후 패턴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평균기온은 낮아지고 이상 한파를 보이는 기간을 말한다. 널뛰듯이 불규칙한 급격한 기상이변이 자주 나타난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와 건조한 기후는 몽골족이 살던 대초원을 황폐화시켰다. 급격히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릴 방법이 없었다. 몽골족은 따뜻한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중국을 지배했던 송과 금나라는 통제력이 약해져 있었다. 타타르를 정복한 몽골족은 칭기즈칸을 왕으로 추대했다. 1206년 몽골족의 왕에 오른 칭기즈칸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번성했던 이슬람 국가 호라즘을 일거에 멸망시켰다. 호라즘을 멸망시킨 몽골족은 1210년부터 남하해 중국을 통일하고 원나라를 세우게 된다. 몽골족은 1229년에는 호라즘의 수도인 사마르칸트까지 위도로 약 10도(800㎞)나 남하했으며 원나라 때는 북위 20도까지 남하했다. 기후변화가 몽골인의 등을 남쪽으로 떠민 셈이다. 소빙하기의 내습은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 기후변화의 결과를 보면 유럽과 아시아는 다른 결과를 보였다. 온난한 기후로 큰소리치던 북유럽 국가들은 쇠퇴했다. 15세기까지 북유럽의 수도는 남쪽으로 내려왔다. 트론헤임에서 남쪽으로 베르겐과 오슬로를 지나 결국 코펜하겐으로 이동한 것이다. 1536년 노르웨이는 독립국가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됐고 아이슬란드 역시 덴마크의 지배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시아의 몽골족은 기후조건을 극복하고 중국을 지배하는 역사를 만들어 냈다. 그들은 위축되지 않고 힘을 합쳐 새로운 땅을 점령해 간 것이다. 하늘은 위기를 적극적인 기회로 바꾸는 민족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법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