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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그날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예레미야33:1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오늘부터 새로운 교회력의 시작인 대림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림절은 교회력의 시작으로 일반 달력으로 치면 새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월력으로 보면 아직도 한 달이 더 남아 있습니다만 교회력은 오늘부터 2025년 새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교회력의 시작인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먼저 여기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었다.’는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가 지난 일 년을 부족함이 없이 인도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새해의 첫 시작인만큼 새로운 다짐과 결심으로 대림절을 맞이해야 할 줄 믿습니다.
대림절은 도착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공항이나 역에서 오기로 약속되어있는 사람의 도착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다시 오시기로 약속되어 있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계절이 바로 대림절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기다린다고 할 때 먼저는,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리들의 삶과 역사 속에 말씀과 영으로 새롭게 임재 해 주실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종말의 때에 영광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마디로 기다림의 삶이요 기다림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는 오래 동안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실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오래 동안 기다렸던 메시아가 오시고 난 후에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그냥 팔짱을 끼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부지런하게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할 때 옆에서 집사람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쿵쿵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하면서 택배가 왔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당신 귀가 밝은가 보다고 하면서 나가보니 정말 택배가 와 있었습니다.
제가 소리를 듣지 못하였던 것이나 반대로 집사람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리고 있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였습니다.
집사람은 물건을 주문하였고 몇 시쯤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택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저는 주문하지 않았기에 택배를 기다리지 않고 다른 일에 집중하였고 당연히 누가 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하게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의하여 기다리고 집중하여 기다리고 관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바로 깨닫고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기다림에 관심이 없으면 다른 일에 집중하게 되고 언제 오시는지 알지 못하고 당연히 준비하지 못하고
도적같이 갑자기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위협 앞에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의 선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바벨론과 대적하여 싸우지 말고 항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침공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유대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하여 항복할 때 그나마 많은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지자의 선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큰 반발을 일으킵니다.
그 일로 시위대 뜰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회복을 선포하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이 포함된 33장에서 선지자는 때가 이르면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고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가 회복되어 활기가 차고 넘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0-11절)
이러한 말씀에 희망을 갖고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은 다시 회복시킬 때를 기다리는 삶을 살수가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기에 결코 막연하지 않습니다. 기대하고 관심을 갖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회복을 선포하는 메시지 중에 일부입니다만,
여기에서 선지자는 70년 후에 있을 유다의 회복만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메시아를 통하여 이 땅을 회복하실 것을 함께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없이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회상하면서 구주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다림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할까요?
1.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준 선한 말이 성취할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선한 말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이 된다는 말일 뿐 아니라 이 땅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할 때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도들의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붙잡는 기다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고 구원을 받기까지 무려 200년을 기다렸습니다.
200년의 기다림은 시간적으로도 오랜 기간일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정말 힘들고 어려운 기다림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조롱하고 비웃었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기다림에 대한 믿음이 약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사람들의 비웃음과 약해지는 믿음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이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굳게 붙잡고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아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기다림에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욥은 가장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도 10년 동안 말씀 하나만을 붙잡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다가 비로소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성경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면서 그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기다림의 신앙이고 이 신앙으로 무장할 때 승리하게 되고 축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최고의 선한 말씀은 메시아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는 말씀을 시작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하였고
미가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대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5:2)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언대로 메시아는 이 땅에 아기 예수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최고의 선한 말입니다.
그 최고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자가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기다림의 계절인 대림절에 우리는 또 하나 주님께서 약속하신 선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다시 오실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 주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약속하신 선한 말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때 승리하게 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다윗의 가지에서, 다윗의 후손에서 태어날 메시아를 기다려야 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선한 말은 이 땅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메시아는 오래 동안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분이십니다.
그 약속대로 2천 년 전에 메시아가 아기 예수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는 다윗의 가지에서 즉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대로 구세주 예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가문 52세대에서 탄생하셨고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그 외에도 아기 예수는 구약의 많은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하여 탄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면서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아를 믿고 기다려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선포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말 나타나는 현상은 메시아로 보기에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아니었고 메시아를 예비하는 사자였습니다.
다행히 요한 자신이 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증거 하였기에 정리가 잘 되었습니다만
여러분, 우리가 믿고 기다리는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밖에 없습니다.
그 분만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약속가운데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다리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선한 말을 성취하신 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아멘.
3. 그 분을 믿을 때 구원받고 안전하게 살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16절 말씀에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선한 약속이 성취되는 날에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온 인류는 구원을 받게 되고 안전히 살아갈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분명히 구원이 있고 승리가 있고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릴 때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고 그 나라를 영원토록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노아는 약속을 믿고 방주를 지으며 기다렸을 때 모두가 멸망하는 홍수 속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욥은 상실의 아픔 속에서 참고 인내했을 때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말씀을 붙잡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을 때 이스라엘 최고의 성군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 중에 시므온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과 이 땅을 구원할 메시아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결례를 행하러 온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아기 예수를 안고 감격에 젖은 시므온은 ‘하나님 이제 저를 해방시켜주시는군요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으므로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노래하였습니다.
여러분, 산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이요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자녀들이 잘 성장하기를 기다리고 가정이 화목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행복한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립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은 기다림이 없는 것이요 가장 안타까운 것은 헛된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의 기다림이 헛된 기다림이 아니라,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기다림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세주를 보내주실 약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시 이 땅에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결코 뜬 구름을 잡는 헛된 기다림이 아니고 분명하게 이루어질 기다림이요 상급과 축복과 구원이 있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의 신앙은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게 하고,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 능력 있게 하고, 겸손히 섬기게 하고,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합니다.
우리에게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바람과 파도를 물리치며 승리하게 하는 것도 기다림의 신앙을 통해서입니다..
기다림의 신앙을 통하여 우리는 천국을 누리며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기다림의 절기인 대림절 첫 번째 주일에 이 땅에 약속대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주님을 회상하면서
다시 이 땅에 오시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승리하며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