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20]시인 고은高銀의 서사시 <청>
원래도 감탄을 잘 하지만, 최근 정말로 놀라운 시집을 발견했다. 『청』(고은 지음, 도서출판 ‘그냥’ 2023년 11월 초판 1쇄 펴냄, 1189쪽, 5만원), 고은 시인이 친구에게 직접 사인하여 선물한 두툼한 시집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순전히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에 대한 敍事詩 한 편이다. 이런 長詩가 시인 1인의 힘으로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지만, 이런 이색시집을 펴낸 출판사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이런 시집을 사볼까, 무슨 돈이 되랴.
얼마만한 분량인데 그리 놀라느냐고 묻겠지만, 물경 1138페이지에 달한다. 하나의 제목으로 1천페이지가 넘는 시집을 보신 적이 있는가? 가히 今始初聞. A4 용지로 700장에 달한다 한다. 대체 몇 行이나 되는지 헤아릴 엄두도 나지 않는다. 권말에 실은 문학평론가(시인, 소설가) 김형수 님이 쓴 ‘독후감’만 해도 1140-1189쪽에 달한다. 책의 두께만 보고도 일단 압도당했는데, 읽어갈수록(사실은 시이므로 읊어야 하지만) 흥미진진한 데다 이런 作詩가 가능한 것인지 믿기 어려웠다. 이런 두툼한 책 한 권을 구입, 몇 번 떠들어본 적이 대학시절에 있었다. 이미 古典이 된 지 오래인 『Northern Ansology』(대표적인 유럽 문학선집)가 그것으로, 영문학도들에겐 聖經같은 必讀의 韻文集으로 1천페이지를 훨씬 넘었다.
대체 <심청전>을 읽거나 판소리 <심청가>를 듣고, 시인으로 하여금 그 무엇이 이런 大河 서사시를 짓게 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걸렸을까? 알 수 없지만, 시인의 작품 중 白眉라 하겠다. 1주일째 시집을 들고 있지만, 겨우 200쪽을 읽었을 뿐인데, 시인의 머리 속이 너무나 궁금했다. 東西古今, 時空을 초월하여, 思惟의 폭이 넓어도 너무 넓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일생을 廣大無邊하게 더트고 있다. 이게 시인지, 판소리 대본인지, 소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시인의 想像力은 끝도갓도 없다. 수십 년 동안 효녀 심청에 대한 사랑으로 쏘옥 빠지지 않은 이상 쓸 수 없을 듯하다. 봉사(시각장애인) 심학규가 딸을 애타게 부르듯, 시인 역시 그냥 ‘청’이라고 부르며, 과거, 현재, 미래를 분석(?)하며 목놓아 說破하고 있다.
아아-, 나는 ‘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서사시를 만난 게 반갑고 고마웠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맘껏 탐닉할 수 있어서라도 좋았다. 이제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한국문학의 ‘현주소’와 ‘진일보한’발전을 보여주는 듯해 좋았다. 어떻게 90세(1933년생)의 나이에 이런 어마무시한 작업이 가능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학 괴물’의 걸작에 다름아닐 터.
진작에 <백두산>이나 <만인보>를 펴낼 때 알아보긴 했지만, 시인 고은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詩仙’이나 ‘詩聖’으로 칭송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게 나의 持論이긴 하다. 아니면 ‘詩傀’일 것인가? <만인보> 30권에 담긴 5600여명의 등장인물에 대한 實名과 無名의 ‘人物詩’들을 보라. 만인보의 ‘萬’자는 많다는 의미이지, 굳이 1만명일 필요는 없다. 참으로 滔滔(도도)하고, 참으로 到底(도저)하지 않았던가.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 님은 “고은은 백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할 시인”이라고 말했다. 김형수 님은 장문의 독후감(49페이지에 달함)에서 아예 “만일 이 작품에 제대로 된 번역자들을 만난다면, 그래서 여러 언어권으로 퍼지게 된다면 세계문단이 요동을 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大河詩만큼은 아무리 유능한 번역자라 해도 절대로 번역될 수 없을 듯하다. 이게 우리말의 아름다움이고 深淵의 깊이인 것을.
깊은 바다에서 희한하게 솟아나는 ‘민물(샘물)’을 들어보셨는가? 북녘의 장산곶과 남녘의 백령도 사이의 군사긴장지대 어디쯤에 있다는 ‘인당수’가 바로 그곳임을 들어는 보셨는가? 그 인당수가 바로 지구촌의 바다를 몽땅 휩쓸어 ‘대동세상’으로 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싶어 한 듯하다. 이 믿을 수 없이 긴 대하시는 <오 여기 그 어디뇨/심청 만다라> 두 구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만다라(曼陀羅)는 불교 용어이긴 하나, 원(圓)을 말하며, 둥글게 두루 갖춤을 의미한다. 사상적으로는 어떤 것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요소나 부분이 단 하나라도 빠짐이 없이 완전하게 구비된 상태라 할까.
장시를 시작하는 <첫노래> 첫 구절은 <누가 저 미리내로 내려와 귀 기울이더이다//청//누가 듣느뇨/누가 듣지 않느뇨/이 밤중 누가 우느뇨/누가 울지 않느뇨/밤 지새워/쌓이고 쌓여도 결코 쌓이지 못하는 억만의 풀잎 이슬로 우느뇨//누가 솟느뇨/누가 솟아올라 듣느뇨/캄캄한 밤/눈뜬 싹 돋아올라 듣느뇨>로 서막을 열고 있다. 이 때의 ‘청’은 종소리이다. 종소리로 시작해 종소리로 끝나는 이 어마무시한 대하 서사시를 재미로라도 훑어보고 싶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