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십자가 현양 축일 강론>(2023. 9. 14. 목)(요한 3,13-17)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십자가는 이론이 아니라 삶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3-17).”
1) 십자가는 이론이 아니라 ‘삶’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말로’ 아주 잘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십자가를 생각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살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부터 우리의 ‘십자가의 길’은 시작되었습니다.
충실한 신앙인의 신앙생활 자체가 곧 ‘십자가의 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렵고 힘들 때도 있고,
편하고 쉬울 때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간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생활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2) 십자가는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키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을 받으셨습니다(루카 23,26).
신앙생활은 공동체와 함께 하는 생활입니다.
십자가의 길도 혼자서 고독하게 걸어가야 하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수호천사가, 성모님이, 주보성인이,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걸어가는 길입니다.
3) 십자가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부활로 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의 십자가도 생명을 얻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십자가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부활, 구원, 생명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십자가를 만날 수 있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정은 과정일 뿐입니다.
과정이 힘들다고 걸어가기를 포기해버리면,
처음부터 출발하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1베드 5,7.10).”
<신앙인으로서 사는 것이 힘들더라도, 그것은 ‘잠시’ 겪는 고난일
뿐이며, ‘영원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라는 말씀은, 14장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구리 뱀’을 언급하신 것은,
모세가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백성들을 구하려고
기둥 위에 달아 놓은 구리 뱀이(민수 21,9)
당신의 십자가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들어 올려져야 한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의한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은
악한 일이고 범죄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악에서도 선을 이루는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고
설명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십자가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신 말씀입니다.
<십자가 수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라는 말씀은,
요한 1서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9-10).”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오직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만을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인간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곧 그 ‘응답’입니다.
무슨 거창한 신심 행위나 예물 봉헌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큰 기쁨이 되는 일이고,
하느님께도 큰 기쁨을 드리는 일입니다.>
[출처] 성 십자가 현양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