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가 전 신동아그룹 회장 최순영(1939년생)과 전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1
943년생)을 인터뷰한 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09년이었다. 신동아그룹은 1999년, 동아그룹
은 2001년 김대중 정권에 의해 해체되면서 두 회장은 각각 全재산을 다 빼앗기고 징역을 살았다. 김
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두 사람은 정보기관의 감시를 당하며 파렴치한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
문에 언론인들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해체된 대우그룹이나 쌍용그룹과 달리 신
동아그룹과 동아그룹은 재정상태가 매우 건전했다. 주력 기업인 대한생명과 동아건설은 부실기업으
로 몰려 그룹이 해체될 만큼 유동성 자금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다. 두 총수가 권력에 의해 그룹이 부
당하게 해체되었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두 그룹 가운데 먼저 신동아그룹의 경우부터 소개한다.
1999년 2월 10일 오전 7시, 검찰 수사관 3명이 신동아그룹 회장 최순영의 한남동 자택 앞에서 기다리
고 있다가 출근길의 최순영을 영장도 없이 연행해갔다. 이튿날 최순영은 계열사 불법대출과 외화밀
반출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혐의가 워낙 엉뚱하여 최순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자산규모 20조
원 대의 대기업이 그만한 일로 무슨 일이야 있을까 여겼던 것이다. 최순영은 그해 10월 보석되어 재
판을 계속 받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1월, 최순영에게 유죄가 선고되면서 법정구속되
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동안 구치소와 병원을 오가며 최순영은 법정공방을 계속했다.
검찰의 기소 내용 가운데 불법대출은 계열사 간에 관행적으로 해오던 상호보증 형태를 지적한 것인
데,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당초 계획대로 전액 상환되었다. 외화밀반출 혐의 역시 은행으로부터 합법
적으로 대출을 받아 해외로 송금했던 사업자금인데, 그 역시 사업이 진행되면서 전액 국내로 반입되
었다. IMF 직후라 모든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재계 서열 20위인 신동아그룹의 22개 계열사
는 다른 기업들에 비해 자금사정이 좋은 편이어서 부도를 낸 기업도 없었다.
최순영이 구속되기 전인 1998년 가을이었다.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가 라스포사의상실에서 거
액의 옷을 외상으로 가져간 뒤, 중간에 사람을 넣어 최순영 부인 이형자에게 옷값을 대신 내달라고
부탁했다. 이형자는 최순영과 상의한 뒤, 워낙 거액인데다 그럴 이유도 없어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에 앙심을 품은 김태정은 김대중을 찾아가, ‘최순영이 검찰의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집사람에게 고액
의 옷을 사주려다가 집사람으로부터 거절당했다’고 거짓보고를 했다. 이 일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언
론에서는 이른바 ‘옷 로비 사건’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정권 실세의 부정한 청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재계 서열 20위의 신동아그룹 22개 계열사가 공중분해 운명을 맞은 것이다.
최순영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건전하게 기업활동을 해온데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정부가 무
고한 기업을 어떻게 하랴 싶었던 것이다. 최순영은 심지어 구속되어 있을 때도 오래지 않아 풀려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이란 자를 몰라도 너무나 몰랐던 것
이다. 그는 대통령에 오른 것을 오랜 세월 신세를 져온 인사들에게 보은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
었다.
구치소로 면회온 한 인사가 청와대의 뜻이라며 그룹의 핵심인 대한생명과 동아제분만 넘겨주면 다른
계열사는 살려주겠다고 절충안을 제시했을 때도 오직 자신의 합법적인 경영사실만 믿은 최순영은 단
호하게 거절했다. 다음날부터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이 총동원되어 신동아그룹 22개 계열사를 이 잡듯
뒤졌다. 정권 차원의 이른바 ‘손보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 선두에는 김대중의 측근인 아태재단 상임
이사 이수동이 있었다.
가장 먼저 신동아건설이 넘어갔다. 시공능력 2815억 원의 大건설회사가 김대중의 하수인이 급조한
일해토건에 단돈 1억 7700만 원에 낙찰되었다. 신동아건설이 보유하고 있던 현금만 해도 400억 원이
넘었다. 일해토건이 신동아건설을 인수하자 금융권은 4037억 원의 채무액 가운데 3167억 원을 탕감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신동아그룹 22개 계열사가 차례차례 동교동 실세들과 가까운 조무래기 사업
가들에게 넘어갔다. 주력기업인 대한생명은 정부가 빼앗아서 한화그룹에 팔았다. 그 과정에서 김대
중과 그 측근들이 얼마나 많은 떡고물을 받아먹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밝혀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의 최순영 인터뷰 기사는 『월간조선』 2009년 3월호에 보도되었다. 제목은 <10년 만
의 격정 토로>, 부제는 ‘DJ 실세들은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20조 원짜리 회사를 뜯어먹었다’였다. 독
자들의 호응이 뜨거운 가운데 특히 정치권과 경제계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논의되었다. 최순영의 무
죄를 확신하고 있는 전 신동아그룹 임직원들로부터 격려전화가 답지했다. 최순영을 도와주겠다는 전
화도 잇달았지만 빼앗긴 그룹을 되찾을 길은 없었다. 그는 현재도 회사를 되찾겠다는 일념에 동분서
주하고 있지만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권력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한 번 해
먹으려고 민주화 투사니 뭐니 하며 저 난리들을 치는 것이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미국의 경제활항이 눈에 보이로록 일본 또한 그런 추세인데 유독 우리 기업만이 적폐 일념으로 기업활동이 중지된채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 아닐수 없습니다. 대한항공, 현대자동차, 롯테,삼성등 기업 옥죄기가 만연된 정부 각부처의 주 정책이 되고 있습니다. 경쟁력있는 기업활동을 위한 국가의 지원과 격려가 더욱 필요한 때 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