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mlbpark.donga.com/mp/b.php?m=user&p=121&b=bullpen&id=201705290004260934&select=&query=&user=yjschc78&site=donga.com&reply=&source=&sig=hgj9Gf-1hhjRKfX@h-j9RY-Yghlq조선은 꽉 막힌 나라는 아니었습니다.외교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고선, 외국어 교육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조선 초기만 해도, 중국에 보내는 사은사 수장을 역관(통역관) 출신으로 보낼만큼 외국어 구사자를 우대합니다. 뿐만 아니라, 양반들에게도 습독관제도를 설치하면서외국어 습득을 독려하기도 합니다.보한재 신숙주는 한국어,한어(중국어),왜어(일본어),몽고어, 여진어 5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하며, 오리 이원익 대감 역시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외국어 학습서 개발에도 중점을 두었는데,그 가운데서도 '노걸대'라는 외국어 학습서가 현존하고 있습니다. '노걸대(老乞大)'란 의미는 老[타인에 대한 존칭]+ 乞大[몽고어로 중국인을 의미하는 '걸태(乞笞:kita)'에서 유래]의합성어라고 합니다. 즉, 중국 어르신이라는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고려 말에 노걸대가 등장한 것으로 보이며조선시대때 여러번 개정, 중간되었다고 합니다. 세종실록 세종 8년(1426) 8월 정축조 및 세종 12년(1430) 3월 무오조 등의 기록을 통해서 조선 초기부터 이미 『노걸대老乞大』와 『박통사朴通事』가 사역원(고려•조선시대 번역•통역 외국어 교육기관)의 잡과 취재(取才) 과목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정조(1795년)때 중간된 '중간 노걸대 언해본' 입니다.그림에서 보이는 한글은 중국어의 정음과 속음을 쌍으로 달아 놓은 것으로 왼쪽이 정음(표준어), 오른쪽인 속음(당시 쓰던 발음)입니다. "충/칸/롸/키/다/연/계/샹(중 간 노 걸 대 언 해 상)다거/니/충/나리/레?/ 大哥(대가) 你從那裏來(니종나리래)?큰 형아 네 어드러로셔조차 온다?"이런 식으로 줄줄 회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후기 통용되던 한글 음가라서 쉽게 발음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상인들의 비즈니스 회화입니다. 상권에는 조선 王京(왕경)을 떠난 말 장수가 북경의 여관에 드는 과정과 말의 먹이·방값 ·燈稅(등세) 교섭과 通姓名(통성명) 등 조선과 중국의 서로 다른 점을 이야기하는 과정을 서술하였으며하권에는 물건을 사고 파는 법‚ 양의 종류와 이름‚ 尺寸(촌척) 제도‚ 활과 화살 만드는 법‚ 연회음식의 종류와 명칭 및 주문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중국어만 펴낸 게 아닙니다.몽골어도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게 '몽어 노걸대' 입니다. 이걸 보려고 몽골 대통령 부부가 2007년도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1741년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책의 체재는 각 면 7행으로 각 행에는 왼편에 몽고 문자로 몽고어 문장이 쓰여 있고‚ 오른편에는 한글로 몽고어의 발음이 전사되어 있으며‚ 각각의 몽고어 문장 아래에는 국어 번역문이 붙어 있는 체재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선초만해도 양반 사대부들도 중국어 학습등 외국어 공부에 열을 올렸지만,후기에 들어선 차츰 시들해집니다.그래서 영조 임금은 외국어 학습을 강화하고자 노걸대를 신하들에게 강을 받기도 했는데,영조임금 당시 조선왕조 실록엔 이런 기사도 있습니다.석강을 행하였다. 겸 한학 교수(兼漢學敎授) 홍술해(洪述海)를 불러들여 노걸대를 강하게 하였으나 잘 알지 못하니, 임금이 웃으면서 말하기를,"사역원(司譯院)에서 교수를 차출(差出)할 때에 번번이 한어(漢語)를 안다고 하여 차출하였으나 명실이 서로 부합하지 않았다. 고 상신(相臣) 이정귀(李廷龜)는 화어(華語:중국어)를 잘 알아 화인(華人:중국인)들의 칭찬한 바 되었고 이희(李憙)도 화어를 잘하여 훙문록(弘文錄)에 들지 않았으나 교수를 제수하였다. 이제부터는 연소한 명관(名官)들에게 한어(漢語)를 익혀 실효가 있게 하라."하였다.노걸대는 중국어, 몽고어, 청어(만주어), 왜어 노걸대 시리즈가 있다고 하는데,왜어(일본어) 노걸대는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노걸대의 가치는 상당합니다.역관들이 쓰던 교재라는 인식으로 인해, 외국어를 학습했던 사대부가에서도 가볍게 여겨 버려졌을 것이며역관집안 후손들도 개화기 당시 신문물을 맞이하면서집안에 있던 옛 서책들을 불태우거나 팔아 먹었으리라 생각됩니다.그래서 잔존 수량이 극도로 적습니다.노걸대 상,하권 2권이 완질인데 완질본인 경우 평균 2000만원에거래될 정도로 고가입니다. 역관 집안의 후손이라면 노걸대가 궤짝안에 있는 지 한번 찾아보세요.
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나주평야발발잉치와와
첫댓글 진짜 너무 신기해...ㅜㅜ저 시대 한번만 엿보고싶어
다른 노걸대도 더 발견되면 언어학에 엄청난 바람이 불텐데...
신기하다..저때로 한번 가보고싶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워보임. 오히려 조선시대가..
첫댓글 진짜 너무 신기해...ㅜㅜ저 시대 한번만 엿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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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저때로 한번 가보고싶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워보임. 오히려 조선시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