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환신부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 Didier t'Serstevens (1931~2019)】
전북 임실에 유럽식 치즈 이식한 신부
지정환 池正煥 (1931 ~ 2019)은 벨기에 출신의 대한민국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본명은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네덜란드어: Didier t'Serstevens)이고 세례명은 디디에다.
【지정환신부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 Didier t'Serstevens (1931~2019)
「하느님이 보내 주신 ‘카리타스의 무지개’」
지정환 신부(池正煥, Didier t’Serstevens)는 1931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뱅상 레브 신부(Vincent Lebbe, 1877~1940)가 세운 벨기에 선교협조회(La Société des Auxiliaires des Missions)에 들어간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가서 민중의 형제로서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고, 그들에게 배워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해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랐다.
지정환 신부는 1958년에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12월 8일 부산에 도착한 이래 전주교구 전동·부안·임실본당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 특히 가난한 농민들과 동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부안에서는 쓸개를 잃었고, 임실에서는 다발성 신경경화증을 얻었는데, 이것들은 이 땅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빛’으로, 하느님이 보내 주신 ‘카리타스의 무지개’로 살면서 그가 받은 훈장이었다.
1959년 12월 8일에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대한민국에 입국했고 1960년 3월 15일에는 전동성당 보좌신부로, 1961년 1월 4일에는 임실성당 주임대리로 각각 부임했다. 천주교 전구교구 부주교였던 김이환(金二煥, 세례명 스테파노) 신부가 그에게 '지정환'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정환이라는 한국 이름은 자신의 원래 이름인 '디디에'의 '지'(池, 디), '김이환'의 '환'을 딴 이름으로서 "정의(正)가 환(煥)하게 빛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1961년 7월 7일에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후에 3년 동안 간척지 100 헥타르를 조성해 농민에게 제공하는 등 가난한 농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고 1964년 6월 15일에는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지정환은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산양의 젖으로 치즈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1967년 5월 23일에는 벨기에에 거주하던 부모로부터 받은 2,000 달러를 들여 전라북도 임실군에 대한민국 최초로 치즈 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치즈를 생산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3년이 지나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정환은 동료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프랑스, 이탈리아를 견학하면서 치즈 제조 기술을 전수받았고 1969년에는 최초의 치즈 생산에 성공하게 된다.
지 신부는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해 산양을 키우다가 가난한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고국에서 본 치즈 생산법을 도입해 임실에 한국 최초의 치즈 공장을 만들었다. 이어 심 목사도 1990년대 기독교재단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에 교회 청년을 파견해 치즈와 요구르트 생산법을 배워 오게 했다. 또한 그 청년이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고, 농촌에서 스위스식 가정공장을 실현하도록 했다. 그것이 이곳 치즈마을의 싹이 되었다. 지금은 심 목사의 세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까지 이 마을에서 치즈를 만들고, 판매하거나 피자집을 하며 치즈마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심 목사는 “이 척박한 마을에 스위스 분들이 직접 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풀무원 설립자 원경선 선생은 일본 애농원 사람들을 데려와 교육을 해줬고, 서울대 농대 배인휘 교수도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며 “그런 외부의 조력과 이진화 전 치즈마을 위원장, 김상철 형제, 송기봉 현 위원장 등의 헌신적 내응이 합쳐져 치즈마을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부친이 전주에 사준 대지 400평 대저택을 다 날려먹을 만큼 농촌 살리기에만 몰두했다. 이런 농촌개혁가의 이미지와 달리 심 목사는 교회에 서당을 차려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친 훈장이기도 하다. 그만큼 옛사람인 그가 농촌 변화의 주역이 될 만큼 열린 것은 부친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아버지는 유학자였지만 그가 고교 때 크리스천이 됐음을 고백하자, 유학도였던 신라의 화가 솔거가 불교에 귀의할 때, 그 부모가 ‘불교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 되어라’고 했다는 일화를 전해주며 격려했다. 그는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기보다는 넉넉하게 자식의 선택을 수용하는 부친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최 목사와 동광원 설립자 이현필 선생의 스승은 전남 화순 개천산의 이세종(1880~1942) 선생이다. 심 목사는 교회에서 정년은퇴한 2004년부터 7년간 이세종의 수도 터인 개천산에 머물며 수도를 하고, 서당을 하기도 했다.
“이세종은 성경을 읽은 사람이 아니고 먹은 분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더는 제 몸뚱어리만을 위해 살 수 없게 된다. 또한 종교의 경계와 일체의 벽까지 뛰어넘어 평화롭게 된다.”
임실에서 생산된 치즈는 서울의 특급 호텔, 외국인 전용 상점에 납품되었을 정도로 유통망을 전국으로 확장했다. 임실 치즈 공장이 주민 협동조합으로 개편되면서 지정환은 임실 치즈 공장의 운영권, 소유권을 주민 협동조합에 양도하게 된다. 1970년대에는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던 외국인 사제들, 선교사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헌법 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고 시위 도중에 경찰에 체포되어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농촌 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이 '치즈 생산을 통해 농촌 발전에 헌신한 신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추방을 면했다. 1980년에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우유 트럭을 몰고 광주를 직접 방문하여 시민군과 광주시민들에게 우유등 식료품을 제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