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 여행기(일시 2002년 7월 28일월요일~2002년 8월 17일 토요일) # 7월 29일 맑음 월요일 여행을 할 때마다. 설레임은 같으나 횟수가 늘수록 긴장감은 감소되는 것 같다. 그러나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출발하려는 의지와 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여러 가지 일들이 엉켜서 혼란스럽다. 일단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니 모두가 작아 보인다. 동유럽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세 가지를 놓고 준비했다. 동남아시아를 아이들과 함께 가려 했으나 유진이가 학교일로 가기 어렵다고 해서 유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보지 못했던 동유럽의 폴란드와 헝가리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들어가기는 영국에서 나오기는 프랑스에서하기로 했다. 20일 일정으로 계획을 세워 구체적으로 숙소와 여행지, 경비, 준비물 등을 준비했다. 이번 여행의 색깔은 유로라인이라는 버스를 선택했다. 15일 짜리 패스 가격이 30만원이다. 신발끈 여행사에서 미리 준비했다. 야간에 이동하며 숙소비를 절약하자는 계산도 들어갔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건강에 무리가 갈 것 같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내와 둘이 갈 것 같아서 준비를 했는데 이 선생이 동행하게 되었다. 여행의 노하우가 따로 없지만 여행의 색깔에 따라서 가방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버스타고 가방 메고 다녀야하기에 작은 배낭하나로 짐을 줄였다. 여행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방이 작아지는구나. 오후 5시 30분 비행기인데 집에 있기에 답답해서 일찍 집을 나섰다. 다시 볼 수 있을까? 라는 괜한 두려움이 헤어질 때 마다 있다. 부보님께 인사드리고 아이들과 헤어진다. 유진이는 또 운다. 농협에 들러서 유로화로 환전을 했다. 의정부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이다. 출국 수속을 밟았다. 비행기 좌석을 받고 공항 기금 10,00원을 사서 들어갔는데 조그만 칼이 있어 들어가는데 걸렸다. 따로 부쳤다. 비디오카메라를 신고하고 비행기 타기만을 기다렸다. 아내와 이 선생은 면세점을 기웃거린다.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여행은 기다림이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여행에서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비행기를 장시간 타는 것이다. 서울에서 방콕으로 타이항공 635편에 올라타서 41a,b,c 좌석에 앉아 간다. 방콕에 도착했다. 다시 방콕에서 새벽 0시 30분에 타이항공 910편으로 런던을 향해 간다. 가끔 기내식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기대하는 기쁨 외에는 힘든 시간들이다. 잠이 들었다.
# 7월 30일 화요일, 흐림 간간히 비 내림. 영국시간으로 아침 7시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 비해 오래되고 복잡하며 좁고 답답한 느낌을 주는 공항이다. 우리나라와 시차는 9시간(여름은 섬머 타임으로 8시간)이다. 모두 목적지가 있어 부지런히 움직인다. 우리도 입국 수속을 밟고 칼을 찾은 후에 공항을 나섰다. 비행기에서 만난 한국 아가씨가 찾아야 할 짐이 많아 조금 도와주다가 민박집이 연결되었다. 영국에서 유학중인 사촌 오빠가 있어 여행 겸 왔단다. 오빠가 부탁한 물건을 들고 오니 짐이 많아졌단다. 후배가 공항에 마중 왔는데 유학생 오빠가 민박집도 운영하고 있단다. 방이 있는지 여부와 가격을 물어보니 15파운드이고 방이 있단다. 시내 1 존에서 약간 벗어난 2존이라는 것이 약간 맘에 걸렸지만 그냥 그곳을 선택하기로 했다. 함께 짐을 들고 전철을 타고 40여분을, 갈아타고 mildend역에서 내렸다. 처음으로 영국 런던에 도착한 것이다. 오래된 건물에 날씨는 흐리고 색깔은 회색이다. 아파트 3호실이 민박집인데 인터넷에는 런던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있단다. 새댁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고 김치찌개와 함께 아침식사를 풍성하게 대접해 준다. 침대를 배정 받았다. 아래층은 식당과 거실이고 2층에 방이 3개 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관광을 하려고 거실에 모여 주인아주머니의 설명으로 제일 먼저 이곳에서 가까운 그리니치에 가 보기로 했다.
물과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그리니치로 출발했다. 전철을 탔는데 그리 멀지 않았고 시간도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템즈 강 쪽으로 걸어 나와 처음 눈에 띤 것은 옛날 모습 그대로 갖춘 아름다운 배인 커티 샤크호이다. 커티 샤크라는 이름은 위스키 술 이름으로도 유명한데 원래는 배의 이름이다. 이 배의 진수식이 행해진 것은 1859년으로 그 당시에는 쾌속선 이었다고 한다. 홍차나 양모를 가득 싣고 인도 항로에서 대활약을 했다고 한다. 1954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져 배 전체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배가 있는 광장 넓은 곳에 템즈 강을 끼고 원통형 집이 가본다. 엘리베이터로 아래로 1층을 내려가다. 엘리베이터는 20여명이 탈 수 있는데 제법 오래되 보인다. 검은 베레모를 쓴 나이든 흑인 할아버지가 약간 미소를 보이며 엘리베이터를 운전하고 있다. 내려서 아주 긴 터널과 마주했다. 이 터널이 템즈강 아래로 뚫린 터널이다. 걸어서 건너가게 된 곳이다. 가싸 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사진만 찍고 다시 올라왔다. 템즈강의 하류인 듯 물살이 급하고 강폭은 한강보다 좁아 보인다.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전철역 앞으로 와서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갔다. 그리니치 대학 앞을 지나 천문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관광객이 많다.
넓은 잔디밭과 고목나무가 있는 공원에 들어서니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언덕을 숨차게 약간 오르니 세계의 시각을 정했던 그리니치 천문대가 나타났다. 아직도 세계의 기주니 되는 시각이 숫자로 빠르게 변하며 알려주고 있다. 2002년 7월 26일 11시 10분이다. 2층 건물 정며네는 Royal Observatory 라고 씌어 있다. 커다란 시계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서경, 동경의 0도 선이 표시되어 있어 한 번에 서쪽과 동쪽으로 설 수 있었다. 기준선에 선다는 것이 흐뭇했고 방문객 대부분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한국의 서울은 127도, 일본의 도꾜는 139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 박물관은 여러 가지 천측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는 찾아들어가기 쉬웠다. 출구 찾기가 약간 까다롭게 되어있다. 천문학과 당시 수학의 발전을 볼 수 있다.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아주 멋있다. 멀리 밀레니엄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흐르는 템즈강과 함께 건물들이 그림 같다. 그리니치 공원 옆에 있는 건물이 국립 해사 박물관이다. 17세기부터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캡틴 쿡의 업적을 비롯해서 넬슨 제독의 위엄까지 다양하다. 영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군 국가이자 7개의 바다를 지배했던 나라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군인 필립공은 해군 학교의 명예총장이란다. 그의 3번째 아들인 에드워드 왕자도 해군학교에 입학했지만 힘든 훈련을 견디지 못해 중도에 포기했단다. 앤드루 왕자만이 졸업했단다.
다시 전철을 타고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전철표는 하루 종일 맘대로 탈 수 있는 하루권(4.1파운드)을 끊어서 이용하는데 편했다. 자연사 박물관 앞에 도착하자 웅장하기보다는 견고한 성같이 길게 보이는 건물이 황토색으로 눈에 들어온다.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있고 오른편 마당에는 어린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대형 세계지도가 꾸며진 매끄러운 판 위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오른쪽 끝 광장에는 세계의 멋진 자연 모습을 주제로 한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복잡하다. 박물관은 그 건물이 성당 같은 고딕식 건물로 아주 멋지다. 더욱 좋은 것은 입장료가 없다. 이 박물관은 1753년 Hans Sloane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해서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를 시작했단다. 전 세계의 식물, 동물에 관한 전시가 목적으로 이들의 종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지금도 매년 30만 종의 신종이 나온단다. 이들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이들의 두뇌와 열정이 대단했다. 1860년 대영 박물관으로부터 독립하기로 결정하여 1873년부터 7년 동안에 걸쳐 현재의 건물로 옮겨졌단다. 공룡 붐으로 인해 큰 인기를 얻은 이곳에서 40억 년 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다. 동물, 식물 등이 다양하다.
처음 들어서자 거대한 공룡 뼈가 우리를 맞는다. 다양한 공룡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고 화석과 함께 흥미를 갖도록 잘 구성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원숭이 뼈가 살아있는 것 같이 매달려 흔들거린다. 각종 돌의 종류와 보석, 광물까지 학습하기 좋도록 분류하고 설명이 있다. 다윈의 동상도 눈에 띄며 그의 연구과정도 잘 구성되어 있다. 구경을 하는 이들은 너무 넓어서 어디서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고 발 닿는 대로 움직이지만 특별한 내용을 공부하고 조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분야별로 잘 분류되어 있어 좋을 것 같다. 책으로만 공부하는 우리 형편에 비해 이곳 어린이들은 조상들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어 부러웠다. 눈으로 보는 것도 다리가 아프다. 먹어보지 못하고 냄새만 맡고 나온 기분이다. 박물관을 나와 찻길을 건너가니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빅토리아 여왕과 그의 남편인 알버트 공작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것이다. 빅토리아조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박물관에는 여러 시대 여러 나라의 여러 가지 물건이 전시되어있다. 진열되어 있는 물건도 구경거리이지만 벽, 천장, 바닥, 관광객이 앉아 쉬는 의자까지도 주목할 만큼 멋있고 다양하다. 비록 규모는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 같이 크지는 않지만 아담한 공간에 전시품이 다양한 모습에 놀랐다. 처음 대한 것이 대리석 조각 작품인 헤라클레스의 힘 있는 움직임 이다. 각종 대리석 조각품들과 중세의 성물 및 자품들, 다양한 스테인드그라스, 보석들, 특히 많이 보이는 시대별 각종 의상들에는 다이애나 비의 것도 있고 여왕들의 화려하고 무거워 보이는 의상에서부터 단순한 현대의 옷 까지 재미있게 전시되어 있다. 넓은 홀의 천장에 각종 금관악기를 매달아 거대한 원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구석구석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만 여행자가 갖고 있는 시간과 체력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자신에게 말하며 아쉬움을 갖고 다음 장소로 옮겼다.
왔던 길을 지그재그로 큰 길을 건너면 또 박물관이다. 런던은 온통 박물관 동네 같다. 과학 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과 성격은 비슷한데 생물 분야를 떼 준 느낌이다. 수학, 물리학, 화학, 엔지니어링, 수송, 광물학, 통신 등 여러 분야의 ‘과학’에 관한 박물관이다. 꼭 대형 장난감 나라에 온 것 같다. 어린이들이 단체로 혹은 가족 단위로 이곳에 와서 만져보고 운전해 보고 .......... 신나게 시간을 보내며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과학을 즐기면서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큰 증기기관과 우주선에서 공중의 비행기 종류, 바다의 배 모양과 기관, 육지의 자동차 종류 등 다양한 것들이 밝은 색상으로 전시되어 있다. 수집하고 분류하여 전시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 교사, 학부형이 이곳에서 흥미를 갖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부럽다. 우리도 부지런히 생각하고 투자해서 이런 공간들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 박물관의 지하도를 길게 걸어 전철역으로 와서 피카딜리 서커스 역으로 향했다. 에로스 상이 있다는 광장으로 갔다. 전철은 오래되어서 썩 좋아 보이지 않고 시끄럽고 지저분하다. 에스컬레이더도 경사가 급하고 길다. 전철 표를 심하게 검사하는 사람도 없다. 하루 종일 사람들이 붐빈다. 런던 시내는 존으로 나누어져 전철 요금이 구간별로 차이가 있다. 전철 요금은 1구간이 1파운드가 넘으니 우리보다 2~3배 비싼 편이고 피크타임에는 더 비싸다. 1회권보다 1일 권, 1주일 권, 한 달 권 등이 훨씬 경제적이다.
피카딜리 광장 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니 클 것 같았던 에로스 동상이 조그맣게 눈 위 높이에서 있어 실망스럽고 광장도 아주 작았다. ‘서커스’라는 곳이 몇 개의 도로가 모이는 원형광장이다. 주위에는 택시나 버스 특히 영국의 유명한 검은 택시와 빨간색 2층 버스가 많다. 도로가 무척 붐빈다. 이곳 주변에는 유흥지구 소호, 브티크가 있는 라젠트 거리 등을 포함해 westend라고 불리는 고급 쇼핑가를 이루고 있어 사람 또한 많다. 원래는 꽃과 채소 시장이었으나 쇼핑가로 재개발되어 청소년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에로스 동상이 있는 분수대는 젊은이들의 약속 장소로도 유명하고, 한국음식 비슷한 것이 생각나는 배낭여행객은 이곳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음식을 시켜먹곤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의 물결과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런던은 대도시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대형 네온사인 간판이 눈에 띄는데 코카콜라 옆에 삼성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반갑다. 분수대 및 층계에 걸터앉아 빨간 2층 버스, 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세계 인종 전시장이다. 백인부터 황인 흑인, 머리가 하얀 사람부터 검은 사람까지 복장도, 덩치도 참 다양하다. 피곤한 여행자가 층계에 걸터앉아 한참을 구경해도 재미있다.
템즈강 쪽을 향해 걸어내려오다가 왼쪽으로 걸어가니 트라팔카 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피카딜리 서커스 보다 넓은데 피카딜리 서커스와 더불어 런던의 중심지이고 여행의 기준점이다. 이곳에는 트라팔카의 승리를 기념하는 넬슨 제독의 동상이 하늘 높이 서 있어 형체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흙색 돌 사자상이 4개가 있다. 넬슨은 스페인 남쪽 트라팔카 바다의 해전에서 해군 제독으로 활약했다.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높이 55m의 기둥위에 세워져 있고 밑의 대좌에는 커다란 부조가 있다. 그의 유명한 4대 해전이 그려져 있다. 1805년 트라팔카 해전이 정면에 묘사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비둘기가 많다. 모이를 사는 여행객들의 줄도 있다. 모이를 주기시작하면 엄청난 비둘기들이 모여든다. 청소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넬슨제독의 전신을 비둘기들의 하얀 배설물이 지저분하게 한다. 트라팔카 광장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로 갔다. 1824년에 창설된 역사 깊은 미술관으로 규모와 내용면에서 루브르 박물관에 뒤지지 않는다. 광장 맞은편에 아담한 모습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인즈 베리관, 동관, 서관, 북관이다. 유럽의 미술을 시대 순으로 전시해 놓고 있어 유럽 미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마운 것은 미술관 입장료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입장객이 성의껏 내는 모금함이 있을 뿐이다. 영국인의 생각이 미술품은 인류의 유산으로 돈 없다는 이유로 그림을 볼 수 없게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란다. 대국다운 멋진 사고다.
여행을 오기 전에 그림을 이해하려고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이 조 용진 교수의 ‘서양화 읽는 법’이다. 이 주헌 씨의 ‘유럽 미술관 50일’ 이라는 책 그리고 EBS 방송의 강의도 참고를 했다. 그림을 볼 때 반가웠고 구석에 숨겨진 것들과 이면의 의미와 그림을 보는 방법을 약간 알 수 있어서 피곤치 않고 재미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이 있는 곳에는 지치지 않는다는 평범한 말이 생각난다. 처음 만난 그림도 있고 낯익은 그림들도 있어 반가웠다. 이제 대충 그림을 보면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의 내용과 그리스 로마 신화가 소재로 되어있다. 풍경을 그린 그림들, 시대를 비판하는 그림들, 인물 들, 조금 알고 보니 그림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보면 볼수록 더 알고 싶다. 시차 적응도 못하고 피곤한데 그림을 볼 때는 피곤함을 모르겠다. 미술관을 나와 함께 동행 하던 아가씨를 전철 태워 보내고 우리는 야경을 구경하려고 맘을 먹고 전철을 탔다. Bank 역에서 내려 가까울 줄 알고 걸었다. 목적지는 타워 브릿지다. 걸어야 영국을 조금 더 이해할 것 같다. 생각보다 멀고 피곤했다. 강변을 따라 걸어서 런던 브릿지를 지나고 타워 브릿지 밑에 도착해 보니 거의 오후 8시가 되었다. 중간에 오다가 슈퍼에 들러 사온 빵과 야쿠르트를 먹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니 피곤이 몰려온다.
사진이나 영상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 보던 타워 브릿지의 모습을 직접 가까이에서 보는데도 피곤해서인지 큰 감흥이 없다. 실제는 약간 작게 보였다. 빅토리아 식의 우아함이 뛰어난 이 다리는 1894년에 완성되었다. 템즈강의 교통량이 많았던 예전에는 하루에도 수 십 회 다리를 올렸단다. 놀이공원에서 올려다보는 다리는 꼭 동화 속 다리 같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가기로 했다. 건너에는 런던탑이 있다. 2층 버스는 1일 티켓 전철표로 이용할 수 있다. 2층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 번쩍이고 번잡한 시내를 구경했다. 다시 알맞게 가서 내려 건너편으로 가서 똑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런던탑 앞에 내렸다. 런던타워는 탑이라기보다는 작은 성 같은 느낌이다. 은은한 조명이 결코 밝지 않은 런던타워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처형극의 현장이었던 런던탑은 1078년 정복 왕 윌리엄에 의해 건립된 화이트 타워를 중심으로 세워졌는데 한때는 왕실의 성 이었단다. 그러나 한 결 같이 고문, 투옥, 처형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해온 곳이다. 이혼 문제를 일으켰던 헨리 8세가 몰래 결혼한 시녀 Anne Boleyn을 간통죄로 처형했는데, 실은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딸이 엘리자베스 1 세로 즉위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장 비참한 사건은 1483년 13세로 즉위한 어린 에드워드 5 세와 동생 리차드 가 혈탑에 유폐되어 암살된 것이란다. 주모자는 그 후 왕위에 오른 리차드 3세라는 설이 있는데 섹스피어는 그를 곱추로 만들어서 악인으로 묘사했단다. 또한 가슴 아픈 것은 ᅟᅣᆼ친과 의부의 야심 때문에 여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결국 전왕의 친자식인 메리가 즉위한 후 반역죄란 죄명으로 처형된 Lady Jane Grey의 이야기다. 18세로 죽은 Lady Jane 이 여왕의 자리에 앉았던 날은 불과 9일 이었단다. 이때 가슴 아픈 처형 장면을 그린 폴 들라로슈라는 화가의 그림이 내셔널 겔러리에 있다.
유토피아를 쓴 종교가이자 대신인 토마스 모아는 헨리 8세의 이혼 문제에 반대하여 처형되었는데 처형 당시 ‘국왕의 신하로서 그러나 우선 신의 종으로서’라는 말을 남겼단다. 그 외에도 고문과 처형으로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벨타워는 엘리자베스 1세와 토마스 모아가 유폐되었던 곳이고, 반역자의 문은 배로 옮겨진 죄수에게 외계와 갈라지는 것을 알리는 곳이다. 타워 그린은 레이디 제인이나 앤블린의 처형장 이었고 혈탑은 어린 왕 형제와 월터 롤 리가 유폐된 곳이다. 이곳의 낙서도 흥미로운데 더 재미있는 곳은 보물관에 있는 왕관의 다이아몬드다. 일명 보석의 집(Jewel House)으로 부리는 이곳은 1303년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 보관되었던 영국왕관(Crown Jewels)의 다이아몬드, 동인도 회사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물한 Koh-I-Nool 다이아몬드와 317캐것, 530캐럿의 '아프리카의 별' 등을 포함하여 왕실의 보물을 전시하고 있다. 영국왕은 대관식을 위해 이곳에서 왕관을 쓰고 웨스트민스터 수도원까지 가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너무 늦어 외관만 보며 안내 책으로 만족해야했다. 타워브릿지에는 멋진 색깔의 네온 불과 조명이 비춰지고 있다. 생각보다 차분한 모습에 흥분 보다는 피곤이 더 밀려온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전철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처음 침대에 누워본다. 다리가 약간 부었다. 간단하게 씻고 자리에 누우니 정말 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