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봉의 유래"
서기 1936년 조선 인조 14년 청나라 태종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침범한 병자호란시
평양감사는 가장 사랑하는 애첩"애기"를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바로 개풍군에서 감사하는 청나라 오랑케의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애첩 애기만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 조강리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애기는 매일 봉우리에 올라와 북녘하늘을 바라바보며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결국 병들어 죽어가면서 "님"이 잘 바라보이는 이 봉우리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하였다
1966년 10월 7일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을 방문시 "애기"의 사연을 들으시고 "애기"의 한(恨)은
강하나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恨)과 같다고 하시면서
이 봉우리를 "애기봉"이라고 명명하시고 친필 휘호로써 비석을 세워다
강화도 나들이
남쪽에는 비가 온다고 했지만 날씨가 맑기에
친구들과 강화도로 가는 길이였는데
군생활을 한 친구는 잘 알고 있다면서
김포에 있는 애기봉를 들려서 가자고 한다
강화는 여러번 다녀왔어도 애기봉은 처음이다
군 검문소에 출입증을 받고서야 들어갈수 있었다
은행나무 가로수는 예쁘게 노란 물이 잘 들어있어
탄성이 절로나오고 가을 나들이에 묘미를
마음껏 느낄수 있어서 행복한 콧노래가 나온다
애기봉 위에는 휴개소가 있었고 해병대 기념탑도 있었다
통일 전망대에서 같은 전망대도 있어서 이북을 일부 볼수도 있었다
애기봉의 유래를 읽으면서 우리엄마를 생각하면서 너무 마음이 시렸다
스물 여덟이란 나이에 생이별을 하고 지금 병석에계신 우리엄마는
그 긴 한을 마음에 담고 아버님을 만나지 못한체 이세상을 떠나시게 되였으니
6.25가 만들어낸 애기봉 사연이 아닐런지! 내가 어찌 할수없는 사연이니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친구들 알세라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강화도에서는 식도락으로 장어에 회에 점심에 저녁까지 챙기면서
재래시장에들려 젓갈도 사고 부두가를 거닐면서 배구경도 하면서
초지대교를 건너면서 농담도 흘리면서 하하호호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기회가 있으시면 가까운곳이니 애기봉에 들려보세요...시나
첫댓글 슬픈 사연 애기봉 ,강 하나 사이에두고 오가지못하는 실향민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이북땅 . 남북이 가장 인접한 애기봉 ,,시나님 즐거운 나들이 잘 하셨습니다 ,건강 하세요
시간 나면 꼭가봐야 할것 같네요 강화 무지 자주 가는데..
예전에 해병대 군 생활을 그 곳 조강리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얘기꺼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구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마주 보고 있지요. 대남 방송이 24시간 들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오래된 추억입니다.
애기봉에 대한 좋은 소개 사연의 글과 음악 감사드립니다. 애절한 음악과 함께 애기의 일편단심에 숙연한 마음입니다. 강화도 나들이에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런 사연도 모르고선 전에 다녀왔으나 님의 글을 통해서 사연을 알고나니 새로윰을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