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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독; 홍상수, 2009년 작
출연;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하정우, 정유미, 공형진, 유준상 등
(올레TV에서 검색하면 찾을 수 있음, 유료)
홍상수 영화감독과 배우 김민희에 관한 대중의 정신적 단죄는 매우 엄격한 것 같다. 그러니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놓아도 대중은 여전히 불륜이라는 낙인부터 찍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존 레넌의 명곡 'Imagine', 'Love'를 사랑하지만 오노 요코와의 불륜을 단죄하는 시선은 극히 드문 걸 보면 불륜의 잣대도 선택적이지 아닌가 싶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불륜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처벌할 생각은 더욱 없다.
홍상수 감독을 두고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누가 말한 바 있는데, '작가주의'란 영화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책을 써나가는 작가처럼 모든 걸 감독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거라고 보면 되겠다. 따라서 작가주의 감독의 영화라고 하면 배우를 내세워 감독이 직접 쓰는 책이며, 관객의 재미나 이해와는 별개라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팬이 구경남에게 묻는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드세요? 이해가 안 가요. 왜 이런 영화를 만드시는지. 사람들도 어차피 영화 보면서 잘 이해도 못하는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시려는 거예요?“
그가 왜 작가주의 감독으로 불리는지 이보다 더 분명한 대사가 있을까? 그러나 그럴수록 공허해지는 반응과 쓸쓸한 웃음소리는 감독의 자조自嘲로만 들린다.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처럼 길 위에 서 있다. 예술영화 감독 구경남(김태우)은 제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제천에 갔다가, 얼마 뒤 학생들에게 특강하러 제주도에 간다. 영화는 구경남이 제천과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2008년 8월 땡볕에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영화감독 구경남이 대면하는 제천 사람들 이야기. 이것이 영화 전반부다. 영화는 구경남의 일상과 결부된 크고 작은 사건을 축으로 진행된다. 마흔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미혼으로 사는 구경남의 성생활은 그다지 폭이 넓지도 깊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다지 활동적이지도 않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구경남을 한낮에 불쑥 찾아온 후배 부상용(공형진). 한때는 영화사 설립을 함께 기획하고 꿈꾸었던 그들은 대낮부터 낡은 향수와 술에 취한다.
부상용의 남루하지만 단단한 일상과 삶의 배후에는 유신(정유미)이 있다. '빛과 같은 여자'라고 유신을 소개하는 상용의 얼굴에 득의만면한 웃음이 그득하다. 남자에게 빛으로 다가온 여인 유신과 그녀를 바라보는 경남의 엇갈리는 눈길. 제천에서 이틀 밤을 보내는 경남에게 수수께끼처럼 다가온 유신과 상용의 관계는 사랑의 다채로운 빛살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공현희(엄지원)는 능숙한 영어와 화려한 외모, 상당한 음주량까지 겸비하고 쿠페를 몰고 다니는 제천의 자랑이다. 하지만 그녀 이름에서 헛되고 무의미한 어떤 것이 연상된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자기과시의 최종지점을 확인해주는 것 같다.
경남을 제주에 초청한 선배는 또 다른 선배 양천수(문창길)를 술자리로 인도한다. 미대 출신 영화감독 구경남의 까마득한 선배 화가 양천수는 지금 제주에서 젊은 여자와 살고 있다. 영화 후반부는 이렇게 구경남을 둘러싼 또 다른 삼각관계로 이어진다. 양천수의 원숙한 지혜와 깨달음이 어떻게 성적 판타지로 작용하는지 사람들은 낱낱이 경험한다.
일상의 장면들을 비틀어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 홍상수식 유머다. 이를테면 구경남과 제천영화제 프로그래머 공현희가 처음 만나는 장면. 구경남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공현희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허리를 자르며 명함을 건넨다. 저녁에 열린 파티에서는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흥행 감독이 됐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후배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싸잡아 얘기하면 너나없이 다 속물들인데, 그런 속물들이 사는 곳이 바로 세상 아닌가.
나르시시즘에 빠져 살짝 미쳐 있는 여자들, 센 척 하지만 항상 쩔쩔매는 남자들,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충분히 있을 법한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데, 관객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일상의 조각을 마주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얼마나 소소한 것들 투성인가, 사소한 감정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그로 인한 다툼과 결별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영화는 정말 현실에 있을만한 찌질한 인물들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 영화 속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대사가 여러번 나온다.
또 한가지 이 영화속에서 관람 포인트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들이다.
주인공 이름이 구경남이다. 이름처럼 구경남은 남들이 살아나가는 삶의 조각을 들여다보는 구경꾼이자 영화감독이다. 특히 그는 남녀의 애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찬찬히 살피고 관찰하는 인물이다.
팔을 다치는 남자의 이름이 부상용이다. 부상 당한 사람이란 뜻이다. 상이용사를 연상시키는 부상용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제천으로 내려온 인물로 자신을 치유하는 여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유신은 부상용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빛과 같은 인물로 낡은 것을 혁파하여 새로움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엄지원이 맡은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신경질을 잘 내는 인물의 이름은 공현희이다. 공현희에게서 우리는 막연하면서도 어떤 비어 있음과 허망함, 가벼움과 깊이 없음 따위를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
고순(고현정)의 이름에서 우리는 '지고지순(?)'을 연상한다. 결혼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 육체를 향한 인간적이고 소박하며 순수한 갈망을 그녀에게 확인한다. 고순이 보여주는 무한히 자유롭고 허허로우며 당당한 자세는 무척 신선하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이름으로 인물들의 특성을 구체화 시켜주고 있다.
배우 김태우는 정말 찌질하게 연기를 잘한다. 하나하나 늘어놓는 모습이 정말 궁색하게 코너에 몰린 사람이다.
노화가의 제주 후배(하정우)는 왜 흥분하고 울어야 했을까? 그가 본 것은 단순한 불륜 장면이 아니다. 그는 구경남을 매개로 자신의 욕망이 상연되는 장면을 침대에서 뒤늦게 본다. 스크린 위에서 부유하는 기표들, 우리가 영화관에 찾아오도록 유혹하는 이미지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품고 있는 욕망이다.
여기에 욕망의 본질이 있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라캉의 말은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 주체의 무능력함을 겨냥한다. 마찬가지로 관람객의 욕망은 영화의 욕망이다. 그러므로 영화만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이 영화를 모방하기도 한다.
제천에서 부상용의 아내 유신을 갈망했던 자신의 욕망을 소급해서 깨달으면서, 동시에 죄의식을 느꼈고 잠시나마 태어난 욕망을 억눌렀던 그가, 다시 욕망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제주에서 노화가인 아내인 고순을 확인한 이후이다.
결국 고순을 향해 달려가는 구경남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죄의식만으로는 인간의 욕망을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고, 스캔들을 비난하는 세상을 향해 “위선 떨지 마, 지가 하고 싶은 거였으면서”라고 야유를 보낸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버릇이 있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랬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그들은 무관심하다. 경남은 양천수의 아내 고순과 담담하게 해후한다. 상당한 나이 차이에도 무척이나 행복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경남의 몸과 시선에 쓸쓸함이 담긴다. 그것은 바다로 향하는 그의 질주에 묻어난다.
어쩌면 이런 점이 이 영화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슬쩍 지나치는가 싶더니 이내 딴죽 걸면서 눈을 흘기는 영화. 그러기에 고순이 경남에게 남기는 말은 상큼하되 아프게 다가온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지 마. 아는 만큼만 안다고 그래."
인생이란 무엇인가
고순과 경남의 해후가 결과하는 내용 역시 또 다른 생각거리를 선사한다. 왜들 저러고 사나, 하는 물음과 그것에 대응할 자세를 되물으면서 의표를 찔렸다는 느낌이 든다. 행복하고 넉넉한 양천수의 행각과 그를 넉넉하고 훌륭한 인간이라 주장하는 고순의 자세에 남겨진 빈 부분. 인간의 내밀한 욕망과 그것의 성찰을 이 영화는 담고 있다.
술과 욕망 그리고 사람
영화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으레 술과 관계를 동반한다. 그들이 맺는 관계의 중심에 술이 자리한다. 술이 없다면 관계도 없다. 자리와 차수를 바꿔가면서 음주에 음주를 거듭하는 사람들. 따라서 영화 내내 그들은 마시거나 취해 있거나, 혹은 흔들리고 있다. 술과 욕망 탓이다.
술을 매개로 진행되는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술의 힘으로 인간을 탐사한다는 혐의가 짙다. 자신도 감추고 싶은 욕망을 술김에 분출하는 인간군상의 허술함과 그것에서 발원하는 결과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경남을 축으로 돌면서 관계가 뒤얽힌다는 사실이다. 관찰자가 행위자로, 욕망하던 자가 실행하는 자로 화하는 것이다.
부상용과 유신의 관계에서 경남은 단순히 욕망하는 구경꾼이며 황홀한 환각과 몽환상태에 빠져 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부인에게 뭔가 오해를 불러 일으켜 후배의 돌을 맞고 절교 선언을 당한다.
아직도 세상을 떠돌면서 짝을 구하는 인간 경남의 눈에 들어온 두 번째 쌍 양천수와 고순의 관계. 내밀하지만 강렬하게 욕망하던 경남의 구체적 행위유발 요인을 제공하는 쪽지와 확인행위는 영화의 결말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인다. 욕망과 행위 사이의 거리확인 결과가 무엇인지 영화는 숨기지 않고 전부 까발리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짝을 만나는 데 있어.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기와 가장 잘 맞는 짝을 만나면 사람은 정말 행복해진다니까." 자신이 한때 좋아했지만 이제 존경하는 선배의 부인이 된 여자를 만나 정사를 나누면서, 그리고 그 여자에게 자신이 여태 만나지 못한 이상적이 짝이라고 고백하면서 어설프게 유혹한다. 마지막으로 해변에서 구경남이 지금처럼 나이든 사람과 살면 그녀가 나중에 외로워질 것이라고 하자, 고순은 헤어지면서 시크하게 면박을 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지 마. 아는 만큼만 안다고 그래." 로맨틱하거나 감동적이기보다 한마디로 궁색한 인물들이 치고받는 이야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상당히 재미있다. 우리가 항용 부딪히는 일상과 나날의 풍경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 구경남이 말하듯 어떤 강력한 주제를 논하는 것도 아니고, 주장을 설파하지도 않는다. 아름답거나 기막힌 장면을 선사하지도 않는 영화이다. 구경남처럼 겉으로는 사회적 성공이나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 척 하지만 성공한 후배를 질투하고, 예술 영화를 한다고 하면서 속으로 다른 여자들에게 흑심을 품는다.
서로가 잘 알지 못하면서 자못 진지하게 고백하고, 서로 오해하고 비난하며 헤어지고, 또 새로운 삶을 갈망하면서 여전히 속물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나서 왠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닽은 검연쩍음과 그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도 솔직히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방이나 상황을 이해하려드는 경우가 있다. 그때 영화는 넌지시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잘 알지 못하는 게 많을 것이다. 나에 대해서, 상대에 대해서. 그래도 우리는 계속 그렇게 말을 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 또 뭐 어떻겠는가. 잘 알 수도 어렵지만, 뭐, 꼭 잘 알아야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첫댓글 영화를 보고 이렇게 영화평론가 처럼
평할수 있는 실력에 그저 놀랍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