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의 중압감도 이곳에서는 무효다.
이마 위로 흐르는 뜨거운 혈액마저 기꺼이 달게 받아 마시는
싸이코 쯤의 내가 상상되려 할때 나는 겉잡을 수 없는 머리 속을 제어한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너무한 얼굴로 울트라 급 햇살을 등지고
배 똥꾸녕이 토해내는 저 굉장한 파도를 내가 뿜어내는 양 당당히 나는 등 뒤로 가고있다.
피곤한 쿠셋에서 제공된 아침 크로상에 미쳐
미처 세수도 하지 않고 맨 몸으로 내린 스위스의 햇볕이 이리도 적나라할 지 누가 알았겠는가.
얼굴과 온 몸의 모공들이 저 뜨거운 햇살에 후벼파여 알 수 없는 깊이에의 매력을
시방 뚫린 구멍 마다 뽁뽁 뿜어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과연 심오한 hole이다.(-_-)

내 손 안의 노트는 하얀 거품 위에 떠있다.
마치 내 정수리에 저 붉은 깃발을 꽂고 나는 머리를 흔들어대며
물을 아래로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셀 수 없는 파도의 비말을 온 몸으로 맞으며 날고만 있다.
물에 젖을지라도 내 날개는 일회용이 아니다.

(실제 툰 호수의 색깔은 그야말로 크림을 섞은 에메랄드 빛이다.
사진은 원판불변이 아닌 원판너무한변이다-_-)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연유를 섞은 듯한 저 크림 빛의 에메랄드 물 위로
흐릴대로 흐린 미천한 소금 물을 뿌릴 수는 없겠다.
한국에서의 그 시시한 슬픔들도 수 천번 소리 없이 삼키고 내보냈건만
스위스 대 자연의 우렁찬 기쁜 감동 쯤이야 설마 안으로 삼키지 못하겠는가.
기꺼이 소금 물을 삼키는 내 목젖은 힘차게 꿀렁댄다.
현명한 몽상가 장딴지의 힘 박민지는 한국과 스위스 땅의 경계를 불문한 대한의 딸 아니겠는가.
독일이 그렇게 나를 녹이고 죽여냈어도 나는 결단코 박민지였다.
사실은 산이지만 초원이 분명한 곳에 자리 잡은 저 옹골진
초원 위의 집들과 막대 잘린 추파춥스 사탕같이 촘촘하게 박힌 나무들이 툰 호수와 나를 에워 싸고 있다. 자연이라는 파라다이스에 아주 처 휘 감겨 있다.
그야말로 자연의 감동을 이렇게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그 보다 더 자연의 고마움을 심장 바닥까지 긁어 알겠다.
그토록 유치하게 부르짖던 허공 중에 사라진 구호, 자연보호 캠페인과
무용지물인 그 숱한 도덕 교과서가 이 엄청난 포말에 박살나면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자. 녹색 도시 만들기. 이상 녹색연합. 등의 그 친절하지만 소용없는
초록색 글귀들이 흩어지면서
나는 자연 앞에 맨 몸으로 굽혀져 있었다.

실로 나는 굽어져 있었다.
잤다.-_-;
배 꽁지 머리에 거꾸로 돌아 앉아서 믿을 수 없는 잠을 잔 것이다.
소사-_-. 이 엄청난 진동과 소음에도 불구하고 턱을 배 머리에 괴고 눈을 감고 뻗은 왼쪽 팔에 들려진
수첩은 무슨 끈덕진 인연에 물 속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자연도 나도 모두 무사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기록이 가능한 것이며 나는 다시 한번 자연에의 무궁한 경외를 표한다. 표해야 한다.

(잠에서 깬 나는 한 낮의 감상떨기를 아래와 같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이어나갔다.)
물 위에 하얀 뱃 길이 남아있다.
내 앞으로 그리고 배 뒤로 지나온 길의 흔적이 그려진다.
어지간히 큰 포물선과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내가 물의 뒤를 책임진다.
내 길과 내가 머문 곳을 돌볼 자는 찾지 않고 그저
배 뒷 꽁무니의 똥꾸녕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빠져있다.
지독하다.
지금은 음악보다 물을 부수는 물끼리의 마찰음이 좋다.
주위의 소음을 뭉개어 버릴 엄청난 소음이다.
일본 놈의 열도를 단방에 가라 앉힐 만한 이 싸구려 진동도 나는 고마워 죽겠다.

해를 등지고 앉아있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고 훤칠하게 드러난 결코 가녀린,
허벅지가 꽤 뜨거워지고 작열하는 햇볕에 지금쯤 땅꿀을 파고 있을 맨 얼굴의 모공들과
오른쪽 볼이 살 달아오른다.
지정된 항구마다 배는 잠시 정차하고 떠날 때에 내 목젖만큼 꿀렁대며 나아간다.
그리고 배는 땅 위에 토해낸다.
동화의 마을에 내리는 사람들. 동화의 땅을 밟고 그 곳에 발길을 가두는 사람들.
동화와 한 덩어리가 된 그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나와
그곳에 정착하는 사람들 중에 행복한 이는 과연 어느 쪽일까.
디즈니를 박살 낼 동화의 마을이여 안녕.
내 눈으로 직접 그린 꿈의 정경이여 안녕.
내가 담는 모든 것은 일순간이라 뜨거운 미련을 버릴 수 없지만
너희를 초연하게 내버려 둘 수도 소유할 수도 없구나.
나는 이 아쉬운 일별 마저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말 없이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며 떠나 올 수 밖에 없다. 나는 진작에 떠돌이 인생 아니던가.

왼쪽 다리는 저려오기 시작하고 내 오른 볼을 태우던 해는
내 등을 돌아 이제 막 왼 볼을 태우기 시작했으며
수동식 블랙 canon 카메라를 목에 맨 국적 모를 흰둥이 소녀는 정말이지 신기한 눈으로
그 해맑은 얼굴로 이 지렁이 같은 글씨를 옆에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저 꼬마에게 동화의 마을에 사는 맨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오묘한 글씨체를 뽑아내는
신비한 동양 요정 쯤으로 여겨지고 있을까. 있겠지. 허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자는 맨 얼굴의 불손함도 기꺼이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량을 품은 자만이 내 글의 마침표를 보게 될 것이다.
첫댓글 당차게 글을 적으시네요... 무엇보다 수동식 그 블랙 canon카메라가 땡기네요... ^^ 내 스위스에서 느꼈던 첫 감상은 '알프스의 나라가 왜 이리 덥냐?'는 것이었죠...^^ 그 해 알프스의 빙하가 다 녹는다고 난리를 치던 때였기에...zermatt에서 마터호른에 갔을때는 더위 먹은 빙하가 내려 앉아 등반가가 죽기도 했었죠...
저 푸르른 호수와 하늘색에 풍덩 빠지고 싶어지는... ^^;;;
저도 스위스 이전 '모든' 나라에서 덜덜 떨다가 왔기 때문에 스위스에 내리는 순간 그 더위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제가 여름을 반가워 하기란 인류의 기적같은 일이거든요*_*;...
Thanks a lot for the nice pictures and be happy! *^^*
^^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