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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오어사(吾魚寺)와 오미곶(虎尾串)을 찾아서
2017. 8. 22 안사11회재구동창회에서 이번 여름야유회를 포항에 있는 유서(由緖) 깊은 오어사(吾魚寺)와 장기반도(長鬐半島)에 있는 오미곶(虎尾串)을 탐방(探訪)하였다. 포항 포항 호미곶의 위치도
포항시 행정구역도
먼저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浦項市 南區 烏川邑 恒沙里)에 위치한 오어사(吾魚寺)를 찾았다. 사찰(寺刹) 이름이 특이하다. 나오(吾), 고기어(魚), 절사(寺) 죽 ‘내 물고기 절’ <吾魚寺>다. 사찰의 규모가 작지만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古刹)이다.
포항 오어사 위치도
이 사찰은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창건(創建)하여 항사사(恒沙寺)라 하였다. 그 뒤 신라 고승 원효(元曉)와 혜공(惠空)이 함께 이곳의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방변(放便: 오줌이나 똥을 눔)하였더니 물고기 두 마리가 나와서 한 마리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또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갔는데, 올라가는 물고기를 보고 원효와 혜공이 서로 자기 물고기라고 하였다는 설화(說話)에 의하여 <吾魚寺>라 하였다는 믿어지지 않은 전설(傳說)이 전해져 내려오있다.
오어사 출입문
오어사의 현존하는 전각(殿閣)은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나한전(羅漢殿),설선당(說禪堂), 칠성각(七星閣). 산령각(山靈閣)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을 제외한 전각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대웅전의 삼존불은 목각불로 가운데는 석가모니불이고 양쪽에 협시불이 있다. 이 절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오어지(吾魚池)에서 건져 올려 유물전시관(遺物展示館)에 전시된 고려시대 동종(銅鐘)과 많이 낡은 원효대사의 삿갓이 지금 끝 보존되어 있다. 오늘은 칠월 초하루라서 그런지 많은 불자(佛子)들이 스님의 염불에 맞추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변변찮은 주차장과 좁은 오어사 진출입로에 신도들이 타고온 차량들이 복잡하게 주정차 되어 있어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는데. 주차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주차장 확보가 시급하다.
오어사 대웅전(大雄殿)
대웅전 안의 불단에 있는 목조삼존불
오어사 관음전
오어사 응진전
오어사 범종각
오어사 삼성각
오어사 산령각
오어지의 둘레길이 개발되어 있는데, 원효대사의 다리라고 하는 출렁다리 <원효교>를 건너 둘레길을 갈려고 했으나 날씨가 덥고 오어지의 저수량(貯水量)이 적어서 걸을 맛이 나지 않아 발길을 돌려 되돌아 왔다.
오어사 유물전시관의 고려동종
오어사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원효대사의 삿갓
오어사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고서
오어사 앞 오어지에 설치된 출렁다리인 원효교
회원들이 원효교를 건너고있다
우리나라의 특별한 땅 끝 장기 반도를 찾았다. 해마다 1월1일이면 여기서 해맞이를 하는 곳이다. 일명 이곳을 해맞이 공원이라고 한다. 이곳이 장기곶(長鬐串)이다. 반도지형의 뽀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말단부분을 곶(串) 또는 갑(岬)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케이프(cape)라고 하는데, 미국의 폴로리다 반도에 자리한 로켓 발사기지인 '케이프 케네디(cape kennedy, 지금은 cape canaveral)'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미곶(虎尾串)이 특히 두드러진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는 한반도를 저주(咀呪)하기 위하여 토끼 형태로 보고 <토끼꼬리>라 불러, 한반도를 발전 할 수 없는 나약한 기상으로 여겼으나, 여기에 반하여 우리 민족은 한반도를 대륙을 향하여 포효(咆哮)하는 호랑이 형세(形勢)로 보면서 토끼 꼬리가 호랑이 꼬리(虎尾)로 바뀌어 대한민국이 대륙을 향해 발전하기 위해서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용감한 기상을 상징하는 호랑이꼬리 이다. 곳이 바로 호미곶(虎尾串)이다.
호미곶 앞 바다에 설치된 <상생의 손>
호미곶에서 기념 촬영
호미곶 앞 잘 만들어진 해파랑길 산책로
간조기의 호미곶 앞바다
호미곶 끝에서 바다 쪽으로 설치한 데크로드를 따라 들어가서 호미곶을 기점으로 한반도의 정기를 아시아 대륙 북쪽으로 힘껏 밀어본다. 우리나라가 영원무궁 발전이 있으라고......
등대(燈臺)의 역사가 한곳에 있는 국립등대박물관(The National Lighthouse Museum)은 등대관 (燈臺館), 해양관(海洋館), 야외전시장(野外展示場), 테마공원(Theme公園), 체험관(體驗館)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등대관에는 정보검색과 다양한 영상을 통하여 미리 살펴 볼 수 있는 <정보검색 코너>, 세계와 우리나라 항로표지(航路標識) 역사를 살펴 볼수 있는 <항로표지역사관>, 빛을 이용한 광파(光波)표지와 소리를 이용한 음파(音波)표지, 그리고 전파를 이용한 전파(電波)표지, 장비등 다양한 유물을 살펴 볼 수 있는 항로표지 유물관(遺物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유물이 전시된 등대원 생활관, 등대사(燈臺史)와 관련된 등대사료관(燈臺史料館)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곳의 등대
조사등
발전기
전기혼 나팔 등대원이 광원을 조절하고 있다
해양관에는 국내외 해양 개척과 선박의 발달사, 해운 항만, 해양 개발과 조사, 해양 발전등 해양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야외전시장은 바다에 떠있는 등부표(燈浮標)와 부표(浮漂), 공기사이렌, 로란(LORAN : 'LOng RAnge Navigation')-C 송신안테나, 태양광발전장치 등 해양교통안전을 책임지는 각종 유물들이 실물 전시되어 있다.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등부표(빨간색칠 된것)
테마공원에는 바다와 어우러지는 소나무 숲 곳곳에 설치된 전국의 아름다운 등대 모형과 함께 거닐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체험관에는 등대와 항로l표지를 흥미롭게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체험할 수 있는 아날로그(analogue)와 디지털(digital) 방식의 체험 공간이 있다. 또한 이곳에는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를 하여 해양문화와 체험기회와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국립등대 박물관의 상징물인 <호미곶 등대>는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浦項市 南區 虎尾串面.) 호미곶길 99에 위치하고 있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 등대는 대한 제국 융희 원년(1907)에 일본선박이 대보리 앞바다의 암초(暗礁)에 부딪혀 침몰한 계기로 이 등대가 세워 졌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을 맡아 1908년 12월에 준공되었다. 높이 26.4m의 팔각형으로 서구식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이 건물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이다.
호미곶 등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의 일부인 <하선대(下仙臺) 둘레길>은 한반도 동단(東端)의 아름다운 해안절벽(海岸絶壁)을 따라 기암절벽과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힐링로드(Healing road)이다. 하선대의 이름은 선녀(仙女)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다간 곳이라는 데,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선바우>, <힌디기>를 비롯하여 여왕의 왕관을 닮은 <여왕바위>, <계곡바위>, <킹콩바위>, <배바위>, 등 각종 사물을 닮은 바위들이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으며 해안 단애(海岸 斷崖)는 지층형성과정이 잘 드러나 있어 아이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선대 둘레길은 절벽과 파도로 인해 접근이 불가했던 동해면 입암리 선바우에서 마산리 까지 700m 구간이 개통되어 있다. 해질녘 기암 절벽사이로 넘어가는 석양은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고 하는 데, 오늘은 체험을 못 해서 아쉬움을 안고 돌아간다.
해안선을 따라 바다위에 설치된 하선대 데크로드 1
해안선을 따라 바다위에 설치된 하선대 데크로드 2
데크로드와 코끼리(킹콩) 바위
해안선을 따라 바다위에 설치된 하선대 데크로드 3
왕관바위
계곡바위
삼형제 바위
남근바위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가 서려있는 테마파크를 찾았다. 이곳은 아직도 공사가 진행중 이어서 정식으로 돌아볼 수가 없었다.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것을 소개하면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연오랑이 바다에 가서 해조를 채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있어 연오랑을 태우고 일본으로 갔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이는 예사 사람이 아니라고” 라고 하며 왕으로 삼았다.
미완성인 연오랑과 세오녀 테마관
연오랑과 세오녀 테마공원 조감도
세오녀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기고 가서 찾다가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또한 그 바위에 오르니, 바위가 또 전과 같이 싣고 갔다. 그 나라 사람이 놀라고 의아하게 여겨서 왕에게 바치자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귀비(貴妃)로 삼았다.
이 때 신라에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있었는데, 이제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와 같은 괴변이 있게 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에게 돌아오기를 청하니, 연오랑이 말하기를, "내가 이 나라에 도착하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인데, 지금 어찌 돌아가겠는가? 그러나 짐의 비가 짜놓은 가는 비단이 있으니, 이로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다"라며 그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와서 아뢰고 그 말에 따라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예전처럼 되었다. 그 비단을 어고(御庫)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았고, 그 창고의 이름을 귀비고(貴妃庫 )라고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지낸 곳의 이름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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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해설과 함께 한번 더 눈이 즐거웠습니다.
Abnormal님의 "포항 관광 後記"를 통해,궁금증을 풀어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고생이 너무 많으십니다...!!!
그 나들이에 참가했을때 보다 후기를 대한즉 김기현의 취재노력에 새삼 고마움 느끼네! 에브노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