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향 시집 『수직의 힘』(창연출판사, 2020. 12. 29)
■ 표4
정이향의 시는 단단하고 깔끔하다. 그의 이번 두 번째 시집에는 그 전반에 꽃의 이미지가 편만해 있다. 시인에게 있어 눈으로 보이는 꽃은 곧 마음으로 품고 있는 꽃의 의미를 대행한다. 시인은 때로 화려하고 때로 후박한 꽃의 이미지로 세상사를 바라본다. 그런가 하면 어느 결에 자신의 삶에 밀착해 있는 일상의 여러 모습을 조화롭게 그린다.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온갖 희로애락을 묘사하는가 하면, 병상의 아픔에 잠겨있는 이들과 그 생의 무게를 가늠한다. 이윽고 향리 고성의 공간 환경과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이르면, 우리는 문득 그의 시와 친숙해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시집을 만난 기쁨이 여기에 있다. - 김종회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교수)
■ 차례
1부
바람꽃
아버지의 주름 속에 고인 웃음
돋보기안경
숨바꼭질
칸나꽃의 당당함
스마트 폰
상족암에서
고성 남산에는
서비스의 덫
진북면 정현리 291번지
아들과 엄마 사이
배둔 장터
명예퇴직
남편의 길
헌혈
또다시, 접시꽃
부당처우
오각형의 모양들
건재상에서
아로니아
2부
수직의 힘
문화동 연애다리
목욕탕에서 1
목욕탕에서 2
목욕탕에서 3
하루의 끝
복숭아
하필이면
사춘기와 갱년기
오늘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도서관에서
고성 철둑에는
8월 그날
국수 한 그릇
융프라우
신발
친구
새로운 기계는 무서운 개처럼 보인다
매미소리
3부
배웅
거미가 된 어머니
수선집에서
수술방 앞에서
병상일기 2
병상일기 3
신축건물 공사 중
남자의 등
납작한 폐지
우연히 나타난 바퀴벌레
소가야 고분에서
당신의 현재 속도는
콜리의 비애
신용카드
문밖의 아이
흔적
마지막 일기
호박
건너가다
4부
쉬옹성에서
부고장
시인의 조건
빨간 울음
네일아트
박노정 선생님
출근길에서
해롱이
공구상에서
활자 놀이
부치지 못하는 편지
보랏빛 가지
계란 프라이
복지매장
눈물 한쪽
광명역에서
우리집 성모
부엉이 웃음
공구상에서 2
해설 / 늙어가는 일상에 대응하는 존재의 활시위-김경복(문학평론가,경남대교수)
시인의 말
■ 시집 속의 시 한 편
오늘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발목을 부러뜨리고 손목을 부러뜨리고 모가지를 부러뜨리는 일
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아픈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슬픔과 기쁨이
한 통로를 지나가는 것을
말라버린 장미 잎을 펴다가 부러뜨리면서 마음 아파하는 일
압화를 만들기 위해 꽃봉오리를 꺾어서 책 속에 가두는 일이다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어제 일들을 지우고 새로운 날들로
우리를 묶는 일이지
그 세월 속에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는 세상 안에서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발목에 힘을 주며
손아귀에 주먹을 쥐는 일로
익숙한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부러뜨린 손과 발목,
모가지를 다시 부여잡고
밤마다 다른 하루가 문밖에서 기다리며
달력 한 장 넘길 수 있는,
또 다른
한 달을 꿈꾸는 것이다
- 「오늘 하루를 건너가는 것은」 전문
■ 시인의 말
사람들은 마음속에 많은 꽃을 키우고 산다
해를 머금은 울긋불긋한 꽃들부터 잎 넓은 꽃,
시들지 않고 하루 종일 웃는 꽃...
나의 마음속 꽃들은 어떤 모습일까?
욕심 탓인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는 내 것들을 살포시 정원이란 책 속에 심어 본다
내보내는 아쉬움을 알면서도 다듬어서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다
어느 누구의 가슴속을 비집고 들어갈지 모르지만 내 시들이 이 세상에 흩어져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훗날 그들이 튼실하게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종종 안부를 물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통해 방생한다
정이향
■ 정이향
마산 출생. 2009년《시에》 등단. 시집 『좌회전화살표』, 『수직의 힘』.
첫댓글 정이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수직의 힘』 출간을 축하합니다. 아름다운 시편 더욱 활짝 꽃 피우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