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남원읍 신흥리 1773번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위인선현유적(생가)
김창호(1890∼1967년) 지사는 광산김씨 김병원(金秉遠)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3년간 마을의 한문서당에서 수학한 후 농사를 지으면서 민족종교인 보천교를 믿으며 일제의 침탈과 외세의 간섭에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었는데 마침 1936년 5월 인근 마을인 토산리의 김창규의 권유로 무극대도교를 믿게 되었다.
김창호 지사는 무극대도교에 입교하여 도사(道師)의 칭호를 받고 그의 3녀 김문규를 무극대도교의 선녀(仙女)로 보냈으며, 그는 강승하 도주의 가르침에 따라 1936년 9월경 표선면 세화리 현시화에게, 동월경 현시화의 집에서 표선면 세화리 김귀현에게, 12월 23일 동홍리에서 현시화에게, 1937년 1월 중순 현시화의 집에서 김귀현에게, 7월 26일 용담리 고경욱에게, 11월 3일 가시리 오국희에 대하여 무극대도교의 교의를 설명하면서 오는 경진년(1940) 경진월(5월) 경진일 경진시에 제주도 남방 자하도(紫霞島)에서 정도령 진인(鄭道令眞人)이 나타나서 부하 군졸 1천수백명을 인솔한 홍선(紅船)에 홍기(紅旗)를 단 태을선(太乙船)을 타고 중문면 대포리에 상륙하여 도주 강승하와 협의한 후 충청남도 계룡산에 가서 조선을 독립시키고 천자(天子)로 등극하여 세계를 72개 국으로 나누어 전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그 때 가서는 각국의 왕은 물론 일본의 소화천황도 1940년에 폐제(廢帝)되어 일개 왕후(王侯)로서 정천자 밑에 조공할 것이고 무극대도교는 국교가 되어 그 교도는 성의에 따라 성인반열(聖人班列)에 올라 후천(後天)5만년의 영락(榮樂)을 입어 천성당(天聖堂), 만성당(萬聖堂), 영당(靈堂)에 봉사(奉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신도들과 각종 제사를 지낼 때에 1936년 12월 4일 교래리 조린납 지경에서 특별기원제, 12월 22일 강위경 집에서 동지제, 1937년 4월 2일 상례리 고무생 집에서 도주계통승계기념제, 5월 1일 한라산 정상 부근 왕장석ᄆᆞ르에서 산왕제(山王祭), 7월 30일 동광리 양기현 집에서 강증산사망기념제에서 심고문(心告文)을 구송(口誦)하면서 정도령 천자가 출현하여 조선 독립 및 세계 통일을 이룰 것을 기원하였다.
1940년 12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6월형을 선고받아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무극대도교 사건 판결문 참조) 김창호 지사는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였다.
생가 터에는 현재 집이 없고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작성 202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