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주스님 일일 법문

- 11월 16일 -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할 일.” [오늘의 명상] [증도가證道歌] 45-46. [입심산주란약(入深山住蘭若) - 깊은 산에 들어가 난과 같이 살아가니 잠음유수장송하(岑崟幽邃長松下) - 높은 산 그윽하여 낙락장송 아래로다. 우유정좌야승가(優遊靜坐野僧家) - 한가히 노닐며 절 집에 고요히 앉았으니 격적안거실소쇄(闃寂安居實蕭灑) - 고요한 안거가 참으로 맑고 깨끗하구나.] [강의] 오늘은 두 구절의 뜻이 연결되어 있어서 같이 새긴다. 세속의 모든 욕망과 분별, 집착과 명리(名利)를 모두 여의고, 번뇌와 망상(妄想)으로 뭉쳐진 세상의 삶과는 무관하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여여(如如)함의 참 맛을 즐기고 살아가는 모습이 마냥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하게 욕망과 분별심(分別心)을 쉽게 여의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누차 설명했듯이 세상에는 공짜란 없는 법이니, 욕망에 따른 세속적인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갖은 행복을 모두 버리고 입산(入山) 출가(出嫁)를 결심하기란 참으로 엄청난 힘과 내공(內攻)이 아니고는 절대 이룰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깊은 산이란 바로 수미산(須彌山)을 일컫는다. 수미산은 그간 설명했다시피 속세(俗世)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데, 일단 수미산의 일주문(一柱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입산(入山)이라 하고, 적어도 분별(分別)이라는 것을 알고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입산(入山)할 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산(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난(蘭)과 같이 산다는 의미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그윽한 향기를 은은히 뿜어낸다는 의미다. 소위 깨달음의 경계를 넘어서면 법향(法香)이라는 향기를 뿜어내어 법을 보호하는 오방(五方)내외(內外) 신장(神將)과 아라한(阿羅漢)이 함께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낙락장송(落落長松)이란 견성(見性)의 자리를 상징하는데, 본래의 마음자리인 분별심을 여읜 중도(中道)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수미산(須彌山)의 입산(入山)과 난향(蘭香) 법향(法香), 등은 모두 본래의 부처자리인 낙락장송아래 펼쳐진다는 뜻이다. 절 집에 한가히 노닌다는 의미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써, 염불을 하거나 공양을 하거나, 생활에 필요한 일상의 일까지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욕심이 앞선 생각이나, 고락(苦樂)의 분별심(分別心)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걱정 근심은 커녕 일체의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있으니, 마음은 항상 맑고 깨끗하여 티끌 하나 없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가 지속된다는 말이다. 이런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진리의 삶이라 할 것인 데, 모든 중생이 가야할 길이라 하겠다. 이 부분에 대해 아직도 이해가 부족한 분들은 가끔 화를 내기도 하고 성토하기도 한다. 세상의 불의(不義)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고통받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 혼자서 산에 틀어박혀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사는 것이 진정 옳은 삶의 태도인가에 대한 원성이 많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백유경에 독화살의 비유와 같이 자칫하면 현실을 부정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분별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니, 세속의 삶이란 분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좋을수록 나쁜 것이 나타나고, 얻을수록 잃게 되는 악순환(惡循環)의 세계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이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각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가 없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니 말이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하고, 그러므로 각자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분별심을 갖는 이는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정치를 잘해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한다 거나, 남을 위해 봉사한다 거나, 어려운 일을 해결한다 거나, 전쟁에서 이긴다 거나, 세계평화와 국가를 위한 일을 한다 거나, 보시를 많이 한다 거나, 등등의 소위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하나,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 또한 고락(苦樂) 인과(因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생각하건 그것은 바로 분별(分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별은 고락(苦樂)의 기분이라고 했다. 고락은 인과(因果)이기 때문에 똑 같은 질량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다만, 나타나는 시간이 다를 뿐이라 했다. 올라가는 시간과 내려오는 시간이 다르듯이, 태어나는 때와 죽을 때가 다르듯이, 해 뜨는 시간과 해 지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이렇듯 즐거움의 인과(因果)로 인해 괴로움이 나타나는 시간이 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에 복(福), 덕(德), 부자, 명예, 정의, 민주, 평화, 행복, 봉사, 보시, 건강, 장수, 승리, 성공, 합격, 승진, 약속, 우정, 애정, 자비, 등등의 소위 좋은 것이 물론 좋은 것이나, 이 또한 무주상(無住相)과 무심한 상태가 아닌 의도적인 행위라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가 따라붙기 때문에 진정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생일대(一生一代) 가장 중요한 일은, 나 자신 고락(苦樂)의 분별(分別) 업(業)을 멸(滅)하는 일이다. 이것 밖에는 사실 하나도 중요한 것은 없다. 만약 고락(苦樂)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를 각오한다면, 나머지 일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 그 어떤 사변(思辨)으로 합리화시키더라도 끝에는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으로 갈무리할 수밖에 없다. - 진우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