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공산으로 떠난 가을 소풍
2019년 11월 5일, 신통일 한국 가정연합 원로목회자 제 3지구(회장:김 도수)에서는, 대구 팔공산과 인근의 관광명소를 돌아보기 위해
가을 소풍 나들이에 나섰다.
원로목회자회 제 3지구에서는, 그동안 매주 화요일 충남교구본부에 모여 훈독회를 실시해 오는 한편,매월 한 차례씩 지방교회를 순회하며 노방전도 및 선진지 견학의 기회를 갖기도 해왔고,평화대사 및 지역사회 유지들을 초쳥하여 천정궁 방문과 세미나를 실시하여 나왔으며,그동안 인연된 인사들을 초대하여 포럼형식의 특별 세미나를 실시하기도 하는등 다양한 활동들을 해나왔다.
금번 가을 소픙은 제 3지구(충남,충북,대전,세종시) 전체가 함께 동참하여 떠나게 되었는데,본래 예정은 46명이 가겠다고 신청되었지만,갑작스런 사정들로 인하여 9명이나 불참되어 아쉽게도 37명의 회원이 자리를 함께 하였고....
이날 여행코스는 대구 팔공산에 있는 동화사를 갔다가, 칠곡 가산 산성을 돌아볼 예정이었지만, 중간에 갑자기 케이블카를 타보자고 예정에 없던 제안이 나와,정작 가보고자 했던 가산 산성은 가보지 못하고, 한티순교성지 고갯길 드라이브로 대신하게 되었다.
대구 팔공산은 대구 광역시의 중심에서 북동 방향으로 약 20Km지점,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에 병풍처럼 웅장하게 솟아있는 산으로써,그 주봉인 비로봉은 해발 1192,8m에 달한다.
반면 팔공산은.칠곡군과 군위,영천,경산등 경북지역의 여러 시군이 에워싸고 있는 산으로써,신라시대에는 부악,중악,공산이라 불리기도 하였고,고려시대에는 공산으로 불려오다가 조선시대에 팔공산이란 이름으로 정착되었단다.
팔공산은 예로부터 영험한 산으로 많은 시인과 묵객,수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고,동화사,파계사,부인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찰들이 산재되어 있는가 하면,기암괴석과 아름다운 계곡,울창한 숲등은 팔공산의 볼거리며 자랑이기도 하다.
팔공산을 찾았던 이날은 때마침 무르익은 단풍이 한창 시즌이라서,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수가 있어 좋았고,맛있는 오리고기 보쌈도 일품이었으려니와, 오가는 차중에서 문 상희교수의 특강을 듣는 시간도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으로 이어졌다.
이날 행사를 위해서 특별히 김 도수회장께서는 관광버스를 대절해 주셨는가 하면,송 인영 지구장께서는 인사차 나오시어 금일봉을 전달해 주시기도 하여 무척 고마운 일이기도 하였다.
팔공산 동화사 입구에 도착하여
특이하게도 터널을 지나서 동화사로 들어 가도록 되어있었고.....
10년전쯤 이곳에 왔을땐 이런 터널이 없었는데 새로 조성된듯 싶다.
팔공산 경치가 바라보였고....
팔공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인 미타봉과 서봉인 삼성봉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국화꽃이 가득하였고...
대웅전의 삼존불상
영산정
통일약사여래대불상....이곳의 기원은 영험하다 하여 발길이 끝없이 이어 진단다
왠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가..??
케이블카를 타러 오르는 길
팔공산 예찬비
팔공산 자연공원 관리사무소
오우가 노래비
오찬회를 가졌던 오찬장/오리 궁뎅이
오궁은 오리궁뎅이 준말로, 오궁과 오리궁뎅이는 같은 한집이었다
메뉴는 오리 보쌈으로....
음식 맛도 맛이려니와,식사 시간이 오후 2시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맛없다 할수 있으리오.
한티 순교성지 기념비
아랫길로 내려가면 칠곡으로 향한다고.....
가산성은 이곳에서 좀더 가면 되는가 본데,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칠곡 다부동 전투의 현장
다부동 전투는 6.25 당시 아군과 적군이 밤낮으로 바뀌었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란다.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써, 다부동을 중심으로 북서쪽에는 유학산이 북쪽에는 횡격실(橫隔室)을 이루고 있고, 동쪽에는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가산(架山)[902m]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였다.
반면 6·25전쟁 중 다부동 방어선이 돌파되면 10㎞ 남쪽의 도덕산(道德山)[660m] 일대까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대구가 적 포병 사격의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국군 제1사단은 대구를 공략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이곳 다부동에서 낙동강 방어 작전 중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다부동 일원에서는 대구를 놓고 피아(彼我) 간에 유학산 전투, 328고지 전투, 837고지전투, 674고지 전투, 볼링장 전투, 가산산성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 상 뿐 아니라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 가운데서 837고지는 대구 사수의 최고 요충지였고, 유학산은 아홉 번, 328고지는 무려 열다섯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피아간에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국군 제1사단은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미 8군 사령부에 병력 증원을 요청하였고, 미 8군 사령부에서는 미 제27연대[마이켈리스 연대]를 신속히 지원하고, 이어서 미 제23연대를 추가 배치했으며, 육군본부도 1개 연대를 추가 배속시켰다.
이렇게 병력 증강을 지원받은 국군 제1사단은, 낙동강 방어선 구축 이래 북한군의 ‘8월공세’와 ‘9월공세’를 방어하고, 나아가 이를 격파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전황을 타개하였다.
이후 국군 제1사단은 신녕(新寧) 서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팔공산-가산 전투를 수행한 후,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에 가담하였다.
특히 다부동 전투는 55일간이나 계속되었으며, 북한군 2만 4천여 명과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명 피해를 냈다.
그 결과 당시 투입된 북한군 3개 사단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 주어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6·25 전쟁사에서 다부동 일원에서 벌어진 전투는 국군의 위대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낙동강변의 모습
천안에 도착하여 저녁식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