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21]<전성시대-성전회>를 위하여!
10년여만에 강남역 근처 모임약속을 가려고 조금 걸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오후 6시 반, 퇴근시간과 겹쳐 더 그랬겠지만, 그야말로 인간들로 복작복작하더이다. 4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져 있고, 제법 넓은 人道인데도 오고가는 人波들로 교통체증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귀향 6년차, 수 년만에 보는 이색 풍경에 진짜로 ‘촌놈’이 됐습니다. 40년을 넘게 산 대도시인데도 너무 낯설었습니다. 善男善女, 모두 다 젊어서인지 예쁘기까지 했습니다. 역시 淸春은 언제나 빛이 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希望이지요. 인구소멸 위기에 봉착한 농촌은 늘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하루종일 몇 명 마주치지 못하는 ‘구석기 시대’같은 고향이 그래도 나는 좋습니다. 눈만 뜨면 산이 바로 눈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command a fine view. 서울만 滿員입니다. 역시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낸다는 속언은 맞는 듯합니다. 가끔은 상경하여 '사람 구경'도 할만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어제밤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교를 나온 선후배들의 모임, 이른바 <전성시대-성전회> 신년 인사회. 제법 신박한 모임 명칭은, 전라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學緣으로 이뤄진 까닭입니다. 2층 <참치공방> 작은 방에 모인 동문 11명. 55명이 단톡방에 등재돼 있으니 5분의 1이 모인 셈이지요. 머릿수야 어쨌든, 서로 반가움에 악수와 덕담을 나눕니다. 그날의 막내기수는 24회(50세), 제법 고참기수인 6회와 18년 차이이나, 따지고 보면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이 아닐는지요? 분기별로 또는 1년에 두 번쯤 이런 학연모임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리필 참치(TUNA)에 술잔과 음료를 주고받으며, 한 명 한 명, 자신의 근황과 새해 계획도 밝히며 우의(友誼)를 돈독히 하는 즐거운 시간. 현재의 송천동 校舍가 2027년 에코시티로 이전하여 男女共學이 된다는 최신 소식도 듣습니다. 몇 년만 있으면 예쁜 손자뻘 여학생이 ‘선배’라며 따를 날도 있겠지요. 특별히 나쁠 게 없는 것은, 時流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교육환경 때문입니다.
한 친구(10회)는 ‘비타민C 메가도스’에 대해 이왕재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건강을 강조하는 열변을 토합니다. 매일 아침 건강하고 산뜻하게 출발하는 것은 큰 복일 것입니다. 한 친구(11회)는 차녀의 결혼을 알리기도 하고(중학교 후배임을 처음 알았으니 ‘10년 지기’입니다), 또한 친구(11회)는 평소 건강을 자신했는데 지난 연말 졸지에 혈액순환이 잘 안돼 스탠스를 삽입했다고 합니다. 술(알코올 중독?)로 직장을 잘린 뻔하다 겨우 정년퇴직을 했다는 한 친구(8회)는 최근 몇 년 동안 알코올을 비상으로 치부하며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전국 유람에 나서 좋은 사진들을 단톡방에 올립니다. <상춘곡>과 <장진주사>를 古語로 즉석에서 읊어대는데, 총기가 대단합니다. 지난해 회장을 순리대로 물려준, 을사년인 올해 환갑 후배(14회)는 1월 한 달 꼬박 아내와 제주도 올레길(437km)을 완주했다는군요. 내년 800km 산티아고 순례의 전초전을 뛰고 온 친구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또 목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는 친구(10회)는 언제나 선비처럼 의젓합니다.
그날 졸지에 최고참이 된 한 친구(6회)는 ‘선배님’ 호칭을 사양한다며 제발 ‘님’자를 빼라고 야단까지 치더니, 광주에서 나오는 월간잡지 <전라도닷컴> 정기구독을 강권하기까지 합니다. 진정성이 보였던지 집주소를 불러주는 후배들이 예뻤더군요. 역시 50대가 움직여야 뭔가 일이 이뤄지나 봅니다. 전년 회장과 신임 회장이 모임의 활성화를 위하여 자못 열정을 보며, 송년모임엔 20여명이 모이기도 했지요. 인왕산 북악산 등산과 고궁 순례 등 행사는 마음 맞은 동문끼리 잦으면 잦을수록 좋은 일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血緣도 있고 地緣과 軍隊緣도 있지만, 가장 이무럽고 좋은 것은 언제나 學緣일 것입니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대대로 내려오는 ‘진리’가 실감나는 게 우리 사회입니다. 같은 校門을 世代를 가르며 다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애착이 가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요? 母校의 캐치프레이즈는 “조국을 품고 세계를 보라”입니다. 자랑 하나 한다면 선후배들의 ‘의리義理’만큼은 他校의 追從을 不許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현재도 맹활약하고 있는 전 국회의원 동문(16회)은 틈만 나면 방송에서도 모교 자랑에 바쁩니다. 게다가 현역 국회의원 3명을 배출한 고교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전주고를 제외하고, 전북의 여타 학교와 비교해봐도 금방 알 수 있지 않나요? 여담이지만, 12월 4일, 그러니까 내란 다음날 밤, 의원후배 덕분에 국회에 잠입(?)하여 로텐더홀과 의원회관 참관을 하다 주블리 김병주 의원과 악수를 하며 특전사 사령관의 입을 열게 한 것에 대해 치하하기도 했답니다.
아무튼, 전라고 축구FC의 중추인 회장(17회)와 총무(20회) 재무(21회)를 맡은 후배친구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최근 대한민국 '大學의 地圖'를 크게 바꾸고 있는 모교의 발전도 함께 빌어보는 유의미한 저녁이었답니다. 모임의 명칭처럼 전라고-성대의 '성전회' 모임이 오래도록 전성기(全盛期)를 구가(歐歌)했으면 좋겠습니다. Cheer up! See you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