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조정래씨가 쓴 소설이 아니라, 386들이 고등학교 때 가장 먼저 읽어야 했던 필독 입문서였다. 일제 시절, ‘김산’이라는 청년이 국제공산주의에 물들어 중국으로 건너가 공산주의 골목 운동을 했던 일대기이다. 조선의 한 청년이 별로 배운 것 없는 상태에서 국제공산주의가 성공하면 일본은 저절로 물리칠 수 있다는 비현실적 신념을 가지고, 중국에 가서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다. 직업 혁명가의 일생인 것이다. 직업 혁명가에겐 일정한 직업이 없다. 레닌, 스탈린 처럼 선동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악성 혁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혁명을 하려면 가족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김산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386운동권들이 대거 가정을 버리고 집에서 뛰쳐나왔다. 자기로 인해 아버지의 직위와 직장이 달아났고, 이웃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래도 이는 영광스러운 김산의 후예라는 자긍심으로 미화됐다. 김산이라는 청년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음침-음산함, 어두운 곳에 서식하는 바퀴벌레 분위기다. 내가 보면 바퀴벌레인데 386들의 눈에는 어째서 김산이 영웅이었을까? 386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바이블로 삼았다. 김산을 모르면 축에도 끼지 못했다.
내가 개미처럼 일했을 나이에 저들은 바퀴벌레가 되어 음습한 곳에 서식했고, 내가 산새가 되어 이산 저산 날아다닐 때 저들은 데미앙의 후예가 됐다.
1980년대는 내 나이 40대와 일치했다. Good Old days! 그 시절이 내게는 인생 황금기였다. 국방개혁을 위해 수많은 연구논문을 냈고, 발표와 강연으로 전국을 누볏고, 군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수구세력과 싸움도 많이 했다. 미국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골프도 쳤고, 춤도 추러 다녔고, 군복을 훌훌 벗어던지고 무작정 맨손으로 미국에 건너가 제2의 인생을 개척했다. 그게 나의 40대였다.
비유하자면 이산 저산 마음껏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산새와 같았다. 그 산새가 되기 위해 나는 청년시절을 누에처럼, 개미처럼 일했다. 파괴가 아니라 걸설이었고, 둘러 엎는 것이 아니라 개선과 개혁이었다. 나는 저들이 말하는 기득권이 아니라 저들로서는 죽었다 깨도 할 수 없는 일, 개혁을 위한 과학적 대안을 내놓고, 그걸 관철하기 위해 투쟁했다, 제도권 내에서!
내가 산새처럼 날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친일파였기 때문도 아니고, 기득권이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내 손으로 가시밭을 일구고 개미처럼 일해서 새가 되었다. 예편할 때까지 나는 정부가 지어준 관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저축보다는 여행을 즐겼다. 그 때에 나는 집시 같은 인생을 살고 싶었다. 집시에게 무슨 재산이 필요했겠는가?
1980년대를 살았던 어른들! 그들이 40대 50대에 자연과 인생을 구가하며 이산 저산 날아다니는 산새의 인생을 살았다면, 주사파에 빠진 일부 20대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음습한 곳에서 섭생했다. 오기와 증오를 먹고사는 바퀴벌레의 인생이었다. 가진자를 무조건 증오하고, 대한민국을 파괴하기 위한 훈련을 쌓으면서, 40에 이르고 보니 괴물보다 더 무서운 데미안이 되었다. 도시선교, 위장취업, 불화살, 분신자살, 혁명, 계급투쟁, 반미투쟁, 기업파괴, 꽹과리, 붉은 띠 . . .
우리 시절의 사람들은 밤을 새워 독서하고, 미지에 대한 한없는 선망으로 꿈을 키우고, 꽃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정서를 풍부하게 가꾸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 인간 바퀴벌레들은 경찰에 쫒기면서 피해의식을 기르고,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길렀다.
“기득권 세력들 다 죽여야 해”,
“군발이들 싹 쓸어버려야 해”,
“미국 놈들은 철천지원수다”,
“친일파들은 모두 모가지 잘라야 해”,
“위대한 민족끼리 뭉쳐야 해”
"우익 새끼들 다 쓸어버려야 한당께". . .
오직 “위수김동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경배한다는 뜻이다.
인정도 없고, 사랑도 없고,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도 없고, 낭만도 없고, 오직 칼과 창이 인생의 전부인 원시인들, 깡마른 언어를 분출하면서 밀림의 살쾡이처럼 카랑 카랑 짖어 대는 사육된 듯한 인간들!
이념으로 사육된 주사파 세력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과 결혼하면?
사는 멋도 재미도 없고, 공포스럽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저들을 묘사한 책들을 보면 저들은 자기들끼리 가정을 꾸몄다.
똑같은 한 시대에!
경제적으로 가장 부흥돼 있을 풍요한 계절에!
그리고 좁은 한국 땅에서!
어째서 밝은 인생과 어두운 인생들이 각기 평행선을 달리는 색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사상!
이 '사상' 하나로 인해, 한 인생은 아름다움을 구가했고, 또 다른 인생은 바퀴벌레 같이 음습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미국 놈들은 악독한 놈들”?
미국 놈과 386주사파, 누가 악독한가?
한 가지만 말해보자. 한국의 수많은 미혼모들이 내다 버린 아이들, 누가 갖다 길렀는가? 한국사회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장애인들 누가 집에다 데려가 밥을 먹이고, 목욕시켜주고, 의사에게 데려가고, 볼에 키스를 해주었는가?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장애인 보호사업, 누가 가장 감동적으로 진행해 왔는가?
바퀴벌레들은 이러한 미국인들을 악독한 동물이며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놈들이라고 증오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 반대인데도!
저들은 또 맥아더를 가장 증오한다. 이어서 박정희 이승만을 증오한다. 그들만 없었다면 지금 김정일 치하에서 민족끼리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미친 것들!
'민족'은 동물 개념, 진작 버렸어야 할 쓰레기 개념
민족? 인간에겐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정신적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적 세계다. 전자는 품위의 고상함을 추구하는 자아실현이고, 후자는 끼리끼리 떼를 짓는 동물적 혈연이다. 인간에게 정신세계가 없다면 사람은 꼬리 없는 짐승에 불과하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정신세계에 속하는가 아니면 동물세계에 속하는가? 민족은 동물적 개념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이상하고 시대착오적인 말을 한국 사람들은 여과 없이 신봉한다. 바로 이 분석력 없는 습관에 레닌식 선동이 파고드는 것이다. 민족보다 더 진한 건 씨족이고, 씨족보다 더 진한 건 가족이다.
가족!
기족은 민족이라는 거대한 집을 구성하는 벽돌이다. 그런데! 지금 호주제 폐지를 통해 가족을 파괴하는 세력이 누구인가? 바로 민족을 외치는 바퀴벌레들이다. 민족을 구성하는 벽돌인 가족을 파괴하면 민족도 파괴된다. 벽돌은 파괴하면서 거대한 민족의 집을 짓자는 이런 엉터리들이 자가당착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머리 없는 바퀴벌레들이다.
민족이 그렇게 좋으면 어째서 한국사회는 한국의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냈으며, 민족이 그렇게 좋으면 왜 수많은 한국인들은 장애인들을 앵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왜 자기 인생을 버리면서까지 한국인들이 내다버린 한국 장애인들을 감동적으로 보살펴 주는가? 민족이 그토록 중요하면 테레사 수녀님은 왜 인도에 갔고, 슈바이처는 왜 아프리카에 갔으며, 김수현은 왜 일본인을 살리면서 자신은 죽었는가?
온갖 잡탕 민족이 몰려든 미국! 미국은 인종백화점이다. 민족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면 인종백화점인 미국은 어째서 세계 1등국이 되었으며, 단일민족인 우리는 왜 두 나라로 갈라지고, 남한 내에서도 죽이자 살리자 막말하고 흉하게 악을 쓰며 싸우는가? 민족이 중요하면 김정일은 어째서 오늘도 민족을 학살하는가?
이웃들이 있다. 어려울 때, 외로울 때 가장 손쉽게 나타나 도와주는 사람들은 멀리 사는 형님도 아니고, 늙어서 능력이 상실된 아버지도 아니다. 자식들이 아버지 유산이 탐이 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아버지 유산을 가져갈 새 어머니를 증오한다. 여기에서 민족과 친척이 왜 중요하단 말인가?
이웃 주부들이 모이면 시집 식구, 친정 식구들로부터 받는 고통들을 토로한다. 차라리 좋은 이웃이 더 좋다고 한다. 나쁜 친척이 남보다 못하듯이 북한은 지금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미국과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뿐인 민족, 무늬만 민족인 김정일 집단이 어째서 혈맹의 친구, 유익한 이웃인 미국을 버려야 할만큼 중요하단 말인가?
농촌에서 사람을 사서 일을 시키면 남에게는 일당을 주는데, 친척에게는 주지 않는다. 서운함이 쌓인다. 친척 간에는 돈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 혈연이라며 돈을 갚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사이가 원수로 변하고, 불량한 동생 하나 때문에 수많은 형제들이 패가망신 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 혈연관계에서 싹트는 한국병인 것이다. 속 썩이는 식구 하나로 온 식구가 불행한 삶을 산다. 그래도 혈연이 최고의 가치이므로 한 사람의 잘못에 연대책임을 지고 함께 연못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당신은 못난 혈연이 빚을 지고 허우적 거릴 때, 집을 필아서 같이 망하고, 노부모가 아플 때, 집을 팔아 정성껏 간호할 사람인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당신들은 '김산'을 영웅으로 생각하면서 가족을 버렸고, 당신으로 인해 온 식구가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게 했고, 높은 벼슬하던 아버지의 목을 떼어 놓았고, 기족제도를 파괴하자며 호적제도를 파기했고, 뿌리와 근거를 없애기 위해 본적과 학력란을 지워버린 냉혈 인간, 가족정신이 사라져 버린 징그럽게 한이 없는 바퀴벌레 인생들이다. 이렇듯 당신들은 아침인사에서부터 사랑한다는 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거짓말인 사람들이다. 기족정신도 버린 당신들이 어디에 민족정신이 있다고 그토록 허공에 대고 민족을 외쳐대는가? 백여우 처럼 누굴 꼬셔서 함정에 넣으려고!
북이 싫어서 탈출한 탈북자들을 이웃에 두고 사는 사람들! 민족이라면서 왜 그들을 울게 하는가? 미국사람들은 외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도와주고, 이웃이 나서서 도와준다. 쓰던 집기, 가구, 옷 들을 수집하여 이민해 온 사람들, 유학 온 사람들을 도와준다. 영어학교도 운영해 준다. 그런데 한국의 아파트에 마다 내다 버리는 새것에 진 배 없는 가구와 집기들, 쓰레기로 버리면서도 그걸 모아 탈북자들에 나누어 주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만 보아도 ‘민족’이라는 단어는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벌써 보내야 할 구시대적 개념”이다. 아니 박물관에 갈 자격도 없는 쓰레기 같은 개념이다.
세계무대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한국이라는 넓은 사회, 독서라는 무한대의 세계를 스스로 등지고 산 사람들, 스스로를 암흑의 방에 가두고 어머니도 때리고, 아버지도 때려 병원에 보낸 후, 아버지 재산을 빼앗고, 아버지를 길거리로 내모는 히키고모리(일본 소설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에 나온 자폐증 걸린 주인공)들, 바로 386 주사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금이냐 옥이냐 업어 키우고, 이들에게 풍부한 생활 바탕을 마련해준 지금의 60대 이상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이들에 의해 길거리로 쫓겨나 앉은 것이다 !! 펭귄 같은 자식들!!
내가 민족이라는 말을 싫어 하는 이유
“[민족]이라는 단어는 김정일이 남한의 순수한 국민들로 하여금 미국을 몰아내고 일본을 증오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위장용어]다.
민족주의자들을 좋게 보면 시대착오적이자, 쇼비니스트, 폐쇄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나쁘게 보면 좌익-친북 세력이다. 민족주의자들은 국경 없는 지구촌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들다. 사상과 사고방식, 지적 수준이 같으면 이민족간에도 사랑하고 결혼한다. 하지만 이것들이 다르면 형제지간, 부자지간에도 싸우고 죽인다. 같은 민족끼리 결혼했는데 어째서 이혼과 불륜이 많은가?
미국에 가면, 한국 교포들이 낯선 한국인을 가장 경계하고 피한다. 물론 모두는 아닐 것이다. 솔직히 나는 소시민으로 미국에 살면서 한국인들보다는 미국인이나 일본인들을 더 신뢰했고, 그들과의 친분이 더 많았다. 내가 사대주의자라고 하시는 분은 아마도 미국에 가서 살아보지 않았거나, 오도된 민족주의자들일 것이다. 이것이 국제화되지 못한 우리 민족의 슬픔이다. [민족]을 외칠줄만 알았지 국제사회에 내놓으면 감각조차 없어 미아가 되거나 추태를 부려 세계인들에게 혐오감을 줄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사랑은 상호존경에서 싹튼다. 상호존경은 의사소통 없이는 불가능하다. 같은 한국말을 사용하면서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혼을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해도 의사소통이 잘 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에 필요한 언어는 말이 아니라 영혼이다.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사랑이 없는 사람들끼리 한 공간에서 사는 것은 지옥이지만, 영혼이 일치하는 사람은 이민족이라도 사랑한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이미 더렵혀진 단어다. [민족]을 외치는 행위는 남한의 공산화를 돕는 행동이 돼 버렸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실 나는 [민족]이라는 글씨만 보아도 붉은 색이 연상되어 섬뜩함마저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