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훈 신부 브레넌, Robert John Brennan(1941~2026)
「빈민 곁을 지킨 푸른 눈의 성자…뉴질랜드 출신」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안광훈 신부(로베르토)는 11살 때, 어머니가 구독하던 골롬반회 잡지에서 자신의 이름 브레넌과 같은 골롬반선교회 사제가 한국전쟁 때 순교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 이야기에서 감화받은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골롬반회에 입회했다. 1966년 만 24살, 서품받은 1년 차의 젊은 선교 사제는 밤새 어머니가 떠 준 스웨터를 안고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어 수업을 마친 뒤 그는 이제 막 생겨난 원주교구를 첫 임지로 선택했다. 협동조합과 병원을 만들면서 10년간 사목한 뒤 안식년을 가졌고, 1981년 7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교구 목동 성당에서 새로운 사목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철거민이었다. 정부에 의해 철거민들이 ‘버려진’ 곳에서 이른바 ‘목동철거사건’을 겪으며 철거민들의 싸움에 함께했다.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철거민들을 이주시키며 철거민 이주 공동체를 만들었다.
“개발은 지역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가진 이들을 위한 재개발은 올바르지 않다”는 뜻과 철거 사태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갈등, 철거민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겪어 내며 그는 재개발과 도시 빈민, 빈민 사목, 공동체 재건에 투신했다.
선교사로 한국에 와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과 함께 60년을 살아 온 안광훈 신부(로베르토‧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안광훈 신부는 1965년 사제서품을 받고, 이듬해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1968년부터 원주교구 삼척 사직동본당, 정선본당, 단구동본당 등에서 주임 신부로 사목했다.
원주교구 선교 시절 안 신부는 도시빈민들을 위해 헌신했다. 정선본당 주임신부 때는 고리대금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을 위해 1972년 정선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고,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열어 본당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봉사했다. 1974년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고(故) 지학순 주교가 유신 정권에 의해 부당하게 구속됐을 때에도 석방을 요구하는 시국기도회 등에 참여하는 등 정의와 인권을 지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981년 서울로 온 안 신부는 서울대교구 목동본당, 미아동 선교본당, 삼양동 선교본당 등에서 주임 신부로 사목했다. 당시 서울은 인구가 집중되고 재개발 붐이 한창이었는데, 안 신부는 안양천변에 살다가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했다. 철거민들에게 본당에 자리를 내어주고 철거 반대 운동에 함께했으며, 이들이 경기도 시흥시 목화마을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물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1992년 미아동 선교본당에서 사목할 때에도 철거 위기에 몰린 미아동 주민들과 동고동락했고, IMF 위기가 오자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를 맡아 실업 문제 해결과 저소득층 자립, 노숙인 자활 등에 힘쓰며 이 시대 가장 가난한 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실천했다.
안 신부는 2012년 서울시 사회복지대회 대상 수상, 2014년 아산사회복지재단 대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에는 특별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다. 이 밖에도 선교회 한국지부 초대 신학원장, 선교회 한국지부 부지부장, 한국지부 재정 담당 등으로 소임했다.
1990년대를 미아동 선교 본당에서 보낸 뒤 초대 주임을 맡은 삼양동 선교 본당은 지역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삼양주민연대가 만들어지면서 남은 평생의 자리가 됐다. “에어컨도 전기장판도 없이” 사제관이 아닌 지역 주민의 이웃으로 살면서 그는 저소득층을 위한 소액 대출 운동, 저소득층 자립, 노숙인 자활 등을 위한 일들을 이어 갔고, 활동가들에게는 큰 언덕이 됐다.
안광훈 신부는 지역 곳곳에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미아동 솔샘공동체, 금호1가동 샛마루공동체, 무악동 독립문공동체, 봉천3동 하늘자리공동체 등은 기존 빈민사목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서울의 동서남북에서 선교센터가 된 셈이다. 안 신부는 이 공동체에 대해 “선교 본당은 신자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한 공동체다. 지역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는 의미에서 선교 본당이며, 공동체”라고 밝힌 바 있다.
평생 사제로서 특권, 권위를 경계하고,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사랑을 살아간 안광훈 신부는 2012년 서울시 명예시민권을, 2020년 9월 특별공로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팔순을 맞은 2021년에는 그의 삶을 담은 자서전 “성자와 죄수”를 펴냈다. 2026년 3월 21일 선종한 그는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온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이뤘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는 “안 신부님은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도 사제관이 아닌, 주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이웃으로 함께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셨던 ‘양 냄새 나는 목자’로서 헌신해 온 신부님의 아름다운 삶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