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바와 같이 궁궐과 관련한 용어(외국어)는 우리의 그것이 서양의 그것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만큼 특수한 용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안타깝게도...궁궐에 관한 특수 용어를 알 수 있는 외국어 서적이나 자료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있더라도 충분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함)
특히 인터넷 사이트와 관련하여 현재 외국어로 된 궁궐 사이트는 전무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있는 것이라도 문화재청 사이트인데...그 마저도 궁궐 안내판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한 듯 합니다.
일례로 '침전(寢殿)'을 살펴보면...언뜻 보기에 'bedroom'으로 표기하기가 쉽습니다. 허나 이것은 매우 좁은 의미의 표현일뿐 정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서양식 개념과 우리식 개념의 문화적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서양식 주거 개념은 livingroom, bedroom, diningroom이 별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공간이 갖는 기능에 따른 주거 개념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고 기능에 따른 공간도 각기 다르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식, 특히 우리식 주거개념은 이와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침전을 '베드룸'으로 소개하면, '리빙룸'은 어디에 있냐고 곧바로 물어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둘째, 그 공간의 본질적인 기능적 속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침전의 경우 단순히 잠만 잔 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복궁 교태전의 경우, 왕비의 침소이지만...내명부를 총괄하는 업무를 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집무실'의 용도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능으로 봤을 때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확장된 의미'(이것이 가장 본질적이고 정확한 의미라고 생각함)로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작년에 중국 자금성을 답사했을 때, 그들의 영문표기 중 '침전'을 'livinghall'이라고 표기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표기가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침전은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가 하면, 업무를 보기도 하는 일상적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특히 상징물의 경우는 무척 어렵습니다. '봉황'과 '주작'의 경우, 그 차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봉황이라 함은 고대 중국의 설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선정을 베풀거나, 聖君이 나타날 때 이를 알리거나 예견해주는 영물입니다. 말하자면 태평성대를 드러내는 징표라고 볼 수 있죠.
참고로 과거 전통, 노통, YS, DJ가 그맥을 이어오며 가끔 선거때 선심 공방으로 불거져 나오는 이른바 '청와대 시계'에 보면 봉황이 그려져 있고, 청와대 엠블렘이 봉황인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봉황의 의미로 봤을 때 조금 민망한 감은 있지만)
하지만 주작의 경우는 동양의 우주적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봉황과 비슷한 도상을 갖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파악됩니다. 무엇보다 상징물의 본질적 속성을 파악한다면 정확한 구분과 그에 따른 의미를 전달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봉황과 주작이 외국어 안내판에는 이러한 본질적 속성은 무시된 채 그저 단순히 'phoenix'로 표기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다른 외국어 서적도 비슷한 실정입니다.) 휘닉스란 무엇입니까? 바로 고대 서아시아 지방 페니키아의 설화에 등장하는 가공의 동물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를 의미합니다. 설화적 배경도 다를 뿐 더러 그 속성도 분명 다릅니다. 같은 날짐승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속성과 배경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동양의 제도에서 나오는 특수 용어도 많습니다. 후궁을 표기한 concubine 이란 용어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컨큐바인은 흔히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내연의 관계라는 뉘앙스가 강한 용어입니다. 흔히 첩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후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후궁은 분명 궁중제도에서 공식적인 내명부에 속하며, 품계를 갖는 공직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맞는 정확한 용어, 또는 그 용어가 없을 시, 이를 제도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흔히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왕을 사적인 여성관계가 매우 복잡한 인물로 오해하기 쉬운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다시금, 재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관리체계는 문화재청의 안내판을 일정한 자격이 있는 외국어 전문위원에게 위탁해서 번역을 하지만, 문제는 그 외국어 전문위원들이 이러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모른다면 그저 단순히 기능적인 번역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오역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겨레문화답사연합이 외국어 궁궐설명과 외국어 궁궐사이트를 준비함에 있어서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이 대목입니다.
서양식 개념과 한국식 개념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의 문제, 또는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대한 정확한 용어사용의 문제....그야말로 첩첩 산중이죠.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울러 시금석을 마련한다는 자세와 취지로 임한다면 보람도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이와 관련해서 궁궐지킴이 영어반(일명 dreamteam)에서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특히 건축관계를 포함한 최종 점검은 궁궐지킴이 자문위원이신 이상해 교수님(문화재전문위원)께서 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이상해 교수님께서 조선시대의 궁궐건축을 포함한 왕실문화에 조예가 깊으시고 美 코넬대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하고 표현하실 적임자라는 생각을 해봅니다.(現 한국유네스코 자문위원을 맡고 계시기도 합니다.)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답을 해드린 것도 아닌 것 같군요. 다소 장황한 설명으로 더욱 심란하게 해드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뜻 깊은 작업에 보다 관심있는 유정희 님께서도 적극 동참해주시길 바라며, 이에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도 바랍니다.
: 궁궐에 관련된 특수 용어를 알 수 있는 책이나,
: cite 가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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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정말 좋죠? 다들 즐거운 봄날 맞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