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구급상자/ 안차애
낯선 방에서 외로움 병 깊이 앓는 것 두려워 혼자 길 떠나기 두려우시다구요? 만능 문학 구급상자와 함께 라면 어떠세요. 어린 날 꿈이었던 곽에 든 과자 선물세트 같은 것 말이예요. 우선 색 색깔 달콤새콤한 드롭퍼스처럼 발랄엽기적인 K시인과 H시인의 시집을 두어 권 넣어주세요. 먼 아득한 신작로 길에 지칠 때, 비좁은 열차 칸에서 입안 텁텁할 때 산뜻한 단 맛을 선사할 거예요 진한 맛의 비스킷이나 크래커처럼 사랑과 궤변으로 맛깔나게 풀어낸 Y와 M의 소설 한 두 권씩도 꼭 넣어주세요. 한 끼분 대화나 수다용은 될 거예요. 늦은 밤 낯 선 곳에서의 갑작스런 존재의 허기는 예측불허의 재난처럼 깊고 우울하니까요 초콜릿이나 양갱 땅콩캐러멜의 진한 맛 같은 말라르메, 바슐라르, 요슈타인 가이드는 어떤가요? 오랜 여행 피로에서 오는 저혈당증 등에 특히 유효할 거예요. 생기 발랄 비타민도 되었다가 비상 에너지 바도 되었다 달콤한 우수의 츄잉 껌도 되는 문학 구급상자 한 세트…… 밤마다 스웨덴 제 투명 나침반만 만지고 있는 당신께 퀵 서비스로 바로 보내드리지요.
- 다음카페 <시와시와> 게시판 ......................................................... 몇 년 전 ‘돈의 화신’이란 주말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드라마에 곁가지 설정으로 ‘청록문학회’란 단체가 등장한다. 이 문학회는 단순한 문학 동호회가 아니라 정재계 거물들의 고급사교모임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압력단체 구실을 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아무리 드라마에서지만 문학이 이처럼 폼 나게 나오는 것은 처음 봤다. 하지만 문학을 빙자한 로비스트단체라니 어림없는 설정이다. 물론 전적으로 허구이고, 현실에서 이런 문학회란 존재하지 않으며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학을 매개로 한 고급사교모임이 전혀 없지는 않다. ‘청록’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한국문학에 관심 있는 주한 외교관들이 주요멤버인 ‘서울문학회’란 단체가 있다. 10년 전 주한 스웨덴 대사가 만든 모임으로 국내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통해 한국문학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고은 시인을 시작으로 고 박완서, 황석영, 이문열, 공지영, 윤흥길, 오정희 등 많은 국내작가를 초청해 이들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한국문학의 이해를 넓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2월 하순엔 한강 작가를 성북동 주한 스웨덴 대사관에 초대하여 ‘제41회 서울문학회’를 열었다. 한강 작가가 맨부크상 수상 소식을 알린 게 5월 중순이었으니 약 3달 전이었으며, 외국인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지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현재 이 문학회의 회장은 ‘안 회그룬드’ 주한 스웨덴 대사다. 직전 회장인 다니엘손 대사는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이야말로 세계가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보물”이라며, 문학은 싸이의 음악처럼 대중적 인기를 끌 수는 없고, 그게 문학의 본질이기도 하지만 번역만 제대로 이뤄지면 한국문학은 세계에 널리 알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 고마운 그의 말씀대로 맨부크상을 수상하였고 노벨상을 넘보는 것도 헛된 욕심만은 아닌 게 한국문학의 현주소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들 자신이 우리 문학을 얼마나 이해하고 아끼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노벨문학상을 당연시하기에는 아직 문학 풍토와 저변이 빈한하다. 요즘 사람에게 ‘은하수’를 본 일이 있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그게 뭔지 모르거나 본 일이 없다거나 그림에서나 보았다고 답한다. 담뱃갑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오늘날 문학의 처지가 그럴지 모르겠다. ‘어린 날 꿈이었던 곽에 든 과자 선물세트 같은 것’이라면 다행이고, ‘달콤새콤한 드롭퍼스’면 차라리 희망적이다. 문학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구급상자’의 기능을 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꼭 ‘예측불허의 재난처럼’ 다급할 경우가 아니더라도, ‘아득한 신작로 길에 지칠 때, 비좁은 열차 칸에서 입안 텁텁할 때’ ‘츄잉껌도 되는 문학구급상자’라면 하나씩 상비해도 나쁘지 않겠다. 참고로 거창한 문학회도, 대단한 문학잡지도 아니지만 사람과 문학을 연결하며 ‘시와 함께 사람과 함께’라는 기치를 내걸고 만든 자일리톨 같은 <시와시와> ‘문학구급상자’도 우여곡절 끝에 통권 12호를 냈다. 야금야금 읽다보면 은하수 한줄기쯤은 볼 수 있으리라. 발송비 포함 책 네 권을 1만원 본전 박치기로 신청 하면 당신께도 즉각 ‘퀵 서비스’될 것이다. 권순진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