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신(守庚申)
경신일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세우는 도교적인 장생법의 하나이다.
守 : 지킬 수(宀/3)
庚 : 별 경(广/5)
申 : 거듭 신(田/0)
(유사어)
경신신앙(庚申信仰)
수삼시(守三尸)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사람 몸에 기생하던 삼시(三尸) 또는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을 빠져 나와서, 천제(天帝)에게 지난 60일 동안의 죄과를 고해바쳐 수명을 단축시키기에, 밤에 자지 않고 삼시가 상제에게 고해바치지 못하도록 하여 천수를 다하려는 신앙의 한 형태이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민간 신앙의 하나로 전승되다가 송나라 때부터는 축제의 형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수경신의 풍습이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고려사로, 고려 원종 6년(1265)에 태자가 밤새워 연회를 베풀면서 자지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수경신의 풍습은 조선시대로 계승되었는데, 궁중에서는 이날 기녀와 악공을 불러다 놓고 연회를 베풀면서 밤을 지세우는 관행이 계속 행해지다가 영조 35년(1759)에 연회를 폐지하고 다만 등불을 밝히며 근신하였다.
한편 수경신은 비단 궁중에서 뿐이 아니고 일반 민간에서도 행해졌는데, 민간에서는 궁중에서 연회를 베푸는 것과는 달리 등촉(登燭)을 대낮같이 밝히면서 철야했다.
한편 민간에서는 수경신 풍습의 유풍으로 이른바 수세(守歲)라는 풍습이 생겨났는데, 이는 섣달 그믐날 밤에 방이나 마루, 부엌, 다락, 뒷간, 외양간 등에 불을 밝게 밝히고는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다.
중국의 관광기념품점에 가면 흔히 세 마리 원숭이를 새긴 나무 조각을 볼 수 있다. 각각 입과 눈과 귀를 가렸다. 일본의 신사에 가도 세 마리 원숭이 조각상을 자주 본다. 인사동에서도 심심찮게 보았다.
설명을 청하면 대뜸 시집살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이란 뜻이라고 설명한다. 좀 더 고상한 축은 '논어'의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는 구절을 일러준다.
그런데 왜 하필 원숭이인가? 사실 이 조각상은 예전 민간 도교의 수경신(守庚申) 신앙에서 나왔다.
우리 몸에는 삼시충(三尸蟲)이란 벌레가 있다. 요놈은 몸속에 숨어 주인이 하는 과실을 장부에 기록해 둔다. 그러다가 60일에 한 번씩 경신일 밤이 되면 주인이 잠든 틈에 몸에서 빠져나가 옥황상제께 그간의 죄상을 낱낱이 고해 바친다. 그러면 지은 죄만큼 감수(減壽) 즉 수명이 줄어든다.
다만 삼시충은 치명적 약점이 있다. 주인이 잠을 안 자면 절대로 몸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경신일 밤마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 술 마시고 놀면서 밤을 새웠다. 삼시충의 고자질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뜻이다.
경신(庚申)의 신(申)이 잔나비, 즉 원숭이여서 삼시(三尸)를 삼원(三猿)으로 대체했다. 눈 코 입을 막아 설령 하늘에 올라가더라도 고자질을 못하게 한 것이다.
고려 중기 이후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의 경신일 기사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왕이 밤에 신하들과 잔치하였다"거나 죄수 사면 기사가 뜬다.
연산군은 아예 삼시충에 대한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 자기 시의 운자(韻字)에 따라 시를 지어 제출하도록 숙제를 내기까지 했다.
수경신 행사를 노래한 한시도 적지 않다. 죄를 안 짓고는 못 살겠고, 일찍 죽기는 싫어서 아예 삼시충을 영구 박멸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로 고안되었다.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신도 다 이런 민간 도교신앙에서 나왔다. 눈썹이 센다는 것은 늙는다는 의미다. 결국은 수명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하기야 섣달 그믐밤에 부뚜막의 조왕신(조王神)이 주인이 잠든 사이에 하늘로 올라가면 1년치 죄상을 다 보고하게 될 테니, 그야말로 십년쯤 감수(減壽)할 일이 아닌가. 그러게 평소에 좀 착하게 살지.
⏹ 유창영 교수의 밤샘의 추억 글이다.
올해도 이제 막바지. 곧 제야(除夜)의 그 진한 아쉬움을 견뎌야 한다. 예전엔 그 해 마지막 날은 으레 밤샘하는 날이었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어른들의 으름장에 놀라 쏟아지는 잠을 애써 막아내곤 했다.
제야의 밤샘 풍습은 그 집안의 부뚜막을 지키는 조왕신(竈王神)과 관련이 있었다. 조왕신에겐 고약한 역할이 하나 있었으니 가족들의 잘못이나 과실을 기억하였다가 그 해 12월 24일 밤이면 하늘로 올라가 상제에게 알렸다.
그리고 섣달 그믐날 밤 상제가 내린 벌을 가지고 집으로 내려오니 사람들은 집안 구석구석 등불을 밝히고 경건하게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며 밤샘을 해야 했다.
하늘이 내리는 벌은 사람의 수명을 깎는 것으로, 눈썹이 하얘진다는 건 하루밤새 노인이 되어 수명이 줄어드는 큰 벌이었다.
그런데 12월 24일 밤은 산타클로스가 굴뚝 타고 집으로 오는 날이다. 게다가 조왕신도 빨간 색의 옷을 입고 있었으니 의외로 조왕신과 산타클로스는 꽤 가까운 사이였다.
우리 역사에 또 다른 밤샘 풍습이 있었으니 바로 수경신(守庚申) 신앙이다. 도교(道敎)의 장생법(長生法)에 유래한다.
사람의 몸에는 세 마리의 벌레가 있으니 이름은 팽거, 팽질, 팽교, 이른바 삼시충(三尸蟲)이다. 그들의 역할 역시 기생하고 있는 주인의 악행을 상제에게 고해바치는 일이었다. 그 보고일은 60일마다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이었고 결국 일 년에 6번의 정례 보고가 있었다.
그러나 삼시충은 그 주인이 잠이 들어야 몸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그 벌레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는 아예 그 날 24시간 내내 잠을 자지 않아야 했는데 그것을 수경신 즉 경신일을 지킨다고 했다. 말하자면 고자질을 원천봉쇄하는 작전이었다.
인간의 수명은 원래 120년, 경신일을 지키지 못하면 상제가 내린 판결만큼 그 사람의 수명이 단축된다. 선고 형량은 그 죄질에 따라 최고 300일에서 최하 3일이다. 일 년 사이에 1800일의 수명이 줄어들 수도 있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형벌이었다.
잠깐 졸아도 헛일이 되는 이 밤샘 행사는 독서나 대화만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자연히 술과 노름이 끼어들었고 심지어는 자기 집을 불태우고 구경하며 잠을 참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 충렬왕이 경신일에 밤샘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궁중에서의 수경신 행사는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었다. 특히 그 해 마지막 경신일은 꼭 지켰다 하며 점차 환락을 위한 행사로 변질되어 갔다.
성종은 이를 말리는 신하에게, "내가 삼시충을 겁내서 밤을 새우겠는가. 다만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다."라며 강행했고, 연산군 3년 11월엔 왕이 "오늘은 경신일이니 함께 밤샘하고 장난삼아 노름이나 하라."하니 "임금에게 장난이란 없는 일입니다."하며 대간들이 반대했지만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
1759년 영조 5년부터는 궁중의 경신일 연회를 폐지하고 대신 등불을 밝히고 근신하면서 밤을 새우게 했다. 고려 이후 민간에서도 널리 퍼진 풍습이었고 지금도 이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제 이름조차 낯선 도교가 그리도 염원했던 불로장생은 오늘날 실로 놀랍도록 성취되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빠른 세월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제야의 밤샘 풍습은 이제 추억 속에 남았을 뿐이지만 연말의 도심 밤거리는 여전히 잠을 잊은 인파로 붐비고 있다.
⏹ 섣날 그믐날은 왜 불을 밝히나?
삼시충 해코지 피하는 도교 습속
현존 문헌기록으로 볼 때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 섣달 그믐날 우리의 궁중 습속 중 하나로 12가지 악귀(惡鬼)를 쫓아내는 의식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생생한 모습은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문필가 중 한 명인 성현(成俔)의 '용재총화'라는 수필집에 나온다.
이에 의하면 몰아내야 할 악귀를 구체적으로는 흉(兇), 호랑이(虎), 매(魅), 불상(不祥), 고백(姑伯), 몽강양조(夢强梁祖), 목사기생(木死寄生), 츤(齒+匕), 거궁기등(拒窮奇騰), 고(蠱)라고 한다. 이 중 호랑이를 제외하고는 그 실체를 종잡을 수 없다.
용재총화에서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는 그들을 퇴치하는 푸닥거리에서 이런 명령을 내린다고 적었다. 용어가 섬뜩하다. "너희 12신(神)은 급히 물러가 머무르지 말지어다. 만약 더 머무르면 네 몸을 으르대고, 네 간절(幹節; 뼈마디)을 부글부글 끓일 것이며, 네 고기를 풀쳐내고, 네 간장을 뽑아 버릴 것이니 그 때 후회함이 없도록 하라"
이런 푸닥거리를 나례(儺禮)라 했고, 궁중에서 거행하는 나례는 특히 규모가 장대해서인지 대나(大儺)라고 불렀다.
새해를 앞둔 전날 몰아내야 할 12악귀 중 특히 주목할 것이 마지막으로 든 고(蠱)이다. 이는 결국 새해를 맞는 마지막 의식이 어디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지를 가늠하는 데 결정적이다.
고(蠱)란 무엇일까? 몸 속에 산다는 나쁜 귀신이다. 한데 이런 蠱는 글자 모양에서 벌써 그릇(皿) 안에 세 마리 나쁜 벌레(蟲)가 든 모습이라는 데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모든 사람 몸 속에서 각각 머리와 배, 그리고 발 근처에 1마리씩 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됐다.
그 위치에 따라 머리에 있는 것을 상시(上尸), 뱃속의 삼시를 중시(中尸), 발에 사는 벌레를 하시(下尸)라 했다.
물론 별칭도 있어 북송 초기에 나온 운급칠첨이라는 도교의 대장경 권81 경신부(庚申部)에서 인용한 '삼시중경'(三尸中經)이라는 책에 의하면 상시는 이름을 팽거(彭倨)라 하고, 중시는 팽질(彭質)이라 하며, 하시(下尸)는 팽교(彭矯)라 부른다고 했다.
각종 도교 경전에 의하면 삼고(三蠱)라고도 하는 이들 삼시(三尸)는 1년 12달 동안 그 사람의 행실을 엿보아 그것을 기록해 두었다가, 매해 섣날 그믐날 밤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 상제(上帝)께 고해 받친다고 한다.
이들 삼시의 보고서에 기초해 상제는 그 사람의 수명을 줄이거나 늘려준다고 한다. 즉, 착한 일을 많이 했으면, 그만큼 더 오래 살게 해 주고, 나쁜 일이 많으면 그에 상당하는만큼 수명을 줄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기 스스로에게 비춰 보아 착한 일보다 나쁜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삼시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원천 봉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시충을 어떻게 퇴치할 것인가? 이들 삼시충에서 발견되는 커다란 약점 중 하나는 그 사람이 잠들었을 때만, 몰래 그 사람 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는 몸을 탈출할 수가 없다. 약점을 찾았으므로 사람들은 이를 역이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잠 안 자는 방법을 사람들은 생각한 것이다.
도시화,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요즘 도시에서는 이런 풍경이 거의 다 사라졌으나, 지금도 농어촌 같은 데서는 섣달 그믐날 밤을 온통 불빛으로 밝혀놓는 이유가 이에서 말미암는다.
이날 밤 잠이 들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이날 밤을 뜬 눈으로 새는 일을 그 해를 지킨다 해서 수세(守歲)라 불렀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유의할 것은 수경신(守庚申)이라는 습속이다. 경신일에는 날밤을 샌다는 의미이거니와, 실제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시대 각종 문집을 뒤져보면, 경신일에 해당되는 날에는 유독 흥청망청 술 마시는 파티 이야기가 자주 보이는 것도 바로 이 수경신 풍습을 말하기 때문이다.
왜 하필 경신일인가? 앞서 말한 삼시충이라는 고자질 귀신은 섣날 그믐날 밤 외에도 60일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경신일 밤이면 하늘로 올라가 상제에게 그 사람의 잘못을 고자질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수경신 신앙은 중국을 보면 동진시대 저명한 도사인 갈홍(葛弘)의 포박자(抱朴子)에 나온다. 날밤의 전통은 이처럼 그 역사가 유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