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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유타야 유적과 삼겹살 무한리필
아침 6시 창밖이 희부옇게 밝아왔다. 늦게 잠이 든 것치고 일찍 잠에서 깼다.
WIFI를 이용해서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호텔 1층 로비 한쪽에 마련된 식당으로 갔다.
꽤나 많은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한 채로 코너 별로 돌아다니며 쟁반에 음식을 담고 있었다.
친구 내외와 서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하며 각자 식성에 맞는 아침을 즐겼다.
칸차나부리와는 전혀 다른 음식 종류가 비치되어 있었다.
출근 시간의 방콕은 저녀과 마찬가지로 정체가 심하다며 가이드는 늦게 출발할 것이니 천천히 드시라 했다.
오늘은 태국의 첫 도읍지였던 아유타야로 가야 했다.
호텔을 출발한 시각은 10시 30분, 아유타야는 버스로 1시간 30분 이상을 달려야 했다.
태국의 3대산업은 1위가 관광업이고, 2위가 보석가공업이며 3위가 사탕수수농업이라고 한다. 도로에는 추수한 사탕수수를 실은 기다란 트럭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긴 트럭 길이보다 더 길었다.
태국에서는 사원과 왕궁을 돌아보려면 반드시 자국민 해설사를 동반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들은 자칭 백남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선족 해설사가 도중 휴게소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환갑의 나이임을 슬며시 내비치면서 말머리나 말끝에 ‘형님들 누님들’을 넉살좋게 붙였다. 고향이 북한이어서 그런지, 태국에 정착한 게 오래되어서인지 우리말에 익숙하지는 않고 문장의 짜임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알아듣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는 되었다.
비죽비죽한 사원의 탑과 하늘로 치솟은 지붕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라 그런지 견학을 온 학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이미 주차장이 만원이라 버스를 길가에 대고 일행은 내려서 걸었다.
왓 프라신 펫사원 유적은 그리 멀지 않았다. ‘왓’은 사원을 뜻하는 태국어이다. 마치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앙코르왓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진흙벽돌로 쌓은 20∼30m 정도 되는 유적이 반쯤 허물어진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주변국의 침공을 계속 받은 나머지 사원이 갖추고 잇던 희귀한 불상이 모두 파괴되거나 약탈된 때문이란다. 멀리 온전하게 보이는 불탑으로 이동할 때, 나는 다리가 아파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샅샅이 살펴보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다음 여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입구 연못가 벤치에서 담배를 피고 있을 때 수면이 갑자기 출렁거리더니 불쑥 도마뱀 머리가 솟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열대지방 유명한 동물인데, 도착 후 처음 눈에 띈 것이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다니다가 원숭이도 좀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특이하게 전봇대들을 사각기둥모양으로 세워놓은 이유가 뱀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단다. 그뿐 아니라 꼭대기쯤을 청색으로 칠해 놓은 것도 원숭이가 하늘 끝이라고 착각하도록 칠했다고 했다. 그만큼 흔했다는 이야기일 텐데 우리들 눈에 띄는 경우가 없었다.
왓 야이차이 몽골과 왓 마하탓까지 둘러 본 일행이 버스로 돌아왔을 때 나는 꼬리긴도마뱀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혼자 떨어진 이유를 대신했다.
사원 관광을 마친 일행은 꿍시리버 뷔페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었다.
가짓수는 많지 않았으나 볶음밥과 파스타는 입맛에 잘 맞았다. 휠체어를 탄 외국인을 밀며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들어왔다. 목발을 짚은 이도 보였다. 저렇게 장애를 가진 이들도 외국 여행을 즐기고 있구나 싶으니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조금 걷는 것조차 기피하는 스스로가 조금 창피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왕의 여름별장이 있는 방파인으로 이동했다. 방파인은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별장을 해저로 둘렀으니 외인이 드나들기 참 어려웠으리라. 사원이 있고, 유럽식 건물도 있는데 고목나무 아래 사당 같은 게 보였다.
어느 해 미리 여름별장으로 온 국왕이 가장 총애하는 후궁과 공주들을 초청했는데 별장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모두 바다에 빠졌다고 한다. 근위병들은 모두 헤엄을 쳐서 살았지만, 헤엄을 치지 못하는 후궁과 공주들이 희생되었단다, 당시의 율법이 평민은 절대 왕족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되어있어서 익사하는 걸 두 눈 뻔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때 희생당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이라고 햇다. 그 이후 국왕은 여름에 이곳을 다시는 찾지 않았고, 그 후에 다른 왕족들의 별장으로 쓰이거나 국빈 접대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대리석 건물들과 푸른 열대 식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아름다웠다. 호수 중앙에는 국왕만이 아는 문서가 보관되어 있으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악어를 호수에 풀어 넣었다고 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질 않았다. 물빛이 호수바닥을 허락하지 않았다. 포토라인에서 일행은 짝 맞추어 촬영을 한 뒤에 삼겹살 무한제공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방콕에서 두 번째로 큰 차이나타운인데 수년 전부터 한국음식점도 자리를 잡고 운영한단다. 이국땅에서 상추쌈에 돼지고기를 올리고 풋고추와 생마늘을 넣어 먹는다는 게 믿을 수 있을까. 모두가 다이어트 걱정을 내려놓을 만큼 포식했다. 애주가들에게 국산 소주 2병을 대접했다. 배를 두드리며 방콕으로 되돌아오니 10시가 다 되었다. 씻고 잠들기도 바쁜 하루였다.
5. 왕궁 그리고 새벽사원
태국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이라고 모두 조금 늦게 일어났고, 조식도 아주 천천히 먹었다.
가이드는 농담 삼아 출발해서 다시 점심을 먹을 것이니 적당히 드시라 했는데, 왕국까지 가는 길이 꽤 먼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현 왕조는 라마9세가 즉위한지 겨우 2년이 지났다고 했다.
길에서 쵸지판처럼 세워놓은 국왕이나 왕비의 사진은 라마8세의 사진도 있고, 현 국황의 사진으로 교체되는 중이라 얼핏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한창 때의 사진이라서 태국 국민이 아니면 더욱 헷갈릴 수 있어서다. 전통 복장을 한 사진보다 육군제복을 입은 게 훨씬 더 많았다. 모든 왕족이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도록 한 때문이겠다.
왕궁은 사각 울타리가 1,900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였다.
유럽식 보릉 피만은 라마 7세, 8세 9세가 여러 번 묵었던 건물인데 최근에는 국빈과 왕의 특별사절이 머무는 영빈관으로 쓰여 지고 있단다. 왕궁 안으로 들어가려면 복장 상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민소매 옷이거나 무릎이 드러나는 바지로는 입장 불가다. 자유로운 복장으로 왕궁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태국전통 의상을 싼 값으로 팔고 있었다. 여자들은 보자기 하나를 허리에 두면 되고, 남자들은 우리의 잠옷 같은 고무줄 바지 하나면 되었다.
건물 사이사이는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고, 열대 나무들이 잘 다듬어져 있었으며 고유한 양식의 궁성 건축물 황금빛으로 눈부셨다. 백남봉의 말로는 금의 순도 50%미만이란다. 태국에서는 24K만해도 귀한 대접 한단다. 우리같이 순도 99.9%는 찾아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보룸 피만 남쪽에 위치한 붓타 랏따나 싸탄은 균형이 잘 잡힌 건축물이며 내부에 수정으로 된 불상을 모셔놓았다. 그래서 ‘에메랄드사원’이라고도 불린다. 원래 아유타야의 사원에 있던 불상인데, 미얀마의 침략 때 탈취당하지 않게 하려고 수정 바깥에 석고를 발라두었다고 하며, 나중에 왕궁으로 모셔온 것이라고 했다.
옛날에 존재했던 돈부리 왕조가 무너지고 짝끄리 왕조를 세운 라마1세는 민심을 수습하고 왕권 확립과 아유타이 시대 재건을 위해 짜오프라야 강 서쪽으로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고 한다. 왕궁 일부가 준공된 1782년 곧바로 즉위식을 가졌고, 왕족이 거주할 공간과 업무 수행에 필요한 건물부터 차례로 건설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여기저기를 살피는 도중에 왕궁 근위병 교대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얀 제복을 입고 어깨에 맨 총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 손을 쫙 펴서 빗금 긋듯이 흔들며 행진하는 게 특이했다. 근위병들은 각 초소마다 배치되어 있을 터이니 대략 20곳 쯤 되는 모양이었다. 맨 앞의 지휘자 말고 스무 명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상하의 나라라는 걸 실감하면서 수상시장으로 갔다.
담넉사두억과는 달리 배 한 척에 일행 모두가 탔다. 짜오프라야 강물 역시 탁했지만 강폭은 훨씬 넓었고 물결도 거셌다. 강 한 가운데 거의 군함 같은 바지선이 떠 있었다. 겉을 천막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는데, 각종 상품이 들어찼다고 했다. 전화로 주문을 받는 즉시 작은 배로 배달에 나선다고 했다. 강가는 전통 양식의 가옥과 근대식 연립주택이 늘어 서 있었다. 도심 쪽에는 조명이 켜진 상태로 길게 골목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얼마쯤 갔을 때, 배가 멈추더니 롱테일 보트가 다가와 몽키바나나와 음료 구입을 권하였다. 가이드의 말로는 이 배의 선장과 친척이어서 뭐라도 사지 않으면 고장 났다면서 출발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20바트를 주고 작은 바나나를 사 나누어 먹었다. 저 멀리서 다른 배가 다가오자 2층 같은 1층 집 기둥 아래에 배에 누워있던 아낙이 배를 저어 맞이하는 걸 보며 우리 배가 출발했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 보였고, 아낙은 훨씬 젊어 보였는데, 가이드 말로는 셋째 부인이란다. 일부다처제 국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참을 강안을 따라 달리니 화려한 빛깔의 새벽사원이 모습을 보였다.
짝그리 왕조를 세운 라마 1세는 멸망한 돈부리 왕조 마지막 왕의 친구였는데, 패망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사원을 세우려고 할 때 이 장소의 새벽기운이 워낙 아름다워 선택을 했다고 했다. 태국에서 가장 흔한 커다란 메기가 사원을 찾는 이들이 뿌려주는 공물을 먹으려고 몰려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배의 선장이 직접 식빵을 봉지에 넣어 팔고 있었다. 40바트를 주고 식빵 두 봉지를 샀다. 조금씩 뜯어서 강물 위로 뿌리니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달려들었다. 큰 것은 거의 팔뚝만 했다.
도심 쪽 부두에 배를 대고 내려 골목시장을 누비며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한참을 걸었다. 상가 뒤로는 헐값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게스트하우스들이 즐비했다. 시내로 들어서자 폭이 좁은 하천이 보였고, 다리 난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지하철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라 했다. 비가 많이 오면 침수가 된다더니 지하철을 걸설 중이라 해서 놀라웠다. 관광산업을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겨우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불낙전골이었다. 가장 형편없는 맛이었는데, 낙지만 겨우 이름값을 했다.
이제 공항으로 돌아가려면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도중에 한 곳 한인특산품 배장에 들린다고 했다. 지금 태국에 정착한 한인들이 30만 명에 이르는 데 아직 한국인 국제학교가 없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없고, 태국정부의 허가도 받지 못했지만, 교민들이 앞장서서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매장은 넓고 서늘했다. 벌꿀과 로열젤리 그리고 흑생강을 소개하고 있었다. 타국에서 우리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맛보기로 꿀도 먹고 로열젤리도 먹을 수 있어서 괜찮았다. 신비한 효능을 지닌 흑생강 한 봉지와 계피 한 통을 묶어서 180달러에 구입했다. 내장지방을 분해하고 각종 염증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니 속는 셈치고 구입한 것이다.
서둘러 다시 버스에 올라, 세계최대야시장이라는 아시안티끄 야시장으로 갔다. 이러저러한 상품들을 세 곳 매장으로 구분해서 펼쳐 두었는데 휘황한 조명으로 번쩍이고 있어 장관이었다.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거의 모두가 마스트를 하고 있으니 더 볼만 하였다. 대충 둘러보고 나서 사진만 몇 커트 찍고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수완나폼 공항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태국에서의 4박 동안 여러 곳을 쏘다녔지만 제아무리 도로가 마기고 번잡했어도 운전수가 경적을 울리는 걸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무에타이와 투계를 즐기는 민족이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니 참 느긋한 사람들 아닌가싶다.
공항 주차장은 거의 여의도만하다. 입출국 행렬은 끝이 보이질 않고, TAI 항공에서 수하물을 부칠 때까지만 가이드의 도움을 받고 헤어졌다. 출국장으로 올라가서 신고서를 제출하고 출국심사를 받으려니 살짝 긴장도 되었다. 누구 하나 영어조차 제대로 구사할 줄을 몰라서다. 눈치껏 신발도 벗고 허리띠도 풀고 검색대를 통과하자 맥이 풀렸다.
23시 35분 출발이라던 비행기가 1시간 지연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출국 게이트까지 가는 길도 멀었다. 그러나 가끔 우리말을 하는 낯익은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음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지정된 게이트 앞은 기다리는 여행객이 앉을 수 있는 좌석도 고작 스무 개 남짓뿐이었다. 그것도 이미 먼저 온 사람들 차지였다. 몇 차례 비행기가 출발하니 자리가 비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하나 둘씩 겨울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껴입거나 갈아입거나 인천공항은 분명 추울 것이니...
겨울 속 여름나들이를 끝내야 할 때인 것이다.
친구가 국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열 둘이라고 알려왔다.
모두들 마스크를 고쳐 써야 했다.
-끝
첫댓글 비록 다리가 불편해서이지만 잠시나마 일행들을 잊고 혼자 있어 보는 시간이 이런 멋진 글을 탄생케 하는군요.
무리속에서 고독해질때 생각이 찾아와 어루고 연못의 물결이 촉촉한 바람으로 일렁인다는 걸 배웁니다.
이렇게 긴 글을 쓰려며 아무리 글을 잘쓰시는 분이어도 얼만큼 힘이 들었을지?
저는 선생님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태국을 동행한 느낌으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는 10여 년전에 태국을 갔다왔는데 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 글을 읽고 상기하는 중입니다.
이름은 생각 안 나지만 거대한 탑에 금딱지를 붙인 사원의 놀라운 불경의 광경과 코끼리 등에 앉았던
재미가 다시 살아 나네요. 좀 못사는 나라 같아도 독특한 문화와 옛 힘이 느껴지는 나라지요.
다시 즐거워지는 기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