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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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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읽기 스크랩 거미 외 / 이인철
동산 추천 0 조회 24 15.08.03 19: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거미 / 이인철

 

 

그에게 모든 길은 한곳으로만 통해 있다
잘 짜여진 방사형
그 속엔 콜로세움도 있다
사슬에 묶인 이들이 그와 결투를 벌인다
언제나 승자는 정해져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맨손으로 사자를 이긴 적이 없듯이
누구나 사슬에 묶인 채 맨손으로 저항하고 알몸으로 죽어야 한다
그것이 규칙이다
한 생명이 쓰러질 때 경기장이 움쭉 움직인다
길들이 잠시 진동하고
주검은 저 검은 사자의 생존을 위한 먹이다
정복군처럼
로마로 통하는 길을 계속 늘려가는 그에게
모든 허공은 길이다
살육의 흔적들이 경기장에 늘어갈 때쯤
구 로마는 부서지고
그는 다시 또 단단한 신생 로마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다

 

 

 

 

 

 

소금꽃 / 이인철 

 

 

이제는 출렁임을 잃은 바다
균형을 잡으려고 평생을 흔들리며 살았지만
수만 년 바닷속 이야기가 지금은 염전에 갇혀 있다

 

뜨거운 여름 한낮
염불삼매(念佛三昧)
세상에서 흘린 눈물을 말리는 것이다
인연을 끊는 것이다
흘린 땀이 제 업보를 조이고 있다
마음 가둔 바다에서 사리들이 영근다

 

소금 속에 생활이 있다
한낮에 소금창고로 가는
절름발이 소금장수 어깨 위에서 생계 한 자루가 출렁인다

 

사람도 눈물을 가두고 살면
소금 한 섬 얻으려나
눈물 가둔 사람들, 온몸에 소금꽃이 핀다

 

 

 

 

 

 

/ 이인철  

 


눈 내리는 세상은 하얀 섬
길모퉁이에 핀
주황색 나리꽃 속
나는 그 포장마차에서 하얀 국수를 먹습니다

 

국숫발을 들어올릴 때마다
뒤엉킨 실타래를 쓱쓱 자릅니다
밤새워 평생 육 남매의 실타래를 풀던 어머니는
줄 끊긴 연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고

 

나는 뒤엉킨 실타래를 쓱쓱 자릅니다

 

 

 

 

 

 

각달을 보면 홍두깨로 밀고 싶다 / 이인철

 

 

해가 진 여름저녁

어머니는 흰 살 한 점 떼어 홍두깨로 늘린다

반상 위에 가난이 점점 넓어진다

가난도 곽 차면 달이 된다

얇아진 반죽 아래에 반상의 굳은 피가 보인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만든 둥근 달을 접어

칼로 잘근잘근 썰어 나간다

하얗게 쏟아지는 국숫발들

 

어머니는 그 국숫발들을 가마솥에 끓여

식구들에게 한 그릇씩 퍼준다

우리는 마당 평상에 앉아 국수를 먹으며

가난한 배를 불렸다

 

조각달이 뜨면 가끔은 홍두깨를 들고 나가

달을 둥글게 늘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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