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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관음봉(觀音峯, 556.9m)-된봉(430.3m)
여행일 : ‘21. 9. 11(토)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과 오남읍, 호평동 일원
산행코스 : 사릉역→어남이고개→오남저수지갈림길→견성암약수터갈림길→관음봉→된봉→송능리 방향 능선→호평자동차검사소→호평·평내역(소요시간 : 8,14km/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남양주시는 총면적의 70%가 산림이다. 그러나 산만 높은 게 아니다. 물길도 있다. 북한강이 남양주를 따라 흘러와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마침내 한강이 된다. 이처럼 남양주는 서울 도심에서 지척이지만 산과 강이 어울려 특별한 걷기를 즐길 수 있다. 그런 특징들을 연결시켜 놓은 트레일(trail)이 바로 ‘다산길’이다. 오늘은 이 가운데 13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13코스, 아니 다산길 전체가 폐쇄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코스를 조금 변경해봤다. 경로를 알려주던 안내판까지 모두 철거되어버린 마당에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없어서이다. 그래서 도심 구간 전체를 빼는 대신 숲길을 늘려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13코스의 핵심 봉우리인 관음봉과 된봉을 모두 올랐으니 다산길을 걷는 기분만은 오롯이 즐겼다고 보면 되겠다.
▼ 트레킹 들머리는 사능역(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
최군으로부터 근교산행 제안을 받고 부랴부랴 ‘치악산둘레길’ 답사를 취소했다. 제부도에 사는 지인을 위해 정한 산행지는 용인의 ‘시궁산’. 하지만 다른 중요한 일정이 생겼다는 연락으로 받고 부랴부랴 ‘다산길 13코스’로 산행지를 바꿨다. 집 근처에도 올라보지 못한 산이 있는데 구태여 용인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어서이다. 둘레길이 시작되는 곳은 경춘선 전철 ‘사릉역(思陵驛)’. 비운의 왕 단종(端宗)의 정비인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1521)의 능(陵)이 역의 이름이 됐다. 그러나 역의 이름과는 달리 사릉은 오히려 금곡역과 더 가깝다는 것도 알아두자.
▼ 이 지도를 제작한 분은 어남이고개에서 출발해 ‘관음봉’까지 간 다음 이후부터는 ‘다산길 13코스’를 따라 사릉역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우리는 ‘된봉’에서 다산길과 헤어져 송능리 방향의 능선(진건읍과 호평·평내동의 경계)을 따르다가 ‘352m봉(지도에는 360.7m봉으로 표기되어 있다)’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호평동으로 하산했다. 참고로 ‘다산길’은 모두 13개 코스(169.3㎞)로 이루어져 있다. ‘다산’이란 이름은 조선말의 위대한 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호에서 따왔다. 정약용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곳이 바로 두물머리(남양주시 조안면)이기 때문이다. 그의 실학정신이 깃든 길을 걸으며 역사의 향기를 음미해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남양주시의 초심은 사라져버린 지 이미 오래. 다산길 자체를 아예 없애버렸다. 이정표 등의 편의시설도 모조리 제거시켜버렸음은 물론이다.
▼ 변경된 코스의 들머리인 ‘어남이고개’까지 4km는 택시를 이용했다. 오남읍(북쪽)과 진건읍(남쪽)의 경계인 이곳은 천마산으로 올라가는 들머리이기도 하다. 고개의 이름인 ‘어남이’는 세조가 묘지터를 찾으러 광릉방면으로 가는 길에 건너다본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람리(御覽里)'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의냄리’, ‘어냄이’ ‘어남이’로 불리게 되었단다.
▼ 사람이 끊어버렸던 능선은 사람의 손에 의해 다시 되살아났다. ‘어남이’ 고갯마루에 육교를 걸쳐놓은 것이다. 버스정류장(금호어울림아파트)에서 내려 이 다리로 올라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 다리 위는 서너 개의 통나무의자를 놓아 쉼터의 역할을 겸하도록 했다. 등산로 초입답게 흙먼지털이기까지 갖추었다. 그런데 막상 쉬고 있는 이들은 라이더들이 아니겠는가. 맞다.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라이더들에게 이 능선은 꽤 유명한 라이딩 코스로 알려져 있다. 필수 라이딩 코스로 여겨질 만큼 유명하단다. 업힐과 다운힐 코스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어 MTB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다.
▼ 이왕에 올랐으니 조망부터 즐겨보자. 북쪽 방향의 오남읍은 시작부터가 시가지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금호어울림아파트가 시야를 반쯤 가려버렸다. 반대로 남쪽의 진건읍 방향은 공장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 이정표(관음봉 3.3㎞, 천마산 7.2㎞/ 오남체육공원 2.2㎞)는 이곳이 천마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초입임을 알려준다. 반대 방향. 즉 육교를 건너면 ‘오남체육공원’으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그 기세가 못내 버거웠던 모양이다. 침목계단으로도 모자라 밧줄난간까지 설치했다. 붙잡고 오르라는 배려일 것이다.
▼ 하지만 5분이 채 되지 않아 그 가파름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경사가 거의 없는 능선길이 계속된다. 거기다 바닥까지도 보드라운 흙길. 마침맞게 울창한 숲이 햇볕 한 점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여름 산행지로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 앞서가던 집사람이 호들갑을 떨기에 다가가보니 이름 모를 버섯이 돋아나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터를 잡은 떡갈나무 낙엽에 어울리지 않게 예쁘게 생겼다. 가을 산에서 만나는 버섯은 꽃에 버금간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 탐방로는 능선을 따른다. 하지만 능선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의미 없는 봉우리는 사면을 따라 심심찮게 우회한다.
▼ 소관 지자체인 남양주시는 부자 고을이다. 신도시가 자꾸 들어서고 있으니 지방세가 눈 쌓이듯이 불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시민들의 휴식처인 산길 가꾸기에 쏟아 부은 돈도 만만찮았을 게 뻔하다. 허름한 벤치가 아니라 커다란 통나무를 반으로 툭 잘라 만든 저 의자가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 요즘은 언택트(un-contact)가 최고의 미덕으로 꼽힌다. 우리 일행이 3명으로 축소된 이유이다. 한술 더 떠 우리는 가능한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걸어보기로 했다. 아니 우리뿐만 아니라 산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맞다. 코로나-19 팬데믹(COVID-19 pandemic)이 만들어낸 신풍속도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 잣나무 하면 사람들은 대개 ‘가평’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 남양주 역시 곳곳에서 잣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숲에 몸을 맡기면 머리로 알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맑은 공기 덕분에 깨어난 온몸의 감각들이 이제 숲을 자세히 더듬어 느끼기 시작한다.
▼ 하늘을 가릴 듯 쭉쭉 뻗어난 숲길을 따라가다 바위 하나를 만났다. 전형적인 육산에서 만난 첫 번째 바위다. 그런데 생김새까지도 만만찮다. 보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쏙 빼다 닮지 않았는가. 수직의 이마와 작고 둥근 후두부, 작은 크기의 턱과 이빨을 갖고 있으며, 턱이 앞으로 튀어나온...
▼ 종주산행의 대가 신경수씨는 이 능선을 ‘한북천마관음단맥’으로 부르고 있었다. 한북천마지맥(한북정맥의 수원산에서 분기한 지맥)의 천마산(天摩山, 812.4m) 정상(정확히는 서남쪽 100m지점으로 화도읍·오남읍·호평동의 경계)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분기하여 관음봉까지는 오남읍과 호평동의 경계, 그 이후부터는 오남읍과 진건읍의 경계를 따라 뻗어나가는 세맥(細脈)이다. 길이 13.3km의 이 산줄기는 어남이고개와 삭다니고개를 지나 진건천이 왕숙천을 만나는 곳에서 숨을 다한다.
▼ 관음산 줄기는 전형적인 육산이라서 바위 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귀한 풍경을 만났다. 얼굴을 내밀어야 할 야생화는 정작 보이지 않고, 들녘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코스모스가 대신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그것도 척박한 바위틈에 어렵사리 터를 잡았다.
▼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다리처럼 난간까지 걸쳐놓은 나무계단을 만났다. 버거울 정도의 경사도 아닌데 계단이라니 이건 낭비다. 아니 산을 보호하기 위한 최상의 처방으로 보는 게 옳겠다. 인간이 지나다니며 헤집어 놓은 흙을 빗물이 휩쓸어 가버리기를 반복하다보면 산이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 통나무의자로도 모자라 평상까지 놓았다. 준비해온 점심상 차리기에 딱 좋겠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잊지 말자. ‘추억은 가슴 속에, 쓰레기는 배낭 속에’
▼ 관음봉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산은 산이다. 아니 556.9m이면 근교산 치고는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어찌 가파른 구간 하나쯤 나타나지 않겠는가. 거기다 바윗길. 어설프기는 하지만 바윗길은 바윗길이다.
▼ 덕분에 밧줄에 의지해야만 하는 곳도 두어 번 나타난다. 잠깐이면 끝나버리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짜릿한 손맛까지 즐길 수 있었으니 오늘 산행은 횡재를 한 셈이다.
▼ 바윗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야가 열린다는 점이다. 진접 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지는데, 고층아파트의 숲 뒤로 보이는 산들은 퇴뫼산과 천겸산, 수리봉, 용암산 등일 것이다.
▼ 능선은 온통 참나무들 세상이다. 숲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저희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치른 후 음수(陰樹)의 특성을 가진 한 무리들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은 참나무가 최후의 승리자인 셈이다. 맞다. 남해안과 높은 산꼭대기를 제외한 남한의 대부분은 온대림인데, 이게 생존경쟁에서 참나무에게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단다. 남한의 산들 대부분이 참나무들로 꽉 들어 차 있는 이유이다.
▼ 앞서가던 최군이 숲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뭔가를 들고 나온다. 그리고는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러댄다. 하긴 그 귀하디귀한 ‘노루궁뎅이 버섯’을 채취했으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후로도 그런 풍경은 대여섯 번이나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이 채취했다는 얘기다. 그 포획물은 모두 내 차지가 되었지만 말이다. 탁월한 항암효과는 물론이고 치매예방에다 당뇨병 개선효과까지 있다며 나에게 넘겨준 결과이다.
▼ 식빵을 쌓아놓은 것처럼 생긴 이 버섯의 이름은 대체 뭘까? 생김새처럼 우리가 먹을 수 있을까?
▼ 요놈은 또 영락없는 삿갓이다. 얼마 전 김삿갓문학길(외씨버선길의 12번째 길이다)을 걸으면서 만난 김삿갓이 쓰고 있던 삿갓이 꼭 저랬었다.
▼ 걷는 도중 꽤 많은 서어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하나같이 훤칠한 키에 미끈한 몸매를 과시하는 근육질이다. 그래서 서어나무를 ‘근육질나무’로 부르기도 한단다. 하긴 수천수만 년을 이어온 우리 숲의 가장 흔한 나무 중 하나가 서어나무가 아니겠는가.
▼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15분. 두루뭉술하게 생긴 ‘436m봉(첨부된 지도에서 약수터로 표기된 곳 근처 오른편으로 휘는 지점. 봉우리 이름은 핸드폰에 찍힌 해발고도를 썼다)에 올라섰다. 이곳은 한때 헬기장으로 사용되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통나무의자 두어 개가 놓여있을 따름이다. 용도가 나그네들의 쉼터로 바뀌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이정표(관음봉→ 0.8㎞/ 오남저수지← 2.0㎞/ 어남이고개↓ 2.5㎞)는 이곳이 삼거리임을 알려준다. 진행해야 할 관음봉은 이곳에서 오른편.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면 철마산 등산로의 초입이기도 한 오남저수지로 연결된다.
▼ 관음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완만한 능선길로 되돌아간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 이정표(관음봉 0.9㎞/ 견성암약수터 0.2㎞)는 오른편에 견성암(見聖庵)이란 사찰이 있음을 알려준다. ‘독정(獨井)’이라 불리는 우물로 유명한 절이다. ‘바우(바위)’라는 현자가 독정의 물을 마시며 수도하다가 약사여래불을 친견했다는 것이다. 산령각에서의 조망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유순하게 이어지는 산등성이 사이로 멀찍이 남양주 시내와 우뚝 솟은 롯데타워가 보인단다.
▼ 탐방로는 자작나무 숲속을 지나기도 한다. 윤택이 나는 흰색 옷을 두른 나무가 한 치의 휘어짐 없이 쭉쭉 하늘을 향해 뻗어 올랐다. 그게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며 숲속 어디선가 동화 속 요정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건 그렇고 저 흰색 표피는 종이처럼 얇게 벗겨진다. 전기가 없던 시절 그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처럼 사용했는데, 이게 불에 타면서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 순간 이동이라도 했을까? 문득 세미나 참석차 들렀던 톰스크(러시아)의 자작나무 숲이 생각난다. 톰스크공대 교수의 초대로 하룻밤을 머물렀던 움막을 둘러싼 자작나무 숲은 그야말로 광활함 그 자체였다. 그보다는 못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이런 자작나무 숲을 만났으니 행운이라 하겠다.
▼ 썩 좋지 않은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그럼 나무는 죽어서 무엇을 남길까? 나무 나름이겠지만 이 나무는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결과로 남았다. 나무치료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최군의 말로는 알에서 깨어난 해충의 애벌레가 성장하면서 표피를 갉아먹은 때문에 저렇게 흉물스럽게 죽어갔단다.
▼ 안부로 내려섰던 산길은 또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것도 많이 가파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길가에 밧줄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니 힘이 들 경우 이를 붙잡고 오르면 되기 때문이다.
▼ 삼거리봉(436m봉)을 내려선지 20분 만에 관음봉에 올라섰다. 잡석더미로 이루어진 정상은 예쁘장한 정상석이 지키고 있다. 삼각점(성동 426)도 보인다. 삼각점은 삼각 측량의 기초가 되는 위치와 높이의 기준점을 뜻한다. 국가지리정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 관음봉(觀音峰)은 세상의 소리를 듣는 관음보살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중생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그 소리를 보고(눈·귀·코·혀·몸 등 여래의 다섯 감각기관은 서로 그 대상을 바꾸어 작용할 수 있다) 그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는 보살 말이다.
▼ 어떤 이들은 관음의 뜻을 가장 멀리 볼 수 있고,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다고 풀이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정상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만큼 조망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예상대로 정상에서의 조망은 빼어나다. 발아래로는 호평 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진다. 시가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백봉산 너머에서는 갑산과 예봉산이 나도 있다며 고개를 내민다. 왼편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번에는 마석시가지와 천마산이 문안산·청계산과 함께 얼굴을 내민다. 반대방향에서는 북한산도 눈에 담을 수 있다.
▼ 관음봉에도 이정표(천마산 3.9㎞/ 어남이고개 3.3㎞)가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된봉’ 방향은 텅 비어있다. 한때는 ‘다산길’ 종주자들이 뻔질나게 다니던 길(13코스)인데도 말이다. 다산길의 운영을 중단했다지만 등산로까지 폐쇄된 것은 아닌데, 해도 너무했다.
▼ 이후부터는 옛 ‘다산길 13코스’를 따른다. 된봉과 영락교회묘원을 거쳐 사릉역으로 이어지는 이 능선은 작은 봉우리들을 여럿 오르내린다. 또한 원시의 숲을 연상시킬 정도로 울울창창한 숲속으로 길이 나있다.
▼ 밤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엊그제였으니 누가 뭐래도 이젠 가을이다. 그래선지 어설프기는 하지만 단풍 구경도 할 수 있었다. 병이 들어 남들보다 조금 일찍 옷을 갈아입었지만, 여름철에는 저런 잎까지도 눈에 띌 일이 없으니 말이다.
▼ 이 구간은 중간에 바위봉우리를 넘기도 한다. 전형적인 육산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 덕분에 시야가 열리면서 아까 관음봉에서 보았던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아니 호평 시가지는 아까보다 오히려 더 넓어졌다.
▼ 된봉으로 오르는 도중 오토바이 라이더들을 만났다. 아까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이곳 관음봉 능선은 산악자전거 라이더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코스로 유명하다. 업힐과 다운힐 코스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토바이 라이더들이라고 해서 어찌 좋아하지 않겠는가.
▼ 거대한 바위무더기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오늘 산행에서 바위다운 바위로는 이게 유일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생김새까지도 나무랄 데가 없지 않는가. 스토리텔링이라도 하나 만들어놓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 관음봉을 출발한지 50분 만에 ‘된봉’ 정상에 올라섰다. 열 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알루미늄 기둥으로 만든 정상판과 삼각점(성동 307)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상판(475m)과 삼각점(430.3m)에 적혀있는 해발고도가 각기 다르니 문제다. 아무래도 정부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더 신빙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관음봉’에서 이곳 ‘된봉’까지는 1.6km(핸드폰의 앱)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50분이나 걸렸으니 꽤나 더디게 걸은 셈이다. 고되게 올라야만 이를 수 있다는 지명답게 꽤나 오르내림이 심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사방 어느 곳에서 시작하든지 힘들게 고개를 넘어야만 오를 수 있다는 ‘된봉’의 유래가 적힌 ‘산행안내도’도 보인다. 그런데 누군가가 낙서를 잔뜩 해놓았다. 지명이 잘못 적혀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내가 보기에도 헷갈리기 딱 좋게 되어 있다.
▼ 하산을 시작하려는데 기능을 상실한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띈다. 대신 등산로(다산길 13코스 방향)에 깔아놓은 나무를 치우지 말라는 부탁을 적어놓았다. 오토바이나 자전거의 통행을 막으려는 장애물이란다.
▼ 송능리로 내려가는 하산길(된봉에서 다산길과 헤어진다)은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게 난장판이 아니겠는가. 길바닥이 엉망진창으로 헤집어져 있는 것이다. 아까 된봉을 오르면서 만났던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남긴 흔적이 아닐까 싶다. 이래서 누군가는 조금 전과 같은 장애물을 만들었을 게고 말이다.
▼ 깡통로봇을 닮은 바위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그건 그렇고 이 능선은 ‘바로건너산(누가 지었는지 이름 한번 묘하다)’을 넘어 적성교를 거친 다음 송능리(松陵里)로 연결된다. 송능리는 인조반정으로 쫒겨난 비운의 조선 15대 왕 ‘광해군’과 부인 유씨의 묘가 있다. 광해군의 생모(공빈 김씨)의 묘(成陵)와, 광해군의 친형 임해군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자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진행하자 좌측으로 호평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뉜다. 우리가 선택한 하산코스로 중간에 호평터널 상부의 275m봉을 넘기도 한다.
▼ 이후로도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낮추어간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 거의 없는 곱디고운 산길이다.
▼ 산행날머리는 호평 자동차검사소(남양주시 호평동 479-13)
송능리로 연결되는 능선에서 내려선지 30분 남짓. 산길은 또 다시 몸을 나눈다. 이곳에서도 우린 왼편을 선택했다. 이어서 50분 정도를 더 내려서자 주택가에 내려서고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호평자동차검사소’가 나오면서 산행이 종료된다(평내호평역까지 0.7km는 뺐다). 오늘 산행은 4시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은 8,14km를 걸었단다. 아무리 산길이라고 해도 너무 더디게 걸었다. 특히 하산길이 더 더뎠다. 며칠 전 연골주사를 맞은 집사람의 무릎이 아직까지 불편했던 게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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