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22]20년 전 생활글 묶음집 “네 박자 꿍짝”
소위 ‘트로트 4대 천왕’(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가수 송대관(1946년생)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굴곡이 많은 가수였던 만큼 안타까우나, 人命이 在天인 것을 어이 하랴. 들리는 소문으로는, 사기를 당한 배우자의 큰 빚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말년에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매니저도 없이 홀로 운전하고, 전국을 십 수년 동안 누비며, 세자릿수의 빚을 거의 갚았다고도 했다. 지난해 현철(1945년생)에 이어 트로트 가수계에 ‘큰 별’이 떨어진 것이다.
어쨌든,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어느 가수의 별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엊그제(일요일 새벽) 고향 책꽂이에서 발견한, 2008년 나의 졸문들을 엮은 소책자 이야기이다. 17년 전이다. 책을 펴내려고 가편집해 놓은 것으로, 假題가 <네 박자 꿍짝>이었다.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제목을 당시 송대관의 히트곡 <네 박자>에서 딴 듯하다. ‘페이소스가 없는 삶은 앙꼬 빠진 찐빵’이 아니겠느냐며 ‘그 속에 눈물과 웃음이 있고, 그 속에 사랑도 이별도 있’지 않느냐고 써놓았다. ‘그래서 나는 늘 웃고 있고 언제나 울고 있다’는 대목은 지금 생각해도 웃기고 재밌다. 대안으로 생각한 책제목도 그 위에 써 있었는데 영화제목 <흐르는 강물처럼>이었다.
5부로 나누고 69편의 글을 담았는데(226쪽), 이런 글을 내가 썼단 말인가?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록돼 있는데도 글의 주인공이 생각나지 않으니 참말로 고약한 일이다. 벌써 '단기 인지장애'(치매)가 온 것일까? 60여편의 글 주제는 지금처럼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느끼며 쓴 생활글인 것은 변함없지만, 조금은 유치하고 창피한 내용들이 많아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또 하나 느낀 것은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약 20년 전인데도 하나도 변하지 않고 고대로인 것이다. 이것 또한 발전이 없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일관된 것은 있다. 일기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지만, 나의 졸문을 읽고 친구와 지인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만큼은 지금과 같다. “나의 생활글을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아름답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졸문의 캐치프레이즈였던 것같다. 하하.
아무튼, 송대관의 죽음을 계기로, 그가 예전 방송에 출연했을 때의 逸話가 떠올랐다. 그가 졸병으로 군대생활할 때 야간 순찰병이 暗口號을 대라고 하자, 그날의 암구호 ‘열쇠’가 생각나지 않아 쩔쩔매다 순간적으로 열쇠의 사투리 ‘쇳대’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암구호를 모르거나 잘못 대면 射殺해도 무방한, 절체절명의 순간, 사투리를 알아듣은 선임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는 고백에 빠-앙 터진 적이 있다.
전날 숙취로, 일행 3인이 전주 남부시장 <삼번집>에서 콩나물해장국에 모주를 한 잔 하는데, 벽 맨 위에 송대관의 사인 <쨍하고 해뜰 날/삼번집이 최고야/2021.1.8.>이 붙여져 있었다. 전국의 유흥업소나 요식업소에 송대관의 이런 사인이 몇 백 장, 아니 몇 천 장은 붙여 있을 것이다. 나훈아의 거액 부의금이 화제에 올랐다. 데뷔연도가 비슷하고 평소 친했으니 줄만도 하지만, 1억이 아니고 9천만원인 것은 ‘九泉으로 가는 노잣돈’이어서가 아니었을까. ‘통 큰 부의금’임엔 틀림없다.
아무튼, 나는 空前의 히트를 친 <쨍하고 해뜰 날> 노래는 노랫말이 너무 가벼운 것같고 따라 부르기가 어쩐지 좀 거시기했으나, <네 박자>만큼은 노랫말이 마음에 들어 즐겨 불렀던 것같다. 그랬으니 2번째 에세이집 제목으로 생각했을 것이나, 이 책자에 실린 글들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에서 『나는 휴머니스트다』(2008년 펴냄)라는 제목으로 ‘역사적인 빛’을 보게 됐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몇 십 년만에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졸문 엮음집을 보며, 새삼스럽게 송대관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곁들여 <네 박자>를 흥얼거려 본다.
<내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누구나 부르는 노래/내려 보는 사람도/위를 보는 사람도/어차피 꿍짝이라네/꿍짝 꿍짝 꿍짜자 꿍짜 네 박자 속에/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눈물도 있네/한 구절 한 고비/꺾어 넘을 때/우리네 사연을 담는/울고 웃는 인생사/연극같은 세상사/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꿍짜/꿍짜 꿍짜 꿍짜자 꿍자/네 박자 속에/사랑도 있고/눈물도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