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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로렌의 시간 / 기 혁
이곳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이지만, 방바닥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이면 약간의 현실이 묻어 나온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고 불어터진 면발을 드미는 배달원에게 주소의 허구성과 결제의 진정성에 대해 물을 수도 있다. 머리카락을 건지며 국물의 양심에 대해 투덜거리던 친구, 고데기로 말 수 있는 내용이 생각보다 짧다는 애인을 만날 수도 있다. 애인을 사랑한다면 약속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말려드는 것이라는 생각. 이곳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이지만, 그릇을 내다 놓으면 정오의 부재를 담을 수도 있고 쌓여가는 부재를 내려다보며 유년의 담배 연기를 입에 담을 수도 있다. 한 마리 사막여우가 지나간다면 연기는 약간의 현실보다 수다스러울 것. 일요일의 앞마당을 파면 사람이나 들짐승의 머리뼈를 볼 수도 있다. 해골에서 전갈이 나올까 봐 불안하지만, 해골과 전갈 중에 어느 것이 더 무서운지 내 머리는 알지 못한다. TV 속 미라가 자신의 머리카락에 휘감겨 있고 나는 백 년 뒤 자랄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입술을 통과하지 못한 말들이 두피를 꿰뚫는 밤이면 누군가의 현실도 검고 구불거린다. 이곳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이지만, 모래가 다 흘러내린 2분 57초마다 뒤집어진다. 당신과 나의 기다림이 처음 천장을 만들었을 때 유리관을 왕복하는 모래가 보였다. 사막여우는 길들이는 것보다 발달시키는 편이 낫다. 나처럼 아무도 썩지 않은 당신이 사상누각으로 서 있다.
*1934년 여름 스웨덴의 고고학자 폴크 베르그만(Folke Bergman)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탐사하던 중 머리카락과 눈썹이 그대로 보존된 청동기 시대의 미라를 발견한다. 중국에서 발견된 백인 미라로서 소하공주(小河公主) 혹은 소하미녀(小河美女)라고 알려졌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치즈 덩이가 안겨 있었다. 같은 해 가을 이탈리아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이 태어났고, 후대의 연구자들이 미라에 배우의 이름을 딴 별명을 붙였다. 그녀의 배우자가 사망한 현재까지도 소피아 로렌은 생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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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공주(小河公主, 영어: Princess of Xiaohe) 2003년 뤄창현 롭누르 고대도시 룰란에서 서쪽으로 102km 떨어진 샤오허 공동묘지 M11호분에서 신장고고학연구소 고고학팀에 의해 발굴되었다. 아래에 설명된 대로 1934년에 발견되었다. 그녀는 아마색 머리카락과 긴 속눈썹을 가지고 있으며 펠트 모자를 쓰고 모직 망토, 금 귀걸이, 모직 로프 목걸이, 하체에 레이스 업 스커트, 안감 가죽 부츠를 신고 있다. 맑은 밀과 기장을 담은 짚 바구니와 함께 마황의 가지를 옆에 둔다. 소하공주는 어떤 박물관에도 상설 전시되지 않는다. 2010년 그녀는 캘리포니아 산타아나에 있는 Bowers 박물관, 휴스턴 자연과학 박물관, 펜실베니아 대학교 고고학 및 인류학 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2019년 그녀는 북경대학교 Arthur M. Sackler Art and Archeology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전에 호출됨 소하공주(小河公主, 영어: Princess of Xiaohe) 또는 소하미녀(小河美女, 영어: Beauty of Xiaohe)는 1934년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타클라마칸 사막의 누란고성 북부 150m지점에 위치한 바인궈렁 몽골 자치주 뤄창 현 샤오허 강변 샤오허 묘지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백인 여성 미이라이다. 사망 당시 연령은 20세~40세 사이였다.
탄소연대 측정 결과 여성 미이라는 기원전 1900년에서 기원전 1613년 무렵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털과 눈썹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여성 골격의 이목구비가 뚜렸하였으며, 광대가 튀어나왔다. 치아, 속눈썹까지 그대로 보존되었으며, 코카서스 인종에 해당된다. 그녀의 출신과 생애,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에게 샤오허의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다른 별명은 미소공주(微笑公主)이다.
깃털이 꽂힌 흰 털모자와 가죽으로 된 옷, 흰색 가죽 털신발을 신고 있었으며, 미이라의 상체 부위에서는 치즈가 함께 발견되었다. 첫 발견 당시 미이라는 배를 뒤집은 모양의 관에 누워있었다. 간혹 타클라마칸 사막의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누란미녀와 혼동되기도 한다.
개요
1934년 여름 스웨덴의 고고학자 폴크 베르그만(Folke Bergman)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끼고 있는 중국 타림 분지(塔里木)의 샤오허(小河)에서 처음 발견했다. 미이라는 신장의 바인궈렁 몽골 자치주 뤄창 현 라부파지구(罗布泊地区) 공작하(孔雀河) 남쪽 60km 지점, 누란 고성 유적지 서쪽 175km 지점의 소하 묘지에서 배를 뒤집은 모양의 관곽에 누워 있었으며, 관 뚜껑은 흙으로 만든 벽돌 몇 개로 덮여 있었다. 치아와 입술은 물론 머리카락과 눈썹까지 남아 있었다. 그녀는 배를 뒤집은 듯한 모양의 관에 누워 있었으며 헝겊에 쌓여 있었다. 그녀의 생애와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종은 몽골로이드가 아닌 코카서스 인종으로 확인되었다. 1927년부터 소하묘지는 스웨덴인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소하묘지 근처에서는 167구의 미이라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2000년 신장(新疆)고고학 연구소에 의해 위치가 재확인됐다.
함께 발견된 미이라들을 검시한 결과 2010년 3월 17일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지린(吉林)대학 고고유전자 연구팀이 샤오허 미라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서양과 동양의 유전자를 모두 지닌 혼혈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미이라들은 부계로는 켈트와 스칸디나비아반도 계통이었고, 모계로는 mtDNA 분석 결과 북유럽계와 남부 시베리아의 아파나시에보 문화의 집단과 유사하였으며, 일부 모계를 통해 동아시아계통의 혼혈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하공주가 발견된 지점은 누란고성 서쪽 100m에 있는 라부파(罗布泊) 지역의 샤오허 묘지(小河墓地)에서 발굴되었으며, 그처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소하공주의 미라는 털모자를 썼고, 헝겊에 신체부분을 감싼 채로, 배를 뒤집은 듯한 모양의 관에 안치된 상태였다.
특징
피부는 흰 피부의 백인종이었으며, 머리카락은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오똑한 콧날과, 아래턱 뒷부분이 약간 발달되었다.
그녀는 얼굴 피부는 말라서 수축됐지만 놀랍게도 긴 속눈썹을 붙이고 깃털 꽂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피부는 흰 피부였으나 후에 보존 잘못으로 일부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다. 머리카락은 붉은 머리카락으로, 켈트 또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카락은 삼단 같은 머리채와 머리결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사망 당시 나이는 20~40세 정도의 여성이었으며, 코카서스인의 특징을 지녔다. 전반적으로 유럽계 인종의 특징을 지닌 코카소이드이며, 부계 선조들은 흑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모계를 통해 동아시아인 계통의 혈통이 일부 섞여 있었다. 양털로 된 모자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옷 위에는 헝겊으로 덮여 있었으며, 발에는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다. 시신의 모자에는 깃털이 꽂혀 있었는데, 여성이 사망할 당시는 가을이나 겨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의 출신과 생애,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사인은 난산으로 인한 산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900년 경에서 기원전 1613년 경 혹은 기원전 1450년 경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라가 38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뛰어 넘어 생전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화학적으로 처리한 이집트의 미라와 달리 타클라마칸 사막의 건조한 기후가 자연적으로 사체에서 수분을 증발시켰기 때문이다. 배를 거꾸로 뒤집은 형태 비슷한 관곽에 뚜껑은 타일처럼 여러 겹 연결된 뚜껑으로 덮여 있었으며, 그 관뚜껑을 덮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은 폴 베르크만이 발견할 당시에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치즈 화석
소하공주로 알려진 이 여성의 미이라에서는 목 주변에 나무모양의 물질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는 치즈로 확인되었다. 이는 사자가 사후세계에 도착하기 전까지 식량으로 삼으라는 뜻에서 함께 매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모의 이목구비로 주목받은 소하공주의 미라는 신장의 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이후 세계 각지로 순회전시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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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Loulan_beauty_closeup.jpg
타림 미라, 소하공주[1]
소하공주(小河公主)는 1934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소하 묘지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이다. 별칭은 소하미녀, 샤오허(小河: 소하)의 소피아 로렌[2]이다. 치즈 덩어리가 함께 묻혀 있었다.
2. 상세
1934년 여름 스웨덴의 고고학자 폴케 베리만(Folke Bergman)[3]이 뤄창 현 라부파 지구(罗布泊地区) 공작하(孔雀河) 남쪽 60km 지점, 누란 고성 유적지 서쪽 175km 지점의 소하 묘지에서 배를 거꾸로 뒤집은 모양의 관에서 발견했다. 발견 뒤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주변 지역을 발굴하면서 유명해졌다.
2010년 중국 지린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소하공주와 그녀의 주변에서 발견된 다른 미라들은 켈트계와 스칸디나비아계 혈통이라고 추정하였는데 켈트족, 라틴계 민족들과 동계로 추정되는 토하라인이었으리라고 여겨졌다. 소하공주 본인은 여기에 유라시안임이 그동안의의 통설이었다.# 특히 털모자나 치즈 등을 통해 이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의 후손이 아닌가 추정해왔다.
그러나 2021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대학 정충원 교수 연구팀과 중국 지린대학,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소하리 묘역에서 발굴된 5구의 미이라의 유전자 연구를 통해 이들 일족이 역사 시대에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 된 토착민의 후손임을 밝혀냈다. 무려 빙하기(플라이스토세) 말 이주하여 정착한 고대 인류인 고대 북유라시아인[4] 계통 민족의 후손이라는 것. 즉 이들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아니라 북방 타이가 지대의 수렵인류 후손이라는 것이다.(기사)
실제 지위가 공주였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별명이 소하공주인 셈이다. 다만 아래 발굴 과정에서 보듯 관 위에 갓 잡아서 피가 뚝뚝 흐르는 소 털가죽을 덮었고, 꽤나 정성 들여 미이라로 만든 것을 보면 상당히 부유했던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이 당시 장례 풍습이 신분에 관계 없이 저 정도는 해 준 건지, 아니면 이 미이라의 주인이 지체 높은 집안 여성이어서는 알 수 없으나 대개 "산업 혁명 이전 시기 문명 사회는 물산이 빠듯했기 마련이라 이 정도면 공주가 아니었을까?"하고 후대 사람들이 추측해 보는 것.
위의 그림은 그녀의 생전 모습을 추측해 재구성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 그림이다. 중국 웹상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실제 해부학적 근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인지 불분명하며 발굴 당시의 모습[5]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서는 미라가 더 심한 곱슬 머리인데 비하면 곱슬기가 줄어 있다.
이 그림은 소하공주가 아닌 누란의 미녀 미이라의 복원 그림에 가깝다. 그런데 얼굴, 머리카락은 소하공주를 더 닮았다. 즉 위의 상상도와 털모자를 썼다는 설명을 포함해서 나무위키 안에서도 혼동되고 있다. 간단히 구분하면 풍성한 긴 곱슬머리에 턱끈 있는 깃털 달린 푹신해 보이는 밝은 모피 모자를 쓴 쪽이 누란의 미녀, 직모 앞가르마에 후드 모자 비슷한 스카프 같은 것을 쓰고 머리카락이 덜 보이는 쪽이 소하공주다. 두 미이라는 발굴 장소가 173km나 떨어져 있고 발견 시기도 47년이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현재 사막화 된) 신장 지구라는 공통점, 중국 영토이지만 코카소이드 비슷한 모습인 점[6], 기원전의 잘 보존된 상태의 여성 미라였다는 것 때문에 혼동되고 있다.
또 다른 소하리 묘지 유적에서 발견된 미이라들의 발굴 과정이 신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이 영상에서는 60대 여성과 20~40대 여성으로 보이는 두 구의 미이라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 미이라도 소하공주 못지않은 미인이다.(28:00) 미라 옆에 놓여져 있던 직물 바구니에는 밀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소하 묘지 근처에는 말라 비틀어진 강바닥[7]과 회양나무가 말라 죽은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으며, 소하 묘지도 회양나무 기둥으로 만든 것이다. 거기에서 대량의 낙엽층이 발견되었고 위 영상의 미이라들도 소가죽으로 관을 감싼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 지역에 물이 풍부했고 농경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다. 실제로 소하 유적에서는 기둥에 매어진 쇠뿔도 발견되었다.
또한 소하 묘지 발굴 과정에서 이들 낙엽층은 최상층부터 맨 아래쪽까지 약 1.5m에 걸쳐 층층이 쌓인 채 발견되었다. 소하 묘지가 단시간에 건립된 게 아니라 묘지를 조성해 놓고 수십 년 내지 수백 년 동안 아주 오래도록 사용되었다는 증거로 보인다. 실제로 20대 여성 미라는 실크로드 번영기인 기원전 후(한나라 시대)보다도 2천년이나 더 아래쪽, 즉 도합 4천년 전 지층에서 발굴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