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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엽기 혹은 진실 (세상 모든 즐거움이 모이는 곳) 원문보기 글쓴이: 레고 경비원
[자료(영상) 출처 : 유튜브]
[작성자 및 자료(글)출처 : 엽혹진 '레고 경비원']
- 사람의 마음을 읽는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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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멈추는 목걸이
http://cafe.daum.net/truepicture/Qt7/960803
- 시간 여행을 해주는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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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탄 : "최후의 인간" (어느 날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면? + 세계가 멸망해서 나 혼자만 남는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11845
- 2탄 : "거래" (당신이 오늘 죽는다면? + 영생을 누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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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탄 : "운명" (저희 술집을 사실래요? + 적힌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포춘 쿠키가 있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Qt7/979154
- 4탄 : "능력" (악몽이 현실이 된다면? + 초능력자가 지체 장애를 가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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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탄 : "외계인" (어느 날 외계인을 목격했다면? + 외계 대사가 지구에게 마지막 하루를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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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탄 : "선택" (내가 원하는 부모를 고를 수 있다면? + 돈을 선택하면 사람이 죽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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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탄 : "이상세계" (내가 재능인 취급받는 세계로 간다면? + 내 꿈이 이뤄진 세계로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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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탄 : "중독" (내가 슬롯머신에서 돈을 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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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탄 : "외모" (성형수술이 계속 실패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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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탄 : "꿈" (꿈 속 마을로 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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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탄 : "외계인" (우리 집에 외계인들이 쳐들어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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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탄 : "소원" (어느 날 지니가 나타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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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탄 : "의문" (영문도 모른 채 내가 바다 한 가운데 여객선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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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탄 : "사랑" (생각하는 기계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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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탄 : "인간" (우주 개척지를 찾아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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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탄 : "TV" (흑마술을 가르쳐주는 어린이 프로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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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탄 : "시간" (시공간을 만드는 인부들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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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탄 : "행복" (가족들의 말과 행동이 자꾸만 반복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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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탄 : "자동차" (옛날 차를 타고 과거로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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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탄 : "가족" (인형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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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탄 : "미래" (국가에서 지능 시험을 치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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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탄 : "공포" (사람이 없는 마을에 단 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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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탄 : "비일상" (갑자기 단어들의 뜻이 뒤죽박죽으로 바뀐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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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탄 : "발전" (사람이 모두 굳어버린 행성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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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탄 : "꿈" (내가 사는 세상이 그저 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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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탄 : "욕망" (100년후의 세계에서 눈을 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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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탄 : "사랑" (구두에 영혼이 들어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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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탄 : "공포" (집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 할머니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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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탄 : "도서관" (사람의 삶이 적힌 책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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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탄 : "행복" (내가 천국에 가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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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탄 : "생명" (미친듯이 글만 쓰는 아이가 있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0086
- 34탄 : "태양" (지구가 태양과 점점 가까워진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0250
- 35탄 : "진실" (폐점된 상가에서 누군가 계속 날 쫓아온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0650
- 36탄 : "시간" (시간을 멈추는 초시계가 생긴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0782
- 37탄 : "시간" (내 물건들이 사라진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q3PW/1399
- 38탄 : "시작" (환상특급 극장판 : 프롤로그)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0893
- 39탄 : "인간" (환상특급 극장판 : 내가 과거로 날아가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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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탄 : "황혼" (환상특급 극장판 : 깡통차기 놀이를 하면 어려진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1000
- 41탄 : "행복" (환상특급 극장판 : 수상한 가족들이 사는 집에 갇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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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탄 : "공포" (환상특급 극장판 : 비행기 위의 괴물이 나한테만 보인다면? + 에필로그)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1150
- 43탄 : "우주" (소인(小人)들이 사는 행성을 찾는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1164
- 44탄 : "젊음" (마시면 젊어지는 물이 있다면?)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21336
안녕하세요? 또 다시 약 2, 3주만에 돌아온 '레고 경비원'입니다!
군대에서 친구가 휴가를 내려온 덕에 같이 놀고
10월 말 까지 마감인 공모전들에 낼 글을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더 일찍 돌아오지 못하고 오늘에야 만나게 됐네요...
사실 그 빈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게끔
어제 공포방에 '어떤 무죄'라는 글을 올렸는데
반응이 역시 시원치않네요 흠흠...
(블로그에선 '환상특급보단 재미없다'고 까이기까지...ㅠㅠ)
아직 세 번밖에 안 올렸는데 올릴 때마다 이렇게 까이느니
'포토 스토리'는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52. 그 집의 피아노
어느 한 골동품 가게에서 시작되는 오늘의 이야기.
저명한 문학 평론가인 주인공 '피츠제럴드 포춘'이 가게에 발을 들입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고 소리쳐봐도
가게 주인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게 안으로 들어가 여기 저기 둘러보던 그 때,
사다리를 타고 선반 위 물건을 손질하는 가게 주인을 발견!
"실례합니다. 저는 '피츠제럴드 포춘'이라고 합니..."
"관심없소."
"... 그럼 지금 영업 중이신 게 맞습니까?"
"그렇소만."
"오늘이 제 아내 생일이라 그런데,
혹시 신기하거나 재미난 물건이 없을까요?"
"그런 건 모르겠소.
적당히 둘러보다 가쇼."
하지만 물건을 팔 마음이 있기는 한건지
가게 주인은 수건으로 열심히 가면만 닦으며
포춘이 온 것이 전혀 반갑지도 기쁘지도 않다는 태도였습니다.
"그럼... 악기 같은 건 없습니까?
피아노라던가..."
"흠... 그런 거라면 하나 있던 것 같기도 한데
안 써본지 몇 년은 됐소."
"좋습니다. 그게 어디 있죠?"
가게 주인은 귀찮다는 듯 사다리에서 내려오더니
포춘을 앞장서서 가게 구석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거기에는 뭔가 거대한 것이 천막에 씌워져 방치돼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이 천막을 걷자 드러난 것은 바로 '자동 피아노'!
두루마리 형태로 된 악보를 기계 장치에 끼워서 작동시키면
악보에 맞춰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였죠!
가게 주인은 피아노가 잘 작동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스위치를 켰고,
피아노는 아무 이상 없다는 듯 건반을 움직이며
산뜻하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까칠하던 가게 주인은 갑자기 온화한 미소를 짓더니
아까까진 관심도 없던 포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래서 아내 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올해로 26살입니다."
"아~ 정말 젊군요! 앞으로 즐거운 날들이 얼마나 많을지!
매년 이렇게 생일 선물을 챙겨주시나요?"
"물론이죠. 저흰 매년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벌여왔답니다."
"아~ 어쩜 이리도 낭만적일까!
오늘도 이 선물을 받고 기뻐해주겠죠?
괜히 저까지 기대가 되네요!"
포춘은 난데없이 돌변한 가게 주인의 태도에 당황하면서
일단 이야기를 본론으로 돌려놓았습니다.
"... 저기, 그래서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원래는 250달러에 팔려고 했던 물건입니다만,
즐거운 날에 큰 부담을 져선 섭하겠죠?
그냥 50달러만 주시면 집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어... 감사합니다."
"참! 괜찮다면 제가 아내 분의
생일 축하 카드를 써드릴까요?
그리고 피아노와 함께..."
그런데...
두루마리 악보가 끝나자, 피아노는 연주를 멈추고
다시 악보를 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멈춤과 동시에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피아노를 바라보는 가게 주인...
그리고 그가 다시 포춘을 바라본 순간,
가게 주인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인상을 쓴 채
까칠하게 말했습니다.
"가격은 250달러요."
"...네? 아깐 50달러라고..."
"50달러?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걸 50달러에 넘기겠소?"
"저기... 일단 저희 집 주소는 여기 적어놨는데...
아내 생일 축하 카드는 어디 넣어주실 거죠?"
"축하? 무슨 헛소리요?
내가 그런 짓 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집까지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소!"
심지어 방금 자신이 했던 말조차 잊었다는 듯이
포춘의 말을 모두 부정하는 가게 주인...
그는 포춘의 집 주소가 적힌 종이를 낚아채고는
계산대로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가게를 나서려는 순간,
포춘은 가게 주인이 왜 그렇게 돌변한 건지,
혹시 피아노와 관계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의문을 품었죠.
"마빈!"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잠시 후, 외출을 마친 포춘은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집 안에선 골동품 가게에서 산 피아노와
집사인 마빈이 그를 맞이해주었죠.
마빈은 포춘의 지팡이와 모자, 장갑을 건네받고
옷장으로 향하려는데,
포춘은 그런 마빈을 잠깐 멈춰세워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빈, 자네 좀 웃을 수 없나?
오늘은 생일 파티 날인데 그렇게 침울한 표정이어서야
분위기가 다 깨잖나!"
"...노력해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죠...ㅋ
"어서 와요, 여보."
그리고 이어서, 부엌에서 나타난 포춘의 아내 '에스더'가
그의 뺨에 입을 맞추며 남편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자마자
포춘은 진지한 태도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보, 오늘 파티 시간 동안
잠시 마빈을 어디 보내놓으면 안 될까?"
"왜요? 마빈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
"그게 아니라, 너무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하잖아.
저걸 봐! 저런 표정으로 술이며 음식을 서빙하다간
즐거운 분위기가 어떻게 될런지!"
하지만 에스더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 기색이었습니다.
"괜찮아요. 저러는 게 오히려 마빈다운 걸요.
그리고 친절하게 맡은 일을 잘 해내잖아요.
아마 파티 분위기가 가라앉을 일은 없을 거예요."
"아 참, 파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피아노 들인 거 봤어? 당신 선물이야."
"네, 아주 좋아 보이던데요?"
"연주는 해봤고?"
"... 여보, 저 피아노 칠 줄 모르는 거 알잖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
포춘은 아내를 위해 피아노를 샀지만
정작 아내는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 잘 알지. 그래서 산 거야.
당신은 그야말로 연주할 수 없는 피아노거든.
당신이 뮤지컬을 하겠다고 나서는 꼴을 보면 항상 그래.
겉보기엔 고상하고 우아하지만
거기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나오지 않아.
대신 악기도 다룰 줄도 모르는 꼬맹이가 서투르게 두드리는 것마냥
음악이라 부를 수도 없는 것들만 가득 흘러나오지."
"여보... 그 이야기는 이제 됐어요..."
그렇습니다...
사실 아내인 에스더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포춘은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내를 북돋아주진 못할 망정,
문학 평론가라는 직업대로 아내의 실력을 냉혹하게 비판하기만 했죠...
피아노를 선물한 것도 사실상 에스더가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것,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겠다는
흉악한 뜻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저 피아노는 당신이랑은 달라서
악보만 끼우면 알아서 멋진 음악을 연주해주니까!
연주할 수는 없어도 좋은 장난감 정도는 될테지.
그러니까 내 앞에서 뮤지컬 하겠다는 말은 그만두고
앞으론 집에서 피아노 소리만 들어. 알았지?"
"......
네...
고마워요, 여보..."
에스더는 서운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남편 앞에서 큰 소리도 치지 못하고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내뱉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 보자... 그 가게 주인이 뭘 눌렀더라?"
한 편, 마빈은 두 사람에게 대접할 물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포춘은 에스더가 서운함에 빠지던 말던 상관하지 않은 채
에스더에게 피아노의 음악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기계 장치를 여기저기 만져보았습니다.
이어서 에스더까지 옆에 앉아 피아노를 여기저기 만져본 끝에,
드디어 피아노가 작동되면서 두루마리 악보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가게에서 들었던 음악과 비슷하지만 다른,
발랄하고 유쾌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죠.
"고마워요, 마빈."
그리고 그 때, 마빈이 물컵 두 잔을 얹은 접시를 슬며시 건넸습니다.
에스더는 물컵을 집어서 한 잔은 포춘에게 건네고
다른 한 잔은 자신의 입에 갖다 댔습니다.
"... 마빈? 어떻게 된 거예요?"
그런데...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무언가를 보고 충격을 받은 에스더...
그 반응에 포춘 또한 그 시선을 따라가는데...
물을 건넨 마빈은... 웃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전 평소와 똑같습니다!"
평소엔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 벌어지자
놀란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웃고 있잖아요?"
"제가요?"
"여태 한 번도 안 웃던 자네가 어떻게?"
"어떻게라니요? 행복하니까 웃는 거랍니다!"
"말도 안 돼!
늘 웃으라고 가르쳐도 웃질 못했는데...
대체 뭐가 행복해서?"
"모든 게 다 행복합니다!
이런 멋진 저택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주인님 두 분을 모시며 산다는 것!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제 삶, 제 직업, 제 가족!
모든 게 다 행복합니다!"
그러자 그 모습에 두 부부의 얼굴에도
점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에 겨워 신이 난 마빈은
난데없이 손에 쥔 접시를 잡고 빙글빙들 돌며 춤을 추다
소파에 발이 걸려 벌러덩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당황하기는커녕 여전히 행복하다며
계속 웃어댔고,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에스더와 포춘 역시 박장대소를 했죠 ㅋㅋ
그런데...
피아노의 연주가 끝나면서 음악이 끊기는 순간...
미친듯이 웃던 마빈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잠깐 정신을 잃었던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습니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 흐트러진 정장을 가지런히 하고
다시 원래의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난동을 부린 것 같군요."
"아니, 마빈. 괜찮네. 자네는 우릴 즐겁게 해줬어."
마빈은 부끄러웠는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아까 춤을 출 때 떨어트린 접시를 주워 조용히 주방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물론 에스더는 아직도 방금 일어난 일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대체 마빈이 어떻게 된 거죠?"
"아직은 확신하기 힘들지만,
이 피아노 덕분인 것 같아."
에스더는 마빈이 쓰러질 때 흐트러진 쿠션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고,
포춘은 피아노 위에 잔뜩 늘어져 있는 두루마리 악보들을 만져보며
아까의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아까 이 피아노를 사러 갔을 때 가게 주인도 그랬어.
나한테 아주 퉁명스럽고 까칠게 대하던 양반이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갑자기 상냥하고 감성적으로 굴더군."
"그래서요?"
"이 피아노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마음 속에 감춰놓고
잘 드러내지 않는 감정들을 일깨우는 힘이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렇다는 얘긴... 음악을 바꾸게 되면
다른 감정도 깨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면서 포춘은 이번엔 에스더의 마음 속에 숨겨진 감정을 꺼내보려는 의도로
새로운 악보를 끼워 음악을 재생했습니다.
그러자 피아노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바로,
'조르쥬 치프라 (Georges Cziffra)'의
'칼의 춤 (Sabre Dance)'...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피아노의 선율을 듣자,
에스더는 갑자기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몸을 움찔거리며 어떻게든 입을 막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곧 그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포춘을 바라보더니 날카로운 어조로 나지막이 말했죠.
"쌍놈...!"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온 욕...!
에스더는 화들짝 놀라며 애써 입을 막았습니다만
이미 입에선 포춘을 경멸하는 한 마디가 새어나온 상황!
하지만 포춘은 그 말에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에스더가 무슨 감정을 숨겨놓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피아노 연주가 계속되자,
에스더는 더 이상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는지
애써 포춘을 바라보지 않는 상태로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무 어리고 어리석었지!
당신 같은 남자랑 결혼하다니!
좀 더 세상에 어떤 남자가 있는지 알아보고
잘 생각했어야 하는 건데!
아직 어리고 사람도 볼 줄 모르는 나이에
하필이면 많고 많은 남자들 중 당신을 골랐어!"
"지난 6년 간의 결혼 생활 동안
단 하루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
아니, 행복한 일은 있었겠지!
하지만 그건 다 당신이 없었을 때 뿐이라고!
어째서 나를 그렇게 홀대하는 거야?
아니, 나 뿐만이 아니야!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
모든 사람이 다 형편없고
자기보다 못났다는 식으로 생각하잖아!"
그저 조신하게 생활하면서 감춰왔을 뿐,
역시 에스더는 남편인 포춘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난 당신이 미워!
자기 밖에 모르는 당신이!
사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당신이!
누구 하나 따뜻하게 대해줄 줄 모르는 당신이!
미워! 미워! 미워! 미워!
밉다고!!!!!!"
조금 더 감정이 과잉됐다간
이대로 죽여버릴 듯한 기세로
포춘에게 고함을 지르며 다가오는 에스더...
그러나 포춘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피아노의 스위치를 눌러 음악을 멈추는 포춘...
에스더는 음악이 멈추는 순간 정신을 되찾았지만
그 대신 방금 전 자신의 본심을 포춘 앞에 낱낱이 털어놓았다는 생각에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에스더는 잠시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소파에 앉아 말했습니다.
"미, 미안해요, 여보...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왜긴? 내가 했으니까!
아니지, 정확힌 이 피아노가 한 거겠지만?"
누구나 마음 속에
폭군이 있고,
성자가 있고,
노인이 있고,
어린 아이가 있지만
그저 어떤 감정은 강하고
어떤 감정은 약할 뿐...
그리고 그런 개개인의 감정 차이가
비로소 한 사람의 '성격'이 되는 것!
이 피아노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 중,
너무나 약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너무나 강하지만 꽁꽁 숨겨진 감정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까칠한 가게 주인이 감성적으로 변하고,
무뚝뚝한 집사 마빈이 즐거움에 웃음짓고,
조신한 아내 에스더가 분노를 참지 못하게 된 것도 모두 그 덕분!
(누가 대통령 담화 열릴 때 저 피아노 좀 옆에 갖다놔라...)
하지만 대인 관계에서 부정적인 마음을 숨기는 것은 몹시 흔한 일인지라...
에스더는 혹시 자신처럼 괜히 숨은 감정을 드러내서
관계가 악화되는 일이 일어날까 우려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다시는 피아노를 작동시키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포춘은 그러겠노라 답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재미난 장난감이 생깃 것 같다며 즐거워했죠.
잠시 후, 에스더가 방으로 떠나 있는 사이
생일 파티의 첫 손님이 찾아옵니다.
오른 팔엔 선물 상자를 끼고 마빈에게 코트를 건넨 그는
포춘, 에스더와 친분이 있는 극작가 '그레고리 워커'였습니다.
그레고리는 친구인 포춘에게 다가가 인사했습니다.
"잘 지냈나, 제럴드?"
"그레그! 어서 오게나."
"에스더는 어디 갔지? 오늘 생일 파티의 주인공인데?"
"잠깐 일이 있어서 방으로 갔네. 별 일 아니고
조금만 있으면 돌아올테니 걱정 말게나."
포춘은 마빈을 시켜 술을 한 잔씩 따르게 한 뒤
그레고리와 함께 술을 한 잔 걸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작품 활동은 어떻게 되가나?"
"그게... 사실 잘 안 되고 있네...
이걸 슬럼프라고 해야 하나,
자네가 지난번 내 작품에 혹평을 남긴 탓에
곳곳에서 내 작품이 무시당하고 있네...
이젠 아무도 내 희곡을 받아주려 하지 않아서
요즘은 선뜻 작품을 쓰기도 어렵네..."
그렇습니다...
아내 뿐 아니라 친구에게도 냉혹한 남자, 포춘...
그는 친구인 그레고리가 쓴 작품을 형편없다고 일갈,
명성이 자자했던 포춘의 신랄한 비판을 들은 시민들이
그 말에 동조하여 그레고리는 밑바닥으로 추락했고
사람들 사이에선 한 물 간 극작가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춘은 에스더가 없는 틈에 한 가지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니...
자신이 손에 넣은 신비한 피아노를 그레고리에게도 사용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자네 오늘따라 유난히 즐거워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포춘은 은근슬쩍 피아노로 다가가더니
슬슬 작전을 실행에 옮기려 했습니다.
"이것 덕분이지. 내가 에스더를 위해 장만한 피아노라네.
누가 연주할 필요 없이 악보만 넣으면 알아서 연주해주니,
파티 때 켜놓으면 아주 좋을 걸세.
한 번 들어볼텐가?"
"그러지."
"그거 다행이로군. 그럼 거기 편히 앉아 들어보세.
내가 특별히... 자네를 위해 준비한 음악이니까!"
그러면서 포춘은 피아노의 스위치를 켰습니다...!
그러자 피아노에서는 마치 사랑하는 두 남녀가
춤을 추는 듯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순간 갑자기
어떤 감정이 북받쳐올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레고리...
"어떤가? 로맨틱하지 않나?"
"......
에스더가 그 선물을 좋아하던가?"
"흠... 뭐, 그렇다네. 꽤 열광적이었지."
"아니... 자넨 에스더를 잘 몰라.
선물의 크기나 가치가 아닌,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아는 멋진 여자야.
에스더라면 분명히 멋진 풍경이 찍힌
사진 한 장 정도로도 만족할 걸?
아직도 기억이 나는 군.
백화점 잡지 책을 둘러보면서
다이아 같은 온갖 보석이 있는 페이지를 다 건너뛰고
아름다운 꽃이 있는 부분만 열심히 살펴보고 있었지."
음악을 통해 드러난 그레고리의 숨은 감정,
그것은 바로 '사랑'! 그러나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드러내선 안 되는 금지된 감정이었습니다...
그레고리가 비밀을 솔직히 드러내기 시작하자,
포춘은 감춰져 있던 진실을 더 많이 듣기 위해
살짝 떠보는 듯 말했습니다.
"이상하군? 내가 백화점 잡지에서 찾은
보석이 박힌 반지를 하나 사서
선물해줬더니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던데?"
"자넨 항상 그랬지.
좋은 옷과 장신구를 사주는 것도
물론 여자가 바라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 대신 자네는 사랑을 주지 않아.
연인은 돈과 물건만 건네주면 그만인 관계가 아니라고.
에스더는 자네에겐 너무 과분하고 멋진 여자야.
자네보다 더 좋은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남자를 만났어야 했어."
그런데 이 때, 방에서 마음을 진정시킨 에스더가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레고리는 그녀가 돌아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고,
포춘 또한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레그, 그러는 자네는
내 아내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안다는 거지?"
"사실, 우린 자네가 홀로 집을 비울 때면
몰래 만남을 가져왔었네.
최근엔 자네가 휴양지로 떠났을 때,
에스더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남았고
그 덕에 우리 둘은 자네가 돌아오기 전 까지 함께 지냈..."
"그레그! 멈춰요!"
남편 몰래 밀회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순간,
에스더는 허둥지둥 피아노로 달려가 스위치를 껐습니다.
"저런! 아쉬워라!"
음악이 끊김과 동시에 정신을 되찾은 그레고리...
그는 둘만의 비밀을 포춘이 알아버렸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일단은 포춘이 아닌 에스더를 바라보며 사과했습니다.
"에스더... 미안해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괜찮아요. 그냥 잊어버려요."
그런데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밝혀진 와중에도
포춘은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둘이 자신 몰래 만나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기 때문...
굳이 로맨틱한 음악을 틀어서 그레고리의 '사랑'의 감정을 꺼내게 만든 이유도
자신이 아는 게 어디까지인지, 자기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죠...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에스더는
포춘에게 다시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여보... 부탁이에요. 더 이상 이 피아노를 쓰지 마요."
"왜? 재밌잖아? 남들이 감춰둔 비밀을 들을 수 있다니,
이보다 재미난 유흥거리가 어디 있겠어?"
"이건...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때론 모르는 게 나은 진실도 있는 법이에요.
누군가의 본심을 안다는 건,
자칫 잘못했다간 그 사람과의 관계까지도
위험해지는 거라고요."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럼 피아노는 더 이상 손대지 않기로 하지."
포춘이 그렇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넘기는 순간,
갑자기 파티에 오기로 했던 다른 손님과 친구들이
모두 선물 상자를 하나씩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세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죠.
"어머나! 어쩜 이리 맛있게 생겼는지!
오늘부터 다이어트 하려고 했는데 내일로 미뤄야 겠어!"
손님들이 모두 모이자 본격적으로 생일 파티가 시작!
다들 술이나 과일 같은 걸 먹으며 즐겁게 담화를 나누고,
집사 마빈은 과자가 담긴 식판을 서빙하며 돌아다녔으며,
손님들 중 유일하게 통통한 체형을 소유한 '마지'는
맛있는 쿠키를 원없이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렇게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갑자기 포춘이 앞으로 나오더니 모두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럼 지금부터 재밌는 게임을 시작하도록 할테니
모두 가까운 자리에 앉아주시죠!"
"재밌는 게임이 뭔데요?"
"그건 곧 알게 될겁니다, 마지."
손님들은 포춘이 대체 무슨 게임을 준비했는지
잔뜩 궁금해하며 자리에 앉기 시작하고, 포춘은 당연히...
미리 준비한 두루마리 악보를 손에 쥐며 피아노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무슨 짓을 벌일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두 사람,
에스더와 그레고리는 웃지도 못한 채 말없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럼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해보도록 하죠!
준비는 간단합니다! 오늘 나의 아내 에스더를 위해 장만한
이 피아노를 작동시키면 음악이 연주될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게임이 시작되죠!"
그러면서 포춘은 마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습니다.
"단, 이 게임에는 한 명의 지원자가 필요한데...
마지! 당신이 아주 딱이로군요!"
"저요?"
그러자 에스더와 그레고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지가 대체 어떤 식으로 감정을 유린당할까 걱정하기 시작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마지는 얼마든지 나서보겠다며
당당히 일어섰습니다...
"좋아요! 그럼 제가 뭘 하면 되죠?"
"간단합니다.
음악을 들으세요."
포춘은 준비한 두루마리 악보를 피아노에 장착,
스위치를 켜자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피아노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바로...
'드뷔시(Debussy)'의
'달빛(Clair de lune)'...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들리기 시작하자,
마지는 마음 속의 아주 아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아니, 잠재울 수밖에 없었던 감정이 깨어남을 느끼며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 난... 난...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포춘은 자신이 무슨 최면술사라도 된 듯,
마지의 비밀을 캐기 위해 물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뭘 하고 싶죠, 마지?"
그러자 마지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밝혔습니다.
"난... 춤을 추고 싶어요.
하지만... 난 뚱뚱해요...
내가 춤을 추는 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뭘 망설여요, 마지?
어서 춤을 춰봐요!"
마지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주변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 채
몸을 돌리며 우아하게 춤을 췄습니다.
하지만 파티에 참석한 자들은 대체 마지가 왜 저러는지도 모른 채
그저 그 육중한 몸짓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웃지 않고 있는 것은 진상을 알고 있는
에스더와 그레고리 뿐이었죠...
춤을 추면서 자신의 감성에 완전히 빠져버린 마지.
그녀는 또 다시 어딘가에 깊이 잠들어 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메는 듯, 눈을 살며시 감고
따뜻하게 미소지었습니다.
피아노가 불러 일으킨 그녀의 감정은 바로,
'희망'...
마지는 나긋나긋 춤을 추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항상 한 송이 눈이 되고 싶었어요...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지 않는 평온한 때에,
하얗고... 아름답게 빛나면서...
우아하게 팔랑거리며 아래로, 아래로...
어디선가 눈길을 걸으며 즐거워하고 있을...
제가 사랑하는 남자의 손바닥 위에 앉아...
그 위에서 그의 온기를 느끼며 따스하게 녹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님들은 누구 하나 웃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지의 이야기에서 '진심'을 느낀 것이었습니다...
춤을 추고 싶다며 여기 저기 몸을 돌린 것도
모두를 웃기려는 장난이 아닌,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모두 숙연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여전히 마지를 비웃고 있는 것은
오직 포춘 뿐이었죠...
잠시 후 피아노의 연주가 끝나고...
이성을 되찾은 마지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이 사람들 앞에서 끄집어내져
조롱과 멸시로 짓이겨졌다는 사실과
여전히 자신을 비웃는 포춘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합니다...
수모를 겪은 마지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말없이 가까이 있는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습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상처줬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다음 악보를 찾아보는 포춘...
에스더는 충격에 빠진 마지를 보자 결국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습니다.
"여보! 이 정도면 충분해요!
피아노는 더 이상 쓰지 마요!"
하지만 포춘은 아내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저 심상치않은 분위기 탓에 자리를 뜨려는 손님들을 말리기 바빴죠.
"걱정 마세요, 여러분! 아무 일도 아닙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죠.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자, 방금 전 순수한 여인의 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셨을 겁니다.
그럼 이번엔 사악한 악마를 한 번 불러내볼까요?"
"여보, 이것 좀 피아노에 끼워줘."
"여보, 제발 그만 해요. 더 이상은..."
"쉿! 쉿! 이거면 분위기가 다시 살 거야."
"여보, 아직도 모르겠어요?
비밀을 드러낸다는 건 남한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거예요.
이 짓을 계속 했다간 모두한테 상처만 남을 거예요.
마지를 봐요... 가엾지도 않아요?"
"거의 다 됐어. 이것만 하고 끝낼게."
그리고 에스더가 뭐라 말하건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자신의 뜻을 이행하려는 포춘...
"자! 기운 내세요, 마지!
이건 그냥 게임일 뿐입니다!"
그리고 포춘은 적당히 웃으며 마지를 대충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에스더는 포춘이 안 보는 틈을 타서,
포춘이 건넨 두루마리 악보를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대신 손에 잡히는 다른 악보를 집었습니다...
그리곤 포춘의 눈치를 살피며 몰래 그 다른 악보를 피아노에 끼워넣었죠...
물론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포춘은
모든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리라 믿는 채,
모두의 시선을 받기 좋은 구석 자리에 서서
마치 자신이 위대한 마술사라도 된 듯 자랑스럽게 외쳤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 모두 파우스트가 되어봅시다!
과연 우리들 중 누가 메피스토펠레스가 될까요!"
그 후 포춘은 손님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피아노가 연주되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악보를 무사히 장착한 에스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피아노의 스위치를 켰죠.
그리고 그 순간 피아노에선 포춘이 준비한 것과
전혀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연주가 시작되자, 포춘은 자신이 알던 곡과
전혀 다른 것이 흘러나왔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 있고,
자리에 있던 손님들은 이번엔 또 누가
마지처럼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일지 궁금해하며
서로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침울하게 앉아 있던 마지가
포춘에게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습니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었죠...
그 모습을 본 모두는 포춘이 자신의 주장대로
'악마'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 악마 씨? 뭐든 말해보세요."
마지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 난 무서워요..."
"뭐가 무섭죠? 악마 씨?"
"... 어둠이 무서워요..."
하지만 잔뜩 겁에 질려 벌벌 떨기만 하는 모습...
그것은 악마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 당신은 악마가 아니잖아요?
당신은...
그냥...
겁먹은 어린 아이 같아요."
그렇습니다.
에스더가 바꿔 끼운 악보는 다름아닌
'브람스 (Brahms)'의 '자장가 (Lullaby)'...
그 음악은 포춘의 마음 속에 숨겨진 감정, '두려움'을 일으켜세웠고,
그 탓에 포춘은 겁에 질린 아이처럼 벌벌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지 말아요... 그건 비밀이에요..."
"자네 비밀을 이야기해주게, 제럴드."
그리고 그 때,
그레고리는 마치 자신들이 당한 것을 되갚아주기라도 하듯
포춘에게 다가가 비밀을 이야기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포춘은 마치 어둠 속에 웅크린 아이처럼
잔뜩 움츠러든 상태로, 아주 조심스럽게 모두를 둘러보았습니다.
"난... 모두가 무서워...
난... 사람들이 무서워..."
포춘은 모두에게 둘러싸인 것을 견딜 수가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벽쪽으로, 피아노 옆으로 몸을 피해
그 뒤에 숨을 기세로 달라붙었습니다.
"내 안에... 겁먹은 어린 아이가 있어...
그 아이는 항상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무서워해...
자기는 꼬맹이라서 그 사람을 뛰어넘지 못하니까...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상처주는 것밖에
못 하는 겁쟁이지..."
"마지... 내가 당신을 괴롭힌 이유는...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외모 때문에 간혹 무시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이나 용기를 잃지 않는 강한 사람이니까...
그 강함이 너무나 부러워서 무너트리고 싶었던 겁니다..."
"그레고리...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사실 지난 번 자네의 작품은 아주 훌륭했네...
하지만 난 형편없다고 거짓말을 했지...
자네에겐 나한테 없는 재능이 있었으니까...
그게 너무 부러워서, 그걸 감추려고
자네 이름을 먹칠했지..."
연이은 폭로에,
남는 것은 상처 뿐...
마지는 걱정어린 눈길로 모두를 향해 말했습니다.
"저기... 우리 아무래도 이만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결국 포춘의 본색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모두 실망을 표하며 자리를 떠났고...
에스더는 자신을 향한 마음은 과연 어떠한지를
확인하고자 가만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에스더... 당신은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 중 하나야...
당신은 사랑과 함께 날 찾아왔지만...
솔직히 난 당신을 사랑할 자신이 없어...
게다가 당신이 날 사랑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하찮은 감정이라고만 느껴지지...
그런데도 부부라는 이유로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으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두려워..."
결국 저택에 남은 것은 포춘, 에스더, 그리고 그레고리 뿐...
그레고리는 떠나려는 순간 에스더를 향해 물었습니다.
"에스더. 저와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에스더는 남편인 포춘과 그레고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에스더의 선택은 그레고리를 향했고,
그녀는 도망치듯 문으로 달려가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자
포춘은 절규하며 소리쳤습니다.
"모두 어디 가는 거야! 돌아와!
날 떠나지 마!"
하지만 끝내 아내마저 떠난 문이 굳게 닫히고...
방에는 포춘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혼자가 된 포춘은 버림받은 어린아이처럼 좌절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엎고, 깨트리고, 부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피아노의 악보를 뜯어내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된 그의 앞으로...
잠깐 자리를 비웠던 집사 마빈이 돌아왔습니다...
마빈은 손님과 부인이 떠나 엉망진창이 된 파티장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죠...
포춘은 마치 장난을 치다 들킨 어린아이마냥 눈치를 보며 말했습니다.
"... 내 꼴이 우습지? 날 비웃으려거든
얼마든지 비웃어보라고!"
"우습군요...
한 사람이 본심을 드러낸 것만으로
모두가 떠나가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 같은 처지에서 가식을 떨고 있을지...
그걸 생각하니 참으로 우습군요..."
포춘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리고 찢어진 악보를 힘없이 늘어트렸고,
자신에겐 이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야기가 막을 내립니다...
첫댓글 아 진짜 재밌다... 흥미로워... 근데 저 피아노 우리집에 갖다놓으면 집안 박살날 듯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