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캐논사는 지난해 2500억엔(한화 2조8400억원) 이상의 순익을 기록, 시가총액 5위로 소니를 누르는 신화를 연출했다. 불과 7년 전인 97년 캐논의 시가총액은 소니의 5분의 1 수준, 상장기업 중 43위였다.
경영전문가들은 급성장의 비결을 공장 내 컨베이어벨트를 없애고 4~6명의 종업원이 팀을 이뤄 모든 공정을 책임지는 ‘셀(cell)’ 시스템을 도입, 생산성이 1.5배 이상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포드사가 도입했던 혁신적 생산방식이 100년 후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 富士夫·69) 사장은 “이제는 다능형 인재(멀티플레이어)가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짧게 요약했다.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필요한 인재상도, 적합한 시스템도 바뀌었다는 얘기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강혜련 교수는 “시스템을 총괄하는 ‘제너럴리스트’와 특정 분야에만 전문 지식을 가진 ‘스페셜리스트’의 구분 대신 이제는 멀티플레이어냐, 아니냐의 선택만 남아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도 바로 멀티플레이어의 기질을 얼마나 더 가졌느냐가 생존 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남편은 바깥 일을 여자는 집안 일을 하는 이분법적 역할 분담에서, 이제는 남녀 모두 일과 가정을 다 아울러야 하는 변화를 맞고 있다.
◆ 트렌드와 정보에 민감해라
멀티플레이어의 성향은 2030세대 여성들에게서 뚜렷이 나타난다. 한 직업, 한 회사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낸다. 문화콘텐츠 벤처회사인 ㈜밀레21을 운영하는 유밀레(본명 남윤정·24)씨는 한마디로 자신을 소개할 수 없을 정도. 회사 운영뿐만 아니라 연극배우·모델·가수·작사작곡가 등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지난 98년 다니던 서울대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현지 학교를 다니며 인맥을 만들고 사업 기반을 닦았다. 영어·일어·중국어 등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데다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미국의 대표적인 의류 브랜드 ‘MUDD’ 등의 독점 계약권을 따올 수 있었다.
하루 3~4시간씩만 자도 늘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그녀는 자신이 ‘일벌레’나 ‘수퍼우먼 증후군에 걸린 여자’로 비치길 거부했다.
“난 ‘한국을 세계 속에 알리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는 것뿐이에요. 다만 요즘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에 살다보니 할 일이 많아진 것일 뿐이죠.”
그녀는 주변을 돌아볼수록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동료 여성들에게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여자들은 트렌드나 정보에 민감해요. 남자보다 외국어와 이질적인 문화를 흡수하는 속도도 빠르죠. ‘클릭’ 몇 번만 하면 원하는 정보가 뜨니, 여성들의 문어발식 커리어와 자기실현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 호기심과 탐구열이 원천
잡지 ‘행복이가득한집’의 김은령(34) 기자는 명함을 건넬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취재원들과 자주 만난다. ‘난징대학살’, ‘침묵의 봄’, ‘패스트푸드의 제국’ 등 지금까지 15권에 달하는 책을 번역한 데다 최근 ‘바보들은 여자탓만 한다’는 책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기자, 번역가라는 직업에 이제 저술가라는 이름까지 얻은 그녀의 비결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열. 취재를 하다 재밌는 분야가 생기면 공부를 하고, 휴가 기간에 여행을 가 현지 정보를 수집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여행을 다녀온 나라가 수십 개국에 달한다.
김씨는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쏟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얘기가 된다 싶으면 관심을 가지고 계속 공부하는 게 비결 아닌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시(時)테크 비결은 “마감은 있지만, 마감까지의 하루하루 일정은 빠듯하지 않게 열어두는 것”이라고 했다. 공연·전시·영화 등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해박한 지식도 그녀를 멀티플레이어로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기분 좋은 일, 즐거운 일을 할 때는 힘이 나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결과도 저절로 좋게 나오던데요.”
◆ 내가 필요한 곳을 찾아라
유니온 커뮤니케이션의 심실(50) 회장은 지난 25년간 쉴새 없이 일하면서도 아내·엄마·며느리 역할을 해낸 비결에 대해 “어머니를 보고 배운 것”이라고 답했다.
“어머니는 30명 대식구가 복작거리는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온종일 뛰어다니며 집안 대소사를 해결하는 억척부인이었어요. 5남매를 키워놓고는 사회단체 일로 또 바쁘셨죠.”
심 회장은 이대를 졸업하고 지난 78년 남편과 함께 섬유수출회사를 세웠다. 디자인과 회사경영을 병행하다 능력을 인정받아 한 유명 구두업체에 스카우트돼 30대 후반 본부장까지 올랐다.
97년에는 현재의 회사를 설립,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과 제주 전국체전(2002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3년) 등 굵직한 행사들을 치러내며 연매출 250억~300억원 규모로 키웠다.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심 회장은 7년간 외국인 노동자의 식비를 대고, 각종 자선행사를 쫓아다녔다. 6년 전에는 자비를 털어 우크라이나 문화원까지 세웠다.
“1인 다(多)역은 사실 심신이 고단한 일이죠. 하지만 바쁘게 일만 하거나, 가족들 뒷바라지만 하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동을 받아야 살맛이 나는 거겠지요.”
임지현 과장의 時테크
임지현 과장의 ‘시(時)테크’ 노하우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출근 후 업무시작 전까지의 30분, 점심을 빨리 먹고 남는 시간 30분, 6시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어수선한 시간 30분 등을 집중 활용해 집안 일을 해결한다. 인터넷으로 식료품 장보기와 공과금 납부, 아이 치과 예약을 하고, 친정·시댁·친구들·유치원 선생님 등의 안부 전화도 빼먹지 않는다. 이를 위해 임 과장 핸드백에는 개인적인 일들을 위한 수첩이 업무 수첩 외에 따로 있다.
퇴근 후 일과는 대부분 아이와 함께. 아이가 먼저 잠들고 나면 사이버 강의를 통해 영어와 회계 등 경영 관련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임 과장은 “남편이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여러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 같다고 혀를 내두른다”며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닥치면 하게 되는 ‘훈련된 능력’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고 웃었다.
"닥치면 다 하는 거야"
식당일… 세딸 뒷바라지… 시장통 해결사…
엄마(손옥심·64)의 기상시각은 새벽 1시다. 그 시각에서 조금만 늦어도 난리가 난다. “할매! 문 열어, 문! 속 쓰려 죽겠다구!”
시골에서 물건 싣고 올라온 하주들과 밤새 짝을 실어 나른 하역반들과 중매인들의 성화에 엄마는 늦잠 한 번 잘 수도 없다. 새벽 1시에 일어나 그때부터 엄마는 종종 걸음을 친다. 찌개 앉히다 말고 뛰어가 막걸리 꺼내주고, 막걸리 사발 내놓자마자 뛰어와 쌀 씻고 김치 자르고…. 영등포 삼오식당의 주인이자 주방장이자 종업원인 엄마의 아침은 바쁘기만 하다.
아침 9시. 입찰 종이 울리고 중매인들이 모두 공판장으로 올라가면 그제야 엄마는 의자에 엉덩이를 잠시 내려놓는다. 설탕만 잔뜩 넣은 커피를 한 사발 쭉 들이킬 만한 시간이 지났을까, 시장 사람들이 또 엄마를 찾는다.
하역반 박씨가 “장모!”를 외치며 소화제를 찾고, 철학관 원장님은 내 손 좀 얼른 따달라고 보챈다. ‘지지리 복도 없는 년 서러워서 더는 못 살겠다’며 울음부터 터트리는 다방 아줌마 신세 한탄 들어주랴, 파 다듬으랴, 김치 담그랴, 엄마의 점심시간도 아침시간 못지않다.
시장에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면 놀이방과 어린이집에서 손자, 손녀들이 엄마 식당으로 모여든다. 언니와 내가 아들을 찾으러 올 때까지 엄마는 또 유치원 원장이 되고 보모가 된다.
딸 셋을 키우기 위해 엄마는 김밥을 말았고, 순두부를 팔았고, 신문을 돌렸고, 호떡반죽을 빚었고, 시장통에서 밥을 팔았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엄마는 세 아이의 엄마였고, 주방장이었고, 과일가게 종업원들의 때 절은 담요를 빨아주는 세탁부였고, 술잔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의 사연을 이해해주는 인생상담사였고, 체한 손을 따주는 면허증 없는 의원이었다.
엄마는 둘째 딸이 소설가가 된 뒤로는 막걸리 먹으러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는 없을까, 온종일 고민하는 사람이다. 소설가 딸을 위해 꼬박꼬박 뉴스를 보고, 딸의 소설이 연극 무대에 올려지자 이제는 연출가 노릇까지 하신다.
“며느리가 엄마하고 싸우고 뛰쳐나가는 장면 있잖아. 그 뒤에 바로 아들이 나와서 ‘불효자는 웁니다’를 불러야 해. 그리고 노래가 두 개만 더 들어가면 이 연극은 성공이다, 성공!”
‘닥치면 다 하는 거야’라는 엄마의 입버릇처럼, 그녀는 살아오는 동안 이 땅의 여성으로, 세 딸의 어머니로 무엇이든 다 하셨고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