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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과 사찰- 희방사와 희방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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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행열차 내리면 외할머니 같은 사찰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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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이 주는 낭만을 만끽하며 도착한 희방사역… 한적한 시골 역사엔 옆집 아저씨같은 역장이 반갑게 맞아주고… 청량리발 오전 6시50분 무궁화호. 서울에서 경북 영주 희방사역으로 가는 첫 기차다. 웬걸. ‘두 번째 차’가 ‘막차’다. 오후 3시에 떠나는 기차까지 열차는 서울에서 하루 2번만 운행한다. 아무리 평일이라 해도 열차 안의 승객은 가뭄에 콩 나듯 띄엄띄엄 앉아 있다. 중간에 정차하는 역에서 내릴 승객까지 염두에 두면 희방사역엔 과연 몇 명이나 내릴까, 불안한(?) 예감도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기차역 부근의 모든 사찰은 도심이 아닌 변두리에 숨쉬고 있다. 편리와 문명을 좇아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나간 고향을 지키는 늙은 할머니 같은 존재다. 물론 아무래도 괜찮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상대하느라 나 자신을 챙기기 어려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래, 종착역에 혼자서 내려도 좋다. 아무도 없다면, 홀로 걷는 발걸음과 친구를 삼아도 좋을 만큼 호젓한 산책로가 펼쳐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중앙선을 탄 열차는 상쾌한 아침 바람을 가르며 서울을 벗어난다. 20년전만 해도 새마을호 다음 가는 쾌속열차로, 혜성처럼 나타난 무궁화호. 그러나 통일호 비둘기호가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KTX가 등장한 지금은 ‘3등 완행열차’로 퇴락한 느낌이다. 하지만 느린 만큼 넉넉하고 덜컹대는 만큼 정겹다. 국어사전에선 쉬 발견할 수 없는 ‘호스럼’이란 토속어가 있다. ‘무엇을 탈 때 즐겁고 짜릿한 느낌’을 일컫는다. 모르긴 해도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던 어느 호걸이 기쁨에 취해 지어낸 말일 게다. 다가닥 다가닥 … 기차의 ‘발굽’에서 시작해 엉덩이로 전해오는 진동은 일견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의 교통수단은 말에서 기차로, 기차에서 자동차로, 자동차에서 비행기로 진화해 왔다. 탈거리는 갈수록 빨라지고 조용해졌다. 곧 끊임없이 ‘느림’과 ‘잡음’을 지워온 것이 문명의 역사라면 호스럼은 오늘날 무궁화호만이 선사할 수 있는 기쁨. 기차는 호습게 달린다. 그 옛적, 할머니가 바리바리 싸주시던 삶은 달걀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희방사역 최용수 역장도 그런 사람이다. 내년에 정년퇴임을 앞둔 최 역장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철도청에 입사했다. 영주 등지의 기차역을 순회 근무하며 40년을 꼬박 한눈팔지 않고 안전운행을 위해 살았다. “기차가 안전하게 역을 빠져나갈 때마다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큰 덩치에서 샘솟는 최 역장의 웃음에서, 오랜 세월 풍화를 견디며 꿋꿋이 서 있는 사찰의 당간지주를 떠올렸다. 희방사역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희방사다. 희방사역에서 동북쪽으로 난 비탈길을 4km 정도 올라가면 소백산 기슭 해발 850m에 위치한 희방사가 보인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두운대사가 세운 천년사찰. 그리 크지 않은 대웅전이 요사채 몇 채를 거느리고 소백산 골짜기에 살포시 안겨있다. 희방사는 본래 1568년에 새긴 〈월인석보〉 1.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어서 유명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6.25전쟁으로 법당과 함께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됐다. 법당은 다시 세웠지만 판목은 되찾을 수 없었다. 역에서 4km정도 오르니 천년고찰 희방사가… 아름드리 숲속 산사에 도시인은 절로 감탄… 번뇌 깨끗이 씻고 다시 집으로… 문화재가 사라진 것은 안타깝지만 희방사는 그렇게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이다. 어느 절이나 숲이 우거지지 않은 곳이 없으나 희방사야말로 숲의 사찰이라 할 만하다. 입구부터 자연림이 흐드러졌다. 때마침 봄을 맞은 나무들이 꽃을 틔우기 위해 힘을 불어넣은 꽃눈이 부풀어 올랐다. 문득 전방에서 군복무를 하던 친구가 부쳤던 편지에서 눈에 띈 ‘하늘 3평, 땅 3평’이란 글귀가 떠올랐다. 초소 주변의 숲이 하도 빽빽해 하늘이 보이지 않고 서 있을 자리도 없다는 푸념 섞인 비유다. 희방사의 숲이 그렇다. 겨우내 잎이 진 활엽수가 군데군데 서 있어 틈이 많이 보이지만 침엽수만으로도 하늘을 가렸다는 느낌은 충분하다. 말할 것도 없이 희방사의 숲은 푸념이 아니라 탄성을 자아낸다. 친구의 숲이 속박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그가 처한 상황 때문일 것이라 쉽게 짐작이 간다.
숲, 그리고 사찰이 주변에 있어 그런지 마치 대자유인이 된 기분이다. “구름을 이불삼고 산을 베개삼아 그냥 떠돌아다닐 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스님에게서 차한잔 얻어마시고 절을 빠져나왔다. 숲이 있으면 물이 있기 마련이다. 희방사 바로 아래에 흐르는 희방폭포는 높이 28m로 내륙지방 최고의 폭포로 이름이 높다. 특히 무더운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는다. 희방사의 아름드리 숲만큼 물줄기가 우람하다. 이 물을 마시고 그토록 무럭무럭 자라났구나 싶었다. 자연이 선사하는 신선한 기쁨을 만끽하고 산을 내려왔다. 희방사가 자리한 영주.풍기지역은 주변에 부석사나 소수서원도 있어 역사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배흘림기둥’으로 이름이 난 부석사 무량수전의 빼어난 조형미와 최초의 서원에서 풍기는 학문적 기풍이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숲. 둘러볼 곳은 모두 둘러본 듯하다. 이젠 맛집이나 찾으러 갈까. 하지만 그 지역 특산품을 재료로 한 독특한 먹거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쉽지만 서울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희방사가 내뿜는 청정한 숨결을 마신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무궁화호는 다시 조금씩 덜컹거리며 해거름을 가로질러 간다. 창 밖으로 보이는 땅은 언제봐도 정답다. 영주=장영섭 기자 flowergirl@ibulgyo.com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불교신문 2121호/ 4월15일자] 사찰 이름 기차역은? 1919년 장성 백양사 역 이후 명찰 이름 빌려 기차驛名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는 1899년 서울 인천간 개통된 경인선. 이후 기차는 20세기를 함께 하며 사람과 화물을 전국 어디든 건네다 주었다. 기차역 사찰도 20세기 초반이나 중엽에 일제히 영업을 개시, 부처님을 참배하러 가는 불자들의 소중한 교통수단이 되어 왔다. 20여년전만 해도 대부분의 역이 초파일만 되면 사찰에 참배하러 가는 불자들로 넘쳐났지만 요즘은 거의 이용하는 승객을 찾아볼 수 없다. 폐쇄를 걱정스레 기다리는 역도 있다. 그만큼 이제 굳이 기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교통수단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이야기. 기차역 사찰은 여전히 아련한 옛 기억을 품고 오늘도 몇 안 되는 승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전남 장성군의 백양사역은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유래했다. 1919년 기차역 사찰 가운데 맨처음 개통된 역이다. 총림은 스님들의 종합수행공동체로 사찰의 규모가 크고 역사도 깊다. 절이 큰 만큼 인근의 백양사역도 비교적 큰 편이다. 하루 이용객이 300명에 이를 정도. 백양사를 비롯해 장성호수와 남창계곡도 볼 만하다. 충남 논산의 개태사역은 1944년 광석신호장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 1969년 개태사역으로 개칭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룬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찰. 인근에 위치한 군지폭포는 아름답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전장이기 때문이다. 폭포엔 아직도 그날의 피가 떠다닌다는 전설이 있으니 전투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관광지 주변엔 지역 천연기념물인 토종 오골계 요리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불국사역이 가까이에 있는 경주 불국사는 말이 필요없는 한국의 보물이다. 석굴암을 위시해 다보탑, 불국사3층석탑, 청운교, 백운교 등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핵심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보문관광단지의 조성과 함께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관광지로 성장했다. 김천 직지사역도 조계종 제8교구본사인 직지사에서 명칭을 따왔다. 김천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1000위(位)의 아기 부처님이 나란히 모셔진 비로전(일명 천불전)과 일주문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깊고 맑은 계곡, 특히 가을 단풍과 겨울의 설경이 기막히다. 창원의 성주사역은 1960년대에 창원공업단지가 개발되면서 공장 근로자와 화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개통됐다. 성주사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비인 허씨가 일곱 아들을 입산시켜 스님이 되게 했다는 전설이 담겨있는 불모산 서북쪽 기슭에 있다. 여수 흥국사역도 경제개발의 산물이다. 여수와 순천에 여천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화물과 근로자를 수송하는 기차가 지나는 역이 됐다.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창건한 흥국사는 대웅전 후불탱화, 수월관음도 등 각종 보물을 보유하고 있다. 사천의 다솔사역은 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하지만 간이역 특유의 소탈함과 여유로움을 잊을 수 없다. 의정부시 호원동의 망월사역은 1986년 가장 늦깎이로 개통됐다. 역명은 서울 근교의 명산인 도봉산에 위치한 망월사에서 유래했다. 망월사는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주봉 등의 암봉이 수려한 도봉산 골짜기에 있다. 주말이면 도봉산에 오르기 위해 망월사역에 내리는 등산객들이 가득하다. 장영섭 기자 flowergirl@ibulgyo.com ※자료협조 : 한국철도공사불자회 [불교신문 2121호/ 4월15일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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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8 오전 9:17:19 등록 |
첫댓글 커피 한 잔 속에 담긴 시간 여행, 기차는 칙칙 폭폭. <길 떠나고 싶은 자, 내 안의 나를 맘껏 개방하라!>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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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