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門고수와의 Dinne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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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엔
일자리보다 일거리를 찾아라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22호(2018. 11. 09)
이달의 ‘동문고수와의 디너타임’은 프리랜서 편이다. 총동창회가 초청한 동문고수는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다.
홍익희
동문은 요즘은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정년퇴직을 두 번씩이나 했다. 32년간 근무한 첫 직장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58세에 정년 퇴직한 후 대학으로 옮겨 지난해 세종대에서
다시 만65세에 정교수로 정년을 맞았다.
왼쪽부터 이필재(29회), 이병용(47회), 서덕원(45회), 홍익희(22회), 백종덕(35회), 김도훈(44회) 동문
참석자: 홍익희(22회) 세종대대우교수
백종덕(35회) 성림케어덕소센터장
김도훈(44회) 프리랜서겸아이오키드디자인대표
서덕원(45회) 도서출판비룡소부장
이병용(47회) 라망드셰프오너셰프
진행·정리: 이필재(29회, 편집인) / 사진: 서정욱(37회, 편집위원회간사)
일시/장소: 2018. 10. 25. 7시 / 서초동대가향
스페인어 학사학위밖에
없는 그가 대학교수가 된 건 2013년 <유대인이야기>라는 책을 쓴 덕이다. 662쪽이나 되는 이 책은 신문의 호평에 힘입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주문이 쇄도해 1쇄에 5000부씩 찍었다. 그 해 말엔 네티즌투표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그러자 배재대, 울산대 등 대학 서너 곳에서 그에게 러브 콜을 보냈다. 그는 배재대를 거쳐 세종대에 몸담았다. 정년 퇴직 후 지금은 대우교수로 세종대에서 동영상 강의를 한다.
다시 글 쓰고 강연하는 프리랜서로 돌아온 홍동문과 후배 네 사람이 둘러앉았다.
“인생 2막엔 일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한 번 자기만의 일거리를 찾아내 도전해보세요. 일거리로는
현업에 있을 때 잘했던 일이나 평소 관심과 호기심이 있던 분야 쪽 일이 좋습니다.”
홍익희 교수는 "인생 2막을 잘살기 위해서도 현업에 있을 때 자기 일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생 2막을 프리랜서로 살면 뭐가 좋습니까?
“조직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죠. 봉급쟁이로서 조직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요.”
+프리랜서로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책 쓰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콘텐츠를 생산했을 때 또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쓴 책을 보고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반응할 때입니다.”
+과거 사업도 해보셨는데, 스스로 자신이 사업가형인지 아니면 프리랜서 형인지 판별해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업가는 전인격을 걸고 사업에 매진해야 합니다. 협업, 조율 등으로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할 수 있어요. 반면 프리랜서는 혼자서 자기만의 일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할 수 있죠.”
+KOTRA출신이어떻게작가로변신하게됐나요?
“운이 좋았어요. KOTRA 생활 32년 중 18년 동안 해외근무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관심 있게 지켜봤죠. 무엇보다 유대인들을 주목했습니다. <유대인 경제사>10권이 탄생한 배경이죠.”
환갑
지나
두
권의
베스트셀러 내
그는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알리려 이 방대한 이야기를 썼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금융 등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유대인 경제사> 10권을 한 권으로 압축한 것이 바로 <유대인 이야기>이다. 그 후에 쓴 <세 종교 이야기>도 중동권의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이야기다.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KOTRA 시절 그는 정작 중동지역엔 근무한 일이 없다.
+누구나 노력하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 나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나는 이 달란트는 누구나 받았다고 봅니다. 그 달란트를 찾아내야죠. 그래서 그 분야에서 우뚝 서야 합니다. 동화작가라면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겠죠. 나는 관심과 호기심도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계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글쓰기는 사실 훈련입니다. 역설적으로 달란트가 아니라는 거죠. 배상복 중앙일보 기자의 <문장의 십계명>에 맞춰 글 쓰는 훈련을 몸에 밸 때까지 계속하면 됩니다.”
그는 “막상 쓰다 보면 자신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해당 주제에 관해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업으로 글 쓰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중요한 건 고객마인드-독자지상주의라고 그는 말했다. 자신의 필력을 과시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할 게 아니라 독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력보다는 독자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게 풀어내는 능력과 자세가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그 역시 KOTRA시절 이런 마인드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중소 수출업체에 도움이 되는 살아있는 보고서를 만들려 애썼다. 프리랜서의 자질은 어쩌면 이런 고객마인드일지도 모른다.
그는 또 인터넷시대가
열려 필요한 데이터는 90%이상 구글 검색을 통해 수집할 수 있다고 털어 놓았다. 책을 쓰느라 다른 책들을 쌓아놓았던 과거와 책 쓰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글을 쓰려면 대들어 일단 저질러야 합니다. 대강의 흐름을 잡고 얼개를 갖추었다면 디테일을 채우기 위해 인터넷검색을 하세요.”
+나름의 ‘인생 노하우’를 세 가지만 꼽아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에 충실히 임하라. 까르페디엠(Carpediem)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청년의 마음으로 항상 꿈을 잃지 말라. 미래를 낙관하라.”
서울고 졸업 후 그는 서울대 진학에 실패했다. 졸업생의 3분의 2가 서울대에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한양대 건축과에 진학했다. 3학년1학기까지 다녔지만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 과에 편입한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방학 두 달간 하루 15시간씩 공부에 매달려 50명 뽑던 시절 외무고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런데 2차시험을 석 달 앞두고 징집영장이 나왔다. 공대생시절 교련반대 데모에 참가한 게 발목을 잡아 입대연기도 불가능했다. 전역 후 외시를 포기하고 학력·나이제한이 없던 KOTRA에 들어갔다.
+2차시험을 미루고 군에 가야 했을 때 심경이 어땠습니까?
“당혹스러웠죠. 그러나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어요. 결국 또 다른 길이 열릴 거라고 받아들였습니다.”
+KOTRA시절 벌인 사업이 실패했고, 정년 퇴직 후 투자에도 실패하셨습니다. 열등감과 실패로 점철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하셨는데 그 때 마다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알프레드아들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여러 원인으로 열등감을 갖고 있다. 이를 보상하려 노력하는 보상심리가 우월성을 추구하는 삶의 핵심에너지이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열등감이 오히려 좌절을 극복하는 연료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