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학적 진리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형이상학적 열망과 죽음의 문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유덕(有德)한 삶, 진정한 내면의 평화와 지복(至福), 인간의 감각과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직관적 통찰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오늘날은 서구적 근대문명의 한계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계의 절멸적 위기, 인간 정신의 소외, 그리고 양극화와 이념적 분열과 갈등이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21세기 새로운 사상은 이런 생태계의 위기와 정신의 위기에 대해 답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 그리고 인간 주체를 새롭게 정립하고, 새로운 문명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은 당시 서민들의 삶이 나락에 떨어지고, 서세동점(西勢東漸)에 의해 동아시아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하늘의 신비가 사라지면서 생긴 삶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동학은 밑바닥 민중의 고난과 고통에 관심을 갖고 동양의 지혜를 바탕으로 서양의 영성을 흡수해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차원을 아우르면서 삶의 신비와 영성을 되살려냈습니다. 동학은 오늘날처럼 서양 근대문명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삶의 신비가 가려진 이 시기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비록 변방의 것이지만 보편성을 가진 철학이자 종교입니다. 이것이 동학을 지금 이 땅에서 다시 피워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이 시대, 왜 다시 동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