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밝힌다.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에서 숨진 경찰을 애도하고 싶어서다. 책상 위에 향을 피운다. ‘참사 철거민’과 함께 ‘참사 경찰’의 원혼을 위로하고 싶어서다.
공연한 치기가 아니다. 기실 철거민 참사가 일어났을 때부터 가슴이 아팠다. 숨진 철거민들 쪽에 서서 46편의칼럼을 쓰면서 늘 마음 한켠에 ‘참사 경찰’이 맴돌았다.
하지만 애써 떨쳐버렸다. 적어도 철거민 참사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그 젊은 경찰을 애도하는 칼럼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침내 2010년 1월9일 참사 철거민을 애도하는 국민장이 치러졌다. 참으로 긴 싸움이었다. 흰 수염 휘날리며 애면글면 싸운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들과 헌신적인 인권운동가 박래군, 수많은 민주시민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물론,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진상 규명을 비롯해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섣불리 용산 참사에 마침표를 찍을 뜻도 없다. 다만 참혹한 주검이 안식하게 된 오늘, 이제는 ‘참사 경찰’의 원혼도 우리가 함께 위로할 때가 아닐까.
참사 현장서 숨진 경찰의 원혼을 위한 향불
고백하거니와 숨진 경찰이 가장 가슴 아팠을 때는 그가 무허가주택에서 택시기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민중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
새삼스럽지만 명토박아둔다. 대다수 일선 경찰, 특히 박봉에 지금 이 순간도 범죄현장에 잠복하며 밤을 지새우는 경찰, 칼바람 부는 겨울 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문제는 경찰 가운데 다른 경찰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용산 참사를 모르쇠하는 이명박 정권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청와대 앞에서 벌였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1인 시위 현장에 아주 거드름 피우며 다가오는 사복경찰이 있었다. 그는 나를 가리키며 주변의 젊은 경찰들에게 ‘불법 시위’ 벌이고 있으니 사진 찍어두라고 소리를 질렀다. 법으로 처리하겠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그래? 어디 법으로 처리해보라는 내 말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살천스레 눈을 번득였다.
하지만 바로 그 현장에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경찰을 만났다. 1인 시위 현장을 맴돌던 40대 중반의 사복경찰이 다가왔을 때 조용히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유가족들은 대체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그 순간 사복경찰의 눈과 마주쳤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던 그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눈빛은 흔들렸다. 그 경찰은 먹먹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스크럼 짠 전경들 뒤로 사라져갔다.
그랬다. 왜 경찰이라고 모르겠는가. 거칠지만 나는 대한민국 경찰을 두 부류로 나누고 싶다. ‘민중의 지팡이’와 ‘권력의 몽둥이’가 그것이다. 서울 용산 참사에서 숨진 경찰은 누구였을까. 분명한 게 있다. 고인에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서둘러 위험한 현장으로 들어가라고 명령 내린 당시 경찰 총수는 ‘권력의 몽둥이’다.
두 종류의 경찰 ‘권력의 몽둥이’와 ‘민중의 지팡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경찰이 있다. 하지만 권력의 앞잡이가 되길 거부하는 경찰도 있다. 바로 그렇기에 비록 경찰 조직에서 ‘출세’는 못하지만, ‘민생 현장’에서 정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경찰들이 있다. 바로 그런 분들이 대한민국 경찰을 살려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다. 용산의 ‘참사 경찰’을 애도하며 그의 원혼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은 무엇일까. 곰곰 성찰해본다.
민중의 자식들을 서로 ‘치명적 갈등’ 속에 몰아넣는 나라를 넘어, 갈라진 세상 하나로 이어가는 새로운 사회를 이 땅에 구현하는 게 아닐까. 숨진 참사 경찰 고 김남훈 경사의 원혼을, 자랑스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진심으로 위로한다. 경건하게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