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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환경과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재원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다
어떻게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깔까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면서도 뒤에서는 은밀히 온갖 짓을 다하는 것'을 표현할 때 어떤 속담이 적당한가? 아마도 "점잖은 개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나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다"와 같은 속담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의외의 옳지 못한 짓을 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어 '은밀히 어떤 짓을 도모하다'는 의미와는 좀 거리가 있다. 그리하여 이 질문에 알맞은 속담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다"가 될 것이다. 그런데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는 것'과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다가 뒤에서는 은밀히 온갖 짖을 다하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말하자면 이 속담의 유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매우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이 선비는 글공부에만 매달리고 살림은 오로지 아내가 도맡아서 꾸렸다.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두 부부는 훗날을 기약하며 그 모진 가난을 이겨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방문을 열자 아내가 무엇인가를 입에 넣으려다가 황급히 엉덩이 쪽으로 숨기는 것이었다. 선비는 아내가 자기 몰래 음식을 감춰두었다가 혼자 먹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불쾌한 마음이 들어 엉덩이 뒤로 감춘 것이 무엇이냐고 아내를 추궁했다. 그러자 당황한 아내는 "호박씨 하나가 떨어져 있기에 그것이라고 까 먹으려고 집어서 입에 넣어 보니 쭉정이더라구요. 제가 잘못했어요."하고 말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선비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메어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아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 이야기에 근거하면 속담과는 아무 관련성이 없다. 사람들이 속담의 유래를 알기 어려운 터에 재미 삼아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속담 구성 요소 하나하나의 의미를 찬찬히 음미해 보면 이 속담의 유래를 밝히지 못할 것도 없다. '뒷구멍'은 그 유사 속담을 참고하면 '똥구멍', '밑구멍'인 것이 분명하다. '뒷구멍'은 우리 몸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이다. '호박씨'는 말 그대로 '호박의 씨'이고, 구체적으로는 '말린 호박씨'를 가리킨다. 그런데 호박씨를 까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 얇고 납작한 씨의 껍질을 손으로 벗기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깐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손으로도 어려운데 어찌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깔 수 있겠는가? 그런데 속담이 의도하는 바는 다른 데 있다. '뒷구멍'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므로 이것으로 호박씨를 까면 무엇을 하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똥구멍으로 요리조리 호박씨를 까고 있는 것이다. 요리조리 호박씨를 까는 행위는 어떤 일을 이리저리 도모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다"에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게 은밀하게 무슨 일을 꾸미다'와 같은 비유적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갈매기살
'갈매기살'은 '갈매기' 고기가 아니다
'돼지고기'는 '머리, 어깨살, 앞다리, 등심, 갈비, 삼겹살, 방아실, 뒷다리' 등의 8개 부위로 나뉜다. 그 중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부위는 '갈비'와 '삼겹살'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고깃집에 가면 이와 같은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여러 부위말고도 '갈매기살'이라는 아주 특이한 고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갈매기살'이라는 고기가 고깃집에 처음 등장하자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파는 고깃집에서 웬 '갈매기'와 같은 새고기를 파느냐고 의아해했다. 이에 대한 고깃집 주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갈매기살'은 바다에 날아다니는 '갈매기' 고기가 아니다. 이것은 돼지 내장의 한 부위인 '횡격막'에 붙어 있는 육질이다. 그러니 '돼지고기'인 것이다. '횡격막'은 포유류의 배와 가슴 사이에 있는 근육질의 막으로,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면서 폐의 호흡 운동을 돕는다. 이 '횡격막'을 우리말로는 '가로막'이라고 한다.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막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가로막'에 붙어 있는 살이 '가로막살' 또는 '안창고기'이다. '가로막살'은 얇은 껍질로 뒤덮여 있는 근육질의 힘살이다. 그러므로 다른 부위의 고기보다 질길 수밖에 없다. 이 고기를 기피한 이유를 알 만하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로막살'을 모아 껍질을 벗긴 뒤 팔기 시작했다. 고기의 담백한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갑자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가로막살'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고깃집이 곳곳에 생겨났고 급기야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경기도 성남시 여수동 일대와 서울시 마포 등이 그 대표적인 지역이다. 그런데 '가로막살'을 팔면서 사람들은 이 고기를 '가로막살'이라고 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갈매기살'이라고 불렀다. '가로막살'로부터 '갈매기살'까지의 변화 과정은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가로막살'이 '가로마기살'로 변한다. '가로막'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가로마기살'이 제4음절의 모음 'ㅣ'에 영향을 받아 '가로매기살'로 변한다. 이어서 '가로매기살'이 '갈매기살'로 변한다. 이와 같은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가로매기'가 '갈매기'와 비슷한 음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로매기'의 어원을 잘 알 수 없던 터에 이것과 음이 비슷한 '갈매기'를 연상하여 그것과 연계하여 엉뚱하게 변형시켜 만들어낸 단어가 바로 '갈매기살'이다. 결국, 지금의 '갈매기살'은 '가로막살'이 '가로마기살'로 변하고, 이어서 이것이 '가로매기살'로 변한 뒤에, 바다에 날아다니는 '갈매기'와의 연상 작용을 거쳐 변형된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에누리
'에누리'는 본래 '물건값을 올리는 일'을 가리키는가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어요?"라고 말할 때 '에누리'는 무엇을 뜻할까? 이에 대한 답은 이 말을 누가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이 말을 물건을 파는 판매자가 물건을 사러 온 구매자에게 했다면 '에누리'는 '물건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을 뜻한다. 반면, 이 말을 물건을 사러 온 구매자가 물건을 파는 판매자에게 했다면 '에누리'는 '물건값을 깎는 일'이라는 정반대의 두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에누리'가 본래부터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갖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두 가지 의미 중 하나는 나중에 생겨난 것인가? 나중에 생겨난 것이라면 그 원래의 의미는 무엇인가? '값을 올리는 일'이라는 의미는 '에누리'의 어원 분석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에누리'의 '누리'가 동사 '늘―'이나 '늘이―'와 관련된 어형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조선어사전』(1938)에 제시된 ① '실상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물건값' ② '늘우' 잡는 것 ③ '보태어 말하는 것', 이 세 가지 의미 중 '늘우 잡는 것'이라는 의미 기술이 이를 강력히 뒷받침한다. 바로 '에누리'가 갖는 '값을 올리는 일'은 이 '늘―'이나 '늘이―'에서 나온 의미로 볼 수 있다. '늘리는 것'과 '올리는 것'은 결국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값을 올리는 일'이 '에누리'의 본래 의미라면 '값을 깎는 일'이라는 의미는 나중에 생겨난 의미가 된다. 그런데 과연 '값을 올리는 일'에서 '값을 깎는 일'로 의미가 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반대 의미로의 변화라는 점에서 불가능할 것 같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닌 듯하다.
한편, '에누리'가 본래부터 '값을 올리는 일'과 더불어 '값을 깎는 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에누리'의 '에'를 '베다'라는 의미의 동사 어간 '에―'로 볼 수 있고, 이 '에―'로부터 '값을 깎는 일'이라는 의미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베는 것'을 일종의 '깎는 행위'로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에누리'는 '값을 깎고 올리는 일'로 해석된다. 한쪽에서는 값을 깎고 한쪽에서는 값을 올리는 일이 '에누리'라는 것이다. 구매자가 이 말을 쓴다면 값을 깎는 일을 가리키고, 판매자가 이 말을 쓴다면 값을 올리는 일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어원설은 '에누리'의 본래 의미가 '값을 올리는 일'이라고 하면 내세울 수 없다.
현대국어의 '에누리'에는 분명 '값을 올리는 일'과 '값을 깎는 일'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달려 있다. 두 의미 가운데 후자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지만, 그렇다고 후자의 의미로도 활발히 쓰이는 것은 아니다. '할인'이나 '세일' 등에 밀려나 잘 쓰이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은 '에누리'를 일본어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누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할인'이나 '세일'을 대체해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우리말이다.
마누라
'마누라'는 '마주 누워 자는 여자?'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자주 듣던 어원 풀이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마누라'를 '마주 누워 자는 여자' 식으로 푸는 어원설이었는데, 이와 같은 어원 풀이는 선생님들이 농담으로 한 측면도 없지 않은데 지엄한 선생님의 말씀이라 곧이곧대로 듣고 오랫동안 그대로 믿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원 풀이가 요즘에도 회자된다고 하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정말, '마누라'의 어원 설명은 어렵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어원설이 있었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마누라'에 대해서 우리가 그나마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본래는 다른 의미를 지니다가 '처(妻)'의 의미를 띠게 되었고, 또 그 의미 변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는 점이다. '마누라'는 15세기의 『삼강행실도』에 '마노라'로 처음 나온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기서의 '마노라'는 '주인[公]'의 의미이다. 『이두편람』에서도 '마노라'에 대해 '노비가 그 주인을 이르는 말'이라고 기술하여 '주인'의 의미를 분명히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비천한 사람이 존귀한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는 의미도 첨가하고 있다.
그런데 『한중록』에서는 '마노라'가 '왕, 왕대비, 세자, 세자빈' 등과 같은 궁중의 높은 인물을 직접 지시하는 데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비마노라, 선왕마노라, 웃전마노라' 등으로 활용되어 이들 궁중 인물과 결부된 존칭 호칭어로도 쓰이고 있다. 이로 보면 근대국어의 '마노라'는 한때 궁중이라는 특수 사회에서 쓰이던 궁중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때에는 '존칭'으로서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주목된다.
궁궐 밖에서는 '마노라'가 '지체 높은 벼슬아치'나 '그 부인' 등을 부르거나 지시하는 데도 쓰였다. '운현(雲峴)마노라, 선혜당상(宣惠堂上)마노라'의 '마노라'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무속이라는 특정 사회에서는 '마노라'가 '신(神)'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산신마노라, 성주마노라, 터주마노라'에 보이는 '마노라'가 바로 그 예이다. '산신, 성주, 터주'를 여성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이들에 쓰인 '마노라'는 '남성'에 적용된 예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존칭으로 쓰인 예이다. 이렇게 보면 '마노라'는 존칭으로서 남녀 모두에게 통용되던 단어였음이 분명하다. 이는 '마마' 또는 '마님'과 같은 의미 기능이다.
이 '마노라'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로 추정된다. 어형이 '마누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의미가 지금과 같은 '중년 이상 된 아내'나 '보통의 늙은 부인'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들 변화된 의미에서는 존대의 의미 자질은 물론이고 '남성'이라는 자질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아주 현저한 의미 변화이다. 이러한 의미 변화가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조 말 '덕수궁' 시절에는 궁중에서 '마누라'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노(老) 상궁들의 증언을 토대로 할 때, 적어도 19세기 말 이전에 '마누라'의 의미 가치가 떨어져 세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세속화된 단어를 궁중의 귀인이나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쓸 수는 없었을 터이므로, '마누라'는 자연히 궁중어나 위상어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본래 '마노라'가 존칭으로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 적용되다가, 존대 자질을 잃고 '여성'만으로 쓰임의 범위가 축소된 단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진 셈이다.
터무니없다
집터에는 터의 자취가 남아 있다
'터무니'의 사전적 의미는 '터를 잡은 자취'이다. 이러한 의미는 '터무니'의 어원 풀이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터무니'는 일단 '터'와 '무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터'는 '터를 잡은 자취'라는 전체 의미를 고려하면 '집이나 건물을 지었거나 지을 자리'라는 의미임에 틀림없다. '터무니'의 어원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에서도 이와 같은 견해를 보인다. 문제는 '무니'이다. '무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세 가지 정도의 어원설이 있다. 첫째는 '무니'를 단순한 접미사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접미사 '―무니'가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둘째는 '무니'를 '무어니'와 관련시켜 '터무니'를 '터니 무어니'가 줄어든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터'가 무엇을 세울 수 있는 자리, 즉 '근거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므로 '터무니'를 '근거니 무어니'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터니무어니'라는 표현을 내세우는 것도 확실치 않거니와 이것이 줄어들어 '터무니'가 될 수 있는지도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셋째는 '무늬'를 '무늬(물건의 거죽에 어룽져 나타난 어떤 모양)'의 변화형으로 보는 것이다. '무니'를 '무늬'로 보면 '터무니'가 '터의 무늬', 즉 '터의 자취'로 해석되어 그 실제 의미와 부합된다. 그러나 '무늬'가 'ㅢ〉l' 변화에서 비껴나 언제나 '무늬'로만 나타난다는 점에서 '터무니'의 '무니'를 '무늬'와 직접 연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이렇게 보면, '무니'의 어원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혹시 '터무니'를 '터'와 '무니'로 분석하지 않고 '터문'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으로 분석하면 '무니'의 정체를 밝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의 사전에 '터무니'가 '터문이'로 표기되어 나오는 것은 '터무니'가 본래 '터문'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지금 북한에서는 '터무니'를 '터문'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터문'의 '터'는 물론 '자리'라는 뜻이다. '문'은 아마도 한자 '紋'이 아닌가 한다. '문'은 '무늬'와 같은 뜻이니, '터문'은 '터의 무늬'라는 뜻이다. 이것은 '터의 자취'라는 뜻과도 통한다. 이는 '터무늬'의 의미와 사실상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같더라도 '터문'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것으로 보는 것과 '터무늬'의 변화형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설명 방식이다.
집이나 건물을 세웠던 '터'를 보면 주춧돌을 놓았던 자리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의 흔적이 남게 된다. 바로 그것을 '터문' 또는 '터문'에 '―이'를 결합해 '터무니'라 한 것이다. 다시 말해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를 의미한다. 주춧돌이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는 터의 중심이자 근간이다. '중심'이나 '근간'이라는 특성이 크게 강조되어 '터무니'에 '정당한 근거나 이유'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터무니없다'의 '터무니'도 그와 같다. 그리하여 '터무니없다'는 '허황하여 전혀 근거가 없다'는 뜻을 갖는다. '터무니'는 주로 '없다'와 결합된 '터무니없다'의 구성 요소로 쓰이지만, 아직 '없다'에 전염되어 부정적 의미로 변하지는 않았다.
시치미를 떼다
'시미치'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가 없다
예전의 '사냥'은 활과 창은 물론이고, 길들인 '개'나 '매'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개사냥'이나 '매사냥'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다. '매사냥'은 백제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고려조에는 '응방(鷹坊)'을 주어 매를 기르고 훈련시켰을 정도로 '매'와 '매사냥'에 관심이 높았다. 이 시기의 웬만한 벼슬아치나 한량이면 거개가 사냥매 한 마리쯤은 갖고 매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잘 훈련된 매가 몰이꾼이 튀긴 꿩이나 새를 뒤쫓아가 바로 낚아챌 때의 기분이란 짜릿한 전율 그 자체였을 것이다. '매사냥'이 유행하다 보니 사냥매도 많아지고 또 그러다 보면 자칫 매가 뒤바뀌거나 누군가 매를 훔쳐갈 수도 있다. 그래서 매의 관리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관리 차원에서 매의 주인을 표시하는 일종의 이름표를 꽁지에 달았다. 이것이 곧 '시치미'이다.
'시치미'는 얇게 깎은 네모꼴의 뿔이다. 여기에다가 매의 이름, 종류, 나이, 빛깔, 주인 이름 등을 기록한 뒤 매의 꽁지 위 털 속에 매단다. 말하자면 '시치미'는 매의 주민등록증인 셈이다. 이 '시치미'만 보면 그 매가 길들여진 매임을 대번에 알 수 있고, 또 누구 소유의 매인지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매를 잡으러 다니는 사냥꾼이나 매를 데리고 사냥을 다니는 사람이 어쩌다가 이러한 매를 잡으면 '시치미'를 보고 놓아준다.
그런데 욕심이 생기면 '시치미'를 달고 있는 매를 잡고도 놓아주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 매의 소유주가 적힌 '시치미'를 얼른 떼어버리고 마치 자기 매인 것처럼 꾸며대는 것이다. 또는 자기 이름이 적힌 '시치미'를 얼른 달아놓고 자신의 매처럼 위장한다. 여기서 생긴 말이 '시치미를 떼다'이다.
매의 소유주가 와서 '시치미'를 뗀 매를 볼라치면, '시치미'를 떼고도 떼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남의 매라는 것을 알고도 잘 모르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행동한다. 그래서 '시치미를 떼다'에 '자기가 하고도 하지 않은 척하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하다'와 같은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시치미를 떼다'의 유래에 대한 설명은 어느 정도 끝났지만 정작 '시치미'의 어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 어원을 밝히기 어려워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시치미'는 '시침'과 함께 쓰인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시치미'가 '스치미'나 '스침'과 함께 쓰이기도 했다. '시침'이 있는 것을 보면 '시치미'는 '시침'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으로 볼 수 있다. 사전에는 '시치미'의 준말이 '시침'이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그리고 '시침'은 '스침'에서 모음이 변한 어형으로 볼 수 있다. 'ㅅ'에 후행하는 모음 'ㅡ'는 'l'로 변할 수 있어 '스침'이 '시침'으로 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스침'의 어원 또한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다만 '스치다'에서 파생된 명사일 수는 있다고 본다. 한편 '새치미(쌀쌀맞게 시치미를 떼는 태도)'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을 보면 이 단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스침'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스치미'가 변하여 '시치미'가 된 것이거나, '스침'에서 변한 '시침'에 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시치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김치
'김치'는 우리 고유의 음식이지만 고유의 우리말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김치'를 아주 이른 상고시대부터 먹어 왔다. 물론 초기의 모양새와 그 명칭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초기에는 무, 부추, 죽순 등과 같은 여러 남새(즉, 채소)를 그저 소금에 절인 형태였다. 그리고 그것을 '디히'라 불렀다. 고추를 양념으로 하는 빨간 김치가 나타난 것은 고추가 국내에 들어온 16세기 후반 이후의 일이다. '디히'는 김치에 대한 순수 우리말이다. 옛 문헌에 보이는 '장앳디히(장아찌)'의 '디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디히'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이에 대해 옛말 '딯―(떨어지게 하다)'라는 어형은 문증(文證)이 되지 않는다. '딯―'는 지금 '지―'로 남아 있는 중세국어 '디―'의 사동형쯤으로 이해된다. 소금에 절인 채소는 가라앉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떨어지게 하다'는 의미의 '딯―'를 이용한 단어 만들기가 가능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디히'는 '디'를 거쳐 '지'로 이어진다. '지'가 '디히'로부터 변한 어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를 한자 '漬(담그다)'로 보려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우연히 우리말 '지'와 한자 '漬'가 음이 같고 또 의미까지 상통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일 뿐이다.
'지'는 지금 서울말에서 독자적으로 쓰이지 못한다. '싱건지(소금물에 삼삼하게 담근 무 김치), 오이지, 젓국지(조기 젓국을 냉수에 타서 국물을 부어 담근 김치), 짓독(김치독), 짠지' 등과 같은 보수적 성격의 합성어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아직도 경남 및 전남 지역에서는 '지'가 '김치'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고유어 '지'를 대신하고 있는 단어가 바로 '김치'이다. 이 '김치'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온 말이다. '침채'는 '절인 채소' 또는 '채소를 절인 것'을 의미한다. 초기의 김치는 그저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이었기에 이러한 의미를 지니는 새로운 명칭이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유어 '디히'에 이어 한자어 '침채'가 만들어진 것은, '디히'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잘 쓰이지 않게 되자 그것을 대신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침채'는 16세기에 '딤 ' 또는 '팀 '로 표기되어 나온다. 두 단어는 제1음절 두음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팀 '가 16세기 당시의 현실 한자음을 반영한 것이라면, '딤 '는 그보다 앞선 시기의 한자음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딤 '와 '팀 '는 각기 다른 변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병존하고 있다. '딤 '는 '짐 ' 또는 '짐츼'를 거쳐 '김 ' 또는 '김츼'로 변한 뒤 지금의 '김치'로 이어졌다. 한편, '팀 '는 '침 '를 거쳐 '침채'로 이어졌다. 그런데 현대국어에서 '침채'는 제수(제사에 쓰는 여러 가지 재료)의 하나인 '절인 무'를 가리킬 때나 쓰일 뿐 '김치'에 밀려나 잘 쓰이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김치'라는 단어가 한자어 '침채'에서 온 것이며, 그것도 '팀 '가 아니라 '딤 '에서 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김치'처럼 소중한 말이 우리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라니 조금은 실망스럽지만, '침채'라는 한자어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위안을 삼을 만하다.
외상을 긋다
'외상'을 왜 긋는다고 할까
'외상'이란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외상'은 우리 고유어는 아니고 한자어 같은데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외상'이 빗나간 상거래라는 점에서 한자 '外商'이 아닐까 추정해 볼 수 있다. '외상'은 예전에는 주로 술집에서 이루어졌다. 그것도 싸구려 술집인 선술집이었다. 얼큰히 취한 술꾼이 그동안의 안면을 무기로 "아줌마(주모), 외상이야. 달아놓으시오."라고 하면 술집 주인은 상습적인 외상이 못마땅하지만 마지못해 응대해 주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선술집 주모는 일자무식이어서 외상 사실을 장부에 적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벽에다가 마신 술잔 수만큼 작대기를 긋는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작대기만 긋는 것이 아니다. 외상술을 먹은 사람은 특징을 벽에 그린 뒤에 그 밑에 먹은 잔의 수만큼 작대기를 긋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가령, 코가 큰 사람은 코를 그려 놓고, 얼굴에 사마귀가 있는 사람은 점을 찍어 놓고, 쌍둥이 집 남자라면 두 개의 사람 머리를 그려 놓고 그 밑에 줄을 긋는 것으로 외상 장부를 대신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외상을 긋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상 작대기를 긋다'가 될 것이다.
외상술에 이골이 난 술꾼들은 그 '작대기'를 '어그 라인'이라고 멋을 부려 말하기까지 했다. '어그 라인'의 '어그'는 '긋다'의 활용형 '그어'를 거꾸로 말한 것이며, '라인'은 작대기선을 영어로 바꾼 것이다. 이런 말장난을 할 줄 아는 술꾼이면 그래도 낭만을 아는 술꾼이 아니었을까 한다. 물론 외상할 때 '긋는' 행위는 술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의 반찬가게나 푸줏간에서도 외상한 물건값을 '긋는' 방법으로 표시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벽에다가 작대기를 긋는 것이 아니라 '엄대'라는 막대기에 길고 짧은 금을 새겼다. '엄대'에다 외상한 물건의 분량만큼 금을 새겨 놓고 나중에 몰아서 계산을 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엄대를 긋다(물건을 외상으로 사고 장부에 달다)'이다.
술을 외상으로 먹을 때는 벽에다 '작대기'를 긋고, 물건을 외상으로 살 때는 '엄대'에 금을 그으니, '긋다'라는 동사에 '외상값을 적다'는 의미까지 생겨날 만하다. 실제로 사전을 찾아보면 '긋다'에 '물건값이나 밥값, 술값 따위를 바로 내지 않고 외상으로 처리하다'는 의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작성자 주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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