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비, 비! 길들은 모두 깊은 진흙탕이 돼 버리고 병력은 전진할 수가 없다. 날씨에 비하면 독일군의 저항은 약과일 뿐이다.”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던 미 제6군사령관 루카스 장군이 일기에 적은 내용이다. 날씨에 얼마나 고전했으면 일기에 이런 고백을 썼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이탈리아 점령 작전은 독일군과의 싸움이라기보다 지형과 날씨와의 전쟁이었다. 아이젠하워가 이끄는 연합군은 이탈리아 반도의 남단 시칠리아 섬을 점령했다. 이후 연합군은 이탈리아 점령을 위해 북진을 시작했다. 미군과 영국군은 10월 1일 나폴리를 점령하고 로마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로마를 향해 북진하는 연합군의 공격을 저지하라는 히틀러의 특명을 받은 독일의 케셀링 원수는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었다. 세 개의 강과 두 개의 산맥이 만나는 가파르고 험한 지형에 강력한 방어진지인 구스타프선 방어선을 형성한 것이다. 나폴리의 북쪽인 이곳은 로마로 통하는 길을 막는 천연적인 방어진지였다. 독일군 방어선은 실제로 3개의 독립된 방어라인으로 구성돼 있었다. 제1라인이라 불린 바르바라 라인과 베른하르트 라인이라 불리는 2라인이 있었다. 가장 후방에 구스타프 라인이 위치했다. 구스타프 라인은 방어선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케셀링 원수는 장담했다. “알렉산더가 온들 이 방어선은 넘지 못할 것이다.” 연합군이 로마를 향해 진격하는 시기는 우기가 시작할 때였다. 지중해 기후의 영향을 받는 이탈리아 지역은 10월부터 우기(雨期)가 시작돼 1월까지 연 강수량의 절반이 넘는 많은 비가 내린다. 이탈리아의 진흙땅은 전통적으로 악명이 높다. 나폴리 점령 이틀 전부터 내린 비는 해안의 평지를 빠르게 늪과 진흙탕으로 바꾸어 버렸다. 고생 고생한 끝에 1월 초 연합군은 독일군이 만든 구스타프 방어선에 다가섰다. “마치 총으로 쏘는 듯한 매서운 바람,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끈적끈적한 안개와 비, 바위투성이의 지형, 피할 곳조차 없는 지형, 독일군의 강력한 반격, 우리는 진퇴양난에 빠져 버렸다.” 연합군 알렉산더 장군의 말처럼 연합군은 구스타프 방어선 앞에서 무기력했다. 미 36사단은 얼음이 떠다니는 라피도 강을 건너 공격했다. 강은 3개월간의 주기적인 폭우 후에 범람기에 돌입해 있었다. 강폭은 20m, 수심은 13m, 물살의 속도는 상당히 빠른 13㎞/h 정도였다. 미군은 밤을 이용해 공격했다. 이날 밤 안개가 짙게 끼면서 지휘통제가 어려워졌다. 미군은 강을 건너 공격하기 위해 적의 지뢰지대와 포의 사정권인 늪지대의 범람원을 1.5㎞ 이동해야 했다. 독일군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몇 개 부대는 실종되고 몇 개 부대는 암흑과 안개 속에서 뒤죽박죽되고 말았다.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군은 다음날 다시 재공격을 시도했으나 진흙 뻘과 빠른 물살, 독일의 강력한 저항으로 공격은 실패했다. 미 36사단은 라피도 강을 건너는 작전에서만 2128명의 사상자를 냈다. 강을 아예 건너지도 못하고 말이다. “거친 지형과 최악의 겨울, 매서운 추위와 끊임없는 비, 부족한 담요, 얼어붙은 음식, 쉴 새 없는 독일군의 박격포 공격.” 연합군은 그 이후 4개월 이상 1만6000명 이상의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는다. 1943년 겨울 연합군의 이탈리아 점령 작전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엄청난 사상자만 내고 막을 내렸다. 쇠락해 가는 독일의 자존심을 살려준 전투가 구스타프 방어선 전투였다. 잠언에서는 지혜로운 자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날씨와 지형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독일 케셀링 원수의 지혜로운 리더십이 연합군에게는 최악의 참패를, 독일군에게는 영광의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