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뒤범벅이 되여 ( 뮤지컬 요덕 스토리 관람 評 )
1800석의 객석이 한석도 비어있지 않은 성남 문화 아트센터의 공연장에는 서울의 공연에서 1차 관람을 놓친 대부분의 관람객중에 나도 포함도어 있었다.
근래에 와서 문화생활의 장르중에 유행처름 번지는 대형뮤지컬을 자주 접하지 못하고 몇년전의 명성황후를 관람한후 처음으로 대하는 뮤지칼, 요덕스토리는 그 색다른 잇슈만큼이나 기대가 컷다.
칙칙한 수용소의 전경을 화려하고 경쾌해야할 뮤지컬 무대로 어떻케 연출하였을까 , 남북관계에 미묘한 영향을 줄수 있는 소재를 지금과 같이 외면하는 국가적인 분위기에서 과연 사상적인 이념의 잦대를 어떻게 표출할수 있을까, 연출가는 뮤지컬을 통해 북의 체제를 그리고 그 지도층의 악행을 정면으로 비판할수 있을까, 하는 나 나름대로의 많은 의아심과 그흥분을 가지고 무대의 막이 오르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러면 스토리의 전개를 따라 요덕 뮤지컬에 대한 관람평을 짧은 나의 지식 ( 전문 평론가가 아니어서 서툴고 매끄럽지 않은점을 이해바랍니다. 특히나 오페라 뮤지컬은 거의 조예가 없음을 )을 바탕으로 그소감 견해를 쓰보고저 한다.
시작의 시그날이 울리고 오른쪽 무대끝에 원형의 조명하에 너무나 당당하고 세련되고 호감가는 여자인민군 복장의 강련화가 멋진자세와 멋진 음성으로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께서는 출중한 영도력으로 만백성을 이끌어주시고 어쩌구(대사의 내용 정확히 모름) 그칭송의 대사가 약 1분간 지속된다. 곧이어 수십명의 인민군 여전사가 등장하여 멋진 폼으로 군무가 이루어지며 그 연극적인 흥을 돋군다. 모두가 김정일 장군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이장면에서 자??하면 오해하기 쉽다. 그 장면이 너무나 당당하고 세련되고 씩씩하기가 일찍이 드물었고, 몇 번 우리가 보아왔던 미녀 응원단보다 더욱 예쁘고 세련되였기 때문이다. ( 번쩍이는 단검으로 절도 있는 경례동작은 다시한번 보고싶은 멋지고 멋진 동작이었다)
이러한 장면들은 어둡고 칙칙한 수용소의 실상으로는만은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연출가의 의도인것 같았다.
곧이어 장면은 바꾸어 주인공 강련화의 영화 촬영장면이 연출되어 북한의 공훈배우의 비중을 설명케 한다. 공훈배우외의 모든 스탭들은 촬영현장에서 감독에게 마음되로 구타당하며 취급되어지지 만은 공훈배우만은 그곳 계급사회에서 큰대접을 받는 비중으로 공훈배우 강련화의 위치가 확고함을 연상해준다. 이장면에서 연극은 결코 화려하지 못하며 세련되지 못하였음이 다소 아쉽다. 이러한 강련화의 화려함도 잠시, 어느날 갑자기 보위부소속 인민군 수십명이 강련화의 집으로 들이닥치고 아버지 강만식 ( 정확한 이름은 ? ) 어머니 김홍련(?) 그리고 강련화 동생 강일식(?)은 아우성치는 혼란속에 어디론가 끌려간다. 이중 보위부 군관의 입을 통해 이개시끼는 우리공화국의 원쑤인 미제국주의의 첩자이다. 이한마디가 잠깐 흘러가는 말로 있었다.
이후의 줄거리는 요약하여 몇줄로 줄이고 극의 전반적인 느낌을 말하고저 한다. 수용소에 끌러간 강련화 가족은 우리가 가히 상상할수 없는 절망과 분노의 비참한 삶이 지속된다.
수용소에 입소한 그날 강련화는 공훈배우의 위상이 싸그리 없어지고 수용소장 리명수의 성노리개가 되어 임신을 하게 되고 그의 아버지 강만식은 십자가의 고문틀에 묶인체 아들 강 일식 에게 채찍으로 맞어면서 죄를 이실직고 하라는 고문을 당한다. 이장면에서 북은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고 가족이 자기 가족의 일원을 공화국의 원쑤로서 경애하는 수령동지를 배반하는 죄를 묻도록하는 체제를 강요함을 보여준다. 하루식량 강냉이 몇알로 세월을 보내면서 주인공 강련화는 아이를 낳고 수용죄수들의 보살핌에 아이의 이름이 요덕이라 지어지고 수용소는 수용소장 리명수 대위와 경비대장 라영철(?) 중위간의 갈등으로 구데타가 나고 리명수는 독방에 갇히는 죄수신세가 되어 자기의 아들 리요덕 의 존재를 알면서 개심의 마음이 싹트고 드디어 강련화와 리요덕의 탈출을 연출한다 . 국가보위부 중앙군사위원회 군관이 파견되고 마지막 탈출장면에서 리명수 대위 라영철 중위 모두기 죽고 강련화는 철조망위에 걸친체 모두가 총탄에 쓰러지면서 극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스토리 중심이 아닌 뮤지칼은 안무와 북한 가요와 오페라가 앙상볼을 이룬 절묘한 조화로 수용소의 참상을 예술로 승화 시켰다.
눈물을 예상했던 일부 관객은 옛악극단 이나 신파류의 극에서 기대할수 있는 지극히 감상주의적인 절절한 장면에서와 같은 분노와 억울함과 슬픔의 감정을 가질수 있었겠어나 이 뮤지칼 요덕스토리에서는 결코 그러한 수준이 아니었어며 첫장면외에서는 모두가 칙칙하고 어두운 수용소 장면이였음에도 더럽다거나 협오스르운 장면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용소 자체가 그러한 배경에 충실할려는의도에서는 몰라도 소품이나 무대 장치면에서 다소 아쉬운 것은 나의 너무나 아마추어적인 뮤지컬에대한 식견 이라 할수 있을까.
일반 언론지상의 비판과는 약간달리 중간중간에 간혈적인 박수는 있었어나 객석에서 눈물의 훌쩍거림과 같은 또한 우리체제의 우월성에서 오는 북의 죄악에 대한 분노의 표시같은 것은 별로 크게 와닫지 않았음은( 이러한 감정은 너무나 단련된 나 개인의 감정임을 또한번 말해둔다 ) 이뮤지칼이 어디까지나 뮤지칼 원래의 의미대로 예술본연의 의미에 큰비중을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나혼자 생각해본다.
마지막 무대 인사때의 출연진 모두에게 보내진 10여분간의 박수의 의미도 결국에는 여려가지 불리한 환경에도 이렇게 휼륭한 공연을 연출한 감독 정성산씨와 주인공 강련화역의 1000대 1의 경쟁에서 뽑힌 최윤정, 이테리 유학파 출신인 리명수역의 임채청 그리고 탈북자출신의 무용가 김영순의 안무지도 그리고 한국뮤지컬 대상에서 극복상의 유혜정 음악상의 작곡가 차경찬 이들 모두 그리고 출연진 모두들의 노고에 대한 관람요금 이외의 성의를 표시한 긴성원의 박수 이었을 것이다.
덧붙여 말하고저함은 요덕스토리가 아무리 뮤지컬 본연의 예술로의 승화로 인하여 사회 고발적인 의미가 희석되였다고 본다고 하나 이를 기획하고 연출한 정성산씨의 애초의 기획 의도로 볼때 즉 그는 출신성분 좋은 북의진골 출신으로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연극 영화대학 영화 연출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 영화대학 영화 연출학과 유학중 탈출함으로 그의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돌팔매로 죽음으로서 그는 이러한 가족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하였음이다.
전세계에 북의체제를 고발하고 수용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무하고 이러한 북한의 현실에 대해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냉소에 대한 분노와 특히나 북의 저러한 반인륜 근본적인 죄악에도 애써 의도적으로 모른체함의 무관심과 북의 인권을 말하는 그 자체의 싹을 평화공존이라는 논리로 희망의 촛불조차 짖밟아 버릴려는 국가 지도층에 한줌의 양심을 일깨우는 계기되였어면 한다. 이러한 희망의 촛불은 요덕스토리 공연팀이 제2,제3의 출연진을 구성하여 우리나라 지방곳곳과 미주대륙 유럽 여려곳에 공연을 실현함으로서 그 싹은 무성하게 퍼지고 꽃피울 것이다.
참고로 요덕스토리의 공연 과정을 자료를 통한 실상을 정리하여 보면 지난 3월 15일 인가 첫공연을 시작하여 4월2일까지 서울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하였으며 2차로 성남 아트센터에서 그제와 어제 2일간 공연되였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관람객이 전쟁을 경험한 50대 이상이였어나 차츰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블록버스터형의 뮤지컬에 젊은이들이 찾아들고 점점 객석이 꽉매워진체 이제는 관객의 대부분이 유로관객으로 갈수록 젊은관객이 많아짐이 시중의 화재가 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총재작비 7억원 가운데 느르웨이 다큐멘타리 제작사인 피라야 필림에서 1.2억을 미국의 디펜스포럼에서 200백만원 그리고 서울지방법원 자유시민연대 자유북한 방송 그 외의 600여명의 개인 후원자들이 이 재작비의 대부분을 제공하였어며 그 외의 무궁화 지킴이 요원들의 공연장 무료봉사 활동으로 공연을 실연하게 되였다고 한다.
마지막 극중의 중요한 대사가 자꾸만 떠오른다. 이요덕의 입을 통한 하느님 남조선 사회에서만 오시지 말고 이 어두운 조선 인민공화국 함경남도 요덕에도 와주십시오.
2006년 4 월 20일
한 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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