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행 · 2
별일이 아닌데도 종종 서울을 간다. 꼭 오라는 것도 또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핑계를 만들어서 가는, 점잖게 말하자면 그저 세상 구경을 하는 기분이랄까.
이번만 해도 그렇다. 청첩장에 적힌 11월 5일(토요일) 13시 강남구 논현2동성당…. 여유를 부린다고 사흘 전인 수요일에 코레일톡에 들어갔는데―. 아뿔싸, 표가 없다. 할 수 없이 팔자에 없는 KTX특실, 그것도 마지막 한 장을 아슬아슬하게 구하고 한숨을 쉰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는 듯 찜찜한 기분이 들다가 슬며시 타협하고 만다. 이 나라가 이만하면 이만큼 바쁘면 잘 돌아가는 것이야. 그걸 몸소 확인한 것만 해도 비용효과가 있는 셈이야, 하고 만다.
동대구역 플랫폼.
한 줄기 바람이 시원스럽다. 모종의 기다림과 설렘을 즐기는 순간들도 작은 행복이리라.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나는 깜짝 놀란다. 이런! 만져져야 할 무엇이 만져지지 않는다. 휴대폰, 휴대폰이 없다! 사고의 연속, 아 이게 늙어가는 징조인가. 거실 충전기에 매달려 긴 휴식에 들어갈 휴대폰이 빙긋 웃는 듯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마누라와 아들딸의 전화번호도 헛갈릴 때가 많은데…. 무엇보다 예식장을 나온 후에 K를 만나야 하는데―. 바둑을 두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그러면 오늘 이 하루가 깔끔하게 지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백지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지. 제목은 서울의 만추, 혼자서 외로울까. 아니야, 혼자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요즘 유행한다는 혼밥, 혼술, 혼려라는 것들을 이 시끄러운 세상을 무대로 한꺼번에 체험해보자꾸나. 이게 나라냐. 요즘 유행하는 말이라는데 그 냄새라도 맡을 수 있을 것인가.
서울시청 전철역에 내린 것은 두 시쯤 되었을까.
덕수궁 돌담길로 자연스럽게 들어선다. 단풍잎이 우수수, 노랑과 갈색의 분위기가 그만이다. 내 할 일 끝내고 이렇게 가요―. 괜히 조바심이 난다. 갑자기 사바의 숙제를 끝내고 하늘나라로 간 P가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군데군데 거리공연이 활력을 내뿜는다. 그러나 청춘들만의 세상은 아니다. 홀로 걷는 여인들이 적지 않다. 여유와 멋이 느껴지는 것은 내 기분 탓이리라. 나이 지긋한 노부부들이여, 당신들은 추억여행을 하는 것인가.
광화문네거리로 진출했다.
첫눈에 뜨이는 것이 붉고 푸른 깃발들, 한 판 멋지게 벌어진 모양이다. ‘백남기 농민 시민사회장 영결식’, 서울시장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빨간색 팻말은 왜 이렇게 많나. 얼핏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란 께름칙한 말이 생각난다. 하여튼 사람도 많고 구경거리는 널렸으니, 우선 한바퀴 돌기로 했다.
시민회관 정부종합청사를 거쳐 광화문으로 가는 추억의 거리―. 요소요소에 경찰병력이 정렬해 있었다. 무슨 험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 그네들의 옅은 연두색 상의가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종대왕동상을 지나니 판이 달랐다. 큼지막한 무대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하얀색 부스가 양 옆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행사명은 ‘주한외국대사관의 날’, 대한민국의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것 같았다. 때마침 내 고향 비산동의 ‘날뫼북춤’ 장인이 표창을 받고 있어 박수 한 번 세게 쳐주고. 각 나라의 부스에 있는 민속품과 먹을거리를 느긋하게 기웃거려본다.
세종대왕상 앞의 무대는 정각 네 시부터 ‘분노 문화제’로 이름이 바뀌어져 있었고, 다음 주의 ‘민중총궐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구경은 가까이서 해봐야지, 무대 근방으로 갔다. 세종대왕의 무릎 아래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 시대 유명인들이 다 와 있는 모양이다. 아무개는 퇴진하라! 아무개가 몸통이다! 세월호 7시간! 한톨의 쌀은 위대한 우주다! 살벌한 구호와는 달리 대부분 편안한 얼굴들, ‘분노’와 ‘문화제’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할까.
문제가 생긴다. 구호에 맞춰 팔뚝을 쳐드는데 나는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 이런 걸 언제 해 봤어야지, 세련된 동작 사이에서 이질감을 견디기 어렵다. 후방으로 물러나면서 하늘을 쳐다본다. 남쪽 하늘에 우뚝할손, 23전 23승 불패명장 충무공이시여! 이 나라를 보우하소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되지 않는 엄중한 상황이 아닙니까. 가나다라마바사…. 북쪽 하늘을 안으셨네, 당신의 눈을 바쳐 만인의 눈을 뜨게 한 대왕이시여! 다시금 오천만의 눈을 뜨게 하소서.
가로수 원형 데크에 앉았다. 옆자리가 잠시 비는 순간 젊은 부부가 앉는다. 손에 든 빨간색 전단지가 아니라면 또 섬뜩한 문구만 아니라면 평범한 행락객의 모습이다. 김밥을 펴놓고 말없이 다정하게 평화롭게. 몇 개 얻어먹으면서 말을 붙여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주책이다 싶어서. 한 꼬마가 어른 손을 잡은 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가면서 묻는다. 아빠,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 시위하는 거야. 시위가 뭔데?……. 사람들은 그렇게 몰려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촛불이 준비되어 있어 밤의 정경을 상상하게 하였다. 구미가 당기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또 하나의 내가 핀잔을 준다. 철딱서니 없이! 네 나이가 몇이냐! 이윽고 나는 방향을 반대로 틀었다. 구경하러 왔으니까, 서울 여행을 왔으니까. 나의 뒤통수에는 ‘민주시민 5만 인파’를 알리는 흥분된 여성 투사의 목소리가 달라붙고 있었다. 이제 시청 앞으로 가는 태평로는 차량통제 구간이 되어 있었다. 곧 사람으로 꽉 들어차겠지. 넓게 뻥 뚫린 차 없는 도로를 걷는 기묘한 기분…. 그렇지, 1987년 6월의 그 시절에도 구경꾼인 나는 이 길을 걸었다. 아니 쫓기고 뛰어다녔겠지. 팽팽한 긴장과 충돌, 최루탄이 난무하던 길이었으니까. 어쨌든 구경 한번 잘 했다, 역시 서울은 넓은 곳이야 그리고 좋은 곳이야.
IMF사태가 시작될 즈음인 1997년 가을. 나는 중국 상해에서 우연히 만난 한 청년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바둑을 한 수 겨룬 후의 뒤풀이였는데, 그 전말을 엮은 글이 졸작「상해대국」이다. 그때 우리 옆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식당방문사진이 붙어 있었다. 마침 현철씨가 구속된 시점이라 내 마음이 썩 불편할 수밖에.
그러나 그의 말은 엉뚱하였다.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어떻게 총통의 아들을 잡아가두느냐. 중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그리고 그의 눈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오늘 이 현장을 안다면, 백주대로에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분노하며 즐기는, 더구나 총통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이 판을 뭐라고 할까. 그게 나라다! 라고 어쩌면 외쳐줄 지도 모른다.
시청에서 분당까지, 땅속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피곤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러면 안 되지, 애써 부정해본다. 아직 튼튼한 두 다리와 별탈이 없는 눈과 신경 연골 허리 오장육부 등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런저런 이승의 신비들을 감상한다는 것은 절실한 즐거움이요 어쩌면 놀라움 자체가 아니겠는가.
분당 미금역에서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당면한 문제, 마누라와 연락을 어떻게 한다? 몇 걸음 걷다가 공중전화를 생각해 낸다. 언제 공중전화를 했더라, 기억조차 까마득한 그 공중전화. 신기하게도 백 원짜리 동전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금방 떠오른다.
마침 붕어빵 노점상이 코앞에 있다. 붕어빵 어떻게 해요? 경상도 사투리 탓인지 인상이 고약해지는 것 같다, 내 느낌에. 세 마리 천 원! 궐자는 아예 반말이다. 비위를 거스르면 잔돈을 바꾸기 힘들 것이다. 마누라 핀잔을 각오하고, 삼천 원 어치 주이소. 삼천 원! 크게 복창하는 것이 많이 사 준다 고맙다는 뜻이렷다. 반말이라도 거슬리지 않는다. 옳다구나 싶어, 백 원짜리 쫌 바꿔주이소. 허긴 요즘 백 원짜리를 누가 쓰나, 한참을 뒤지더니 정말 고맙게도 다섯 개를 바꿔준다. 공중전화 어디 있어예? 포장마차 밖에까지 나와서 어둠속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하는 말, “쩌그! 쩌그!” 호남 사투리를 알아듣는 내가 나는 갑자기 기특해졌다.
이튿날 서울역 로비. 정오 무렵 만추의 햇살이 철없이 따사롭기만 하다.
나에게 무슨 허점이 보이는지 옆 자리 노숙자가 말을 걸어온다. 경기도 억양으로, 대형 TV 방송을 생중계해준다. 저 아줌마는 왜 안 그만두지, 하루 10만 명씩 모이는데―. 그 자리는 올라가면 내려오기 싫은 모양이죠? 한참을 빤히 쳐다보는 양이 대답 좀 하라는 주문이다. ……. 저 아줌마는 150만 원짜리 신발만 신는대요, 한 짝에 75만 원! 어휴 돈도 많은가 봐. 나는 중고 운동화를 2천 원 주고 사 신는데―. 이럴 땐 그 운동화에 눈인사를 보내는 것이 예의렷다. 그런 연후에 고개도 두어 번 끄덕여 준다. 머쓱해 하면서 던지는 말, 그래도 메이커가 있는 신이랍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결론까지 내고야 만다. 물러나란다고 그냥 물러나도 안 되지. 북쪽 애들이 쳐내려올 거야, 아마.
D-2일 미국 선거판으로 화면이 바뀐다. 저 노랑머리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 망한대요. 계속 실없이 웃기만 하는 것도 싱거워서 한마디를 거들어 본다. 둘 다 노랑머린데요? 키 큰 노랑머리…. 정감 있고 차분한 목소리, 큼지막한 눈망울, 뭘 하던 사람일까.
5분간의 짤막한 앉은뱅이 동행이었지만 나는 한 가지 속 걱정이 늘어버렸다. 친구여, 오늘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려는가. 또 어디서 새우잠을 잘 것인고.
첫댓글 글을 읽다보면 그림이 그려지는 서울 상경기 잘읽고 가네.
나도 최근에 휴대폰 때문에 집에 되 돌아간 경험이 무수히 많거던 ㅎ ㅎ ㅎ
'카더라'와 주장이 하도 많은 세상이라 발로 뛴 경험이라고 객기를 한번 부려봤네.
갈수록 몸도 마음도 머리도 시원찮아지는 것 같아 별 자신이 없다만...
김삿갓의 '북한방랑기' 처럼 '어찌타 광화문은 핏빛으로 물들었나' 하지마라. 내 서울 나들이에 최현덕 하숙집 방문을 잊을수 없다.위병 게임하다 그걸 못잊어 바둑시작 한거 같은데 방 전체가 기보였고 책상에서도 바둑 공부하더라.김치림?(김인...임해봉.) 설명까지 해주며 13개 접바둑도 두었다. 석달만에 15급에서 1급 됐다고 좋아하더라.그래도 바둑이 자네인생을 살렸다.사시 합격해서 인생을 살았다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후회할 일이 많았을거다. 사실 노년에 혼자 다닌다는게 좀 신경 쓰인다만(혹 쫒겨 나온것 같기도 하고), 될수 있으면 같이 다녀라.물론 복기실력이 있으니까 집은 잘 찾아 가겠지만....
너는 늙지도 않냐...
하반기에 미국 놀러갈라꼬 목하 영어 배운다. 1월 2일부터 문화센터에서 3개월당 6만원짜리, 할마시들이 생각보다 실력이 좋더만...
꼴값 떤다고 칼수도 있고, 건강하고 기특한 시도라 칼수도 있겠지. 이것도 답이 없을 거야, 아마.
한국서 박윤시가 손달구에게 졸업 50주년 기념앨범을 보내줘서 조현영,박광수,나,손달구 이렇게 넷이 만났다. 조현영과 광수는 20년전쯤 만나고 처음 보는것 같더라.
그동안 미국 오면 친구들들을 꼭 만나고 가는 민성기,이인원,......때문에 바빴던 조현영을 제외하고 셋은 만났다.여기오면 9회 곽선섭 선배가 상당히 잘둔다.뉴져지에 기원도 2개정도 있다.
서부쪽에 묵을 것 같은데 동쪽에 한번 쯤 놀러는 가야지. '뉴저지 대국', 수필 한편 남길 수 있으려나...
미국의 역사는 동쪽을 먼저 평정후 꽉잡고 서부로 진출한다. 곽선섭 선배한테 자네 올지도 모른다고 전화했는데 꼭 한번은 두시고 싶다고 하시더라!
걸기대! 다리에 힘도 올리고,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촌놈 미국 무대에서 어설픈 춤 한번 춰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