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힘] 1부 힘든 시절 ⑤우울의 진짜 이유에 다가서기
‘나는 결국 실패자인가?’
셔터스톡
지난 5개월간을 돌아보았다. 그동안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Gloomy Sunday(우울한 일요일)’였다.
1930년대 초 유럽에서 유행한 이 노래는 특유의 염세적 분위기로 자살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유럽 전역에서 방송 금지가 됐던 곡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두 가지였다.
‘내 인생은 이제 끝인가?’
‘나는 결국 실패자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계로 뛰어들었던 내게 사회문제는 늘 관심사였다. 22년 다니던 신문사를 나와 글을 쓰고 지낼 때도 그랬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공직 생활을 하게 돼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몇 년간 일했다. 권부(權府)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민주화된 사회가 그다지 잘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국회의원 도전을 결심했다. 2012년 4월에 19대 총선을 겨냥해 그보다 1년 전인 2011년 봄, 사표를 내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고지도, 후원 세력도, 돈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성격이 정치 생리에 맞지 않았다. 결국 고민을 거듭하다가 총선을 4개월 앞둔 2011년 12월 초 출마 계획을 접었다. 어쨌든 버티면서 상황을 지켜보자는 주위의 권유도 뿌리치고 눈 딱 감고 사무실을 폐쇄했다.
그때 내 나이 만 55세.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민감하고 취약한 시기였다. 후반기 인생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신중한 연착륙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급격하게 궤도를 선회한 데다 급제동까지 하는 경착륙을 감행했다. 그 뒤 찾아온 후폭풍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무기력하고 허탈했다. 세상이 재미없었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수십 년간 한국에서 손꼽히게 바쁘게 살아온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그러다 하루아침에 집에 틀어박혀 빈둥거리니 무슨 낙이 있을까. 오전 늦게 일어나 어슬렁거리다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어 이제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참 힘이 빠졌다. 이렇게 노인이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잠도 얕게 들었다가 몇 번씩 깨곤 했다.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복기해보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후회와 회한, 반성이 들었다.
‘왜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했지? 기자 시절에도 정치 쪽에는 눈도 안 돌렸던 내가 아닌가. 게다가 그렇게 그만둘 건 뭔가. 사내가 칼을 뽑아 들었으면 끝까지 가든가, 그게 아니면 출마를 포기하더라도 좀 눈치껏 그만두지, 하루아침에 주위가 다 알도록 떠들썩하게 사퇴하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이런 생각들은 곧 창피함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럴 때면 애써 합리적 근거를 대면서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끝까지 가보겠다고 고집을 계속 피웠다면 정말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사퇴는 나다운 결단이다. 올바른 결정을 한 나를 더 이상 탓하지 말자. 후회하지 말자.’
마음이 좀 가라앉는가 싶으면 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다 좋다. 그런데 내 미래는 어떻게 되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지? 어떻게 살아가지? 할 일이 있을까? 어떤 일, 어떤 직책을 가져야 만족스러울까? 나를 원하는 곳, 받아줄 곳이 있기나 할까?’
앞이 깜깜해지면서 다시 후회가 거듭됐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은 자신에 대한 한심함, 의구심, 불신으로 이어졌다.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났다. 마치 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잠이 깨곤 했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고 벌을 받는 아이처럼 조마조마했고, 할딱할딱 가쁜 숨을 쉬며 깨어나곤 했다.
결국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나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사람도 바로 나였다. 나 스스로 가해자요 피해자인 셈이다. 스스로 느끼는 패배감, 후회, 자책, 허탈감의 공격에 힘들었다.
마음이 납덩어리처럼 무겁다가 뻥 뚫린 가슴처럼 허탈하다가 이어서 우울, 상실감, 자책감, 후회 등이 하루에도 수없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계속>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