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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미가서5:1-7
오늘은 주님의 성탄절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 네 번째 주일이 지나고 삼일 후면 주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는 지난 나흘 동안 노회 동반성장 위원회 임원들과 함께 지원받는 26개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서 그런지 모든 교회가 아름답게 성탄절 장식을 하고 성탄의 분위기를 띄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탄절은 여전히 교회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이해야 하는 최대의 명절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성탄의 기쁨과 축복이 우리 모든 교회와, 비상계엄사태로 혼란한 이 나라와, 세계 곳곳에 특히 전쟁과 기아로 정말 힘들어하는 지역에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대림절 네 번째 주일에 우리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게 됩니다.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미가 선지자는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와 함께 예언활동의 황금시대를 장식했던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농촌출신으로 부자들과 지주들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과 소작인들을 힘들게 하는 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선지자는
그들의 포악과 불의가 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책망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살길은 오직 백성들이 회개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 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미가 선지자의 대표적인 이 말씀은 아모스 선지자의 정의와 호세아 선지자의 사랑과 이사야 선지자의 겸손을 종합해서 선포한 말씀으로 유명한데요,
구약학자 뉴드손 교수는 이 말씀을 ‘구약성서 가운데서 최대의 구절이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말씀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백성들의 범죄와 잘못을 당시에 중동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앗수르를 통하여 심판하게 되는데요,
북쪽에서 강력한 나라로 자리 잡은 앗수르는 점차로 남하하면서 사방의 여러 나라를 위협하더니
급기야 주전 732년에 시리아의 다메섹을 정복하고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북 왕국의 멸망은 국경을 맞대고 있던 남 왕국 유다에게도 위급한 상황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몰리게 되자 미가 선지자는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됩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선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구원의 메시지 중에 하나입니다만 먼저 유다 나라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그들이’ 즉 앗수르가 우리를 에워쌌다고 하면서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라고 합니다.
앗수르에 의해서 당해야 하는 치욕과 아픔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절에서부터 반전이 일어납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오는데 그가 유다나라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서 그들을 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자를 보내주셔서 위기에 처한 유다를 구원하고 지켜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그대로 놀랍게도 유다 나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난 후에도 135년을 더 버티고 나라를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구원자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주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메시아가 오실 장소가 바로 ‘베들레헴 에브라다’ 라는 사실을 예언한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동방으로부터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따라 유다 땅으로 오게 되잖아요?
그들이 갈 곳은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왕궁이었습니다.
유대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면 당연히 왕궁에서 태어나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박사들의 말을 듣고 당황한 헤롯왕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그러자 서기관들은 당장에 베들레헴을 지명하는데요, 그 근거가 되는 말씀이 오늘 본문인 미가서 5장 2절입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2:6)
이렇게 보면 유대인들은 메시아, 그리스도가 오시면 당연히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만큼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은 메시아의 예언으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처럼 구약에서 예언된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메시아가 오신다는 말씀은 수도 없이 많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오늘 본문에서는 오실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그 예언대로 이 땅에 메시아로 구원자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신 줄 믿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이처럼 구약의 예언을 따라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는 예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자기가 구원자라 메시아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많은 이단의 교주들이 있습니다만 그들은 절대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미혹자일 뿐이고 그를 따르면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은 바로 구약에서 예언되고 특히 장소까지 에언 되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한 분밖에는 없는 줄 믿습니다.
1. 이 메시아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태어나시지만 그 분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습니다.(2절)
그 분의 근본이 상고나 영원에 있다는 말은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나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보내서 이 땅에 왔다,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벽기도 때도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말을 하는 자는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진짜 하나님이시든지 아니면 거짓말 장이 혹은 미친 사람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진짜 하나님이시라면 자신의 말이 진짜, 사실이라는 것을 증거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함으로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래서 의심 많은 사람들도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겠느냐?’(요7:31) 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분명히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고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의 큰 아들로 오셨고 어릴 때는 다른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예수님의 근본이 상고에 영원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인간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는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습만 갖춘 분이라고 해도 인간을 구원할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기에 죄가 없으셨고 죄가 없으셨기에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시기에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몸을 찢기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황공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몸소 체험하는 이 성탄절을 정말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맞이해야 할 줄 믿습니다.
2. 이 메시아는 이 땅을 다스릴 자로 오셨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했습니다.
그가 하실 일은 이스라엘 가운데 ‘목축한다.’ 즉 목자 노릇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인도하실 목자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계를 다스리실 목자이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이 땅에 오신 후에 백성들을 향하여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11)
주님이 선한 목자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우리는 양이라는 말입니다.
양이라고 하는 동물을 우리가 익숙하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양은 약합니다. 양은 어리석습니다. 그러기에 양은 스스로는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약하고 어리석은 양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 중에서도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셨고 더 풍성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약한 양인 우리를 도와주시고 어리석은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고 위험한 일을 당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 따라가면 우리의 삶은 행복합니다. 풍성합니다. 안전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양이신 우리를 다스리고 싶어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고 안전하게 지켜주고 평안한 삶으로 인도하고 풍성한 삶으로 축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정말 연약하고 부족한 양들입니다. 특히 죄와 사망에서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양들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아가다가 절망하고 낙심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 마음을 다스려주십시오, 제 생각을 다스려주십시오, 저의 가정을 다스려주옵소서, 저의 교회와 저의 나라를 다스려주옵소서.’
연약하고 어리석고 부족한 내가 아니라 오직 선하신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고 가정의 목자가 되시고 교회의 목자가 되시도록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행복하고 안전하고 축복된 양으로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3. 이 메시아는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6절 하 반절에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의 구원자는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구세주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메시아이신 주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이 구원의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멸망에 빠진 자들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돌아가셨습니다.
불이 났을 때 피할 수 있는 곳은 이미 불이 타버린 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개척시대에 백인들이 인디언을 쫓아내기 위해서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마을 주위에 불을 질렀습니다.
당시 인디언들은 사방에 옥수수를 심어놓고 그 가운데 부락을 만들고 거주하고 있었는데 사방에서 불길이 조여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몇 시간 뒤에는 마을까지 불길이 번질 상황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떨면서 어떻게 할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에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추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어서 빨리 마을 앞 옥수수 밭에 불을 질러라! 꾸물대지 말고 빨리 빨리 불을 질러라!!”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추수를 기다리고 있던 옥수수 밭은 새까맣게 불타 버렸습니다.
추장은 다시금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살고 싶거든 모두 다 불탄 자리에 올라서라!”
마을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어린 자녀들을 끌어안고 평생 살아온 집에서 나와 불타버린 옥수수 밭으로 올라가 그 엄청난 화염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추장은 이미 한번 불에 탄 곳은 다시는 불에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무서운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심판 받으신 십자가의 자리에 나오기만 하면 다시는 심판 받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짊어지시고 심판 받으셨기에 우리는 같은 죄를 가지고 심판받지 않습니다.
심판 받은 자리에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5:24)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앞에 두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감사하면서 이 구원의 진리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