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by 카를로 로벨리 (tistory.com)
공간, 입자 그리고 장
세계관의 기반이 되는 공간 개념은, 공간을 거대한 통이라고 보는 방식. 일정하고, 균일하며, 특정한 방향이 없고, 유클리드 기하학을 적용할 수 있는 거대한 상자. 우리가 알고 있는 물체들은 상자 공간 안에서 이동하는 입자들을 통해 형성. 뉴턴의 만유인력도 이 공간 개념 안에서 수립.
200년 후 맥스웰과 패러데이는 공간, 입자와 함께 전자기장이라는 제3요소가 추가. 장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널리 퍼진 형태의 개체로 장이란 양전하에서 출발해 음전하에 이르는 선들의 집합. 공간의 모든 지점에는 패러데이의 역선이 지난다. 전하가 없어도 패러데이의 역선은 여전히 존재. 전자기장은 전하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며, 전기장이 존재하기 위해 전하가 필요하지 않음. 빛도 전자기장 속의 역선들에서 나타나는 빠른 파동일 뿐. 라디오파는 매우 느린 파동이고 빛은 매우 빠른 파동이지만, 모두 전자기장의 규칙적인 변형에 불과.
아인슈타인은 전하들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전자기장을 통해 전기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두 질량 사이의 중력 역시 중력장을 통해 작용한다고 생각. 중력장은 공간 전체를 채우고 있으며 움직이고 진동하며 파동을 형성.
양자역학은 두 가지 발견으로 커다란 변화를 초래. 첫째, 미시적 차원의 세계에서는 항상 알갱이의 특성, 즉 불연속성이 발견.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이는 미시 세계의 물체는 임의의 속도가 아닌 한정된 특정 속도만 가질 수 있으며, 이를 속도가 양자화 됐다고 말함. 둘째, 모은 움직임에 우연한 요소인 본질적 불확실성이 존재. 미시적 차원에서는 물체들의 변화는 확률의 지배를 받음.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매우 명확하게 계산할 수는 있지만, 미래를 확실히 예견하기는 불가능. 결국 어떤 입자의 움직임은 입자의 존재에 대한 확률의 변화.
아인슈타인은 공간이 전자기장과 같은 하나의 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한편, 양자역학은 모든 장이 양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양자는 확률운을 통해 기술될 수 있음. 이 두 아이디어를 합치면 공간, 즉 중력장은 전자기장과 같은 성질을 가지므로 공간 역시 알갱이 구조. 결국 공간 알갱이가 존재. 이 알갱이들의 움직임은 확률을 따름. 따라서 공간은 공간 알갱이들의 확률운.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망처럼 연결된 알갱이들의 확률운으로 이루어진 중력장만이 존재. 이 아이디어와 특수상대성이론을 연결해서 보면, 시간과 공간은 긴밀히 이어져 있으므로 공간의 부재는 결국 시간의 부재.
지구상의 물체들의 움직임을 시간변수에 따른 A(t), B(t), C(t) 등의 방정식으로 표현한 최초의 인물은 갈릴레이. 우리는 항상 시간이 아닌 물리적 변수 A, B, C(진동, 맥박, 태양운행주기 등)를 측정하고, 늘 이 변수를 다른 변수와 비교. 결과적으로 우리가 측정하고 있는 것은 A(b), B(c), C(a)와 같은 함수일 뿐. 우리는 자연적 현상을 세고 있을 뿐, 시간 그 자체를 측정하고 있는 것은 아님. 근본적으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이란 각각의 물체가 다른 물체에 비해 변화하는 방식.
우주는 광활하고 복잡하여 시스템을 결정하는 무수히 많은 변수 중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 특정 온도의 금속 조각에 대해 연구한다면 그 조각의 온도, 길이, 위치 등은 측정할 수 있지만 온도의 원인이 되는 원자 각각의 미시적 운동은 측정 불가. 따라서 시스템의 물리적 상황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동역학적 방정식과 함께 통계역학 및 열역학 방정식을 추가로 사용. 통계역학은 시스템의 모든 미시적 변수들의 운동을 정확하지는 하더라도 예측을 할 수 있게 해줌. 또한 열역학은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물리학의 한 분야로 입자들을 개별적인 차원에서가 아닌 통계적 형태로 법칙을 활용하여 서술할 수 있음. 시간과 무관한 근본 이론으로부터 거시적 차원의 시간을 찾아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바로 시간은 오직 통계 열역학적인 맥락에서만 나타난다는 관점에서 나옴.
시간이란 미세한 규모의 차원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지만 보다 큰 규모, 즉 거시적인 차원에서만 드러나는 창발적 현상.
만약 우리가 세상을 이루는 모든 세부 요소를 원자 규모로 파악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을 것임. 인간이 지닌 감각의 한계 때문에 평균갑과 결과 정도밖에는 인지할 수 없고, 바로 여기서 시간이라는 전반적인 개념이 파생. 마치 수많은 분자들이 진동할 경우 전반적인 차원에서는 열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 그러나 이것을 분자 차원에서 볼 때는 진동 운동만이 나타날 뿐 열을 지닌 분자를 찾아볼 수는 없다.
열역학계에서의 반응은 확률적이며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 상승.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이렇게 만들어짐. 반대로 열역학계가 아닌 경우(예를 들면 공간 thrdpo서 단 하나의 원자 또는 입자만이 이동하는 경우)라면 엔트로피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으므로 시간이라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 여기서는 모든 것이 가역적이고, 시간이 특별한 변수로도 여겨지지 않을 것.
지구에서는 중력장 때문에 모든 물체가 아래로 낙하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물체가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낙하하기 때문에 아래라는 것이 존재. 그러므로 아래라는 개념은 지구가 가진 지역적 조건에 의해 정의된 것이며, 이 지역의 중력장에 의한 산물이고 효과이자 결과. 아래라는 것은 그저 낙하의 방향일 뿐.
시간도 마찬가지. 전과 후라는 개념은 아무 의미가 없음. 단 하나의 양성자에는 이전도 이후도 존재하지 않으며, 관련 방정식에서도 시간변수는 없음. 다만 어떤 동물, 이를 테면 앵무새의 내장기관 속 액체 안에 있는 분자의 경우라면 이러한 조직화의 각 단계들은 열역학 법칙들과 엔트로피를 만드는 통계적 상태를 따르고 바로 여기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등장.
결국 시간은 그저 엔트로피화의 방향에 지나지 않음. 엔트로피의 증가가 관찰되는 방향을 시간이라고 부를 뿐. 물체가 낙하하기 때문에 아래라는 개념이 생겨나듯,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
아래는 물체가 낙하하는 방향이고, 시간은 열이 식는 방향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