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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거야? 계획은 세우고 있어?"
"물론!"
오피스텔 앞에서 윤호를 만난 윤성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인이 다녀간 뒤로 이곳 출입을 삼가하라고 일렀는데 고새를 못 참아 또 다시 발걸음을 한 윤호를 보며 고개를 흔들어댔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희진에게 단단히 빠진듯 하다. 어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윤호를 보며 성의없이 몇 번 고개를 끄덕여 준다.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지만 아버지가 알게 된 이상 윤호를 계획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윤호까지 연루되어 있다는 걸 알게되면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문 앞에 도착한 둘은 자연스럽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 안으로 들어갔다.
"반찬은 그대로 놔둘까?"
"글쎄, 그 아저씨들 여기서 밥 안먹잖아."
"먹을지도 모르지."
부엌쪽에서 두런두런 시연과 희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성과 윤호는 둘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갔다. 냉장고 정리에 여념이 없는 시연과 희진은 두 사람이 들어온 걸 눈치채지 못한 채, 냉장고에 든 것들을 꺼내고 있었다.
"희진아, 이거 뭐니?"
"아~ 그거, 윤호씨가 사온거야. 심심할때 먹으라고."
"윤호씨? 너 아주 자연스럽다. 어떻게 남친이랑은 진도 좀 나갔어?"
"뭔 농담을 그렇게 재미없게 하냐? 아직 순수 모태 솔로한테."
"모태 솔로? 뭔 소리야? 공식적인 남친을 옆에 두고."
"근데 이 년이.........그건 그냥 너 때매 그러는 척 하는 거지, 어디다 누굴 갖다 붙여!!!"
"너 작은 아저씨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 난 그렇게 알았는데?"
생각지도 않게 둘의 대화를 엿듣는 꼴이 되어버린 윤성은 대화의 주제가 된 윤호를 쳐다보았다.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조용하라는 신호하는 윤호를 보며 윤성은 숨소리를 죽였다.
"내가 그런 덜 떨어진 놈이랑 왜 사귀냐?"
"넌........윤호씨 정도면 괜찮지 않아? 비쥬얼 좋고, 키 크고, 돈 잘 벌고 딱 니 취향이잖아."
"뭐 얼굴 뜯어먹고 사냐!!!"
"왜 그러는 건데?"
"난 우유부단한 남자 딱 질색이야!!"
"우유부단? 뭐가 우유부단이야? 내 보기엔 괜찮던데."
우유부단이란 말에 윤호는 어이없다는 듯 윤성을 쳐다보았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형을 보며 기가 차다는듯 허하게 웃어 보인다.
"너도 봤잖아. 큰 아저씨 약혼녀라는 그 싸가지! 그 싸가지가 원래는 윤호씨 약혼녀였대잖아."
"그런데?"
희진은 문득 다인이 오피스텔을 들이닥쳤을 가 떠올랐다. 이성을 잃고 온 집을 헤집는 다인을 보며 정신나간 기집애라고 했을때 윤호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짜증난다는듯 휙하니 슈크림이 든 박스를 식탁 위로 집어던졌다.
"뭐? 니가 그렇게 부를 사람 아니라구? 뭐 얼마나 귀한 사람이기에. 지 약혼녀도 아니면서 내가 기집애라고 했다고 완전 정색하면서, 잘 하면 한대 치겠더라. 그런데 그런 놈을 내가 왜?"
"설마?"
"설마는......... 원래 자기가 약혼하기로 되어있었어도 지금은 아니잖아. 형 약혼녀면 나중에 형수가 될건데 아직도 못 잊어서 그런 순간에도 편을 들었주냐? 한마디로 주변 정리가 안되는 인간이야. 그러니깐 그런 인간, 나한테 갖다붙이지마!!"
"저기~ 희진아."
"왜!!!"
희진이 한참 열을 내며 떠들어 대는 순간 시연은 부엌 입구에 서 있는 두 남자를 보았다. 잔뜩 굳어진 표정의두 사람을 보며 희진의 말을 중단시키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희진의 입은 너무도 빨리 움직였다.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연이 의아하게 느껴져 뒤를 돌아본 희진은 어이없다는듯 서 있는 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와~ 완전 어이없다. 아니 내가 왜 우유부단해? 내가 뭘 어쨌는데? 아무나보고 이 기집애, 저 기집애 그러는 거 듣기 싫어서 한마디 한거뿐인데,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채 서성거리며 울분을 토하고 있는 윤호를 보며 윤성은 골치가 지근거린다. 희진은 벌써 돌아가 버리고 없는데 저 혼자 분을 삭이지 못한채 왔다갔다 중얼거리고 있는 꼴이 한심스럽기도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결국 쯧쯧 혀까지 차며 고개를 흔들어댄다. 그러게 희진이에게 맘이 있으면서 왜 쓸데없이 다인이 편을 들어서 저 사단을 만드는 건지.
흥분해서 서성거리던 윤호는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형과 눈이 마주치자 이내 시무룩해진다. 그러다 그를 보고 서 있던 시연과 눈이 마주쳤다. 윤호는 호응을 얻고 싶은듯 시연을 보며 다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니가 보기에도 내가 잘못한거 같냐?"
"글쎄요."
"글쎄요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라니깐. 내가 잘못한거냐구?"
"음........근데 아저씨, 희진이 좋아해요?"
"응?"
"지금 아저씨가 흥분하는 이유가 희진이한테 맘이 있어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면 없는데서 아저씨 욕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어.....그...그건...."
"희진이 좋아하는 거 아니라면 상관없잖아요. 없는데선 나랏님도 욕하는데, 욕 좀 했다고 그렇게 펄펄 뛰는 거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닌가?"
"야! 아.......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한테 우유부단하다고......."
"참 여러가지 한다. 이 윤호, 아주 불쌍해서 못 봐주겠다."
"형!! 형까지 왜그래?"
"니가 희진이 좋아한다고 그랬잖아. 그러니깐 희진이가 널 우유부단하다 몰아붙이는게 억울한거고."
"형!!"
보다못한 윤성이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어떤일에도 모두 관심 밖인양 수수방관하기 일쑤였던 윤호가 횡설수설에 흥분까지, 여지껏 윤호가 저렇게 이성을 잃고 흥분해 마구 떠들어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저건 누가봐도 희진에게 맘이 있다는 증거다.
"희진이 좋아해요?"
"그........그게........."
"그럼 왜 억울해하고만 있어요?"
"뭐?"
"여기서 우리 잡고 하소연하는 시간에 차라리 희진일 쫓아가서 그거 오해다, 정말은 너한테 맘이 있다, 그러니깐 그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해요."
"쫓아......가서?"
"여기서 우리 잡고 백날 억울하다 하소연하면 뭐해요? 희진이는 가버렸는데, 그런 문제 일수록 다이렉트로 대놓고 말해야지 안 그럼 어떻게 알겠어요."
"하.........하지만, 그런걸 어떻게......."
"혹시 제가 대신 전해주길 바라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잘못하다간 희진이 아버님이....."
"희진이 집에 들어가서 고스톱도 치고, 밥도 얻어 먹었다면서요. 원장님이랑 아줌마, 할머니까지 아저씨가 희진이 남친이라고 알고 있는데 무슨 문제예요? 희진이가 지 입으로 아저씨가 남친이라고 말했고, 그 집 식구들 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연인끼리 싸움 좀 하면 어때서요?"
"그건 그런데......"
"제가 요긴한 팁을 하나 주자면 할머니는 분명 무한대로 아저씨 편이 되어줄거예요. 그러니깐 쫓아가서 데이트를 하든 싸움을 하든 당사자 얼굴보면서 해요."
"오호~ 명쾌한 답변, 맘에 드는데. 검사보단 변호사가 적성에 맞을 거 같은데......안그래 윤호야?"
하지만 윤성의 말에 대답해 줄 윤호는 그곳에 없었다. 다만 허둥지둥 오피스텔을 뛰어나가는 그의 뒷모습만 보일뿐이었다.
"눈썹이 안보이게 뛴다는건 저런 걸보고 하는 말이겠지?"
"그렇겠죠."
오피스텔에 둘만 남게 된 윤성과 시연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흐른다. 눈치를 살피던 시연은 부엌으로 들어가 하다 만 냉장고 정리를 마저 끝내려 했다.
"뭐하는 거야?"
"그냥 냉장고 정리 좀 하려구..."
"이왕 꺼내놓은 거 나 밥 좀 주지."
시연은 털썩 식탁 의자에 주저앉는 윤성을 돌아보았다. 밥이라니, 시간이 몇신데 여지껏 밥도 못 먹고 다닌건가? 오피스텔에 음식 냄새 베인다고 투덜거릴때는 언제구 이젠 밥을 달라고 하다니. 잔소리라도 한마디하고 싶었지만 냉장고 정리를 위해 내놓았던 반찬통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윤성을 보니 왠지 짠해보였다.
"밥 먹었어?"
"시간이 몇신데..... 안 먹은거예요, 못 먹은 거예요?"
"먹었어. 먹었는데 이상하게 여기만 오며 배가 고프네."
"뱃속에 기생충 키워요?"
"같이 붙어다녀서 그런가 생긴거 답잖게 말뽄새가 영......"
"다른 사람한테 그런거 지적질할 레벨 아닌데."
"나는 남자잖아. 대충 다 이해하고 넘어간다구. 근데 넌........"
"여자는 언제 어느 때고 애교가 살살 넘쳐야한다고 대한민국 법전에 명시 되있어요? 아저씨가 나만 보면 밥 달라고 하니깐 그렇죠. 지난번에 우리 집에 왔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삼식쉐키란 별명이 대놓고 맘에 드나봐요?"
"당근 맘에 들리 없지. 이래뵈도 어디 가든 먼저 밥 사주겠다는 말을 듣는 비주얼이라구."
"헐!!!!! 자뻑엔 약도 없는데."
어떻게 된 게 두 여자만 앞에 있으면 구박덩어리가 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왜 항상 시연을 만날때면 배가 고파오는 건지, 시연이 말처럼 뱃속에 기생충이라도 있는건지, 금방 밥을 먹고 왔음에도 허기가 지는 건 뭘까?
"설마 둘이 있을때 날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니겠지?"
"좀 전에 내가 없을땐 나랏님도 씹는다고 했을 텐데."
"하지마! 썩 유쾌하지 않은 별명이야."
"모르면 약이죠."
시연은 밥이 담긴 그릇을 윤성에게 내밀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밥그릇은 따뜻하다. 전기밥솥을 열고 밥을 더는 시연의 모습도 따뜻하고, 그녀가 건네주는 밥그릇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따뜻하다.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일상적인 저녁식탁 같은 느낌이 들며 왠지 뿌듯하게 느껴지는 윤성은 냉큼 수저를 들었다.
"생각해 봤는데, 밥솥 사주길 잘한 것 같아. 즉석밥보다 훨씬 맛있어."
삐죽 입술을 내밀어 보이지만 같이 앉아 밥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시연을 보며 윤성은 마음이 따뜻해져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온다. 밥을 먹으며 피식거리는 윤성을 의아하게 쳐다보던 시연은 뭔 생각을 하길래 바보처럼 혼자서 피식거리고 있는 건지, 가끔씩 혼자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볼때면 저 사람이 정말 사람을 죽이고, 덩치들을 한방에 날리던 사람이 맞나 싶다.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것처럼 보일때도 있고, 한창 누군가를 골탕먹이려고 궁리를 하고있는 초딩같기도 한데.
"맛있어요?"
"그럭저럭."
"괜찮은 거예요?"
"...........응, 괜찮아."
시연이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지금은 모른척 하고 싶다. 지금처럼 한가롭고 따뜻한 시간이 조금만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그녀의 질문을 흘려넘기려 했다.
"뭐가 괜찮은데요?"
"........."
되묻는 시연을 보며 윤성은 말없이 수저를 놀렸다. 지난번 김 기만 사건 이후, 시연이 알바도 그만두고, 학교도 가지않고 거의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알바가게를 찾아왔던 형사들을 피하기 위해서겠지. 생각지도 못하게 이리저리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모르는 척 그저 시연이 차려준 식탁에 앉아 밥그릇을 비워내고 있는 이 순간이 조금 더디게 가길 원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바램과는 달리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흘려가고 있었다. 김 기만 사건까지 겪은 시연에게 무작정 숨길수만은 없는 일이다.
"아저씨 일, 언제 끝나요?"
"곧."
"그 끝이 어디인줄 알고 가는거예요?"
"아마도...."
"다른 선택은 없어요?"
윤성은 먹던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시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마도 가슴으론 이해를 하는가보다. 가슴으로 이해를 하면서도 머리론 법에 대한 신념때문에 막고 싶은 것이 그녀의 진심일테지.
"내가 어떻게 그때 일을 모두 기억하는 줄 알아?"
살래살래 고개를 흔드는 그녀를 보며 윤성은 낡은 암자의 어두운 방에서 눈을 떴을 때를 떠올렸다. 어둡고 캄캄한 암자의 낡은 방엔 절반쯤 타버린 촛불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아가'하며 자신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고 있던 정현스님, 그 분이 아니었다면 벌써 저승 사자 명부에 이름 석자를 올렸을 것이다.
"스님요?"
"스님이라기보단 땡중이지. 말로는 부처님을 모신다고 하면서 하는 일이라곤 맨날 암자 뒷마당에서 탈춤같은 무술만 하고 있었거든."
"무술? 그럼 그 분한테 배운거예요?"
눈치 하나는 국보급이다.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학교가 끝나면 암자를 찾았다. 처음엔 그저 죽은 엄마가 그곳에 있으니 찾아간 것 뿐이었다. 꺼이꺼이 짝 잃은 거위마냥 끝없는 울음을 토해내는 그를 정현스님은 암자 뒷마당으로 끌고 가 몸을 움직이게 했다.
"스님 말로는 몸을 움직이면 생각이 정지가 된다고 하셨지. 억울하고 처참하게 죽어간 엄마를 내 머릿속에서 몰아내게하려고, 암자를 찾을 때마다 스님은 법당에서 날 끌어내어 몸을 움직이게 하셨어. 그러면서 배운거야. 스님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려시대 승려무술을 전수 받으신 분이셨어."
"고려시대 승려무술? 그런것도 있어요?"
"있더라구. 그리구 꽤나 쓸모가 있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갔지. 헌데 가끔 내 얼굴과 몸에 상처가 생긴다는 걸 안 스님이 주의를 주기 시작했지. 새 어머니란 사람을 조심하라고."
"새 어머니면 윤호 아저씨 어머니를 말하는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 난 그 날 내가 본 그것들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 그저 그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었거든."
"그럼.........."
"그런데, 어렸을 적 새 어머니와 얼굴이 마주칠때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독설과 손지검이 결국 스님의 입을 열게 만들었지. 어쩌면 그 모든 일을 꾸민 이가 새 어머니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서........설마......."
"검사가 되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때 그 사건의 기록을 찾아 본 거였어."
"그냥....... 그냥 아버지한테 말하지 그랬어요. 그 편이 휠씬........"
"어머니를 처리하라고 한 건 아버지야. 남 여사는 덤으로 그 아들의 신변처리까지 원한거고."
시연은 점점 눈이 커져갔다. 지금 윤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일의 끝은 윤성의 새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가 된다는 말이다.
시연의 표정을 보며 그녀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윤성은 조용히 식탁에서 일어섰다. 시연이 놀랄만큼 그 끝이 처참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참 할 것이다. 남 여사와 아버지, 두 사람 모두 마음이 아팠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뼈가루를 안고 울었던 그때의 자신만큼, 차라리 죽어줬으면 좋겠다는 모진 말을 들었을 때의 윤호의 마음만큼 그렇게 아팠으면 좋겠다.
"그.......그럼 작은 아저씨는........작은 아저씨는 어쩔건데요?"
"........."
"남 여사라는 분, 아저씨한테는 새 어머니고 원수일지 모르지만, 작은 아저씨한테는 친 어머니잖아요. 작은 아저씨는..."
"알고 있어. 윤호도 이 일의 끝이 어디라는 걸 알고 있어."
"너무 잔인하다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낳아주신 친 어머닌데....."
"낳아줬다는 이유로 상처 줄 권리는 없어. 윤호도 원해서 태어난 거 아니잖아."
"그래도.......작은 아저씨 분명 상처받을거예요."
"그렇겠지. 평생 죄책감 아닌 죄책감을 지니고 살겠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부모에게 내쳐졌다는 상처를 안고 살아 온 것처럼."
"그런데도 그 일을 하겠다구요? 차라리 그럴거면 작은 아저씨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죠."
윤성은 시연을 쳐다보았다. 비난 받는다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 길 또한 윤호가 택한 길이다. 윤성은 처음부터 윤호가 자신의 일에 끼어드는 걸 반대했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윤호에게 자신의 마지막 표적까지 알려줬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자신이 필요한게 아니냐던 윤호였다. 윤성은 윤호의 눈에서 그때가 다가오면 어쩌면 자신을 생각해서라도 멈춰줄지 모른다는 바램을 읽었었다. 버림받은 애완견이 주인에게 품은 마지막 연정처럼 애처롭기만 했던 그때의 윤호를 떠올리자 윤성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 이 태성이 자신의 방을 찾아왔을 때, 그의 눈에서 보았던 의구심, 자식을 버렸더라도, 버림받았더라도 그래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보호 받기 원하는 가증스러운 그 눈빛.
"그럼 윤호가 입은 상처는 누가 보상해 주지?"
"그건........"
"상상 해 봤어? 자신을 낳아준 친 어머니라는 사람이, 자식의 허물을 모두 덮어주고 감싸줘야 할 친 부모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차라리 죽어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비참함을 상상이나 할 수 있어?"
".........."
"휠체어가 굴러가는 바퀴소리가 끔찍하다고 했던 어머니 말을 들은 윤호의 심정이 어땠을 것 같아?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남의 손을 빌어 살아가는 병신 아들은 필요없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윤호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은 모르겠지만 윤호가 죽을 힘을 다해 휠체어를 벗어나고 싶어했던 이유가 되어줬어. 윤호는 자신의 머리통에 총을 들이대는 대신 내 일을 돕는걸로 그들에게 복수하고 있는 거야."
"..........."
시연은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감히 그 마음을 이해하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다.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 심정을 알 리 없다. 비록 어머니가 다르다고는 하나, 낭떠러지로 내몰린 동생을 끌어 안아 준 것도,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동생을 이해 해준 것도 같은 아버지를 가졌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래도.......그래도 한번쯤은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윤성이 식탁에서 일어설 때, 시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연의 말을 들은 건지 듣지 못한건지 등을 돌리던 윤성이 잠깐 멈춰섰다 이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가 먹다 남긴 밥그릇을 보고 있던 시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밥은..........다 먹고 가지."
첫댓글 그 끝이 저도 두렵네요~
2초동안님! 벗꽃이 너무 예쁘게 피었네요~~ 좋은 하루되세요.^^
긴장감과ᆢ극적인 상황이 기대됩니다~
이양수님! 처음 뵙는거 같은데 끝까지 즐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살면서 행복한적이 없엇던 윤성이와 윤호~결말이 행복한 결말이면 좋을텐데...ㅠㅠ
작가님~~벚꽃이랑 진달래 개나리 목련까지 맘껏 즐기셔요~~^*^
미루님! 정말 예쁜 봄이예요. 제가 느끼는 봄의 정취를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네요.^^
잘봤어요
밤연님! 댓글로는 처음 뵙는거 같은데, 즐감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끝까지 관심가져주세요.^^
결말이궁금해지는ㅜㅜㅋㅋㄱ 다음회도기대할게여
아리용님! 다음회를 기대한다는 말,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