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크기로는 그 아름다움을 쉽게 평가할 수 없다.
일본을 자주 여행하는 집주인의 쇼핑 목록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논현동의 아파트는 작지만 충분히 알차고 인상적이다.
에디터 정수윤|포토그래퍼 심윤석
1 자전거를 기대둘 수 있는 넉넉한 너비의 가벽을 확보한 거실. 긴 가벽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역할도 해낸다.
2 현관문에는 검은 칠판 페인트를 칠해 분필로 간단한 메모를 할 수 있게 했다.
3 접이식 중문을 설치한 거실 전경. 화이트 패브릭 소파와 2인 프레임 소파는 도쿄의 메구로 거리에 있는 숍에서 구입한 것.
4 부부 침실로 사용하는 안방은 베란다를 확장한 뒤 슬라이딩식 도어를 달았다. 커튼 대신 이동식 도어를 달아 아늑하게 때론 환하게 빛의 양과 위치를 조절할 수 있다.
5 커다란 6인용 테이블은 플라이(02-517-6533) 제품으로 볕이 잘 들고 따듯한 베란다 창가에 놓고 사용한다.
논현동의 작은 뒷골목에서 인테리어 회사인 라이프스타일 101과 가구 브랜드 플라이를 운영해온 김본낭 소장이 살던 아파트에 한 부부가 이사를 왔다. 의류 사업을 하는 이 부부는 쇼룸 인테리어를 위한 디자이너를 알아보던 중 김본낭 소장과 인연을 맺게 됐고, 절묘한 타이밍에 이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것. 여러 인테리어 프로젝트와 논현동 아파트의 리노베이션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공사 기간만 3개월 넘게 걸렸다는 이 아파트는 자작나무 합판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플라이의 가구처럼 담백한 느낌으로 완성됐다. 1980년대 유행하던 스타일로 건설된 아파트는 거실과 침실의 창문이 경사진 굽쇠 모양이어서 더욱 독특한 느낌을 준다. 벽은 깔끔하고 단정하게 흰색 페인트를 발라서 마감했고, 현관 옆에는 자전거를 기대 세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폭의 가벽을 세워 가벽 뒤로 소파를 놓았다. 편안한 화이트 패브릭 소파와 나무 프레임의 2인 소파는 도쿄의 메구로 거리에 있는 숍에서 구입한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이상은 도쿄행 비행기에 오르는 이 부부는 미드타운과 신주쿠에 있는 서점에서 인테리어숍 가이드북을 샀고, 틈틈히 인테리어숍 탐방에 나섰다. 시부야의 미로 같은 뒷골목에 조용히 자리한 라이프스타일 숍 마가렛 호웰은 그들이 특히 좋아하는 장소로 숍에 있는 빈티지 스타일의 나무 의자를 구하기 위해 메구로의 앤틱숍을 며칠 동안이나 돌아다녔고, 마가렛 호웰의 페이버릿 리스트를 실은 책은 지금의 집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됐다. 플라이의 디스플레이용 책장에 꽂힌 마가렛 호웰 서적을 비롯한 피트 헤인 이크의 작업물을 담은 책과 각종 인테리어 단행본은 인테리어에 대한 이 집 부부의 남다른 관심과 조용한 열정을 보여준다.
1 플라이에서 구입한 사이드보드 위에 2단 책장을 올려 CD 및 자질구레한 수납공간으로 사용한다.
2 자작나무 합판 소재의 붙박이장과 둥근 아일랜드를 설치한 주방의 모습.
3 거실에서 안방과 드레싱룸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에는 공간을 분할하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다. 욕실을 사용하고 난 뒤에는 습기를 말리기 위해 항상 작은 선풍기를 켜둔다.
4 부부가 서재로 사용하는 방. 경사진 ㄷ자 굽쇠 모양의 창문이 독특한 느낌을 준다.
5 욕실 앞에 있는 자작나무 합판 소재의 상부장에는 욕실 타월을 수납했고, 마가렛 호웰 스타일의 나무 의자 위에는 라탄 바구니를 놓고 세탁물을 담아둔다.
6 수납장 하나 없이 모던한 3단 카트를 유일한 가구로 사용하는 욕실.
한편 김본낭 소장은 나무 현관문에 검은 칠판용 페인트를 칠해 분필로 간단한 메모를 남길 수 있게 시공했고, 바닥에는 폭이 좁고 붉은 톤이 도는 바닥재를 깔았다. 거실에서 안방과 작은 방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에는 공간을 분할하는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안락한 느낌을 더했고 효율적인 수납을 위해 주방과 안방에는 자작나무 합판 소재의 붙박이장을 설치했다. 싱크대와 개수대, 붙박이장까지 설치되어 폭이 좁아진 주방은 동선을 고려해 자작나무 합판으로 길고 둥근 아일랜드 테이블을 짜 넣었다. 바퀴가 달린 아일랜드 테이블 하부에는 기능적인 서랍식 수납 공간을 디자인했다. 아파트 구석구석을 자세히 관찰하며 도쿄에서 공수해온 가구와 가전을 보면 이 부부의 조용하고도 깊은 내공이 드러난다. 주방 싱크대에 아마다나의 토스터와 다용도 테이블에 아마다나의 오븐을 놓고 사용하는 흔치 않은 집. "김본낭 소장님도 일본 가전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모든 방마다 110v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더라고요. 이제 무지 세탁기는 물론이고 아마다나 가전제품을 마음껏 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220v에 트랜스를 연결해 조마조마하게 사용하거나 예전처럼 묵혀두고 있었을 테니까요." 집주인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고른 가구와 에센셜한 생활 소품 셀렉션이야말로 큰돈을 들인 인테리어보다 그 집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에디터의 신념과 딱 맞아떨어지는 집을 만났다. 집의 크기는 중요치 않다.
일본을 자주 여행하는 부부는 트렌디한 인테리어 서적을 탐독하고 도쿄의 인테리어숍을 훑으며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했다. 여행 때마다 소파와 의자, 때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을 사오는 무모한 행동까지 불사한 그들의 노하우는 국제 택배를 이용하는 것. 그들의 쇼핑 목록을 들여다보자.
1 나무 손잡이가 달린 따뜻한 디자인의 오븐 아마다나(en.amadana.com) 제품. 가격 미정.
2 빌트인으로 수납한 블랙 공기청정기 역시 일본에서 구입한 아마다나 제품. 가격 미정.
3 미국계 일본인 디자이너 이사무 노구치가 디자인한 종이 소재 chr(39)아카리 램프chr(39) 비트라(02-545-0036). 60만~70만원 선.
4 각종 인테리어 & 라이프스타일 서적을 꽂아둔 사다리식 책장은 플라이(02-517-6533) 제품. 1백30만원.

정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