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산내면에서 명품 얼음골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는 가운데 어린이들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얼음골 사과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 |
밀양 지역에서 상품성 있는 사과 재배가 가능한 곳은 산내면이 유일하다. 그래서 지역 내 사과 재배농가 967호가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산내면이 해발 400m에 위치한 고산지대인 데다 연평균 기온 일교차가 13도로 크고 일조시간도 다른 사과 생산지 보다 30분∼1시간이나 더 긴 등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인접한 산외면과 단장면의 경우 맛있는 사과는커녕 아예 사과 재배가 되지 않아 눈을 씻고 보아도 사과나무를 찾을 수 없어 이상하다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사과 재배의 천혜 적지라는 것을 알기 이전인 지난 1970년대만 해도 산내면은 골짜기 논밭에서 벼농사와 밭농사에 의존하던 이름없는 농촌에 불과했다. 당시 밀양시 상남면과 하남면 등 논밭이 풍부한 지역의 농가 대부분이 시설하우스에서 고소득의 고추와 깻잎 등을 재배하며 부농을 꿈을 차츰 현실화 해가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얼음골은 전국 최고 사과의 땅
이처럼 척박하던 산내면 얼음골에도 희망이 찾아왔다. 지난 1972년 김문섭(73·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씨가 하천부지 1만 ㎡에 1500그루의 사과나무(키가 작은 M26에 후지를 접붙인 것)를 심은 것이 계기였다. 김 씨도 사과 재배가 특별히 자신이 있어 심은 것은 아니었다. "마땅히 재배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경북 경산시에 있던 묘종 판매상에서 당시 주로 판매되던 M26을 보고 기온차가 크면 좋은 사과가 생산된다는 것만 믿고 재배를 시작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를 따라 사과나무를 심는 농가가 늘어 갔다. 산내면 송백리 손을현(65) 씨도 지역에서 사과 재배 붐이 일던 지난 1978년 6600㎡에 1000그루(키가 큰 MM106)을 심었지만 성과가 없어 7년 만에 도로 뽑아냈다. 손 씨는 "나무 키가 너무 커 재배와 수확에 어려움이 따르는 등 수종을 잘못 선택했다"고 시행착오를 설명했다. 반면 키가 작은 M26은 사다리 없이 손만 뻗으면 수확이 가능한 등 지역 농업 환경에 더 맞았다. 이에 따라 지역 내 농가들이 M26을 많이 심었고 이제는 더 키가 작은 M9가 주종을 이루며 전체 얼음골 사과 재배면적이 671㏊나 된다.
이런 시행착오 끝에 산내면에서는 사과 보다 더 적절한 농산물이 없다는 것을 주민들은 깨달았다. 벼나 일부 채소류를 제외하면 마땅히 재배할 것이 없는 척박한 곳이라고 지역 환경을 원망만 해왔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기온 차가 큰 고산지대인 얼음골이 사과를 재배하기에는 최적인 '천혜의 땅'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명품은 자연스레 알게 된다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 사과 주산지. 산내면 어디에서나 얼음골 사과가 그득 재배되면서 지역 전체가 사과나무로 덮여있다. | |
당시는 얼음골이 위치한 산내면과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 농촌도 홍보나 판로확대를 꾀하기 보다 그저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었던 때다. 농가는 생산만 하고 판매는 공판장이나 농산물시장 상인들이 도맡았던 시기로 농가들은 생산에 목을 매던 시기였다. 이 시기 대형 소비처인 백화점이나 유통마트 등을 통한 판매촉진 홍보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도 얼음골 사과의 당도가 평균 14브릭스(Brix)로 다른 지역 사과 보다 달콤하고 일명 '꿀(밀병 현상)'이 들어 있으며 국립농산물검사소로부터 품질인증(제1918호)을 받는 등 명품으로 소문나면서 소비가 급증했다.
지난 1995년부터는 얼음골 사과의 명품화 작업이 본격화 됐다. 웰빙 추세에 맞춰 화학비료를 배제하고 친환경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친환경 영농이 지금은 60% 이상의 농가로 확산됐다. 이들은 화학비료 대신 퇴비를 뿌리고 농약 대신 목초액을 살포하는 등 나무에 달린 사과를 뚝 따 옷에 쓱쓱 문질러 먹어도 될 만큼 얼음골 사과를 친환경으로 바꿨다. 화학비료를 쓰면 키우기 좋지만 이 경우 나무가 계속 자라면서 당도가 떨어지고 명품의 명성을 잃을 수 밖에 없어 퇴비를 고집하고 있다.
■명품 최고봉 시동
얼음골 사과 재배 농가와 밀양시는 지난 2007년부터 최고 명품의 얼음골 사과 생산에 들어갔다. 얼음골 사과 중 16브릭스 이상인 것만 골라 밀양의 대표 브랜드인 '미르피아' 상표를 부착하고 위조방지용 홀로그램을 붙여 명품 중의 명품 얼음골 사과로 출시했다. 이 사과는 착색률이 80% 이상으로 빨강색을 띠면서도 노란색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는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로 황금 명품이다.
현재 생산되는 연간 1만7000여 t 중 2% 340t이 명품 중의 명품으로 밀양시가 품질을 보증한다. 품질에 이상이 있을 경우 시가 보상하며 생산 농가는 제재를 받기 때문에 품질관리가 철저하다. 시와 재배 농가들은 2∼3년 내 16브릭스 이상인 황금 명품을 10%로 늘리기로 하고 사과나무 가지를 적절하게 치고 바닥에 반사필름을 깔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과나무의 가지를 치면 생산량은 줄어드나 햇볕이 사과나무 아래까지 잘 비쳐 당도가 높은 최고명품을 생산한다.
최근 얼음골 사과의 명성을 이용해 짝퉁 사과가 일부 나돌기도 하나 짝퉁은 금세 탄로가 난다. 짝퉁은 맛이 떨어져 소비자들이 농가나 시에 이의를 제기하게 되고 판로를 역추적하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짝퉁이 발붙일 곳이 없다.
시와 얼음골 사과 재배 농가들은 "얼음골 사과의 평균 당도인 14브릭스 이하인 것이 시중에 유통되는 일이 없도록 사과 가공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라며 "공장이 가동되면 14브릭스 이하인 얼음골 사과는 모두 쥬스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고 명품만 내놓기 때문에 명품 얼음골 사과의 명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 명품 이끈 밀양 얼음골사과 발전협의회
- "생산자가 가격 결정하는 국내 유일의 농산물"
밀양 얼음골사과 발전협의회 손을현 회장이 얼음골 사과의 비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협의회는 회원이 1000여 명에 달하며 각 회원 농가가 사과 포장박스를 사용할 때마다 1장당 100원을 더내 기금으로 활용하는 얼음골 사과 명품화 단체이다. 이강호(64) 씨는 "비닐하우스를 하다 사과로 재배작물을 전환했다"며 "협의회에 가입한 후 출하는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됐고 소득이 늘면서 작물전환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과 포장박스는 얼음골 사과의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서나 다름없다. 생산 농가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명기하고 포장박스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짝퉁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포장박스 단속도 철저하게 히 벌이고 있다.
사과 판매가격도 협의회가 결정한다. 다른 지역의 사과는 소비정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만 얼음골 사과는 전국에서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유일한 농산물이다. 협의회 유통분과 위원들이 사과 출하시기에 맞춰 농산물 도매시장, 공판장 등을 찾아 시세를 조사하고 얼음골 사과 생산량, 영농비 등을 세밀히 분석한 후 가격을 결정한다. 그래서 턱없이 비싼 경우가 없이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협의회는 사과의 명품화도 이끌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퇴비를 늘리고 농약 사용을 줄이는 등 웰빙사과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둬 60% 이상이 친환경이며 향후 수년 내 모든 얼음골 사과가 친환경으로 바뀔 전망이다. 얼음골 사과를 알리기 위해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생대회와 사진촬영대회도 열고 서울 등 대도시 백화점과 대형 유통마트를 돌며 홍보전을 펼치는 등 판촉전에도 열성이다.
손을현(65) 얼음골사과 발전협의회장은 "얼음골 사과가 현재의 명성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명품이 되도록 생산관리를 철저히 할 것"이라며 "올해는 관광도 활성화하기 위해 사과나무를 분양하는 등 새로운 준비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