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짓 몸뚱이는 본체. 주인공의 한시적인 복사체
-이 몸은 나(我)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 것. 비아(非我)
어느 집을 찾아가든 주인양반을 부르잖습니까?
이 몸뚱이는 집이어요.
버스를 타면 버스를 끌고 가는 사람인 운전사를 보지요?
운전사가 없으면 버스가 굴러갑니까?
운전사가 없으면 안 되지요?
나(我)라고 하면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몸뚱이인 물질과 정신을 합한 개념입니다.
나의 주인, 그러면 뭐라고 하지요? 영혼체입니다.
육근이 갖춰져 있어야 됩니다.
전번 법문할 때에도 윤회의 주체 자격을 이야기했지요?
윤회 주체의 자격, 부파불교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심식류도 아니고
아뢰야식도 아니어요.
오온상속설 심상속 업력의 상속 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아니어요.
그것은 윤회의 주체 자격이 없습니다.
윤회의 주체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은 영혼체인데,
조건 및 자격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지 않아야 됩니다.
태어나지 않고 그러면서 죽을 수가 없어야 됩니다.
▶업을 저장 보존하고 이숙(異熟)시킬 성숙시킬 공간적인 개념,
의미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체(體)가 있어야 된단 말입니다.
몸, 체가 있어야 됩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을 구족하고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조건입니다. 이 조건에서 볼 때 아뢰야식은 어떻습니까?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입니까? 아니어요.
왜 그러느냐하면,
마음·일심이라고 하는 진여(眞如)에 무명(無明)이 딱 들러붙은 그놈을
아뢰야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진여에 무명이 결합된 거예요.
시작이 있잖아요? 시작이 있으면 안 되어요.
창조론을 왜 부정하는지 압니까?
창조하게 되면 시작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시작 이전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시작 이전이 없다고 하면 말이 됩니까?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을 이야기한 거예요.
무시무종이어요. 시작이 있다는 것은 과거가 없다는 말이어요.
과거 모든 것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시작이 있습니까? 과거가 없는데 시작이 되겠습니까? 아니어요.
여러분 둥근 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작이 있습니까? 없어요.
그래서 이 거짓 몸뚱이를 가아(假我)라고 합니다.
이것은 본체 • 주인공의 한시적인 복사체입니다.
80년 100년밖에 살지 못하는 한시적인 복사체예요.
주인공이 없으면 이 육신은 탄생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만나 정자 난자만 결합해서는 안 됩니다.
이 영혼체가 들어가야 됩니다. 그것은 아실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나(我)가 아니고 내 것도 아닌 이유는 세월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진짜가 아니어요.
무상(無常), 또 현상계적으로 볼 때에는 확실히 무아예요.
실체가 없어요.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본체계의 영역에 영원히 죽지 않고 일찍이 태어나지도 않는
이 몸의 주인공인 영혼의 실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 몸뚱이는 내 것도 아닙니다. 내 것도 아니다.
왜냐? 왜 내 것도 아니라고 하는지 압니까?
내 것이면 어떻지요? 여러분 내 것이라고 하면?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내 것인 거예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 육신과 정신을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디까?
‘병이 오지 않아야 되는데, 저 친구는 무슨 간경화를 앓고 있는데
나도 간경화를 얻으면 큰일인데, 정신질환이 생기면 큰일인데,
중풍이 들면 큰일인데…’ 해도 어쩝니까? 요놈이 말을 듣습니까?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말을 안 듣지요.
이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또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아침 4시경에 일어나서 저녁 9시에 자고,
그리고 시간을 할애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 그 말은 분명히 맞아요.
그렇지요? 그러나 그렇게 됩디까? 안 되지요?
슬픈 일을 당하면 슬픈 체 하지 않아야 되는데 됩디까?
어쨌든 이 몸뚱이나 정신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니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몸은 나(我)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 거예요.
나도 아니어요. 비아(非我)라고 합니다.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출처:2014년 자재 만현 큰스님 불교대학 특별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