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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관을 대망하는 신앙 (딤후4:1-8)
이 세상을 살아갔던 모든 기독 신자들은 따로 간직된 미래적인 소망 앞에서 춤추며 살아갔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을 위해 예비 된 상급 앞에서 흥분하며 살아갔습니다. 복음 사역을 위하여 열심히 몸 바쳐 충성하다가 이제는 감옥에 갇혀 머지않아 자신의 죽음 즉 순교를 예감하고 있던 저 불굴의 세계적인 전도자 사도 바울의 가슴은 이러한 미래적인 소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에서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마지막으로 자신의 확고한 소망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기를 자기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복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웠으며,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후회 없는 삶에 대한 승리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말씀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안기신 것 같이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 완수하고 주님의 품에 안식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전도자 바울의 가슴은 비탄과 슬픔으로 멍울이 든 것이 아니라 불타는 미래의 소망으로 용솟음치고 있었습니다. 그 미래의 소망이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주어질 면류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면류관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왕관이라는 말로 헬라어로 ‘디아데마’입니다. 이는 왕권이나 권력의 표상으로서 신약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계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계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계19: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이 말은 영원하신 예수님의 왕권과 그 왕권에 도전하는 사단의 통치권을 말할 때 쓰였습니다. 물론 사탄의 통치권은 모조품입니다. 그 외의 모든 경우의 면류관은 헬라어로 ‘스테파노스’입니다. 이 말의 어근은 ‘둘러씌운다.’에서 나온 말로 당시 운동경기의 승리자에게 수여했던 것으로 월계수관, 상수리 나뭇잎관, 그 외에도 올리브관, 장미꽃관 등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쓰신 가시 면류관도 이런 종류에 해당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고대 헬라적 배경의 면류관 스테파노스를 기독 신자들이 받을 영광의 상급과 연관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면류관은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있습니다.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 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이 면류관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는 상입니다. 운동 경기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선수들은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즉 수면이나 음식, 오락, 가족 면회 등을 수개월 혹은 몇 년씩 절제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는 2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이스두미안 경기나 올림피안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야생 감람 잎을 엮어 화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때로는 파아슬리나무나 올리브 나뭇잎을 엮어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이것은 선수들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그러나 이 면류관은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그 뿐 아니라 선수들의 영예도 덧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일평생의 노력이 그 한 순간만 지나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면류관을 썩을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 신자가 받을 영적 경기의 상은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달음질 할 때 향방 없는 것 같지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자기가 자기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썩지 아니할 면류관은 성도가 바로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아를 죽이고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만 존재하는 바로 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자기를 절제하고 극기하고 난 결과로 얻은 영광은 그 순간이 지나면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신자들이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는 일은 다시는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하는 이것을 바울은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2) 의의 면류관입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여기 의의 면류관은 그 앞에 나오는 사건의 결과입니다. 바울이 싸운 선한 싸움의 결과입니다. 여기 ‘선한 싸움’이란 힘을 겨루어 싸우는 레슬링의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선한 싸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골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전도자의 사명으로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상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고’ 라는 표현들은 죽음과 바꾸는 고통의 정글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얻어지는 보상이 ‘의의 면류관’입니다. 의의 면류관이란 진리로 무장된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 같이 모두 사탄적이었습니다. 거짓과 불의와 분쟁과 모순과 타락의 전형들이었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는 불가능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의 사명을 주신 목적은 남에게 전파하는 목적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불의와 거짓과 싸우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설교를 하고 전도를 하고 기도해 주는 일들은 내 자신을 위한 하나의 위대한 훈련이요 개혁입니다. 복음은 전하는 자가 더 많은 각성을 하고, 더 많은 은혜를 받고, 더 많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싸웠지만 그 결과는 교회는 무너졌고 성도들은 떠났습니다. 한 평생의 사역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리로 완전하게 무장된 바울 자신이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운 결과, 달려갈 길을 마친 결과, 믿음을 지킨 결과가 바울에게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급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사역의 말기에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허무함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사역의 열매가 신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고 신학교를 세워 많은 제자들을 배출해도 마음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 채 사역을 은퇴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은 변화시키지 못했지만 자신은 진리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사역자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입니다.
3)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라.
여기 시험이라는 말 헬라어 ‘페이라스몬’은 믿음의 연단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인정하심을 받는’ 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모스’는 금이나 은을 제련하여 귀금속이나 동전으로서 자격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시험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 시험에 통과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수여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반대말은 ‘아도키모스’인데 바울은 ‘쓰임 받고 버림 받는다.’고 할 때에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편지할 때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면류관은 죽음 아래에 깔려 있으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이겨내고야 마는 생명의 승리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생의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말합니다. 선한 일을 한 자 즉 사탄을 버리고 예수를 영접하여 믿는 자들은 생명을 부활로 나오고, 예수를 배척하고 사탄의 하수가 되어 종노릇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망의 종노릇을 하던 인간이 예수를 믿고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시험과 환난과 시련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시험과 유혹은 한두 번에 그치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사탄은 성도를 넘어뜨리고 믿음을 무너지게 합니다. 그 모든 시험을 이긴 자에게만 생명의 면류관이 수여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두려워해서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해서도 안 됩니다.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시험에 당당하게 맞서서 싸우는 자만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도록 충성하는 자만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4)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벧전5:3-4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자신에게 부탁했던 말을 다른 목자들에게 부탁합니다. 본래 양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목양의 직임을 맡기기 전에 먼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목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양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자장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양 무리를 돌보는 직임을 사람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양을 돌보는 일에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되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하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목양에 대해 주어지는 상급이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양을 먹이고, 양을 기르고, 양을 보호하는 일은 마치 전투하는 병사가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여 자신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과 같이 생명을 내어놓는 수고요, 경기하는 선수와 같이 결사적인 투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구원과 섬김을 위하여 자신을 전제물로 드릴 수 있는 목양이 참 목양입니다. 또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목양의 자세가 바로 목자의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자가 받을 면류관은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5) 금 면류관입니다.
*계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이십사 장로는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12’의 곱절의 수로서 구약의 열두 장로와 신약의 열두 장로를 합한 이십사 장로는 신구약 교회의 대표들입니다. 교회의 대표들이 흰옷을 입고 금면류관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지면서 주의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여기 장로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금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주님과 함께 왕노릇하는 왕의 권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계22: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이 면류관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받을 기독 신자들의 미래적인 보상을 뜻하고 있습니다.
2. 면류관의 숨겨진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이행득상(以行得賞)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서만 얻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의 법뿐입니다. 그러나 면류관은 믿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따라오는 보상을 의미합니다. 경기자, 충성한 자, 전투한 자, 감독자, 기업의 후사들은 이 세상 여러 격전지에서 수많은 공로를 남긴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따르는 선행은 심은 대로, 노력대로, 충성한 대로, 거두는 상급이요, 축복입니다. 성화와 선행과 축복인 면류관은 정비례하고 있습니다.
2) 승리의 기쁨과 영원한 명예를 의미합니다.
당시 헬라 사회에서 사용된 면류관 스테파노스의 수혜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제일 먼저 목표 지점을 통과한 주자입니다. 즉 달음질의 선두 주자입니다.
둘째로--원반을 가장 멀리 던진 선수입니다.
셋째로--상대방을 마루에 던진 레슬링 선수입니다.
넷째로--국가의 명예와 국익을 크게 도모한 충성된 개선장군입니다.
다섯째로--결혼 축제 때 신랑과 신부입니다.
그렇다면 면류관은 승리의 상징입니다. 길이 그 이름을 빛낼 명예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모두에게 기쁨의 극치였습니다. 싸워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황제 나플레옹은 말하기를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싸움은 비겁하다’ 고 하였습니다. 이는 세상적인 싸움을 말하는 것이지만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싸우지 않고는 취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이 조건 없이 우리에게 항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영화의 빛을 알려줍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성장은 필수적입니다. 성화는 신앙성장의 과정입니다. 면류관은 신앙성장의 결과인 영화의 상징입니다. 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또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영화 또한 여러 종류의 면류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한 선수가 다른 경기에 참가하여 몇 개의 금메달을 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면류관을 획득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3. 면류관의 내용을 생각해 봅니다.
1) 이 세상에서 받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장수의 복입니다.
*잠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지식의 복입니다.
*잠4: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신앙의 교인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살전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는 것입니다.
*딤후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2) 내세에서 받는 면류관입니다.
그리스도의 슬기로운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마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는 것입니다.
*마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영생에 들어가는 축복입니다.
*마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기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면류관이 없습니다. 파종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열매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신자들에게는 선한 일을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자들에게 필수적인 생명의 표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법에서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를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주께로부터 받은 축복의 면류관을 헤아려 봅시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계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이 주신 면류관을 굳게 잡고 빼앗기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그들 위에 기록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께 받은 면류관을 굳게 잡고 다시는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 면류관은 승리의 기쁨과 빛나는 명예의 표상입니다. 그것은 성화 생활의 승리적인 축복이며 동시에 영화의 상징입니다. 구원의 최종 단계인 영화에 이를 수 있도록 모든 일에 신중하고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바울에게 주셨던 그 면류관을 우리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그 면류관을 대망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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