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42.막고굴 제361굴 ‘천비천발문수경변’
‘천 개 손·발우’로 관음자비·문수지혜 완벽 결합
중당 시기 문수·오대산 신앙 영향으로
‘중국서 성립된 경전’이란 주장 지배적
중생구제 상징하는 천수관음 도상에
해탈지혜로 이끄는 발보리심 더해진
‘천발문수’로 상구보리 하화중생 표현
막고굴 제361굴 동벽의 ‘천비천발문수경변’. 문수보살은 “일체중생들이 부처님들의 아들이며 나의 부모”라는 서원을 세운다. 문수보살을 만나는 인연으로 무량한 부처가 출현하는 이유다.
중당(中唐, 766~835) 시기에 조성된 막고굴 제361굴 주실 동벽의 입구 우측에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색다른 경변이 장엄되어 있다. 화면 중앙에 자리한 보살은 화불이 모셔진 보관을 쓰고, 이마에는 3안을 갖추고 있다. 보살이 수인을 취한 두 쌍의 손 위에는 각각 발우가 있고, 그 안에는 수미산정에 단좌한 부처님이 보인다. 다시 보살의 몸 뒤로 수많은 발우를 든 손이 겹겹의 원을 이루며 자연스레 보살의 신광(身光)을 형성하고 있고, 그 주위로 권속 보살들이 둘러앉아 있다. 이와 유사한 보살형으로 지난 40회에서 천수천안관음보살상을 이야기하였지만, 이 361굴 경변 속의 보살은 천수에 눈이 아닌 발우를 갖췄다는 점에서 천수관음상과 도상적으로 명백하게 구별된다. 보살은 수미산 정상의 연화대좌 위에 단좌하고 있고, 그 아래에는 인간의 상반신과 용의 하반신을 갖춘 두 용왕이 수미산의 중간에서 서로의 몸을 휘감고 있다. 수미산은 겹겹의 원으로 표현된 대해에 자리하며 그 양측에는 각각 아수라와 나찰이 위호하고 있다.
천 개의 발우를 든 이 보살상은 어느 존자이며 무엇을 표상하는가? 이러한 도상적 특징을 담고 있는 경전은 불공역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 이하 천발경)’이다. 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마혜수라천궁에서 비로자나 여래와 함께 금강성해연화장회(金剛性海蓮花藏會)를 여셨다. 이때, 회중에 “대성(大聖) 만수실리보살이 금색의 몸을 나타내시고, 몸에서는 천 개의 팔과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발우를 출현시켰으며, 발우 안에서는 천 분의 석가모니가 나타났고 천 분의 석가모니는 다시 천백억 석가모니의 모습으로 화현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361굴 동문의 경변은 ‘천발경’에서 설하는 금강성해연화장 가운데의 ‘대성만수실리’, 즉 ‘천비천발(千臂千鉢) 문수보살’을 표현한 것이며, 발우 안의 부처님은 화현한 천 분의 석가모니불임을 알 수 있다. 화사(畫師)는 천수천안관음상에서 40수법의 지물로 천 개의 방편을 대표한 것과 같이, 문수보살 몸 주변 일부의 발우에만 석가모니 화신을 그려 천 분의 화불(化佛)을 대표하고 동시에 도상의 번잡함을 덜어내었다.
경에서 비로자나여래께서 설하시길, “나는 지난날 금강비밀보리법의 가르침을 닦아 지녔는데, 이 대성 만수실리보살이 나의 지난날의 스승”이며, 그때의 가르침으로 신속히 불과(佛果)를 성취하였노라고 밝히셨다. ‘천발경’은 곧 문수보살의 금강비밀보리법을 아(阿)·라(囉)·파(跛)·좌(左)·나(曩) 등 오자진언(五字眞言)의 5문(門)으로 총섭하여 교설하는 내용이다. 문수보살은 “일체 제불여래금강의 본모(本母)여서 문수보살로부터 금강반야의 신심(身心)이 비롯되어 일체의 불보살들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문수보살은 곧 반야 지혜의 요체이며, 그러므로 천비천발을 구족하고 그로부터 천백억 석가모니불이 화현하는 것이다.
문수보살은 “일체 모든 보살들과 일체의 유정 중생들이 나의 서원 안에 들어오면, 그들은 세존과 부처님들의 아들이며 또한 나의 부모”라며 열 가지 서원을 내는데, 그 요지는 성스러운 성품의 힘으로 유정들의 죄와 허물을 소멸케 하고, 보리와 불과로 인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문수보살이 “성스러운 성품의 원력으로 삼계에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삼계에서 벗어나지도 않으며 마음이 허공과 같아 항상 여래의 청정성해 진여장(淸淨性海眞如藏) 가운데 있으면서 법계에 안주하고, 또한 중생이 가진 심식의 체성 속에 두루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비천발문수보살경변에서 천 개의 발우는 문수보살이 표상하는 일체제불의 지혜이자, 일체중생에 본연하는 보리심이다. 중생은 문수보살과 인연함으로써 천백억의 석가모니로 화현하리라는 것이다.
‘천발경’은 당시 문수신앙 및 오대산신앙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성립된 경전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경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경의 서문에 신라 구법승 혜초(慧超)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공 스님은 금강계 밀교사상에 입각하여 문수보살 신앙을 중시하였고 다수의 관련 경전과 의궤를 역출하였다. 혜초 스님은 불공의 6대 제자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로 금강계 밀교에 대해 정통하였으며, 당에서 역경사업에 참여하고 내도량에서 기우제를 거행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훗날 혜초 스님은 오대산의 건원보리사에 머물다 그곳에서 입적하였는데, 이 서문은 그가 건원보리사에서 직접 기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문에 의하면 혜초 스님은 740년 금강지가 천복사 도량에서 ‘천발경’을 번역할 때 필수를 담당하면서 불공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불공역으로 기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밀교학자 뤼젠푸(呂建福)은 ‘천발경’과 천발문수상이 당시 문수신앙의 중심이었던 오대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서문의 저자로 기록되고 당시 오대산에서 활동하였던 혜초의 영향을 고찰해 볼 만하다.
돈황석굴에서 천비천발문수경변은 중당 이래 서하(西夏, 1038~1227) 시대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조성되었다. ‘역대명화기’에 의하면 장안(長安) 자은사에도 일찍부터 천비천발문수상을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있지만, 늦어도 8세기 말엽에는 장안에서도 경전과 상이 상당히 유행한 것으로 본다. 천발문수상이 성당 시기부터 성행한 천수관음상에 뒤이어 출현했다는 점이나 돈황석굴에서 대개 두 상이 대칭하여 함께 조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천발문수상이 천수관음상의 영향을 받아 창안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두 경변의 양립은 중생의 고액에 따라 무량한 방편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대자대비심과 중생을 속히 해탈의 지혜로 이끌고자 하는 발보리심을 대변하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불교의 핵심교리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위경논란에도 불구하고 천발문수상의 출현은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1701호 / 법보신문]